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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63화 (762/1,559)

제 763화

215. 어찌 보면 당연한 일 (2)

“자비라…….”

내 표정을 보던 륀느가 흠칫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데이비 님. 대량의 살기를 감지.”

“…… 아니야.”

그래. 빌어먹을 베르단데의 문제도 문제지만. 그보다 먼저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케인은?”

“큰 부상. 당분간 요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적절한 판단. 륀느가 케인의 약함을 낮게 평가.”

심연의 공주가 작정하고 습격했는데 제깟 놈이 무슨 수로 버티는가.

발키리아는 심연에 대적하기 위한 종족이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그는 현재 몰락 직전의 종족으로 제대로 된 전력으로써 기대할 수가 없다.

프리아 교단의 본산 성국 발샤스로 가지 않으면 직접적인 연결은 어렵다.

다만 현재 차원 열쇠의 힘은 케인에게 연동되어 주기적으로 이동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

그가 깨어나지 못하면 사실상 당분간 차원이동을 봉인 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

“데이비 님?”

“지하 창고로 가자.”

살살 치고올라오는 분노를 살살 억누르며 나는 본래의 목적을 다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 * *

베르단데는 마나 억제 소재로 만들어진 밧줄로 묶여있었다.

애초에 어느 정도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존재. 즉 익스퍼트 상급 이상만되도 의미없는 포박이다.

하물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고 알려진 성국의 포박 신물조차 코웃음치며 무시해버릴 정도의 심연의 개체라면 지금의 포박은 말 그대로 겉치레일 뿐이었다.

배신자를 묶어둔 것 치고는 너무 안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런 대처에서 끝난 이유는 간단했다.

“왔네.”

그녀가 저항의사를 전혀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를 공허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베르단데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처음 만났을 땐 신비주의로 가득하던 그녀였고, 그후엔 그래도 심연주제에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존재라 여겼다.

인간을 자식으로 모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던 그녀의 다른 모습에 일말의 동정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초췌해진 그녀의 모습은 처음의 그런 느낌도 남지 않았다. 후회와 고민으로 가득 차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한때 대륙 6대 미녀 중 하나로 불렸었던 마녀의 모습은 초췌함으로 인해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그대로 홍단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

“홍단아. 눈 감아.”

츠츠츠츠츳!!

그러자 홍단이의 몸이 빛으로 화하며 붉은 환도의 형태로 변한다.

푸욱!!!

“…….”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번도 신음을 내뱉지 않았다.

그녀를 보호하던 힘이 힘없이 찢겨 나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푹 숙인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변명하지 마라.”

촤악!!!

검을 뽑아낸 내가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신목의 성지에 있는 그리드 전 국왕에겐 그렇게 전하마.”

그녀는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내 말에 그녀가 처음으로 움찔거렸다.

“넌 끝까지 정이 넘치는구나.”

미묘하게 바뀐 느낌이었다.

“웃기는 소리. 나는 네가 무슨 사정으로 그딴 짓을 저질렀건 신경 쓰지 않을 거다. 네 덕분에 심연을 놓쳤고, 유일하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도 빼앗겼고. 마지막으로.”

콱!!

홍단이의 검 끝을 바닥에 꽂은 채 내가 그녀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공허한 그녀의 눈이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채 나를 직시한다.

“네 덕분에 페르세르크가 저 꼴이 됐다.”

륀느의 보고대로라면 현재 그녀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라 할 수 있다.

가까이 가는 모든 존재의 마나를 감지하고 파괴 행각을 펼치는데 그 힘의 수준이 절대 낮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권능을 사용하던 그녀도 카트시를 몰아붙일 정도로 강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에 이르러서 그녀는 마치 이성을 잃어버린 파괴의 화신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 죽여. 더는 할 말이 없어.”

“네가 그러면 내가 못 죽일 줄 알았지.”

그녀를 죽이기 위해 힘을 끌어내 홍단이를 휘두르려던 그 순간이었다.

스팡!!!

“안돼!!!”

비명을 지르듯 백의에 뿔테 안경을 쓴 작은 소녀가 내 앞에 나타나 거대한 포효를 터뜨리며 나를 밀어냈다.

타격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심연의 공주.

아주 잠깐의 틈을 만들어내는 데엔 성공했다.

“스…… 스쿨드! 안돼!”

공허한 얼굴로 주저앉아있던 베르단데가 깜짝 놀라 그녀를 불렀지만, 심연의 공주 세 자매 중 막내인 스쿨드는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만났는데! 이렇게 언니까지 잃을 순 없어!!”

악을 쓰며 소리친 그녀가 베르단데를 끌어안았다.

동시에 그녀들의 몸이 빛으로 화해 사라진다.

“하…… 도망을 가?”

스쿨드의 탈주극에 나는 홍단이를 다시 검집에 넣었다.

콰앙!!

그리고는 발을 강하게 구르며 마나를 퍼뜨리고 마법진을 발현했다.

공간 전이.

그녀들이 어디로 도망갔는지는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다급하게 도망치느라 대놓고 흔적을 남겼으니까.

그녀의 방해만 아니었어도 페르세르크가 저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고 륀느가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오딘이 소멸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낮게 내리누르며 나는 그녀들이 도망친 곳을 향해 공간을 뛰어넘었다.

* * *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스쿨드는 의욕을 상실해버린 베르단데를 필사적으로 부축하며 급히 도망쳤다.

