제 641화
184. 3천 년의 시간을 넘어 이어진 과제
살아있는 좀비.
어떤 의미로는 살아있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의 반 시체.
풍부한 자원과 끊임없는 지원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두 사람은 인간을 한계까지 갈아 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깨달았다.
“그래도 너희는 상황이 좋은 거야. 지원도 없으면서 갈아 넣기만 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발언에 두 사람의 공허한 시선이 몰려왔다.
“둘 다 50레벨 넘겼네. 축하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보통은 자본과 지원이 있어도 힘든 레벨 상승을 이들이 이뤄낸 것이다.
“토할 거 같아.”
마가의 중얼거림에 포도맛 캣타워는 오랜만에 그녀의 말에 공감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욱…….”
대체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이 일에 열중한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바타가 성장하는 게 마음에 든다고 해도 이건 정도가 지나치지 않는가.
이제 더는 못하겠다는 심정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두 사람에게 데이비가 빙그레 웃어 보인다.
“니들 이게 두 번 구할 수 있는 물건인 줄 알아?”
흉신 굼다는 시스템 외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놈의 심장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재인 만큼 실패하는 순간,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소리였다.
제작 스킬 레벨이 높을수록 가공 확률이 올라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100퍼센트. 타협은 없다.”
내 발언에 두 사람의 눈이 퀭해진 건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저…… 저기요…… 스킬레벨 50만 해도 세계 랭커 급인데…….”
“그걸론 안 되지. 기왕 할 거면 전 차원 최고를 노려보라고. 그래. 너무 높게는 힘들 테니 60만 가볍게 돌파해 보자.”
“우욱…….”
견디다 못한 마가가 토기가 올라왔는지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시선을 돌린다.
포도맛 캣타워는 공허한 얼굴로 휘적휘적 걸어와 내 팔을 붙잡고 물었다.
“아니죠? 아니라고 말해줘요.”
“변동은 없어.”
“야…… 야 이 X새끼야! 니가 사람새끼냐!!”
“한다고 한건 너희들이다?”
놀리듯 말하자 그의 얼굴에 절망이 어린다.
제발 봐달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50대에 왔을 때부턴 시간 가속 까지 걸고 엄청난 양의 물량을 뽑아냈다.
아무리 편법을 써도 이 정도 레벨이 되면 제작 필요 물량의 수가 보통이 아니다.
‘조금 과한 것 같은데.’
‘이미 두 사람의 가공, 아니 두 사람을 갈아 넣는…… 것도 아니구나. 두 사람을 지원하는 데에 너무 많은 돈을 썼어.’
이들에게 제공한 자원은 알프 온라인의 자원이 아니었다.
실상 알프 온라인의 화폐는 내가 보유한 게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디서 이것들을 구해왔는가.
대답은 간단했다.
티오니스에서 공수해 온다.
마침 자원을 팔 기회를 엿보고 있는 린디스 제국과 협약을 맺은 나는, 그들에게서 철광석을 포함한 다수의 자원을 대량으로 매입 후 이 두 사람에게 넘겨 가공하고 다시 되파는 작업을 했다.
스킬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본래라면 80퍼센트 이상은 제대로 팔지도 못할 물건이 나올 테지만.
나라는 존재를 곁에 둔 것만으로도 이걸 양산형으로 쓸 수 있는 품질 보증 효과를 받는다는 건 어메이징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린디스 제국은 다량의 무기와 갑주, 방어구를 구비할 수 있고, 나는 싸게 사들인 철광석을 이용해 다시 되파는 식으로 손해를 메꾸다 못해 오히려 이득을 챙긴다.
지원이라고 했지 자원봉사라고 한 적은 없으니 말이다.
“쫄지 마. 피로 정도는 내가 어떻게 해줄 테니.”
내 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내가 해 주는 안마는 효과는 확실했지만, 고통을 수반한다.
거기에 적응한 인간이라고 해봐야 사실상 매번 당하던 일리나가 전부였다.
“저…… 저 그냥 안 받을게요.”
“어허, 동작 그만. 선택권을 내가 언제 준다고 했나?”
이걸로 만족할 순 없다.
