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5화
콰아앙!!! 쾅!!!
울창한 숲이 파괴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계속해서 쏟아지는 검은 마탄은 닿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일그러뜨렸다.
처음 아주 잠깐 감정을 내비쳤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페르세르크의 공격은 가차 없었다.
대체 그녀의 어디에 이런 힘이 숨겨져 있었던 것인지 모를 정도로 쉬지 않고 공격을 가해왔다.
허공에 살짝 떠오른 채 그녀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검은 촉수들이 지면에 꽂혀 지상에 스며든 마나를 모조리 흡수하고 그것을 힘으로 바꾼다.
현재의 그녀는 엄연히 거대한 식물과 같은 느낌이었다.
콰앙!! 쾅!!
물론, 벌레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반사작용으로 잡아먹는 식충식물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끝도 없이 힘을 끌어다 쓰며 공격하는 그녀는 분명 나를 죽일 의도가 다분했다.
애초에 이성이 없는 그녀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그녀의 기억도 이성도 남아 있지 않은 말 그대로의 파괴의 화신일 뿐이다.
콰앙!! 쾅!!!
페르세르크의 공격이 점차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그녀에게 찔린 부상으로 인해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지만 나는 끝내 그녀를 공격하지 않고 계속해서 받아내며 힘을 소모시켰다.
물론, 내가 힘을 쳐낼 때마다 점차 주변이 황폐화되는 것도 한순간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진정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날뛴다.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날뛰면 날뛸수록 부담을 고스란히 받는 것은 그녀 본인이 될 테니까.
말하자면 그녀의 상태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 힘을 강제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촤라라락!!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날뛰지 못하게 막는 것.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그녀를 구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뿐이다.
이클립스를 포함한 심연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게 정말 다행이지만 말이다.
[은공! 점점 마나 파장이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이전과 달라요! 이대로 가다간 거대한 마나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이 장소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는 아스가르드의 승무원인 엘프에게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다.
본래라면 지상의 지기를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바꾸겠지만 이상하리만치 그녀는 내 몸을 찔러 구멍을 송송 뚫어버린 뒤로 극도로 일부가 불안정해졌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그녀를 구할 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해주고 있으니까.
그녀는 타나토스가 아니다.
나와 있었던 모든 기억들이 거짓이 아니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
충분히 알 것도 알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녀를 상처 하나 없이 진정시키는 것.
그녀의 힘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짜악!!
나는 양손을 강하게 부딪쳐 손뼉 소리를 내고는 도력을 사방에 흩뿌렸다.
그리고는 페르세르크가 손수 사랑스럽게 구멍을 뚫어버린 복부의 피를 스윽 닦아 손에 가득 묻힌 뒤 나머지 손으로 품 안에 넣어둔 비어있는 새하얀 인챈트 스크롤 두 장을 꺼내 들었다.
[멸신환부]
[신수의 격]
두 장에 전혀 다른 문양의 특유 글귀, 그리고 문양이 새겨졌다.
동시에 두 장의 부적에 대량의 도력이 빨려 들어가며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내게 달려드는 페르세르크를 향해 부적 두 장을 던졌다.
[초월 1급 주박술]
[만뢰묵금]
혼과 육신이 동기화된 이후 사용이 가능하게 된 최상위 봉인 주박술이 펼쳐지자 새빨간 빛의 줄기들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와 그녀의 팔다리를 묶고 지상에 고정시킨다.
“아아…… 아아아아아악!!!”
자신의 행동을 봉인 당한 그녀가 악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검은 아지랑이가 마치 타오르듯 새빨간 빛줄기들을 끊어내려 했다.
쩌엉!!
끔찍한 통증과 함께 내 몸에 반동이 전해지지만 결국 그녀는 줄기를 끊어내지 못했다.
“아아!! 아아아악!!”
이성을 잃고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계속해서 덤벼들려 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당장 그녀를 구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거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나는 몸 상태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날뛰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콰직!!
아지랑이가 거의 봉인 당한 그녀는 손톱으로 내 팔을 할퀴고 작은 입으로 내 어깨를 물어뜯기까지 했다.
상처가 생겨나지만 나는 그녀를 놓지 않았다.
“착하지. 괜찮아…… 괜찮아.”
“아…… 아아…….”
