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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63화 (662/1,559)

제 663화

190. 1만 년 무궁한 역사의 흔적

이오는 흑마법을 쓰는 리치였다.

신의 섭리를 거부한다고 알려진 리치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성흔을 가지고 있다?

이오가 제 손목을 들어 보여준 곳에는 분명한 신의 흔적인 성흔이 남아있었다.

“이…… 이게 무슨…….”

사특한 존재는 성흔을 받는 게 절대 불가하다 알고 있었을 성기사가 느꼈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성흔이라니…… 말도 안 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나?”

“그…… 제가 리치가 된 이후에 내려받은 건데…… 이거론 안되나요?”

“성흔이 맞으니 더 기가 막히지.”

애초에 프리아 여신의 총애가 정상 점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게 많다지만.

놀랄 노 자 그 자체였다.

“이 정신 나간 여신이 진짜…….”

내 중얼거림을 들은 성기사는 이제는 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리치가 성흔을 받고, 머릿속이 꽃밭인 여성이 성녀이고.

대륙 최고의 성자라 불리는 인간은 신을 향해 정신 나갔다고 매도할 정도였다.

“후우…… 그래. 대충 성흔을 왜 내린 건지는 알겠네.”

그녀의 운명의 편린이 아주 슬쩍 보인 느낌이었다.

운명이라고 해봐야 내 것밖에 못 본다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하였던가.

안 봐도 척일 뿐이다.

“마족과의 분쟁을 끝낼 용도구나.”

“네?”

“별거 아니야. 네가 온건파 마족과 인간의 종전을 이끌 열쇠로 쓰일 역할이었나 보지.”

“아하!”

자신이 이용되는 열쇠라 하는데에도 신의 뜻이라며 기꺼워하는 꼴이 퍽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겁도 없지.

내가 없을 경우. 마족과 인간의 분쟁을 끝내기 위한 장치.

프리아 여신은 나라는 존재를 제하고서라도 넬타리드나 심연과 대적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프리아 여신은 필요하다면 그녀를 희생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고.

문제는 하나같이 나사 빠진 것들이 성녀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다프네는 말이야. 신의 뜻에 의해 사라질 운명이었지. 아아…… 내 사랑 다프네. 데이비. 내가 왜 영웅으로서 여기에 존재하는지 알고 있어?]

빌어먹을 귀쟁이. 궁신 아폴론이 감상에 젖어서 했던 말이 있었다.

[난 신을 거부하지 않지만…… 신이란 족속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목적과 운명을 위해서라면 피조물 하나의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거든. 특히 성녀든, 성자라면 더.]

초대 성녀 다프네와 아폴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들은 바가 없다.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리나 성녀님. 자리를 좀 부탁드려도 될지.”

“아…… 네! 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제가 비켜드려야죠! 왜 제가 아닌 이오 님께 계시를 내렸는지는 몰라서 질투가 나네요오…….”

입술을 삐쭉이는 리나 성녀의 말에 나는 무시로 일관했다.

그거야 종전의 열쇠로 이오를 쓰고 당신을 보존해두려고 했으니까 그런 거겠지.

혼란에 빠진 성기사를 뒤로한 채 기도실의 내부로 들어간 나는 이오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시작하자.”

“아. 네.”

내 말에 이오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손을 뻗어 내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우우우웅…….

동시에 지구에서 나를 끌어당기던 힘이 다시금 내 몸에서 흘러나온다.

“아…… 아아아…… 신성한 신의 흔적이야…….”

황홀해 하는 이오를 무시한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라도 좋으니 우리 대화라도 좀 합시다.”

투웅!!!

내 말에 반응하듯 신의 흔적. 즉 상위 신성력이 움직이며 내 의지가 서서히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수면제라도 과다복용한 것처럼 서서히 잠드는 것처럼.

내 의식은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검은 황혼이 찾아오는 세상.

과거 이곳에는 한번 와본 바가 있었다.

신이 만들어낸 천사 같은 존재가 내게 내려오던 공간.

잔불을 넘겨주고 간 것처럼 말이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듯 내 몸을 집어삼킨다.

