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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64화 (763/1,559)

제 764화

페르세르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던 아스가르드에서 전해온 급보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안…… 돼…… 못…… 죽여…….”

필사적으로 나를 막아서는 스쿨드를 무시한 채 나는 숨을 짧게 골랐다.

러시아 군대가 공격을 가했다. 그녀가 먼저 러시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면 가능성이 있지만, 굳이 가만히 있는 그녀를 건드릴 이유는 그들에게 없다.

여러 면에서 전혀 이득도 되지 않거니와 이득이 된다 할지라도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테니까.

“제…… 발.”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 짜내는 스쿨드의 발악과.

[은사! 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륀느 양이 겨우 진정시킨 페르세르크 님이 다시 폭주하면 어마어마한 대참사가 날 겁니다!]

다급하게 드워프 중 한 명의 외침이 통신 아티펙트를 통해 정신없이 전해져왔다.

이미 한차례 그녀는 폭주한 전례가 있다.

실제로 한국에 있던 그녀가 폭주한 결과. 륀느가 세피로스화 하였음에도 엄청난 부상을 입지 않았던가.

싸늘한 시선으로 베르단데를 내려다보자 그녀는 체념한듯한 얼굴로 주저앉은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죽음을 작정한듯한 얼굴이었다.

스쿨드가 했던 말이 괜스레 머리에 감돌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클립스는 엄연히 헤라클래스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기억을 되찾은 베르단데와 울드나 스쿨드 세 자매는.

헤라클래스가 데려온 입양 딸.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베르단데의 새엄마가 바로 이클립스라는 뜻이기도 했다.

기억이 나버렸기에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녀가 오래전 과거에 이클립스와 어떤 관계였건 그녀의 행동을 예상했어야 했다.

청단이를 손에 쥔 내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마음이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

공허해진 얼굴로 시선을 들어 올린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체념이 서린 눈동자에 나를 담아 넣은 그녀가 말라버린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을 들은 나는 망설임 없이 청단이를 들어 올렸다.

서걱!!

* * *

바람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전투기들이 시베리아의 추운 침엽수림을 가로지른다.

치이이익…… 치익…….

계속되는 잡음을 무시한 채 전투기들을 조종하는 이들은 목표지점에 이르기가 무섭게 전투기에 내장된 무기들을 모조리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십 발 가까이 쏟아지는 포격의 목적지는 반쯤 부서져 황폐해진 벌판이었다.

본래엔 숲이었으나 이제는 숲이라고 부르기엔 문제가 있는 장소.

페르세르크를 기대어 잠들게 하던, 유일하게 큰 나무 하나만이 남아있는 장소였다.

미사일이 지근거리까지 왔음에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아닌 주홍빛이 뒤섞인 눈이 천천히 들린다.

쉬이이잉, 쿠우웅!!!!

그리고.

멍하니 있던 그녀를 향해 미사일의 세례가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난다.

쉬이잉, 푸쉬이이이익!!!

그리고 용의주도하다 싶을 정도로 날아든 미사일 한 발이 대량의 화학 가루를 살포하여 일대의 화염을 순식간에 진압해버렸다.

어마어마한 폭격세례는 한때 군사 강국이라 불리던 러시아의 저력을 보여주다시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치이익…… 포격 중. 각성자 전담반 목표의 생존을 확인…………]

그들이 착각한 것이 있었다.

비록 넬타리드의 진영이 아니라 화기 내성이라는 권능을 가지진 않았지만. 현재의 페르세르크는 이 정도 화기로는 티끌만큼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음? 잠시. 뭔가 이상…….]

콰직!!!

초음속 전투기까지는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전장을 배회하는 정찰기에서 거대한 굉음이 일어난다.

[무슨 일인가. 빨리 보고…….]

콰직!!!

