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3화
혼의 위계는 기본 베이스이며 육신의 성장은 잘 쌓아 올린 건축물과 같다.
기본 베이스가 더 좋으니 잘 쌓아 올린 건축물의 가격이 확 뛸 수밖에.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무인도에 지어진 호텔과 도심 한복판에 지어진 호텔의 가격 차이가 압도적인 게 바로 이러한 이유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자연경관에 따른 여건으로 인해 건물의 질이 더 좋아지는 것 또한 부가 효과로 노릴 수 있으니.
9서클 마법을 한번 쓰는데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
그 말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간단했다.
아비트의 힘이 내게 완전히 적용되었다.
아비트의 시간 제어는 바깥의 존재에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금기의 힘. 아니 신의 죄라 하였나. 그것을 이용해 붉은 공허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나는 충분히 먹히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잘 사용하는 순간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웃긴 점은 내가 이 힘을 발현하기 위해 당긴 시간이 무려 300년이라는 점이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사실상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다.
아비트가 내게 미칠 수 있는 한계는 이 정도.
반신이 되면서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내게 300년은 큰 시간이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육신의 나이가 300년을 먹어버렸다는 건 상당한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쿠웅!!!!
순식간에 변이체 하나를 처리한 나는 엘릭서를 사용해 본래대로 돌아온 삼촌이 과연 돌아왔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물론, 잘되건 잘되지 않건 궁금하다 할지라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떠났기에 더 이상 손을 댈 순 없다.
우선순위는 우선 그보다 앞서서 이 변이체를 처리한 후 해야 할 일이었다.
아비트는 헤라클래스와 1만 년 전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다. 우선순위가 날뛰고 있는 공허의 붉은 변이체이기에 잠시 멈추긴 했지만 놈을 잡는다면 돌아가서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괜찮아. 시간은 내 편이다.”
어차피 아비트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나를 기다릴 터.
제 아무리 이클립스나 상위 흉신이라도 붉은 공허까지 쳐들어가 아비트를 처리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렇게 빠져나간 놈을 무슨 수로 찾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중 문득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조용히 시선을 돌리니 완전 무장을 한 군인들과 각성자들이 다수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폐허에 가까운 상황.
“어지간히도 난동을 부렸나 본데.”
우우우웅…….
그때 다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대통령 직통 전화였다.
“여보세요.”
-아아! 이제야 전화를 받으셨군요!
“무슨 일입니까?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닌 거 같은데.”
상해의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하다. 주변의 불빛으로 환할 뿐 시간은 늦은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아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변이체요?”
-…… 알고 계셨군요.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자, 잠깐만요!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요?”
-그것이…… 좀 전 넬타리드 교단의 교주인 빌 제리코 성하가 피살당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암살범이 당신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돌기 시작해서…….
“…….”
나는 말 없이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애초에 이 문제는 이미 알고 있던 문제가 아닌가.
중요한 것은 붉은 공허에서 아비트의 감시를 피해 빠져나간 놈이 문제였다.
변이체도 강대한 괴물이지만 붉은 공허에서 빠져나간 그 변이체와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변이체라곤 하나 그 방향성부터 다른 존재.
위험하기 그지없다.
[맹주, 놈은 점차 영리해질 겁니다. 허니 만에 하나라도 조심하십시오.]
눈치가 빠른 건지, 본능이 시킨 건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변이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향해 접근하려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과 엮일 생각은 없었다.
놈의 지능이 낮다면, 만에 하나 재수가 없어서 놈이 지능을 빠르게 습득한 게 아니라면 이 근방 어딘가에서 무식하게 먹어치우고 있을 터.
일대의 변이체만 처리하는 쪽으로 수색을 해보아야 할 듯 했다.
가볍게 몸을 띄워 올린 내가 반쯤 반파된 빌딩을 박찼다.
콰앙!!
그리고, 폭음을 일으키며 그대로 퉁겨져 올라갔다.
[9서클 원소계]
[마나 파장]
변이체의 공통점은 마나 파장. 모두가 같은 마나 파장을 가지고 있다.
막대한 에너지가 내 몸 안에 감돈다.
외려 혼과 육신의 괴리가 사라지니 더 적응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후우…….”
짧게 숨을 고르자 금기의 힘이 나를 잠식하듯 스멀스멀 피워올렸다.
네 차례 아니야. 들어가 있어.
가까스로 힘을 짓누른 뒤 빌딩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 전체에 마나 파장을 퍼뜨린다.
1초에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가 수축하기를 반복하는 파장을 수차례 보내자 특수한 파장을 지닌 변이체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삼촌의 변이체를 생각하면 약한 마법으론 죽지 않을 놈들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그에 걸맞은 마법으로 응수해주는 수밖에.
나는 오딘의 스태프. 초월의 종언을 꺼내 들고 허공에 거대한 화염 고리를 만들어냈다.
이윽고 붉은 화염이 검푸른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회전시키듯 초월의 종언의 끝으로 살살 유도하여 회전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허공 높이 띄워 올린 후 입을 열었다.
“커져라. 뚝딱.”
고작 사람의 팔보다 조금 더 두꺼운 크기였으나 일순간에 거대한 크기의 도넛이 된다.
