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7화
멍하니 서 있는 현아와 영체가 되어 떠 있는 내가 서로를 마주 본다.
잠시간의 침묵은 1초가 1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
입을 뻐끔거리며 고민하던 내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그녀도 입을 연다.
“뭐라는 거야. 너 뭐 이렇게 됐냐?”
“미쳤어?”
나를 흡사 쓰레기 보듯 보는 현아와. 현아를 향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부분에 대고 빙빙 돌려주는 나의 행동은 거의 동시였다.
“하…… 어이가 없네?”
“내가 할 말이거든?”
서로 노려보며 잠시 침묵했다.
“가만. 방금 뭐라고?”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일이 있었다.
방금. 그녀가 나를 향해 무엇이라 말했는가.
“방금 너……”
내가 인상을 찡그리고 묻자 그녀는 뭘 새삼스럽냐는 듯 대답했다.
“뭘 아닌척해? 오빠잖아. 현수 오빠.”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프로는 당황해선 안 된다.
나는 연기의 프로, 절대 저런 유도신문에 넘어갈 수 없다.
“누…… 누가 그래. 어떤 놈이 그런 이상한 소리를.”
“말 더듬지 말지?”
흠칫 놀라며 한발 물러난 내가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연기의 프로로서 이 같은 대형실수를 저지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하. 약 먹을 시간이라도 됐나? 내가 왜 네 오빠야. 뭐. 내가 잘나고 오빠처럼 든든한 느낌을 주니까 착각할 수도 있긴 한데.”
“웃기고 있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야지. 그리고 뭐? 나 좋아하냐? 미쳤어? 너 같은 인간을 좋아하게? 우리 세상에서 너 같은 걸 두고 뭐라는지 알아?”
“나르시스트.”
“거봐. 알고 있네.”
다시 한번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내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황스럽네.”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것들이 내 발목을 맹렬하게 붙잡고 늘어진다.
“당황스럽긴 무슨 얼어 죽을.”
그런 내 태도에 그녀가 키득거리며 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오빠…… 보고 싶었어.”
“…….”
아예 확신한듯한 그 말에 내가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드르륵…….
“현아야. 친구…… 너 허공에 뭐하니?”:
“꺅! 언니! 노크하고 들어오랬지?!”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비명을 내지르며 후다닥 뛰어간 그녀가 연희를 밀어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
“가지가지 한다.”
“닥쳐, 세발낙지 같은 게 어디서 한숨을 내쉬고 있어.”
“요즘 꼴뚜기는 사람 말도 하나 보네.”
“아오. 얄미워!”
부들부들 떤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왜 안 물어봐?”
“뭘.”
“언제 알았는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꾸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데이비 올 라운이지 진즉에 성불한 네 오라비가 아니야.”
“그래?”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현아가 저럴 때마다 뭔가 하나씩 펑펑 터져서 불안했던 기억이 살사 떠올랐다.
“그럼 데이비인 걸로 하자.”
“…….”
“사실 당신이 눈에 밟히더라. 그래서 당신이 죽으러 간다고 하니까 일단 말리고 싶었어.”
그렇게 말한 그녀가 휘적휘적 걸어 내게 다가왔다.
“나…… 아무래도 당신을…….”
“그만! 이게 발랑 까져가지고 뭐 하는 짓이야!”
“이건 또 싫은가 봐?”
장난스레 웃어 보인 그녀가 사뿐사뿐 걸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 오빠가 숨기고 싶으면 그렇게 해. 다만 오빠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까 나는 행복하네.”
애초에 처음부터 윤회를 했고. 잘 살고 있었구나.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말려도 갈 거잖아?”
“가야지.”
“오빠라는 거 눈치챈 건 좀 됐어.”
가족의 눈썰미를 너무 쉽게 봤던 모양일까.
“뭐. 오빠가 예전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솔직히 좀 반신반의했었는데. 사람이 쉽게 변해?”
그녀가 쿡쿡 웃었다.
“데이비라는 인간과 신현수가 똑같은데 말이야. 생각해보면 웃기지? 오빠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부터 변한 게 없는데…… 난 그것도 못 알아보고…….”
“그걸 알아보는 게 더 신기하네. 이년아.”
결국, 숨기는게 의미가 사라져버렸다. 저렇게 확신하는데 내가 아니라고 잡아뗀들 그녀가 과연 납득이나 하겠는가.
“거봐. 맞잖아?”
“농약 같은 년.”
“칭찬으로 생각할게. 오빠가 잘 살고 있는걸 알았으니 됐어. 더 이상 캐묻진 않을게. 꼭 가야 한다면 그것도 말릴 자격이 어딨겠어. 새언니 꼭 데리고 돌아와.”
새언니라…….
나는 결국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게 작별을 고하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막 지금 보내면 다시는 못 볼 거 같은 데 말이야…… 몸 조심히 다녀와야 해.”
그 물음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르륵 날아올랐다.
괜히 이곳으로 날아왔다가 마음만 싱숭생숭해진 기분이었다.
결국, 숨기고자해도 그녀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착잡해진 기분심정을 애써 억누른 채 페르세르크가 봉인된 숲으로 돌아온 나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움직임으로 베르단데의 앞에 내려섰다.
“적응은?”
“충분해.”
“명심해야 해. 그곳은 네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어둡고 무거워. 보통 정신으론 견디지 못할 거야.”
“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고.”
“…… 시작할게.”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전신에서 심연의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잠들어있던 페르세르크가 심연의 힘에 반응하여 눈을 부릅뜨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아아!! 아아아!”