“도망치자…… 언니. 어떻게 만났는데. 울드 언니와 내가 언니를 얼마나 찾아 헤맸는데! 이렇게 만났는데 언니가 죽게 둘 수 없어!”

“그만…… 그만둬 스쿨드. 제발.”

“왜 죽으려는 거야!! 벗어났다며!! 이제야 기억이 났다면서! 평생을 찾아 헤맸으면서 이제 와서 포기하겠다고?!”

악을 쓰며 필사적으로 그녀를 데리고 걸어가는 스쿨드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이미 한차례 울드가 그녀를 보호하고 쓰러지긴 했지만, 그 여파에서 무사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그만…….”

“아아악!!!”

물론, 스쿨드의 부질없는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나타난 데이비가 그녀를 걷어차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넌 기다려. 나중에 죽여줄 테니까.”

스쿨드의 지지를 잃어버린 베르단데가 힘없이 쓰러지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허공을 흩날리며 천천히 내려앉았다.

“도망은 끝났냐?”

“스쿨드는 건드리지 마…… 그 아이는 아무 잘못 없는 희생자야…….”

“페르세르크는 가해자였나 봐?”

“…….”

내 말에 그녀는 움찔하는 듯하더니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래…… 그녀를 그렇게 만들고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든 건 내 잘못이 맞아. 하지만…… 스쿨드는 아무 잘못도 없어.”

스릉…….

그녀의 발언에 나는 다시 홍단이를 뽑아 들고 그녀의 목에 겨누었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내 눈에 심연 새끼들은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촤아아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붉고 뜨거운 피가 튀었다.

* * *

“대체 그 사람은 왜 배신은 한 걸까요.”

아스가르드의 함장으로서 전체적인 시스템을 관리하는 연금술사 소녀, 티아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이제 와서 보았다 해도 일부만을 보았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과거 그녀는 데이비 올 라운 이라는 왕자와 정략혼 관계의 이야기가 오가던 사이였다.

물론, 여러 요소로 인해 그 정략혼이 파혼되긴 했지만 나름대로 한때 정략혼 대상이었던 만큼 일말의 정이라는 게 남아있기도 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슬픈 느낌이 들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인지 씁쓸함이 들었다.

비록 적이었다지만 베르단데는 상당히 배려가 깊고 심성이 좋은 여인이었다.

실제로 여러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데이비가 베르단데를 죽이려 들고 있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세상 그 어떤 인간이 자기 아내를 그 꼴로 만든 존재를 용서하겠는가. 그렇기에 아스가르드의 그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삐잉!! 삐잉!!

경보 마석이 격렬하게 울리며 신호를 보내오자 그녀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건 페르 언니의?!”

놀란 그녀가 마나석을 빙그르르 돌리듯 조작하자 페르세르크가 있는 곳의 화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위해 아스가르드의 창고에 담아놓았던 부유형 정찰 골렘들을 몇 대나 보냈다.

그리고. 목재로 된 벽 너머로 출력되는 홀로그램을 본 티아라의 눈에 경악이 서린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화면에 비친 것은 러시아의 군세로 보이는 수많은 군인들이 조용히 침묵한 채 시베리아 벌판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페르세르크를 향해 공격을 쏟아붓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럴 수가!!”

분명 러시아라는 지구의 국가는 데이비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이런 무리수에 괴이한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소리였다.

“티아라!”

소리를 듣고 놀라 다가온 에디손 기술고문, 즉 티아라의 할아버지가 그녀를 부른다.

“하……할배! 빨리 은사에게!”

“오냐!”

여기서 잘못되면 무슨 대형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지금 데이비는 극도로 분노한 상황이니까.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서 지금 상황은 절대 좋지 않았다.

* * *

“아윽…… 윽…….”

제 몸에 홍단이가 깊게 박혀 들어갔음에도 스쿨드는 물러나지 않았다.

“절대…… 안돼…….”

홍단이는 비 물리 계통을 베어내는 권능이 없기에 상처를 입히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렇다고 해도 스쿨드의 부상은 심각했다.

“스쿨드!!!”

경악한 베르단데가 지친 얼굴로 소리쳤다.

촤악!!!

“아…… 안돼…… 절대…… 안돼…….”

홍단이를 빼내기가 무섭게 그녀가 쓰러진다.

그리고 몸을 기어 필사적으로 내 발을 붙잡고 버텼다.

과거엔 위험한 적이었으나. 이제는 너무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버렸다.

“절대…… 죽이게 둘 수…… 없어…….”

필사적으로 막는 그녀가 방해되자 그녀를 걷어차듯 날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언니가 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면서!!”

“스쿨드 그만해!!”

“이클립스는 우리 엄마라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고 심연으로 뛰어든 탓에 저렇게 된 거라며!! 불쌍한 우리 엄마가 다시 그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게 할 수 없었다면서!”

엉엉 우는 스쿨드의 외침에 내가 멈칫했다.

“언니를 죽일 거면 나부터 죽여!! 울드 언니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마당에 무서울 게 어딨어! 나부터 죽여! 빌어먹을 인간!! 나부터 죽이라고!”

악을 쓰듯 매달리는 스쿨드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하듯 침묵했다.

그리고.

곧이어 홍단이를 쥐지 않은 손에 청단이를 뽑아냈다.

그리고 청단이를 들어 올린 그 순간이었다.

치지지직!!

-은사! 큰일 났소이다! 시베리아 벌판을 러시아의 군대가 공격하기 시작했소! 페르세르크 왕자비가 있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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