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3화
185. 강화된 신검과 무식한 흉신의 무구
퀭해진 얼굴로 눈앞에 만들어진 네 가지 물건을 보는 포도맛 캣타워와 마가는 이제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양새였다.
“대작이요…… 확률을 너무 높여 놓아서 최상품이 나왔어요…….”
사흘간 이어진 작업.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마가와 캣타워 또한 작업에 공을 들였다.
빌어먹을 이 소재들 때문에 자신들이 이 개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분이 차오르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조졌다가는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더욱 필사적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이쯤 되면 최상품 한번 보자는 식의 마인드가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옵션이…… 미쳤어…… 스킬 증폭량에 쿨감에…… 범위 증폭에…….”
웅얼웅얼거리며 쓰러져버린 포도맛을 보며 나는 흉신 굼다의 비늘로 만들어버린 천갑을 들어올렸다.
하늘하늘한 백색의 내갑 형식으로 기존의 의상 안에 받쳐 입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포도와 마가가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 낸 이 물건들은 두 개가 천갑이었고 하나가 귀걸이였다.
“…….”
나는 천갑을 들어 천천히 흔들어보았다.
너무 하늘거려 그냥 일반 천옷과 다를 바 없다.
디자인도 굉장히 심플한 편이라 눈에 띄지도 않았다.
“어때?”
내 물음에 페르세르크는 자신의 힘을 발현했고 이내 보인 것을 내게 그대로 읊어주었다.
“대단하긴 한데.”
아틀란티스의 비늘 천갑.
[아틀란티스의 마지막 12 생존체 중 하나인 굼다의 비늘을 압축시켜 만든 물건이다. 겉보기엔 심플한 디자인의 천옷이지만. 그 어떤 국보로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 감돈다.]
-찢어져도 다시 복구됨. 하늘하늘한 재질이지만 공격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경화되어 충격 흡수, 착용하는 이의 마나 성장 속도를 급속도로 증폭.
-신체 능력 성장 속도를 증폭.
-데미지 경감 35%
-데미지 가감 500
-특수 스킬 크라이 오브 피어 발동 가능(발동 시 현 생명력의 두 배에 달하는 생명력으로 부활)
-특수 패시브 스킬 크라이 오브 피어 발동 시 모든 스킬 쿨타임 초기화.
-특수 패시브 스킬 내구도 자동복구.
-특수 패시브 증폭(위력 증폭 관련 아티펙트를 보유할 시 그 효과를 반절 상승)
페르세르크는 앉은 채로 잠들어버린 두 사람을 부드럽게 누이고는 말했다.
“저 수치가 어떤 의미인진 모르겠지만. 제한 없는 아이템이라는 가정 하에 저건 대단한 물건이겠지.”
“흠…….”
설명 자체가 게임과 흡사했다.
쿨타임은 사실상 내게는 의미 없는 옵션이라지만 단 하나, 크라이 오브 피어라는 특수 능력은 제법 흥미로웠다.
다 죽어가던 도중에 대번에 부활하며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니까.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라면 단순히 회복 포션을 마시면서 다시 딜하는 정도지만.
실제의 삶을 사는 내게는 이 같은 옵션은 어떤 의미로는 극도의 사기성을 지닌다.
애초에 굼다의 비늘과 심장들을 그들에게 맡긴 이유가 게임 요소가 뒤섞였을 때 내 힘과 융합되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발휘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어 내 손에 떨어졌다.
“데이비. 옷을 벗어 봐. 입혀줄 테니.”
새하얀 천갑을 들어 보이며 페르세르크가 말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한 벌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푹 씌워 버렸고 고개를 돌렸다.
“어?”
“이리 와.”
“무…… 무슨 말을…….”
“좋은 말할 때 이리와.”
내 말에 그녀가 우물쭈물 다가오자 나는 손에 쥔 나머지 천갑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내가 가지고 있어도 좋지만 지금 당장 이게 필요한 건 너희 둘이야.”