아이를 달래듯 그녀를 조심스레 달래보지만, 그녀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만약 널 구해내지 못하면.”
그땐 내가.
“그땐…… 내가 같이 죽어줄게.”
씁쓸한 내 한마디에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성을 잃고 초점이 잡히지 않던 그녀의 시선에 아주 잠깐 내가 서린다.
“데…… 이…….”
어렵게 입을 여는 그녀가 나를 부른다.
본능만 남아 아무것도 없음에도 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치매가 심해진 환자가 단 하나를 기억하듯.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실감이 날 정도였으니까.
“아…… 아아.”
그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해서 나를 물어뜯는 그녀의 저항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녀를 끌어안은 채 침묵했다.
이윽고 그녀가 서서히 진정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검은 아지랑이를 이용해 발을 딛고 있는 지상의 힘을 빨아들인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용한 두 개의 주술이 그녀의 아지랑이를 막아내고 있는 탓에 그녀는 날뛸 수 있는 힘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자체적인 회복도 있기에 한번 진정한 그녀를 다시 건드리는 건 미련한 짓이지만.
“…….”
서서히 침묵하는 그녀가 눈을 감는다.
나는 말 없이 그녀를 안아 든 채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벌써 30분 이상 지속된 전투 동안 계속해서 피를 흘려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멀리 데려다 놓을 수 없다.
천천히 움직여 멀쩡한 나무에 그녀를 눕힌 나는 말 없이 그녀의 뺨을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피부 감촉 너머 지친 듯한 표정을 보니 억장이 뒤틀리는 기분이 든다.
“조금만 기다려.”
쿨럭!!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울컥 토해낸 내가 천천히 일어났다.
쉬이이잉 쿵!!!
그 뒤를 이어 상황을 보고 있던 륀느가 내게 다가왔다.
“데이비 님.”
아직 부상이 완전히 수리되지 않았음에도 녀석은 무리해서 이곳으로 날아왔다.
“페르 님이 움직일 때마다 대량의 생명력을 방출. 이는 장기적으로 유지될 경우 생명유지에 치명적이라 보고.”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를 구하는 것도 구하는 것이지만 이 일의 원흉이 남아있었다.
애초에 그녀를 구할 방법은 현재 내게 없다.
그게 가능한 존재가 단 한 명 있을 뿐.
말없이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린 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싸늘하게 일갈했다.
“경고하는데.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네 동생은 내 손에 반드시 죽는다.”
[…….]
분노를 억누른 내 경고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물론 그것으로 충분했다.
“륀느.”
“데이비 님 잠시. 빠른 치유가 필요하다고 분석해!”
“아니. 자체치유는 하고 있어. 신경 쓰지 마.”
“데이비 님! 조급함은 옳지 않다고 보고!”
나를 막아서는 륀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또다시 치명상을 입었다.
페르세르크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냈으니까.
그런 마당에 쉬지도 않고 계속 움직이니 주변에서 보면 내가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며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누구 마음대로. 나는 절대 죽지 않아.”
오랜만에 하는 자기 암시.
그 말과 함께 나는 걸음을 옮겼다.
* * *
페르세르크를 각성시킨 것은 이클립스도 페르세르크 본인도 아닌 바로 타나토스다.
타나토스가 누구인가.
바로 심연의 중심이 아니던가.
그런 심연의 신이 만들어낸 변화를 가장 잘 아는 존재는 사실상 내 곁에 단 하나뿐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는 신의 힘이 남겨놓은 잔재에 잠식된 상태야.”
“알기 쉽게 설명해라.”
내 말에 그녀가 침묵한다.
마법서를 품에 끌어안은 소녀.
울드의 동생이자 스쿨드의 언니.
배신자 베르단데였다.
그녀는 입체로 출력된 지형의 중앙에 잠들어있는 페르세르크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영혼을 타나토스의 힘이 감싸 잠식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녀를 구하기 위해선 타나토스의 힘을 걷어내거나 그녀를 그 잠식된 심연 속에서 끌어내야 해.”
“전자건 후자건 가능성은?”
“전자가 성공 가능성이 높아. 신의 힘이라고 해도 잔재에 불과하니까. 네 신력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녀의 말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신의 힘을 품은 나뿐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그녀의 육신은 구할 수 있을지라도…… 영혼을 구할 순 없어. 잠식된 채로 신의 잔재와 함께 소멸할 가능성도 있겠지.”