확률은 무조건 100퍼센트.
협상은 없다.
덥썩!!
도망치려는 녀석을 순식간에 붙잡은 뒤 바닥에 제압한 내가 섬뜩하게 웃어보인다.
덩치가 제법 큰 녀석이지만 녀석과 나의 근력의 차이는 덩치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걱정 마. 등짝만 볼 거야. 등짝.”
“그…… 그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녀석을 붙잡은 손이 움직이자 녀석의 얼굴에 기괴한 표정이 서린다.
그리고는 멀찍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산소와 수소를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수소 너 이 새끼!! 너마저!”
수소는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 * *
갑작스레 제작 스킬 레벨 랭커를 갈아치워 버린 두 명의 신성에 대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고레벨 제작 스킬을 지닌 생활직, 그것도 물질 변환사는 희귀하기 그지없다.
과정도 사실 몇몇을 제외하면 지루해 하는데다가 올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장장이의 경우엔 조금 흔한 편이지만 보통 어지간해선 20에서 30정도만 찍어도 1급 대장장이로서 다른 유저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50?
단순히 랭크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 작업 가능 효율에 따라 갈린다.
사실상 50레벨 이상의 생산직은 랭킹을 노리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고랭커의 장인일수록 더 좋은 품질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아직까지 발견이 안 된 지역의 새로운 물건과 아티펙트, 소재 또한 고레벨 장인들은 다룰 수 있으니, 잘만 하면 말 그대로 길드 하나가 독주하는 게 가능해진다.
실제로 본래 랭킹 2위였던 중국유저를 길드에 넣고 있던 흑풍길드가 괜히 세계급 랭킹이 되었겠는가.
단순히 밸런스 X망겜이라며 부르짖기엔 너무 현실적인 감각과 사람을 매료시키는 화려하고 수많은 스킬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분위기나 새로운 감각들.
그것들과 넬타리드의 세뇌가 지구의 인간들을 이 게임에 빠져 미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빠져들지 않나?”
“뭐,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건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의 탈을 쓴 또 다른 현실이죠.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상당량의 활동량을 보이면 육신이 의학계의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 건강해지는 사실이 퍼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상현실 자체가 그런 효과라면 얼마든지 여러 방법은 존재한다.
하지만.
알프 온라인을 운영하는 국제 기업은 도저히 이 알프 온라인 이외의 다른 가상현실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기술을 가진 이가 그것을 다른 곳에 이용하지 않으니.
세계의 입장에선 답답할 따름이다.
문제는 법적으로 어떤 구실을 들이밀어 그 기술을 빼갈 힘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알프 온라인을 유지하는 게임사는 정체 불명으로 알려져 있다.
돈도 안 되고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으니 불가침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그런 주제에 과금이라곤 최소한으로만 하고 있으니 여론조차 나쁠 수가 없다.
“확률…… 99.5퍼센트…….”
기어이 갈아 넣을 대로 갈아 넣어 흉신의 비늘 가공 99.5퍼센트라는 확률을 건져버린 포도맛 캣타워는 엉금엉금 기어와 울먹거리며 내게 매달렸다.
“제발…… 제발 그만……그만…… 더는 우욱!”
토악질을 하는 녀석이 너무 대견스러워진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고생했다.”
내 한마디가 그에게 그렇게 크게 영향을 준 것일까.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그의 표정은 대번에 살아나기 시작했고 마치 신이라도 영접한 것처럼 양팔을 들어 올리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드…… 드디어 끝이…….”
물론, 그의 기분이 다시금 나락으로 처박히는 건 한순간이었지만 말이다.
“거의 다했구나.”
“무…… 무슨?!”
“0.5퍼만 더 올리면 돼. 힘내자.”
“자……잠깐만요!! 100퍼센트가 되려면 지금부터 5레벨 더 올려서 60은 가뿐히 넘겨야…….”
“그래. 하면 되겠네. 물자도 충분하고, 시간도 충분한데 뭐가 문제야.”
내 물음에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 모습을 질린 듯 보던 마가가 파르르 떨며 물러난다.
나름 성격이 제법 개차반이다만. 싸이코에게 물리면 그 개차반도 개순함으로 변할 뿐이다.