또 한차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뒤늦게 산불이 진압되고 현장으로 진입한 각성자들은 곧 기이한 통신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바닥에서 마치 나무처럼 솟아오른 새까만 기둥이 하늘을 날고 있던 전투기들을 꿰어버린 채 멈춰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정찰과 폭격을 위해서 고도를 낮추었다곤 하지만 그 높이가 보통이 아니다.

그런 마당에 음속을 돌파하는 속도로 날아다니는 전투기마저 당해버렸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 온다!!”

그때 전방에 있던 각성자가 놀란 듯 소리쳤다.

브리핑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나무에 기대어 잠든 채 미동도 하지 않던 아름다운 소녀의 전신으로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렁인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잠시 멈칫했던 이들이지만 그들은 프로. 그녀를 제거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보고를 받은 후였다.

세상에 죽고 싶어 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그들은 긴장한 채 그녀를 공격할 준비를 마친다.

푸욱!!!

“커헉?!”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 대처를 하기도 전에 그녀와 눈을 마주친 자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아지랑이가 크게 일렁이는 듯하더니 누군가가 반응하기도 전에 파고 들어와 그들의 몸을 꿰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운이 좋았던 한 사내만이 굳어버린 채 그녀와 죽어버린 제 동료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스르르륵…….

순식간에 즉사해버린 동료들의 모습에 겁을 먹어버린 사내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자 페르세르크가 스르륵 다가와 그를 향해 손을 뻗어 올렸다.

그러자 검은 아지랑이들이 그의 양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붙잡아 허공에 들어 올렸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섬뜩한 공허함에 그는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으…… 으으으…… 으아아아아아!!!”

끔찍한 공포에 비명을 질러보지만, 변화는 없었다.

공허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던 페르세르크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린다.

여신의 환생처럼 아름답지만, 그 미소는 마치 죽음의 여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아하하…….”

매력적이지만 스산한 미소가 서린다.

동시에 사내의 몸을 찢어발기듯 검은 아지랑이의 촉수들이 그의 육신을 잡아 찢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사내는 저항조차 못 한 채 눈물 콧물을 질질 자며 엉엉 울 뿐이었다.

어마어마한 전력이 한순간에 붕괴해버렸으니 제정신을 유지할 수야 있나.

엄청난 폭격 속에서도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그녀는…….

말그대로 괴물 그 자체였다.

이윽고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의 몸은 결국 찢어지지 않았다.

그의 몸이 완전히 조각나버리기 직전 하늘에서 쏟아진 백광의 검기가 검은 아지랑이를 잘라버렸기 때문이었다.

쿠웅!! 쿵!!

굉장한 진동과 함께 일대가 뒤흔들리자 공허한 얼굴에 스산한 웃음을 짓고 있던 그녀가 몸을 비틀거리며 아지랑이를 회수했다.

“…….”

갑작스런 충격에 살아남은 사내는 어깨에 생겨난 상처도 잊은 채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티…… 티오니스 왕자…….”

“그냥 죽게 둘 걸 그랬나.”

싸늘한 중얼거림에 사내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공포에 질려버린 그를 돌아보는 청년, 데이비 올 라운의 시선에는 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

* * *

러시아의 통수권자 블라디미르 쿠틴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대놓고 불안함을 표출했다.

“어떤 놈들이야!!! 왜 아직도 소식이 없나!”

“현재 파악 중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그 짧은 시간이면 이 나라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알고는 있는 거겠지?!”

쿠틴의 외침에 주변의 사내들이 침묵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것도 엄청난 비방의 대상인데 하필 건드리면 안될 인물을 건드려버렸다.

지금처럼 과도기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그같은 행위는 국가의 미래를 뒤흔드는 짓이니까.

당연 이번 습격은 쿠틴의 명령이 아니었다.

현재 알아낸 것이라곤 명령을 내린 군부와 각성자 통괄의 몇몇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누군가와 접촉했다는 보고뿐이었다.

녹빛의 기이한 존재를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 명령을 받은 건지 몇몇 군단과 각성자 부대가 움직여버렸고 가만히 있는 폭탄을 건드렸다.