베르단데의 설명에 나는 눈을 감았다.
본말전도.
그딴 건 선택 사항이라 부르지 않는다.
“후자는.”
“내 힘을 이용해 널 그녀의 심층세계로 날려 보낼 거야. 그곳에서 심연을 파고들어 그녀를 찾아 데려 나와야 해. 그녀와 신의 잔재만 분리해낼 수 있다면 그 후엔 전자의 방식을 사용해서 걷어내면 되니까.”
다만.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다만,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그래.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던 고대룡의 수장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곳이 심연이야. 비록 일부이지만 엄연히 인의 일면인 심연 그 깊숙한 곳에 네가 들어갔을 때 네가 미치지 않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방법은 그게 끝인가?”
“…….”
내 말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네가 문제네.”
“…… 이 일이 끝나면 얼마든지 네 손에 죽어주겠어.”
“그 말 후회하지 마라.”
담담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할 거지?”
“어쩌긴.”
그 옛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했나.
빛이 있으라.
페르세르크를 구해낼 수 있다면.
거기에 나는 망설임 따위 없다.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했어.”
“…….”
“그건 말그대로 자살행위이니까. 성공확률이 0.1퍼센트 조차 되지 않아.”
끝도 없는 공포를 자극하는 미지의 어둠 속에서 그녀를 찾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녀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제에 말은 잘하네.
애초에 다른 선택이 있을 리가 있나.
페르세르크의 심층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적으로 그녀에게 극도의 부담을 줄 수 있는 내 몸의 기본 방어 마법들을 모두 해제한다.
그리고. 편한 복장을 입은 채 눈을 감고 침묵했다.
툭!
그때였다.
베르단데와의 이야기 이후 개인 준비를 마치고 떠나려는 내 뒤에서 누군가가 끌어안는 감촉이 느껴졌다.
“흑…… 흐흑…….”
흐느끼는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저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괴로움을 느낀 소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이리아.”
“가지 말아요…… 라고 하고 싶은데…… 저는 그런 말조차 할 자격이 없어요…….”
흐느끼는 그녀의 말에 나는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말없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자 그녀가 엉엉 울며 나를 올려다본다.
“다치지 말아요. 아프지 말아요. 꼭 돌아와야 해요.”
“약속했잖아. 나는 약속은 지켜.”
“데이비 님…….”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겨드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지만 사실 베르단데의 말대로라면 그녀와 나 둘 다 공멸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럼에도.
“차라리…… 차라리 가지 않으면…….”
“가야지.”
내 말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 중얼거림에 그녀는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본다.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가 제 손을 파르르 떨었다.
“미안해요…… 제가 이기적이었죠?”
이기적이라.
그녀의 입장에서 나라도 살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이기적이라 할 순 없었다.
“만약…… 제가…… 제가…….”
뭔가 말을 하다 만 그녀가 침묵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은 건 내게 전해졌다.
“만약 페르세르크가 아니라 네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
“나는 망설임 없이 널 구했을 거다.”
“아…….”
“그게 내 방식이야.”
취미생활로 만든 물건이 한번 부서지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내 인생을 같이 살아갈 이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말과 함께 허리를 살짝 숙여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춰준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짙은 입맞춤이 끝난 후 몽롱해진 얼굴을 한 채 그녀는 자신의 입가에 묻은 타액을 손으로 가렸다.
“여기서 기다려줄래? 돌아오면 페르세르크가 좋아하는 크림빵을 준비해줘.”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믿을게요. 반드시 돌아오실 거라고. 얼마가 걸리든…… 반드시 기다릴게요. 꼭 돌아오셔야 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미소지어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그녀의 심층으로 들어간 동안 생길 변수에 관한 문제였다.
아스가르드를 떠난 나는 곧바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로 향했다.
블라디미르 쿠틴.
러시아의 각성자이자 대통령이며 현 러시아의 통수권자.
나와는 우호적이었지만 이번 사태에 페르세르크를 건드린 건 엄연히 러시아의 각성자와 군인이었다.
그는 내가 찾아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나를 프리패스로 자신이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만나자마자 내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