악을 쓰며 내가 묶어둔 주술의 사슬을 풀기위해 발악을 하지만 주술의 사슬에 이어 베르단데의 결계들이 그녀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그녀의 심연의 힘과 베르단데의 심연의 힘이 뒤섞였을 때. 마치 우주의 웜홀 같은 현상이 허공으로 일어나며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저곳이다. 저곳 안은 심연이고, 그곳에 페르세르크가 있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잠시 멈춘 것은 어째서일까.
천천히 고개를 돌린 나는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륀느를 향해 두 자루의 검을 검집에 넣은 채 건넸다.
바로 청단이와 홍단이었다.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
“네가 날 죽여.”
“륀느. 소유자를 죽이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보고.”
“명령이다. 륀느.”
“…… 명령…… 인수.”
내 이성이 사라졌다면 까다롭긴 하겠지만……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폭주해 날뛰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의 결계와 내 결계가 있지 않던가.
아주 잠깐의 틈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끝없는 심연 속으로 몸을 던졌다.
검은 어둠이 주변을 감싸며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검은 공간이 나를 반기기 시작했다.
끝없는 어둠 속의 바다.
사령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끔찍한 어둠 속에서 나는 그저 페르세르크가 내뿜을 아주 작은 파장을 찾아 헤매려 했다.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존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휘이이이잉!!!
싸늘한 바람이 몰아친다.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고독감과 공포가 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웁?!”
소리가 사라지고 후각도 사라진다.
감각을 모조리 차단당한 박탈감은 상상 이상이었고 나를 감싸는 이 미칠듯한 어둠 속의 공포는 점차 나를 좀먹어갔다.
어디서 무엇이 나올지 모를 이 끔찍한 공포는 심해공포증 같은 것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번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스스슥…….
그리고.
떨리는 몸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고개를 든 내 앞에 거대한 기척이 느껴졌다.
후각도 청각도 사라졌는데.
마치 내 앞에 무언가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두려운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나를 불러들이는 듯한 무언가를 쫓아 계속해서 움직였다.
성공확률이 극도로 희박해?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미치지 않을 확률도 희박해?
웃기지 마라.
나는 죽지 않는다.
영웅들에게 배울 때 내가 가장 먼저 받은 정신개조는.
나를 믿고 끝없이 스스로 개척하며 발전하는 것.
내게 망설임 따위는 예전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통념일 뿐이다.
“기다려…… 페르세르크. 내가 반드시 찾아낼 테니.”
* * *
어둠 속에 내팽개쳐진 나는 걷고 또 걸었다.
한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불안함과 공포가 전신을 엄습해온다.
페르세르크를 찾겠다 말했지만, 이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때.
또 다시 빌어먹을 타나토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만나고 싶은가. 그녀를.]
“…….”
그 의지를 못 들은 척 무시하지만, 타나토스는 집요했다,
[부질없는 저항을 하면서까지 만나고 싶은가.]
“…….”
거부하기 힘든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지만 애써 무시한다.
몸이 파르르 떨리며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지만 벌써부터 뒤틀리면 페르세르크를 찾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하면, 만나게 해주지.]
그리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는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타나토스의 잔인한 목소리가 닿았다.
“페…… 르?”
방금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공간.
거대한 절벽의 코앞에 선 내가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과 함께 멈춰선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던 공간은 이질적인 빛으로 주변의 일부가 밝아졌다.
시야가 돌아오고 청각이 돌아온다.
또한, 후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저기 있다. 만나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어둠의 절벽 끝에 선 나는 반대편의 벽에 옅은 빛이 모여든다.
마치 끝도 없는 끔찍한 터널 반대편에서 빛을 본 것 같은 안도감에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하지만 타나토스의 놀리는 듯한 목소리는 점차 어두워졌다.
[그녀는 처참하게 죽었다. 비명을 내며 직접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냈노라. 눈을 파내고 이를 뽑았으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뽑아냈느니라]
마치 현실인 것마냥. 나를 향해 계속해서 그가 속삭인다.
타나토스의 조롱에 나는 주먹이 부서질 듯 강하게 쥐면서도 표정을 애써 침착하게 유지했다.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쉰다.
[두려워해라. 더욱 절망하고, 괴로워해라. 끝도 없는 어둠 속에서 불안해하는 것이 나의 힘이 될지니. 절망의 보옥이 계속해서 내게 힘을 주리라.]
타나토스의 정신압박이 점차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타나토스의 정신 침식이 서서히 정신을 감싸기 시작한다. 그리고. 환각이라도 보듯 내가 보던 거대한 절벽의 너머로 십자가에 매달린 소녀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타나토스의 말대로 끔찍한 몰골을 한 채 죽어있는 페르세르크였다.
그의 말에 따라 환각을 본다.
그리고. 지금 나를 침식하는 이 미친 어둠이 그것을 진짜처럼, 여기게 만든다.
몸이 떨리고 정신이 피폐해져만 갔다.
“웁…….”
절로 한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아 보지만 헛구역질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다음은 네 차례다. 이곳에 온 이상 네놈은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니. 영원히 네놈을 고문할 것이다. 네놈 비틀고 뽑을 것이다. 눈을 질러 뽑을 것이고 혀를 달군 인두로 지지고 뽑아낼 것이다.]
마치 진짜로 내가 당하는 것 같은 환각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어둠 속으로.
나는 점차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알지 못했지만, 이 변화가 계속되며 결계로 묶여있던 내 육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