약한 것들부터 강화를 잘 시켜놔야 마음 편하게 있는 법이다.
천갑을 받아든 일리나는 천갑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헤실거렸다.
“고…… 고마워.”
“그거면 됐고. 나머지 둘도 보자.”
두 개의 물건. 하나는 [치르바트 이어링]이라는 물건이었다.
또 하나는 포도맛이 요청해왔던 리스트 중에서 현재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물건이 도착했다.
거대한 해머.
“상남자는 한방이 있어야지.”
해머류의 장점은 파열, 예리가 아닌 파괴. 파열이다.
아무리 중검이 압도적인 중량을 담은 공격이라곤 하나 그 한도는 애초부터 파괴 파열용으로 만들어진 해머에 비빌 순 없다.
그동안은 롱기누스의 십자가 형태를 이용해왔지만 본래 십자가는 신성 마법 증폭용이지 이걸 들고 쥐어 패는 용도가 아니었다는 소리였다.
자루의 길이만 1미터가 넘고 거대한 해머의 각지고 고급진 머리는 길이가 30센티가 넘었다.
거대한 해머를 들어 이리저리 움직여본 나는 귀걸이부터 스펙을 확인했다.
스윽…… 사각사삭!
빠르게 내용물을 적어낸 페르세르크가 그 옵션을 내게 공개했다.
명칭 : 코로나 디스트로이어.
상태 : 제작 완료.
형태 : 긴 자루에 거대한 머리가 달린 직각 형태의 해머류.
길이 : 자루 1m, 양 파쇄추 끝 사이의 길이 30cm
너비 : 파쇄추 면의 너비 15cm
귀속상태 : 현재 없음.
특이사항 : 특수한 힘으로 만들어진 장비로 그 효과가 기존의 것과 다르다.
세부사항
-특별 강화효과를 제외하고 내구감소 효과 무시.
-한번 강화되기 시작하면 총 3회 무게가 증폭된다. 3회 같은 대상 타격시 대상의 모든 방어력을 완전 파괴하고 방어불가 상태 디버프를 부여.
-모든 스킬 데미지 80퍼센트 증가.
-모든 스킬 쿨타임 15% 절대 감소.
-해머의 각면에 빛과 어둠 속성이 각기 저장. 속성과 상극일 경우 추가 데미지 증폭 60%
속성과 비상극시 데미지 증폭 30%
이번엔 조금 다르게 출력된 듯 보였다.
본래라면 무기 고유의 데미지나 강화 수치 같은 것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내가 청단이와 홍단이를 만들 때와 매우 흡사하게 정보가 출력되어 몇 가지 정보가 숨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훙!! 훙!!
해머를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파열되는 소리가 더욱 거대해지는 기분이었다.
총 세 번.
그 효과를 한번 실험해 볼 필요가 생겼다.
“데이비. 이 귀걸이는…….”
이윽고 귀걸이의 스펙마저 적어주려던 그녀가 침묵했다.
“봉인 상태라는군.”
“봉인?”
“여기에 뭘 썼길래?”
“그야 모를 일인 게지.”
심장은 코로나 디스트로이어라는 이 무식한 해머에 스며들었다.
비늘은 천갑에 사용되었고 힘줄도 무기에 사용되었으니 저건 남은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소리인데, 어떻게 심연의 힘까지 저항하면서 봉인 내부를 보이지 않는가.
그 내용은 간단했다.
애초에 심연의 조건은 서로가 들여다보는 것.
봉인을 하면서 그쪽에서 애초에 페르세르크를 들여다 볼 낌새가 전혀 없으니.
아예 겉핥기식이라도 일방적인 리딩이 불가능하다.
보통 평소엔 페르세르크가 자신이 들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대를 들여다보는 정도에 그치지만 이런 식으로 완전히 쇄국정책이라면…….
“보옥이 왜 효과 없음으로 나왔는지 알겠네.”