굳이 저항하지 않고 날아올랐을까.

나는 하늘에 흩날리는 깃털들 사이로 보이는 푸른 머리칼의 작은 형체를 볼 수 있었다.

눈을 낮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으며 온몸이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 이제는 본인이 직접 올 정도로 위계가 떨어지셨다?”

신은 완전한 존재일수록 피조물과 접촉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이렇게 륀느의 모습을 빌려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건.

그녀의 신위가 처음 내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보다 압도적으로 안 좋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후웅…….

이윽고 그녀가 손을 뻗는다.

동시에 그녀의 등허리에 있던 날개가 순식간에 펼쳐지듯 거대하게 변하며 수많은 깃털을 흩날렸다.

동시에 내 형체가 그녀의 앞으로 끌려가듯 당겨졌고 그녀는 한 손에 빛을 머금더니 옐로카드 한 장을 만들어 그대로 내게 처박듯 꽂아 넣었다.

“컥!”

또 한 장의 옐로카드.

“레드카드가 아니고?”

내 물음에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은 총 세 개.

그러니까.

옐로카드 석 장이 레드카드라는 소리였다.

“내가 레드카드를 받으면. 당신은 나를 버릴 겁니까?”

내 물음에 차가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는 이내 내 머리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스팡!!!!!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수한 방식을 통해 내 머릿속에 영상을 심어 넣었다.

첫 번째 영상은 판도라 영역이었다.

라스트위스프의 비밀기사단, 리인 포스 알파가 마수들을 감시하는 영역.

그리고, 또 한가지는 처음 보는 땅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알 것 같았다.

[그녀를 데려가.]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청명하게 어린 목소리가 내 전신을 울리듯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그 말과 동시에 의지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을 끝으로. 내 의지는 그녀의 공간에서 완전히 쫓겨나듯 퉁겨져 나왔다.

투웅!!

거대한 충격파에 튕겨 나가듯 내 몸이 순간 비틀거렸다.

순간적인 영접을 마치고 나온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갈하기 그지없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기도실의 내부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사고 쳤냐?”

“제가 아니라 당신인데요?”

이오의 낭랑한 대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께 신의 힘이 서리자마자 몸 안에 있던 다른 힘과 충돌하기 시작했어요.”

그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넬타리드의 힘이었구나.

어째서 프리아 여신이 내게 옐로카드를 먹였는지. 또 방대한 존재감을 순간적으로 드러냈는지 알 것 같았다.

[넌 내 꺼야.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테니. 그 어떤 곳에도 눈을 돌리지 마.]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온몸에 오한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와아…… 프리아 여신님의 신성력이 이토록 가득해…… 역시 대단하세요오! 정말 대단하세요!”

리나 성녀 후보가 들어오며 연신 감탄을 한다.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던 여성 성기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로 무릎을 꿇은 채 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충돌한 힘은?”

“아아 자애로우신 신께서 내리신 힘이 밀릴 턱이 있나요. 당연히! 당신의 몸 안에 있던 사특한 힘을 몰아냈지요.”

아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오.”

“넹?”

낭랑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마계에 좀 다녀와. 아스타로트에게 내 말을 전해.”

아스타로트는 나와 적대 관계지만 그렇다고 신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이오를 죽이진 못할 터였다.

“으…… 가야 하나요?”

“네 신이 바라신다.”

“아아…… 자애로우신 프리아 여신님께서 원하신다면!”

단순해서 다루기 좋다.

한명은 단순하고, 한명은 꽃밭이고.

미래가 어두운 느낌이다.

* * *

그녀를 데려가라 말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이오가 아니라는 건 조금 의외였다.

프리아 여신이 내게 말한 데려가라 말한 존재는 륀느.

그녀는 현재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넬타리드 신이 활동한 시기는 1만 년 전 멸망한 고대문명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때의 기술력은 륀느를 만들어낼 정도로 대단했고.

심연이나 넬타리드의 권속들조차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때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빌어먹을 삼신의 눈치싸움이 나의 평화로운 취미생활을 방해하는가.

찾아서 내가 직접 응징하리라.

애초에 고대 유적에 관해선 많은 의문이 존재한다.

