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6화
산소는 다시금 티오니스로 돌아왔다.
현실로 돌아가도 될 정도로 영혼이 호전되었지만, 아직까진 회복기에 들어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내게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저기…… 괜찮으세요?”
산소의 질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물어도 되나?”
“아뇨…… 그게 표정이 안 좋아 보이셔서…….”
“난 멀쩡해.”
담담하게 말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내 상태가 어떤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 돌아온 이후로 나는 몇 차례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그냥 진실을 말했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행동은 단순히 간섭이 가능한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운명을 뒤트는 행동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운명을 비틀어버린 존재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선 듯 손이 갈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운명의 흐름을 일면 볼 수 있는 내가 운명을 비튼 이들은 대부분 안전선 안에서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신현아에게 보인 운명의 선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거기서 내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그녀에게 남은 운명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된다.
대체 그녀가 뭐길래.
그런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이 이상 그녀를 보는 건 이쪽도 전혀 좋지 않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이후로 지구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벌써 2주 가까이 숨 막히는 침묵이 오간 탓일까.
주기적으로 내게 상황보고를 하러 오는 하프 뱀파이어, 밀피유가 죽을 때가 된 거냐고 묻지를 않나 피를 노리고 호시탐탐 침실로 숨어드는 뱀파이어 로드, 요시아 프랑소스가 내 피 맛을 보더니 울상을 지으며 도망가버리기도 했다.
기괴한 구조에 영지민들 대부분이 뒤숭숭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일화로는…….
“나 근위상장은 제군들에게 실망…… 아니 됐다. 영지 분위기가 이렇게 가라앉은 상태이니 별수 없겠지. 다만 우린 영지의 보이는 무력이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평소라면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었을 몬미더조차 제 주군의 축 가라앉은 모습에 의욕을 낼 수가 없었다.
“당신은 지주예요. 당신이 흔들리면 영지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우웅…… 어디 아파? 뮤우가 호…… 해줄까?”
뮤우를 품에 안은 채 찾아온 유리아는 드물게 날카로운 지적을 던졌다.
며칠간 축 늘어진 그 모습에 여럿이 걱정을 시킨 탓일까.
기어이 참지 못한 페르세르크가 밤중에 나를 끌어안은 채 물었다.
“데이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라.”
“데이비…….”
말없이 손을 뻗어 뺨을 쓸어내려 준 그녀가 물었다.
“그토록 힘이 드는데 어찌 신은 외면하는가…….”
“선택이라…… 넬타리드 신의 계시가 맞다면 그 신의 혜안도 대단하구나.”
동생의 안전을 위해서 내가 참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체를 드러낼 것인가.
“차라리 만족할 만큼 보고 와 데이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케인은 그대가 더 이상 지구로 가는걸 원치 않는 듯하지만 본녀가 보기엔 그대는 아직 그곳에 할 일이 남았어.”
지구는 벌써 몇 차례 들리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차원이기도 했다.
복잡한 심정이다.
“차라리 원 없이 보고와. 그녀는 아프겠지만 그대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치유가 될 거야.”
망각은 축복이다.
그렇기에 그런 게 가능하지만.
반대로 망각이 없는 나는 그게 불가능하다.
재능 면에선 천의 재능이지만 망각이 없는 능력은 자아를 가진 이에겐 사실 저주와 다를 바 없다.
“원 없이 보고. 원 없이 동생에게 사랑을 주고 와.”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지구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약 나흘 정도 후였다.
익숙하게 그동안의 사정은 케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
고진석의 일이 세상에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을 알고 있는 한유나의 아버지와 이번 일에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는 신성 그룹에서 고성 그룹을 아주 작정하고 짓밟아버린 모양이었다.
한유나의 아버지는 그만한 능력이 부족하지만. 신성 그룹은 그러한 고성 그룹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버릴 만큼 강대한 힘을 지닌 기업이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두 여인을 납치하려 했다는 점에서 고성 그룹의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 탓에 고성 그룹은 이번 일을 세간에 알리지 않는 대신 신성 그룹과 한유나의 아버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위세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렇게 고진석의 영혼은 명복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로 사망처리가 되어버렸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넓은 한옥.
애초에 신현아가 이곳에 오는 건 일 년에 한 번이라고 했던가.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스르륵 하며 내려선 내 시야에 비친 건 캄캄한 방안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근처에 희끄무리한 무언가가 서리고 있었다.
