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0화
[그…… 그만!! 말을 듣겠다. 제발 그만!]
“아직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예전의 내가 아닌데 어딜 까불고 있나.
“데이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외침에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자 저 멀리 작은 일리나가 내게 소리치는 게 보였다.
그그그그극!!
순식간에 육신을 붕괴시키며 내려서자 그녀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좀 바쁜데, 무슨 일이야. 살리반 황태자에게 이상한 소리라도 들었나?”
“데이비, 동부 대륙 최남단에 도시국가들이 많은 거 알고 있지?”
“그렇지. 내가 알기로 5개국으로 알고 있는데.”
“좀 전에 그곳에서 제국에 다급한 지원요청을 한 모양인데.”
전쟁 급 스케일은 아니지만, 분쟁이 많은 지역이다. 실제로 수많은 내전이 벌어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거기가 왜.
내 물음에 그녀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일단 따라와 봐. 일이 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그렇게 말한 그녀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내 생각 이상으로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나는 골골대는 샨드라미네아를 다시금 카드에 봉인시킨 뒤 회수했다.
녀석은 메가로드리아와 다르게 아직 완전히 계약이 된 게 아니니까.
이윽고 그녀와 함께 영지로 돌아왔을 때. 에이미는 미리 준비해두었다는 듯 굳은 얼굴로 내게 수정구를 내밀었다.
“그곳에 있던 6서클 적탑 마법사가 목숨을 걸고 전송해온 물건이에요. 본인은 휘말렸는지 구슬과 팔만 전해져왔으니까요.”
“그걸 왜 내게 보냈는데?”
비록 동맹국인 건 사실이지만 해양국가 발카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나와 접점도 없는…….
“해양국가, 발카스를…… 기억하세요?”
에이미의 말에 내 표정이 굳었다.
해양국가라…… 분명 작은 도시국가였다.
초대리치 닉스를 토벌할 때 들렸던 곳이기도 했다.
“3시간 만에 도시국가가 모조리 죽음의 땅이 됐어요. 이걸 보시면…….”
에이미가 작동한 수정구슬이 활성화된다. 화질이 더럽긴 하지만 제법 실력이 좋은 마법사였는지 필요한 건 모두 담은 후였다.
쿠웅!! 쿵!!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도시에 내려선 흑빛의 비늘을 지닌 거대한 용이 브레스를 모은다.
쩌엉!!!
그리고, 그 브레스가 방출됨과 동시에 도시의 일부가 마치 초고열 광선에 완전히 지워진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세상에…….”
끔찍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심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흑룡의 발아래에서 마치 검은 늪지대 같은 것이 생겨났고, 거기에 닿은 인간들이 끔찍한 두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며 늪지대에 집어 삼켜졌다.
그렇게 완전히 먹어치워 진 인간들은 전신이 마치 검은 타르에 집어 삼켜진 괴물처럼 변하며 서서히 기어 나온다.
-날…… 죽여…… 줘…….
끔찍한 몰골로 변해버린 목소리는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살려달라 빌던 이들이 죽여달라고 한다. 시공간이 뒤틀린 저 빌어먹을 늪지대 속에서 얼마나 뒤틀렸는지 모를 수가 없다.
“오염지대…….”
“그리고…….”
“도시국가 다섯 곳이 모조리 소멸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6시간도 채 되지 않아요. 대륙을 좀먹듯이 밀고 올라오고 있으니까요.”
죽어가면서까지 내게 남긴 필사적인 지원요청.
내가 집중하는 건 죽어도 죽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이 아니었다.
도시를 죽음의 땅으로 만든, 이클립스.
아니. 정확히는 이클립스를 완벽하게 잡아먹은 타나토스였다.
[나를 보고 있구나. 이곳으로 와라. 널 반드시 직접 나락 끝으로 인도하리라.]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 신의 언어.
그 언어가 내게 닿는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게 주제 파악 못 하고 쳐 나대?”
“응?”
“저…… 저하?”
거친 내 언변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짓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영상에 집중해있다.
애초에 무엇이 되었건 상관없었다.
내 결정은 정해져 있으니.
“라운 왕국은 이 일에서 손을 떼고 방어에 전념한다.”
“데이비?!”
“저하?”
놀란 듯 나를 보는 일리나와 에이리아. 그리고 에이미와는 별개로 페르세르크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초월의 종언.”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본녀를 막겠다면 그대도 못 가눈 거야. 알아들어?”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에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저게 뭐 같아 보여.”
“고대룡 이클립스…… 아니, 달라. 저거…… 타나토스구나.”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타나토스는 이클립스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있었다.
아마 이클립스의 육신에 불사와 권능을 몰아주고 자신은 간섭할 권한을 받은 것일 터.
파이널 퓨전도 아니고…….
“네 오라비에게 가서 전해. 쓸데없이 군대 모으지 말고, 싸그리 집에 처박혀서 기도나 하라고.”
인간이 모여서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명백한 후자였다.
리셋이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타나토스와의 싸움은 피할 길이 없다. 아직 타나토스와 싸우기엔 부족한 힘이라 할지라도.
지금처럼 티오니스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게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존재했다.
“륀느, 골고다 영감님께 아다만티움이나 오리하르콘 남는 게 있는지 좀 알아봐 줘.”
괜히 정령왕으로 결계 친 게 아니란 말이다.
아비트의 드래곤 하트를 청단이와 홍단이에게 완전히 집중시킨다.
