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64화 (663/1,559)

제 664화

수많은 시험관과.

알 수 없는 기계장치.

그리고 륀느와 기계장치의 신, 즉 데우스엑스마키나라는 진화 심장이 보관되어있던 중앙 시험관.

그 외에 정체 모를 언어로 된 기록이 적혀있던 서류들이 있는 선반까지.

누군가의 연구실이라는 느낌은 분명히 들었다.

륀느는 자신이 깨어난 공간에 다시온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입을 삐쭉였다.

“데이비 님. 이곳의 공기 륀느의 좋지 않은 기억을 자극한다고 판단. 이것을 륀느가 낮게 평가.”

틈만 나면 대뜸 도망치려 드는 그녀의 행동거지에 나는 녀석을 단단히 허리에 끼고는 시험관이 있던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륀느가 버둥거린다.

묵직한 무게가 그대로 전해져오지만 나는 그녀의 저항을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데이비 님. 륀느가 이것을 매우 낮게 평가. 매우 수치스럽다고 판단.”

륀느의 반항을 다시금 무시한다.

“대체 여기서 뭘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만.”

기록은 봐도 도저히 해독할 수가 없다.

해독이라는 게 본래 단순히 본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에 관한 자료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의 문자는 도저히 자료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하인스 영지의 거대한 영지 제어시스템은 c언어와 같은 마법으로 마법 구조 자체를 이해한 것이지만 기록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홍단이가 아니면 제대로 자르기조차 쉽지 않은 이 거대한 시험관들이다.

“륀느. 뭔가 떠오르는 건 없어?”

“없다고 판단. 없다고 분석. 륀느가 이 공간을 매운 낮게 평가!”

대뜸 내게서 도망치는 녀석을 다시금 잡아 왔다.

“바른대로 말해.”

내 말에 그녀가 움찔거렸다.

“나 몰래 네가 이상한 곳을 쏘다니는걸 한두 번 감지한 줄 알아?”

내 말에 그녀가 움찔거렸다.

프리아 여신이 륀느를 꼬집었을 때.

나는 그에 따른 이유를 납득했다.

그럴 수밖에.

그녀의 행동거지는 처음 때에 비해 너무 많이 변했으니까.

마치 무언가를 떠올렸는데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륀느의 저항이 더욱 거세진다.

“흐음…… 흥미로워. 무언가를 숨기려 하는 행동 패턴. 연구하고 싶어.”

밀피유조차 눈치를 챈 듯 그 말을 하자 륀느가 입을 다물었다.

끝끝내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애초에 이곳까지 와서 할 수 있는 게 추궁밖에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밀피유. 다른 공간도 조금 둘러보고 와.”

“명령은…….”

“요시아에게 이르기 전에.”

네 로드의 명령에도 뻣뻣하게 버티는지 한번 볼까?

내 말에 밀피유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내게서 물러났다.

그렇게 륀느와 나만 남게 되자 나는 조용히 그녀를 내려놓았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널 믿는다.”

“…….”

“네 능력을 믿고 네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데이비 님. 믿음을 륀느가 높게 평가…….”

“그러니 아는 게 있으면 말해.”

내 말에 그녀는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녀는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륀느가 존재하던 시험관이 있던 곳에서 조작판에 손을 올리더니 이내 눈을 감고 특유의 언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철컹!! 우우우우웅!!!

동시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침묵하던 시험관 중 하나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담겨있던 탁한 용액이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하며.

한 여인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실체가 아닌 그저 똑같이 만든 고깃덩어리였다.

사람과 흡사하나 사람이 아닌.

속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취미가 나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리라.

“처음 보는 인물인데? 여기 사람이 더 있었나?”

내 물음에 륀느는 그저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뜨며 조용히 말했다.

“륀느. 말해줄 수 있는 것 단 한 가지.”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머지는 약조로 인한 프로텍트. 이 이상 발설 불가.”

그녀의 설명에 나는 시험관 속에 잠든 아름다운 여성을 바라보았다.

“거 뉘 집 아가씨인지 정말 곱게 생겼네. 딱 내 취향이야.”

페르세르크가 있었다면 나를 째려보았겠지만 나는 순수한 감상을 내뱉었다.

물론, 취향과 사랑하는 이는 다른 법이지만.

내 대답에 륀느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난다.

“데이비 님의 의문. 현재 둘로 나누어진 조화의 신에 관한 정보.”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나?”

“불명. 하지만, 륀느의 해금된 기억을 토대로 추론할 경우 한가지 가설을 폭로 가능.”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본다.

“조화의 신. 악과 선이 뒤섞인 신의 편린. 현재의 반신 넬타리드는 평화. 그리고 흉신이 깨워낸 넬타리드는 파괴. 두 반목되는 힘이 깨어나면 완벽한 조화로 완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라 판단.”

그러니까. 조화의 신답게.

파괴와 온존이 존재하고.

프리아 여신이 헤라클래스를 이용해 파괴를 찢어 봉인시키고 온존만을 남겨놓았다.