[망령이 붙을 수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죠? 지구에선 허락된 범위 이상의 초월적인 힘을 절대 거부한다고. 제가 사용한 인간을 조금 뛰어넘는 육체능력이나 영혼의 존재 자체는 어디까지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간섭. 즉 이성이 제대로 남은 영혼이 영혼에 과하게 간섭한다거나 하는 건 해선 안 됩니다.]
망령의 존재.
이지가 남지 않은 영혼.
신현아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나를 만나고 귀신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버렸다.
귀안이 개방되었다는 소리였다.
[제 예측이지만 귀안이 열린 건 당신 때문일 겁니다. 당신이 그녀의 곁에 가까이 있지 않으면 서서히 귀안이 다시 닫힐 테고요. 귀안이 열려있다면 이성이 없는 망령이 그녀를 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흐느끼는 그녀에게 달려들려 드는 망령을 본 나는 천천히 움직였다.
[명심하세요. 당신이 지금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넬타리드 님이 가호를 추가적으로 가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반 상식대로 저승사자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시면 됩니다.]
현재 나는 영혼. 그리고 넬타리드의 가호에 따라 저승사자라는 가상의 영혼 인도자가 되어있다.
그렇기에 영혼을 건드릴 순 있다.
콰득!!!
-키익!!!!!
대뜸 다가가 망령의 목을 틀어잡아버린 내가 놈을 들어 올렸다.
현아에게 달라붙어 그녀를 괴롭히려던 망령은 갑작스런 나의 출현에 경악한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버둥거리는 망령이 나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는 말 없이 놈을 쳐다볼 뿐이었다.
“저승차사…… 씨?”
나를 보며 흐느끼던 현아가 고개를 돌렸다.
“망령이 들러붙는데도 모르고 있나?”
“…….”
콰득!!!
-끼아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며 마치 가루처럼 분해되어버리는 망령을 뒤로한 채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여긴 왜 왔어요? 그동안 그렇게 부르짖을 땐 오지도 않더니…….”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녀가 내게 안겨 오자 움찔거렸다.
“도와줘요…… 흑…… 흐흑…….”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언니가…… 언니가…….”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제야 떠올릴 수 있었다.
과거 그녀와 대화하던 중에 한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은 것을 말이다.
“연…… 아니, 무슨 일인지 천천히 말해.”
반사적으로 연희 누나에게 무슨 일이 있냐 말할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억누른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언니가……오빠가 걸렸던 병이 발발해서……. 말해줘요! 언니…… 언니의 수명도 여기까지라고 하지 말아줘요!!”
그녀의 외침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두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부터 신문 배달, 우유배달을 나가던 어린 누나.
이제는 이십 대 후반이 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만끽해보지도 못했던 너무도 불쌍하고 소중한 누나가.
나와 같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 * *
신연희.
나이 스물일곱.
내가 죽을 당시 그녀의 나이가 지금 현아 대의 나이였으니 그녀는 근 3~4년간 알게 모르게 내가 겪었던 불치병에 걸렸다고 한다.
의학이야 발달했다.
과거의 나처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병증이 악화되어 죽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일 뿐이다.
나는 그 증상을 완화시키지 못해 죽었고.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완화만 시킬 수 있을 뿐 미래는 똑같다.
내가 그렇게 죽었다.
그런데. 고생만 죽도록 하고 이제 사람답게 살기 시작한 누나가.
그런 소중했던 누나가 이렇게 나와 같은 방법으로 죽어가고 있다니 억장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
미련이 없다고 말했으면서
정작 병실에 누워 잠들어있는 연희 누나의 모습은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당신 말대로 언니를 보여줬잖아요…… 말해줘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건 영혼을 보는 저승사자가 아니라 신의 히포크리아의 제자로서 의학을 기대고 보는 시선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길어야 석 달.”
내 말에 그녀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오빠가 죽고 함께 살던 언니마저 석 달 뒤에 죽는다고 하니 그녀에게 드는 기분은 공허함 뿐이리라.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를 말하지. 치료법은 수명을 바꾸는 법이다.”
그렇게 말한 나는 주저앉은 채 엉엉 우는 그녀를 두고 유리창 너머 무균실에서 잠들어있는 누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연희누나와 현아가 나를 보는 감정이 이러했을까.
역지사지에서 보니 참 씁쓸함만 앞섰다.