[변형마법]
[역회전]
[블랙 노바]
검푸른 빛의 거대 화염 고리가 일순간에 고속 회전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터뜨리듯 사방에 퍼뜨렸다.
목표는.
사령 마나의 파장을 지닌 변이체들.
파장을 통해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위치가 드러나는 만큼 공격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하늘로 떠오른 검푸른 화염이 별이 되어 흩어진다.
그리고.
하늘 높이 올라간 그것은 곧이어 수 백 수천 개의 별똥별이 되어 일대 전역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구수가 많고 일루미나티의 본 지부 중 하나가 있던 곳이다.
당연히 그들의 손에 농락당한 변이체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안쪽에서 해결이 안 되니 바깥쪽의 변이체를 일으켜서 혼란을 일으켜 내 시선을 끌려 한 모양이지만 한번 꽂힌 이상 그들의 미래는 정해진 것과 같다.
마치 문명을 벌하는 신의 일격처럼.
밤하늘을 수놓는 검푸른 화염들이 선명하게 타오르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쿵!!! 쿵!!
거대한 폭음이 수차례 울려 퍼진다.
빌딩의 꼭대기에 홀로 선 채 초월의 종언을 쥐고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저 멀리서 접근하는 헬기들을 무시한 채 또 한차례 파장을 퍼뜨렸다.
좀 전의 일격으로 다수의 변이체들이 사라졌지만 역시나 그중에 내가 찾는 붉은 변이체는 보이지 않았다.
난동을 부렸으면 소식이 전해질 텐데.
나는 쓰러진 시신이 가지고 있던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중국은 언론통제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이건 어떨는지.
다행히 잠금장치는 되어있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들어 이리저리 조사하던 중 내 시야에 비친 황당한 기사가 보였다.
“…….”
두두두두두두두.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으로 사방에서 헬기들이 나를 비추며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아마 더 이상 난동을 부리지 말라는 뜻일 터다.
변이체도 변이체이지만 갑작스레 괴한이 나타나 도시를 파괴하고 있으면 누가 아군인지 파악하기도 힘들 터다.
하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스마트폰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임을 보이려던 찰나.
헬기 조종사들의 비명과 함께 주변 일대가 더욱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바로 뒤로 천천히 일어난 거대한 흙의 거인 때문이었다.
[계약자. 힘을 되찾은 것인가?]
“일단은.”
고요하게 중얼거린 내가 그를 직시했다.
대지의 정령왕 노아스는 말 그대로 땅 그 자체의 정령이다.
크기는 애초에 그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한다. 소환하는 자의 역량이 있을 뿐.
“방해하는 놈들이 있다. 여기 남아”
[요구에 응하겠다.]
“근처에 변이체들이 있어. 그놈들을 모두 처리해. 그리고 생존자들을 구해주고.”
[굳이?]
“그래야 나중에 이쪽에서 할 말이 있거든.”
그렇게 말한 내가 마법진을 다시 활성화 시키자 거대한 흙의 거인에게 겁을 먹고 있던 군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뭔가 하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곧 그들의 행동은 노아스의 거체가 무너지면서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지반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거대한 흙의 손들이 뻗어져 나와 헬기들을 강제로 잡아 착륙시키고 전차를 막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압도적인 물리력에 군인들은 경악했고 급기야 두려움에 떨었다.
츠츠츠츳…….
그리고.
이내 마법진을 모조리 활성화 시킨 내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뻗어져 나갔다.
그리고 새하얀 활대가 내 손에 생겨난다.
거리는 수백 킬로미터.
어지간해선 맞추기 힘들지만, 정확히 파장이 바다를 헤엄쳐 일본 영해로 향하는 놈에게 닿는다.
[9서클 최후 성마법]
[신의 중지 손가락]
거대한 신성력의 응집체를 화살로 만든다.
[9서클 바람계]
[사이클론]
그리고 또 하나. 바람계통의 마법을 통해 한발의 화살을 구현해냈다.
내게서 도망치려 들지 마라.
쩌엉!!!
그 말과 동시에 내 손을 떠난 새하얀 섬광의 화살이 어두운 밤하늘을 찢어발겼다. 효과는 확실하니 이제 찾아가서 직접 놈을 잡…….
그러던 도중이었다.
나는 나를 향해 날아드는 붉은 창을 슬쩍 피해냈다.
같은 색이지만.
붉은 변이체와 다르다.
“흐응…… 안타레스를 죽였다기에 흥미가 일었는데.”
여성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고 내가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정체 모를 촉수 다발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하반신은 문어. 상반신은 사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거 머리가 반짝거리네.”
바로 모근이 단 하나도 없는 민머리라는 점이었다.
확실히, 케인이 아틀란티스의 대부분은 대머리라 하였나.
나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옭아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흉신? 하위 서열은 9위 빼고 다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어머나. 무슨 섭섭한 소리를. 네가 함정을 설치한 동족 안타레스보다 높은 서열이라구?”
장난스레 말하는 그 모습에 나도 빙그레 웃어주었다.
“아 그래? 미안하다. 너무 약해 보여서.”
뿌직!!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촉수 다발을 쥔 내 손이 그녀의 촉수 다리를 찢어버렸다.
“올 거면 더 일찍 왔어야지.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따라와.”
아, 여기가 옥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