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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75화 (674/1,559)

제 675화

193. 마계라 불리는 척박한 땅

인간의 위계를 넘어서면서부터 변한 것들을 제어하는 일도 상상 이상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지칠 대로 지친 이상 업무고 뭐고 눈에 들어올 수가 없다.

나는 사흘 동안 건들지 말라 단호히 명령한 후 그대로 칩거에 들어갔다.

품에 안겨 곤히 잠든 페르세르크의 뿔을 톡톡 두드리며 손장난을 치는 건 제법 중독성이 있다.

본래의 뿔은 무기이자 힘의 저장고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뿔을 가진 마족이라 하여 뿔 자체에 감각이 존재하거나 하진 않는다.

물론, 뿔부터 발끝까지 모두가 내 손에 의해 만들어진 페르세르크의 육신은 일반적인 마족과 흡사하면서 많이 다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현재 진짜 영혼에 가짜 육신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그녀가 나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이유이며, 그녀의 영혼을 보호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좋은 점도 존재하지만.

모든 점에서 좋을 수야 있나.

그녀는 가짜 육신으로 영혼을 보호하고 있는 만큼 그녀의 영혼이 가진 장점이나 혹은 진짜 육신이기에 가능한 것들이 불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스스로의 진화 같은 것.

타나토스는 페르세르크의 영혼을 갈구하면서도 계속해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오버 마인드 같은 심연 중에서도 특별히 상위 개체가 눈을 뜨게 되고 있고,

그 힘의 여파로 페르세르크의 힘이 강해지면서 그녀가 제어할 수 없는 범위까지 강해져 버리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이 티오니스 대륙을 의도하지 않게 부수는 걸 막기 위해선 몽환 세계 때처럼 그녀를 환골탈태시킬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육신이 아닌, 그녀의 육신을 진짜 육신에 가깝도록 바꾸는 방식으로.

며칠간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한 덕분에 잠꼬대하며 끙끙 앓는 페르세르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조금 과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먹고 살기 참…… 힘들다.”

잠든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쓸어내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버 마인드가 정확히 언제 눈을 뜨는지는 알 수 없는 만큼 데이비 왕녀가 주었던 힌트를 십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끼익…….

천천히 몸을 일으킨 채 어두컴컴한 방안을 걸어 나간 나는 그녀의 물건이 담긴 선반을 스윽 훑었다.

무언가를 연구한듯한 집필 도구와 여러 약초 샘플이 보인다.

그리고.

한쪽엔 그녀가 요즘 취미를 얻었다는 반짇고리 세트가 보였다.

바느질은 귀부인들에게 어느 정도 가벼운 교양 정도로써 익혀지고 있다.

손수건이나 스카프, 등등 여러 분야에서 귀족 여인들이 사랑하는 이성에게 정표로 남겨주곤 하니 말이다.

반대로 남성의 측에선 제 나름의 보답을 하곤 한다.

“…….”

허락 없이 그녀의 물건을 만지는 건 아무리 부부관계라도 예우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불안한 기분이 들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물건을 뒤져보던 나는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

그녀가 쌓아둔 도구들 아래에 작은 상자가 위치했고.

그 상자를 열었을 때 보인 것은…….

“검은빛과 붉은빛이 섞인 정장 한 벌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정장의 위에 있는 예쁘게 접힌 푸른 손수건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본녀의 지아비이자, 평생을 사랑할 단 한 명에게.

[데이비!! 차라리 본녀를 죽여줘! 제발…… 제발…… 흑.]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고 절규하던 페르세르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오버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팔란 제국을 타락시킨 원흉이지만 놈이 깨어남으로 인해 놈을 넘어오게 만들고, 놈의 힘이 발현되도록 만든 것은 페르세르크의 몸 안에 내재된 힘의 폭주 결과였다.

자신의 의지로 인해 대륙이 붕괴되는 것을 보며 그녀는 절망했고. 자신을 죽여달라 외쳤다.

이번엔.

이만만큼은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다.

아직 페르세르크가 내게 이것을 건네주지 않았다는 말인 즉 시간이 조금은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래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만큼 시간이 많다고 안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

침묵을 유지한 채 나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 * *

환골탈태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인가.

보통 때라면 신목의 성지나. 현국의 성지를 꼽겠지만 애석하게도 페르세르크에 한해서는 그 어떤 곳보다 좋은 장소가 있었다.

“데이비 님. 이번에 아이나 양이 청구해온 자금 목록입니다.”

에이미가 서류를 건네준다.

서류의 안에는 아이나 헬리샤나. 다크 엘프이며, 달의 숲의 수장인 유리아 헬리샤나의 친언니.