어째서 프리아 여신이 준 보석이나 보옥이 페르세르크의 권능으로도 읽을 수 없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일단 넣어 놓자.”
언젠가는 쓰일 일이다.
넬타리드가 내게 준 보상인 만큼 큰 효과가 있으리라.
신물급은 아니지만 신물에 버금가는 무기도 얻었으니 나쁠 건 없었다.
그때였다.
쾅!!
기절한 포도와 마가가 있는 공방으로 뛰쳐 들어온 인물을 보며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갑을 속에 입고 몸을 이리저리 돌아보는 페르세르크와 일리나를 뒤로한 채 수소가 숨을 헐떡거리며 내게 뛰어왔다.
“형! 도와주세요!”
그의 외침에 내가 인상을 찌푸린다.
“무슨 소리야.”
“흑풍…… 흑풍 길드가 우리 길드원들을 무차별 pk하기 시작했어요!”
“음?”
그의 말에 나는 흑풍 길드가 뭐하는 곳인가 의문을 품었다.
“거긴 뭐하는 곳이길래 싸움이 나. 너희 소규모 친목 집단이라고 하지 않았냐?”
티오니스에도 모험가나 용병단은 많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괴롭힘은 보통 잘 없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게…… 흑풍 길드 마스터 기억하세요? 형이 흉신 굼다를 죽일 때 그 이상한 종이 건넸던 그놈이요!”
그 말에 나는 기억 속에서 내게 이상한 종이를 건넸던. 아니 계약서라고 했던가.
계약서를 건넨 자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한 번 본 이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는 게 바로 나라는 존재이니까.
“기억은 나는데 왜?”
“그…… 그놈이 자기 소재를 마가 누나와 포도, 그리고 형이 훔쳐간 거라면서 당장 튀어나오라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내가 잡았고 내가 잡은 보상을 내가 챙겼는데, 그게 자기 것이라고?”
“그게…… 형에게 그 고용 계약서를 건네줬잖아요. 이곳 사람들은 고용 계약서를 받아들이는 게 고용되었을 경우만 나오는 모습이니까요. 형이 그걸 받아들인 이상, 형은 그자의 소유 계약관계에 있고…… 그러니까 형이 획득한 모든 아이템은 고용주인 자신의 것이라는 논리죠.”
그 말에 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게 말이 돼?”
“되니까 문제죠!! 지금 나라에서 연꽃 길드 지명수배하고 난리 났어요!! 국보급 물건 절도랍시고! 이 영역을 수호하는 국가 상위 npc랑 흑풍 길드 마스터랑 호감도가 꽤 높아요. 아무래도…….”
비명을 지르는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손에 쥔 해머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혀…… 형?”
“레이드 하라 그래.”
“네?”
투웅!!!!
나는 숲속에 만들어둔 공방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산소에게서 장난 식으로 받아 놓은 유저들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선전포고의 깃발.]
단순히 길드끼리의 아이템이다.
그리고 지금 이걸 사용하면.
띠링!!
[연꽃 길드에서 흑풍 길드에 길드전을 선포하셨습니다!!]
[연꽃 길드의 요청에 따라 길드전의 승패 시 패배 길드의 모든 자본과 소속 캐릭터의 아이템을 승리 길드에게 양도, 캐릭터를 삭제, 길드를 파괴합니다.]
[흑풍 길드는 이를 거부할 권한이 있습니다.]
[승패의 전제 조건을 연꽃 길드에서 정했기에 승패 방식은 흑풍 길드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하늘에 출력되는 대규모 길드전의 선포.
놀란 이들을 향해 나는 또 하나의 물건을 꺼내들었다.
일대 서버의 영지 곳곳에 목소리를 보내는 [확고한 외침의 보석]이다.
그것을 꺼내든 나는 조용히 말했다.
“쫄지 말고 덤벼. 나는 이쪽을 지원할 테니.”
콰직!!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보석을 박살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