“나…… 나는 괜찮죠? 이제 쉬어도…….”
“누구 마음대로. 계약서대로 가 봐?”
“…….”
결국, 포도맛 캣타워가 100퍼센트라는 찬란한 확률을 채웠을 때.
그의 레벨은 60이 넘어있었다.
그렇게 하얗게 질린 채 추욱 늘어져있는 포도맛 캣타워와 마가를 보며 나는 이제 본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손뼉을 치며 흉신 굼다의 심장을 마가에게 던져준 뒤 비늘을 포도맛 캣타워에게 건네주었다.
“자, 시작해보자.”
뭐가 되었건 재밌는 놈이 탄생할 것이다.
* * *
포도맛과 마가가 굼다의 소재를 가공하는 그 시각.
손이 굳어 간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다른 방면의 실험을 개시했다.
마가와의 약속인 그 성격이 뒤틀린 도련님에 관해선 발키리아들이 처리할 테니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 당장은.
오랜만에 황색 바위 드워프 마을을 찾은 나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허겁지겁 뛰어오는 드워프 장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사! 이 누추한 곳까진 어인일로?”
“누추한 곳이라뇨. 장인의 혼이 살아 나고 있는 곳인데.”
내 말에 드워프들은 반쯤은 부끄러워하며, 또 반쯤은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보였다.
과거엔 아집으로 휩싸여있던 드워프 마을이었지만 태초의 섬광 이후로 이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존심만 가득하던 곳에 발전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내게 기술을 받아간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불태웠고, 마을을 조금 더 대단하게 발전시켰다.
“한데. 무슨 일로.”
“장로님들껜 조금 불쾌한 요청일수도 있습니다만.”
“허어. 우리가 남이오? 은사께서 하신다면 뭐든 못 해 주겠소!”
그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대화로를 좀 빌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내 말에 드워프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암! 당연한 말을! 은사 같은 대 장인이 그걸 쓰지 못한다면 누가 쓴단 말인가!”
“은사의 작업을 방해하면 지하에 계신 천일야장이 노할게요!”
그 양반 거대한 화산지대에서 망치질하고 있을 텐데.
어찌되었건 드워프들은 내가 마음이 바뀔 새라 급히 나를 안내했고, 황색 바위 부족의 중앙 공방에 있는 대화로로 나를 데리고 갔다.
“공방은 내걸 쓰시는 게요?”
“어허! 내걸 쓰시오! 내 날마다 은사께서 사용할지도 모른다 여겨 닦고 장비에 기름칠을 해 두었소이다!”
저마다 날뛰는 드워프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번엔 대화로 바로 앞에서 작업을 할 겁니다.”
내 말에 그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 그 말인 즉슨!”
“설마!”
내 말 뜻을 이해한 드워프들이 눈을 부릅떴다.
아무도 말을 못하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아공간에 보관해 둔 흉신 굼다의 소재중 하나인 힘의 정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따라온 일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줘.”
“…….”
“불안해?”
“그…… 그게…….”
홍단이 청단이를 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칼디라스는 과거 천일야장 수르트가 만든 완벽한 신검이다.
그걸 강화해준다고 했을 때 반색하던 것과 다르게 실제로 상황이 닥치니 조금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정확히 말해 줄게. 칼디라스는 애초에 검신 하레스에게 맞게 만들어진 무기야. 너랑은 안 맞아.”
내 말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슨…… 소리야?”
“네가 직접 설명해.”
내 말에 그녀의 품에 안겨 천으로 감싸고 있던 칼디라스가 웅웅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디라스의 의지가 닿은 듯 일리나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게…… 사실이야?”
웅우우웅!!
계속해서 공명음을 흘리는 칼디라스였다.
이후 그녀는 고민을 마친 듯 조심스레 천을 풀었고, 새하얗다 못해 백은의 빛을 띠는 거검을 내게 내밀었다.
“칼디라스…… 잘 부탁해.”
그녀가 내민 칼디라스를 손에 쥐자 녀석의 의지가 전해져왔다.
[부탁할게. 이제 내 주인은 일리나니까. 그녀에게 맞는 검이 되고싶어.]