그녀가 날뛰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이 쿠틴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계의 존재.

현시점에서 가장 인간을 초월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강의 시한폭탄인 데이비의 존재였다.

극도의 애처가인 그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부인을 향해 포격을 쏟아부었으니…….

그가 해온 짓을 생각하면 러시아라는 대규모 국가가 뒤흔들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렷다.

고작 한 명에 국가가 흔들리는 것이 우스꽝스러운가.

그럴 수 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존재한다.

애초에 현재 세상에 나타나는 괴물을 그의 도움 없이 온전히 막아내는 건 현재로선 상당히 힘든 상황이니까.

막아낸다 해도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갖은 고생을 해서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었는데 그 다 된 밥에 어떤 빌어먹을 놈이 재를 뿌린 격이다.

“찾아…… 어떤 개자식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건지 당장 찾아서 내 앞에 데려와!!!”

그의 외침에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특수부대를 파견했습니다. 지금으로선 쉽지 않지만, 명령을 내린 자들을 금방 찾아 구속할 수 있을 겁니다.”

“목숨줄만 붙어있으면 팔다리 하나 없어도 상관없다. 저항하면 가족을 잡아서라도 데려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거다.”

쿠틴의 분노에 그를 따르는 이들이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기본적으로 각성자인 쿠틴의 위압감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 * *

“…….”

공허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마주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떼어내려 해도 혀가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괜찮은 것인가.

대체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든 것인가.

알고 싶은 게 많지만 지금으로선 확실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프리아 여신의 힘을 이용해 타나토스를 떼어낸 건 좋은데.

그 빌어먹을 심연의 신을 떼어내기가 무섭게 페르세르크가 저렇게 변해버렸다.

이성? 그런 게 있었다면 륀느가 그토록 큰 부상을 입지도 않았을 터.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쥔 채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페르.”

그리고는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였다.

처음에야 세상을 구경한다는 핑곗거리였지 애초에 그녀는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의 경우.

그녀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엔 그녀를 믿지 않았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쉬리리리릭!!!

이윽고 그녀가 고고한 자태로 선 채 내게 손을 벋자 검은 아지랑이가 촉수가 되어 내게 날아들었다.

“촉수가 그렇게 싫다더니…….”

그렇게 말한 나는 그대로 그녀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맨몸으로 끌어안았다.

푸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촉수 다발 몇 가닥이 내 몸을 꿰뚫는다.

동시에 나를 공격한 그녀의 공허한 눈에 처음으로 경악이 서렸다.

내가 공격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모습이었다.

멍하니 굳어버린 그녀를 끌어안고 고개를 묻은 채 내가 말했다.

“내가…… 반드시 구해줄게. 네가 어떤 상황이건. 네가 그 빌어먹을 신에게 저당을 잡혔건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세상보다 페르세르크를 선택한 이상 내 결정에 번복은 있을 수 없으리라.

“내가…… 반드시…….”

파르르 떠는 페르세르크를 부서질 듯 강하게 안았다.

“널 해방시켜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너 미쳤어?! 감정의 편린이 남아있는지 확인하라고 그랬지 누가 몸을 학대하라고 했어?!]

경악한 외침이 수정구에서 들려오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닥치고 움직여. 멋대로 간섭하려 들지 말고.”

내가 그녀의 심연 자체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구해내리라.

내 행동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발버둥을 치며 나를 밀어냈다.

그리고는 표독스러운 시선으로 수십 가닥의 검은 아지랑이들이 나를 죽일 듯 날려 보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그렇게 말하며 나는 맨손에 검은 기류를 모았다.

[혈마공]

천마신공과 사령 마나를 섞어 만든 복합 무공이 내 손에서 발현되었다.

부부싸움 스케일이 이래서는 곤란한데…….

그렇다고 해도 그녀를 구할 방법은, 현재로선 이게 전부였다.

오랜만에 원초적이면서 상스럽던 전생의 욕이 쏟아져 나왔다.

“x발.”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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