되짚어보면 말이다.

륀느는 어째서 그곳에 있었는가.

다른 유적과 다르게 어째서 하인스 영지와 륀느가 있던 지하 연구실은 멀쩡했는가.

어째서…… 헤라클래스로 추정되는 그 클론인지 뭔지 모를 생명체는 곧바로 륀느를 우선시 공격했을까.

륀느는 기억이 대부분 소실되어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그때 당시의 기억을 물어본들 사실 돌아올 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흔적이 존재한다면.

이 거지 같은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없진 않으리라.

물론 오랜만에 들린 리인 포스 알파 기사단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달라져 있었다.

“바사라?”

내 말에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던 사내가 나를 바라본다.

“오셨습니까.”

처음 만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정중한 태도.

이에 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내게 경례 구호를 올리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 물음에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라스트위스프 총회의 선거에 따라 내려진 결론입니다. 기사단의 총괄권을 지닌 당신은 현재, 차기 명예 단장으로서 추대되어있습니다.”

나는 금시초문인데.

내 침묵에 그는 조용히 물었다.

“또한, 당신의 의지에 따라 라스트위스프 총본산을 지키는 수호자들은 각기 지역으로 내려가 그곳을 지원하고 돕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여기 있는 건, 이곳이 관할이라서?”

“…….”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고 지나쳤다.

“뭐 결정 난 사안에 내가 무슨 태클을 걸까. 그럼 직위도 생긴 김에 묻지요. 별문제는 없나?”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기사단원들은?”

“모두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충분한 휴식과 보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하지.”

그렇다면 3원로는 어찌 되었는가.

나는 그 점이 궁금해졌다.

“3원로는?”

“탈출과 라스트위스프의 존망을 세간에 공개하려는 죄목이 드러나 처형당했습니다.”

“미련한 작자들.”

혀를 쯧쯧 찼다.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아니. 그대로 둬. 잠깐 조사할 게 있어서 온 거니까.”

내 말에 그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본다.

“조사단을…….”

“아니, 그것도 괜찮아. 곧바로 판도라 영역으로.”

“그렇다면 길을 잘 아는 단원을.”

“아니, 거 됐다니까!!!”

이 인간이 이런 성격이었나…….

* * *

륀느와 함께 결국 판도라 영역 북부로 넘어온 나는 싸늘한 공기가 몰아치는 숲을 바라보며 조용히 회상에 잠겼다.

샨드라미네아가 존재했고 흑마법사들이 움직였다.

그 흑마법사들은 일루미나티로 일루미나티의 총수가 죽었다지만 그놈들의 근본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언젠가는 처리해야 하리라.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하유적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스르륵…….

“숨이 막혀.”

이윽고 분홍빛 머리칼의 여성이 내 뒤에 나타났다.

“길 안내 부탁하지.”

“…… 내가 왜?”

“듣기 싫으면 죽어야지.”

내 말에 하프 뱀파이어, 급진파의 배신자 밀피유가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 연구하게 해줘. 흥미로워.”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도 좋아.”

내 말에 그녀는 결국 침묵으로 일관했다.

륀느를 깨운 지하 유적은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그녀가 알고 있던 곳이었다.

과거엔 함정을 통해 들어갔지만 이번에 제대로 된 루트로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그곳에.

륀느에 대한 흔적과.

넬타리드, 그리고 프리아. 혹은 타나토스까지.

많은 기록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덜그럭…….

스텀프가 가득하던 던전에 들어선 밀피유는 익숙하게 그들을 피해 지나쳤고, 이내 막다른 길에서 벽면을 눌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치 기계장치가 발현되듯 지면이 바뀌며 거대한 통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함정은 모두 해제되었고, 몬스터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렇게 밀피유의 안내를 받아 한참을 들어갔을까.

나는 침묵한 채 낭랑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오는 륀느를 흘끗 바라보았다.

“륀느.”

내 부름에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을 들어 보인다.

“널 믿어도 되겠냐?”

“륀느. 데이비 님의 소유물. 데이비 님을 반드시 지키는 우수한 생체 골렘.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륀느의 답변에 나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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