“오냐. 가공해주마.”
포도와 마가는 스킬을 통한 가공을 할 뿐이지만 이쪽은 내부까지 원리를 파악하여 가공한다.
난이도 차이도 남다를뿐더러 실패 시 페널티는 압도적으로 이쪽이 높다.
다만.
정해진 대로밖에 만들지 못하는 스킬과 다르게 나는 달랐다.
스승이 만든 역작이지만 천일야장 수르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칼디라스…… 완벽한 검이다. 솔찌 말해 가꼬, 하레스 한정으론 저 이상 좋은 검은 몬 만들어준다. 근데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알긋나? 그건 어디까지나 하레스 한정이라. 이제 와서 칼디라스가 새 주인을 만난다면. 칼디라스의 진면목은 드러나지 않고 묻히는 기다.]
신검 칼디라스.
신검인 주제에 어째서인지 과거의 명성보다 그 위력이 약하다.
어째서인가.
그건 당연했다.
애초에 하레스를 위해 만들어진 검에 다른 사용자를 고려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청단이와 홍단이 또한 내게 특화된 검이니 타인이 주인이 된다면 지금 같은 강력한 권능은 물론 초단이로의 융합도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칼디라스는 그런 상황이었다.
칼디라스는 이미 완성된 검이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스승의 역작인 만큼 실수 한 번이 끝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천천히 마음을 비우고 짧게 숨을 들이켰다. 나름대로의 핑계로 도망친 것도 사실이었다.
수르트의 숙제는 두 번의 기회가 없으니까.
하지만 두 장인 직업의 인간을 갈아 넣다 보니 뭔가 살살 끓어올랐던 모양이었다.
[부탁할게.]
“기도나 하시지.”
실패하는 순간 고강화 무기하나 날아가는 법이니까.
[저기…… 성공 확률은 몇 퍼센트 정도..]
“음 대충 3퍼센트?”
[뭐?! 야! 미쳤어?! 날 놔줘! 그냥 돌아갈래!]
칼디라스의 비명이 들려오지만 나는 녀석의 검신을 콱 틀어잡고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걱정 마. 실패해도 깨지기 밖에 더할까.”
[이 개자식아아아아!!]
처절한 비명을 무시한 채 나는 칼디라스의 자아를 분리해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껍데기가 된 신검을 대화로에 밀어 넣고 양손을 부딪쳤다.
그리고는 화로 전체에 방열 마법을 걸며 동시에 화로 내부에 거대한 불씨를 던졌다.
8서클 폭염계 프로메테우스
쿠웅!!!!!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3천도를 넘어가던 열기가 일순간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앞에 있는 미스릴제 모루가 그 열기만으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드워프들이 기겁한 얼굴을 한다.
“큭?! 열풍?! 대체 온도가 얼마나 되는 게야!”
기겁한 이들도 직접 눈으로 본 후 알 수 있었다.
나와 공방 전체에 깔린 보호마법이 없었다면.
지금 이곳에서 작업을 구경하는 드워프들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렸을 테니까.
기겁하는 이들을 무시한 채 나는 온도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서서히 달궈지는 화로의 온도는 급기야 5천도, 6천도를 넘기 시작했고. 이내 한도를 우습게 넘을 정도의 온도를 발현했다.
보통 같으면 장비가 모조리 녹아도 이상하지 않을 온도.
하지만 나는 장비에 방열마법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칼디라스를 빠르게 꺼내들었다.
[망치질 시작하는 순간 시험 시작이다. 멈추는 순간, 니 심장도 멈추는 기다.]
[니는 니 방식대로 내를 쫓아온 기다. 니 방식대로 나가라. 어쩌면 더한 것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께.]
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과감하게.
나는 골고다 장로가 아끼고 또 아끼는 미스릴 망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카앙!!
청명한 소리와 함께 너무도 맑은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칼디라스가 하레스에게만 맞도록 만들어진 것은 다른 의미로는 나도 사용이 쉽지 않다는 소리다.
프리아 여신님. 내가 곱게 신부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겝니다.
나는 아직.
아직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내 입가에 히죽거리는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