“의학계에선…… 아직 제대로 된 병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알아낸 거라곤 특수 항생제를 투여해 고통스런 작업을 반복하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뿐이죠.”
나는 내가 치료를 받을 때 했던 그 고통스러운 치료를 떠올렸다.
“언니도 이제는 곧 그 시술을 받게 되겠죠. 삼촌은 가능성이 있는 한 뭐든 해줄 거라 말씀하셨지만요. 삼촌에게도 부담이 많이 갈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우리 오빠도…… 그랬어요…… 너무 아프다고. 너무 아파서 죽어버릴 거 같다고. 그래서 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고…… 대체 우리 언니가 뭘 잘못했는데?“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팔을 붙잡고 소리 질렀다.
“대체 우리 착한 언니가 뭘 잘못했는데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데!? 발병 확률 수억 분의 1이야!! 그 수억 명 중의 한 명 걸린다는 특수병에 언니가 걸렸다고!! 내게서 오빠를 앗아가 놓고 이제는 언니까지!!!”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염라대왕에게 전해! 대체 우리 가족이 뭘 잘못했는데!! 돈이 문제야?! 돈 같은 거 필요 없어! 다시 골방에 처박혀서 하루 끼니를 걱정하더라도 난 오빠와 언니가 살아있는 그때가 더 좋아!!”
그 말에 나는 그대로 손을 들었다.
휘익!!!
그리고 내 손이 그녀의 뺨을 후려친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손은 그녀를 지나칠 뿐이었다.
빌어먹을 영체 같으니.
“…….”
“정신 차려. 당장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가진 돈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은 수두룩하게 빽빽해. 살아있다는 거에 감사하며 살라고.”
“하지만…… 이제 행복해져야 하는데…… 언니가 죽으면 무슨 상관인데…….”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의사들은 별말이 없나?”
그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정작 의대생이지만 그녀는 아직 누군가를 치료할 경력이 없었다.
“교수님들도 치료는 불가능할 거라고…….”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을 리 없으니 진실일 텐데.
나는 그대로 유리창을 통과해 연희 누나에게 다가갔다.
그토록 고생만 해놓고. 인제 와서 행복해지려는데 아프다니.
어째서일까.
운명이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주제에 혹시라도 현아까지 이렇게 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가 미웠다.
말없이 그녀의 손에 내 손을 포갠다.
감촉은 느껴지지 않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속삭였다.
[만물을 굽어살피는 프리아 여신이시여. 당신의 종이 여기 이곳에 와서 당신께 고하나이다. 당신의 어린양을 구원하시기에 시련을 내려 더욱 성장하길 바라는바 모르지 않사오나.]
내 몸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반응하지 않던 주신의 신성력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의 기적을 조금만이라도 나누어줄 수 있기를. 그게 안 된다면…….]
[내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나누어주시기를.]
의술을 배우면 뭐하나 치료할 방법도 없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였다.
[답은 성자의 안에 있다.]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마냥 눈을 크게 뜬 나는 죽은 듯 잠들어있는 연희 누나를 바라보았고.
이내 목소리가 들려온 듯한 내 몸 안의 신성력을 다시 느끼기 위해 힘을 끌어냈다.
하지만 이전의 기적은 다시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방금 전의 한마디로 확신이 섰다.
“퇴원절차 밟아.”
확신이 섰고.
결정이 서렸다.
“뭐…… 뭐라고요?”
“퇴원절차 밟으라고. 살려야 할 거 아니야.”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널 치료하시던 한 박사님이라고 했나?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진찰하는 기록만 남겨놔. 수술을 해야 한다.”
내 말에 그녀가 놀라 소리쳤다.
“수술을 한다고요?! 대체 누가?! 어떻게?!”
이미 한 박사라는 그 사람도 이 병을 포기할 정도였다.
그럼 누가 치료한단 말인가.
여기 있는 사람이?
영혼뿐인 내가? 아니면 아직 반푼이인 현아가?
둘 다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반쪽이 두 개가 모이면.
하나가 되리라.
“수술은 내가 한다.”
집도는 네가 해라. 하지만 그 흐름은 내가 유도해주마.
신의의 제자로서 과거 나를 죽였던 이 빌어먹을 병의 근원을 절개하고 봉합하는 성공률 1할도 안 되는 수술을 반드시 성공시키리라.
넬타리드.
당신이 내게 호의를 얻기 위해 이 같은 일을 꾸민 게 맞다면. 여기서 잘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