그리고 내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신뢰도를 보여주었던 메아리의 정보원이기도 했다.

그녀가 떠난 직후 추가로 파견되는 정보원들의 경우 정보의 사실성의 비율은 사실 6할 정도.

아이나에 비하면 정말로 수준이 떨어지는 정보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녀인 만큼 뛰어난 인재를 놓치지 않는 나는 그녀를 오래도록 잡아놓거나 아예 내 소속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고자 하는 일이 있었고. 내게 무상 노동을 제공해준 대가로 내 이름과 자금을 빌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찾아 떠났다.

단순한 실마리 하나만 쥐고 떠난 그녀의 행동은 내가 얼마든지 받아들인 대가였기에 지원을 해준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물증만 없지 심증은 가득한데.”

그녀가 찾는 은인은 인간이라고 했던가.

인간 중에 그녀를 가르치고 그녀에게 도움을 줄 만한 실력자가 아직 남아있을지는 의문스러운 일이다.

현재 그녀는 동부 대륙의 남단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정보 길드원으로서가 아니라 그녀를 도와주었던 그녀의 은인을 찾기 위한 개인적인 활동으로 말이다.

그런 주제에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은 퍽 미련해 보였다.

“제법 금화량이 많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할까요?”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해. 어디 횡령할 성격은 아니니까.”

내 말에 에이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말…… 데이비 님은 너무 자비로우신 것 같아요.”

“오는 게 있으며 가는 게 있어야지. 그동안 아이나가 고생해온 것을 생각하면 이건 오히려 싼 편이야.”

그리고.

그녀가 본래의 일을 마쳤을 때.

나는 그녀를 메아리에서 빼낼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그렇게 말한 나는 서류의 몇 부분만 집어 사인을 한 뒤 에이미에게 건네주었다.

“나머지는 다 잘라버려. x자식들이 어디 남의 영지에서 독점 갑질을 하려 들고 있어.”

영지가 커지면서 상권이 발달하다 보니 자연스레 상회끼리의 충돌, 서민 자영업자들과의 충돌 등등 자잘한 문제가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베르닐 시종장을 통해 영지 내정을 배우는 에이미의 실력도 제법이지만 그녀의 유일한 단점인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내가 손을 대야 할 것들은 제법 있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경험이 많은가 하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딱 하나뿐이지만 말이다.

“데이비. 준비 끝났어.”

이윽고 페르세르크가 단아하면서 예쁜 디자인을 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았다.

본래의 크기가 있으면서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몸을 줄이는 건 아마 오랜 시간 들여온 버릇 때문이리라.

“앗…… 마님!”

에이미가 페르세르크를 보고 활짝 웃자 그녀는 쿡쿡 웃으며 날아가 에이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데이비가 농땡이를 피워 그대가 고생이 많은 게야.”

“아…… 아니에요! 저하 덕분에 전…… 전 제 능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는걸요!”

그녀의 말에 페르세르크가 눈을 가늘게 뜬다.

“거짓말은 좋지 않을진대.”

“괘…… 괜찮아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

이 자리에서 캐내긴 애매하다는 생각에 에이미를 물린 나는 간단한 여행 장비만 아공간에 던져넣은 채 페르세르크와 홍단이 청단이만 챙겨 들고 돌아섰다.

몽환 세계에서 다녀온 밀피유는 후유증을 앓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뱀파이어 로드인 요시아에게 보냈다.

륀느의 경우 자신의 진화를 시도한다는 명목으로 에오니샤와 에디손 기술고문을 만나러 떠났다.

에오니샤에게 저렴한 인쇄기술을 만들어보라 하였는데 과연 얼마 만에 해답을 찾아낼지 흥미가 가는 구석도 존재한다.

“어서 다녀오자.”

“그대는 영지에 붙어있는 꼴을 못 봐.”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본래라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나는 못 해도 한 달 가까이는 그대로 영지에 처박혀 올라가 버린 위계에 적응하는 일에 몰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버 마인드의 태동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은 이상 놀고 있을 순 없었다.

내가 대처가 늦는 순간 팔란 제국은 끝장이니까.

몽환 세계에서 끝도 없이 실패를 거듭했던 그녀가 내게 했던 부탁을 무시할 순 없었다.

“우웅…… 아빠아. 홍다니 어디 가?”

“소풍 갈 거야. 소풍.”

“소푸웅?”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홍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어딘가로 놀러 간다는 사실이 기쁜지 꺄르륵 거리며 청단이와 손을 마주 잡고 방방 뛰었다.