그렇다면 프리아 여신이 넬타리드를 그냥 둔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파괴만 깨어나지 않으면 적대시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한가지 모순이 있다는 걸 나는 그때 당시엔 인지하지 못했다.

“시험관에 든 여인. 륀느가 이름을 공개. 이것을 낮게 평가.”

그녀의 말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숨기고 싶어 하는…….”

“시험관 속에 든 여인. 데이비 님과 유전자 정보가 매우 흡사.”

그 말에 내가 침묵했다.

이건 또 무슨 말?

유전자 정보가 흡사하다고? 뭐 출생의 비밀이라도 되시나?

기가 막힌 생각이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데이비 님과 유전자 정보 불일치 존재. 하지만 유전자 분별 상 본인이 아니면 동일할 수 없는 유전자가 다수 동일.”

“뭐? 그러니까 이 여자가. 지금 나…….”

“여인의 이름은 프리아. 신의 이름을 딴 [홀른], 즉 인간의 대신관.”

그 말과 함께 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본디 신의 신부로서 신과 융합하고, 강림시켜 신의 힘을 세상에 간섭하게 만들 유일한 존재…….”

짧게 말한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신의 신부라고.

“하지만 대신관으로써 신을 받아들이고 신부가 되기 전 그녀는 사망. 사망요인은…….”

문득 나는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기분을 받았다.

마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백익의 침공, 륀느의 공격.”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륀느의 종족, 백익이…… 공격을 해왔다.

그 말인 즉. 인간과 백익은 적대 대상이었다는 소리였다.

콰직!!!

동시에 륀느의 몸에서 연기가 새어 나온다.

과부하가 걸린 것일까. 곧 그녀는 몸을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에러…… 에러…… 에러…… 과도한 정보 시스템 순환…… 금제에 따른 데이터 소실.”

“야…… 야 임마!!”

놀란 내가 다가가자 녀석은 곧바로 손을 휘저어 나를 밀어냈다.

“륀느! 금제 해제를 통한 정보를 최대한 주입!!”

그녀가 눈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표정이 드러난. 너무도 씁쓸한 죄책감을 지닌 륀느의 표정을 말이다.

“경고하는데. 한마디만 더 꺼내봐.”

“1만 년 전 륀느는 프리아 여신을 강림시킨 신…….”

콰직!!

륀느의 어깨가 뒤틀렸다.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륀느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나는 결국 선택을 내려야 했다.

진실을 버리고.

륀느를 구하는 쪽으로.

과거의 고리타분한 진실 따위는 이제 상관없어졌다.

어째서 신랑도 아니고 신부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조금 당혹스럽긴 하지만 영혼이 윤회를 거치다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신을 모시는 대신관 정도가 되니…….

내 성흔이 그 정도로 무식하게 거대하지.

그게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는 점이 참 기가 막히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륀느를 제압한 나는 그대로 녀석의 전원을 내렸고 계속해서 파괴되던 륀느의 몸이 움찔하며 굳더니 이내 전원이 꺼진 것처럼 추욱 늘어졌다.

우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눈동자에 빛을 내기 시작했다.

[시스템 재가동, 백익 륀느. 다수의 데이터 소실을 감지. 복구.]

륀느의 기계적인 말투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륀느의 눈이 파랗게 번쩍인다.

[재가동 성공. 륀느의 기억을 다시금 발현.]

그렇게 말한 륀느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제발.

아니기를.

제발 초기화가 아니기를.

진실을 알겠다는 내 욕심으로 륀느가 죽을뻔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빌어먹을 여신이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 그건 어쩌면.

자신의 흔적을 품고 있는 륀느가 방해되어서가 아니었을까.

이윽고 경련하며 움직인 륀느가 천천히 나를 올려다본다.

제발…… 아니기를.

“데이비 님. 륀느의 육신 매우 어린 인간의 육신이라 판단. 데이비 님의 욕망을 표출하기엔 다소 무리라 분석.”

그녀의 말에 나는 굳은 몸이 경직되는 기분이 들었다.

“륀느. 이해 불가. 데이비 님의 욕망을 낮게 평가. 하지만 륀느. 명령이라면 이행 가능.”

그렇게 말하며 대뜸 일어나 제 치마를 걷어 올리는 그 모습에 나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동작 그만. 치마 내려.”

내 말에 그녀의 손이 멈칫한다.

“제일 최근의 기억을 말해.”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조용히 말했다.

제발…… 제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데이비 님과 함께 이곳에 재방문.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이라 생각. 륀느가 이 공간을 낮게 평가. 하지만 이유는 불명.”

그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오로지 내가 알던 륀느 이외의 기억만 다시금 락이라도 걸린 것처럼 잠겨버렸다.

완전히 소실되었다면. 이 공간을 낮게 평가할 이유가 없으니까.

즉.

기억을 다시 봉인하되 그녀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게 좋은 의미이건 나쁜 의미이건 상관없었다.

만약 그 기억이 륀느를 이 이상 파괴한다면 그깟 과거의 기억은 필요 없을 테니까.

말없이 녀석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안광을 내뿜었다.

“데이비 님. 현재의 행동을 녹화. 페르세르크 님께 전송한다는 명령을 이행.”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