그런 두 아이를 안아 든 채 영주성을 빠져나간 나는 나의 의념에 따라 이곳으로 불려온 거대한 흑룡을 바라보았다.

“택시, 여기야.”

[빌어먹을! 난 탈것이 아니다! 계약자!]

“태워줄 거면서 튕기기는.”

내 말에 녀석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노려보지만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네 전 주인보다는 인성이 좋은 편 아니더냐!

[계약자. 샨드라미네아는…….]

“중화 중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은 하다만 최소한의 문제는 해결한 뒤에 치료할 거다.”

현왕이라 불리던 메가로드리아는 울드의 잠식을 제법 빨리 해결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신마의 카드첩에 구속해둔 지룡 샨드라미네아는 잠식의 여파와 놈의 정신력이 약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제법 오래 걸리고 있었다.

쉽게 말해 나름대로 현명한 놈과 빡대가리의 차이라고 해야 하리라.

나름대로 똑똑한 메가로드리아는 대번에 해결되었지만 빡대가리 샨드라미네아는…….

“이런 상황이면 베헤모스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와아아!! 까만 새! 까만 새!”

뭐가 그리 즐거운지 꺄르륵 대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데리고 메가로드리아의 등위에 올라타자 메가로드리아는 천천히 날개를 펄럭였다.

“한데 데이비, 어디 간다고는 본녀에게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지.”

“몸에 좋은 곳으로 갈 거야.”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아아아앙!!!

이윽고 메가로드리아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날개를 펼쳤고 거대한 광풍을 일으키며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압도적인 속도 면에선 불닭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

그렇게 날아오른 메가로드리아는 곧이어 곧바로 방향을 내리 꺾었고 마치 추락하듯 지면을 향해 내다 꽂았다.

“꺄악?!”

갑작스런 메가로드리아의 그런 행동에 화들짝 놀란 페르세르크가 내 목을 끌어안았고 청단이와 홍단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비명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쿠우우우우우!!!!

음속을 돌파한 속도로 쏟아진 놈이 지면과 추락하기 직전.

녀석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정면으로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영지를 가로질렀다.

벙찐 얼굴로 우리를 올려다보는 이들이 다수 보인다.

그중 가장 많은 시선이 모인 곳은 다름 아닌 하인스 아카데미에 입학한 각국의 자제들이었다.

뛰어난 교수진들이 있는 탓에 먼 타국이라 할지라도 수업을 듣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메가로드리아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는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흥!]

순식간에 영지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른 녀석은 짜증을 부린 녀석은 곧이어 몸을 살짝 웅크리는 듯했고. 이내 소닉붐을 넘어선 거대한 충격파를 높은 창공에서 일으키며 날아들었다.

* * *

현재 마족들이 존재하는 마계로 향하는 길은 타르타로스 지하산맥을 통하는 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유의 자기장이 마나의 움직임을 방해하며 공간이동을 통해 넘어가는 데에 상당히 효율이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를 향해 다가오는 리치가 손을 까딱하는 게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이제는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말이다.

끝이 독특한 형태를 지닌 빗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자극을 주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눈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당연히 마사지인걸요. 사람은 머리카락을 소중히 해야 해요. 안 그러면…… 모근이 언제 넓어질지 몰라요.”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는지 그녀가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머리는 빈자리를 보고 나서야 그 허전함을 느끼는 거니까요.”

내가 아는 한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빠진 건 그녀가 뼈밖에 없는 해골이었기 때문일 텐데.

인간의 모습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머리에 대해선 광적으로 집착하는 기색이 있었다.

“우웅…… 언니이…… 머리카락 빠져어?”

순진무구한 얼굴로 올려다보던 청단이가 조심스레 묻자 그녀가 아찔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빠지지 않았어요!”

비명을 지를 듯 대답하는 그 모습에 홍단이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쿡쿡 잡아당긴다.

“으아아아!! 당기지 말아요! 저는 모근이 약하단 말…….”

륀느를 대신해 아이들과 놀아줄 녀석이 생겼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가 전하라 한 건?”

몽환 세계가 아니니 전대 성녀이자 현재 리치인 이오는 마계에 내 의지를 그대로 전달했다.

하지만.

“아…… 전하긴 전했는데요오…….”

그녀가 떨떠름하게 답한다.

“그게…… 아스타로트 대공이 지금 상태가 그런 상태가 아닌가 봐요.”

뭐?

나름대로 마계를 주름잡던 양반이?“

“내부에서 과격파와 온건파 중립파가 싸움이 터졌으니까요. 그리고, 대공 아스타로트는 현재 병환에 들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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