당장은 초단이로도 크게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지만, 아비트의 드래곤 하트가 완전히 녹아든다면, 그땐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준비되는데 얼마나 걸려?”
“글쎄.”
일리나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빠르게 승산을 점쳤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선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만족해야 한다.
어느 조건이건 절대보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클립스의 마나는 몰라도 타나토스의 심연의 힘을 먹어치우고 사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에 가까우니 말이다.
“짧게는 나흘.”
그 시간이면 사실상 동대륙이 궤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속도.
하지만 그것도 최저선이었다.
“최대로는……?”
불안한 어조로 일리나가 물어왔다.
“몇 달. 사실상 대륙 멸절이야. 그러니까 동대륙 전부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일주일 안에 준비를 마쳐야 해.”
가장 걸리는 부분은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헤라클래스는 내게 타나토스를 이길 방법으로써 내가 신격을 얻는 쪽을 추천했지만 정작 내가 신격을 얻을 방법은 절대보옥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가능한 모든 수단을, 아직 회랑의 공간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타나토스가 튀어나왔다면 이쪽도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내 말에 일리나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차라리 시간을 땡겨낼 수 있던 그 회랑과 흡사한 공간이 있었다면…….
“저…….”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에이리아가 갑자기 나를 부른다.
“데이비님. 이건 뭔가요?”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허공이 깨진 균열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 안에서 무언가의 힘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고. 이내 균열이 순식간에 확장하듯 나와 일리나, 페르세르크, 거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에이리아와 륀느까지 모조리 집어 삼켜버렸다.
어지럼증이 머리를 덮쳐온다.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는 걸 거부한다.
마치 호랑이 앞에 내던져진 토끼같이.
“데이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린다.
“내가 x을 x대로 놀리면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온몸에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데이비?”
나를 향해 빙그레 웃지만, 그 미소가 사납기 그지없다.
“내가 헛것을 보나…….”
“헛것은 얼어 죽을 잡채 같은 놈이, 오밤중에 몽유병으로 깨서 스텝 밟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찰진 욕설은 분명 그녀가 맞다.
하지만 그녀가 왜 내 앞에 있는가.
아니, 애초에 당연한 일이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검신 하레스가 소멸하고 그가 분명 다음 이들이 나를 돕기 위해 움직일 거라 했다.
나 한 명을 위해 영웅들 대부분이 움직인 것이다.
모두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바쳐가면서.
내가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본다.
짙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우아한 의상이 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얼씨구? 꼴에 성흔까지 받았네? 이건 또 뭐야. 어디 개 잡신의 성흔까지 몸에 담은 거야. 내가 몸 소중하게 굴리라고 했어 안 했어. 어?”
“다…… 다프네.”
빠악!!!
“반말하지 마, 이 씹어먹을 잡놈아. 안 본 지 좀 됐더니 간땡이에 보…… 보…… 뭐야 그거!”
“보톡스.”
“그래! 보톡스 맞고 간이 팅팅 부었냐? 쥐꼬리만 한 천년 인생 살아놓고 벌써 앞이 막혀서 가늠이 안 돼? 모기 x끼들이 네 눈을 쪽 빨아서 앞도 안 보이나 보다?”
뭔가 반응을 해야 하는데. 정신이 점점 흐려진다.
벌써부터 토기가 올라올 정도로 거친 언사 때문이 아니다. 막대한 사령 마나가 나를 강제로 재우고 있다.
“데…… 데이비!”
다급한 일리나의 외침.
“거 물러나 있어 보그라. 아따야. 이놈 자슥 아주 물건을 만들어놨네. 이건 내가 좀 손 봐야것구만.”
내가 가지고 있던 청단이와 홍단이를 누군가가 집어 들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보려 하지만 사령 마나가 끝도 없이 나를 잠식한다.
포식…… 포식의 특성을…….
포식의 특성을 이용해 먹어치우지만 먹어치워 상쇄시키는 양보다 나를 잠식하는 양이 더 많다.
“얼씨구? 이 새끼 웃는데? 네 몸을 아주 십자가에 꿰어다가 하늘로 날려 보내가지고 핏방울로 무지개라도 짜야 정신을 차리지 그냥? 벌써 신격을 얻어야 할 놈이 아직도 반신이야.”
시야에 비치지 않지만 아무래도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은 검신 하레스와 무왕 유르그가 나를 불러 수련을 시켰던 장소였던 모양이다.
검신 하레스는 일리나에게 빙의해있었기에 나와 접촉하고 따로 균열을 만들어 들어갈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마치 공간 자체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나를 집어삼켰다.
직접적으로 나를 간섭할 수 있다는 말인즉슨.
누군가가 자신의 영혼을 소멸시켜 강제로 간섭했다.
누구야. 누가 또 사라진 건가.
“아하하하!! 시체네 시체! 살아있는 시체! 사람 장기라는 게 참 비싼데, 이제 그냥 저금통이라 불러야 하나?”
“다프네, 선 넘지 마.”
“좀 닥쳐봐!!”
낄낄거리다가 갑작스레 분노를 터뜨리는 다프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분노가 차 있었다.
“빌어먹을 개 잡신 같은 타나토스 x끼가 겁 대가…….”
의식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신격 각성, 시작할게요.”
부드러우면서도 그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며 내 정신은 마치 새로운 공간에 온 것처럼 내던져졌다.
그곳에서 나는 거대한 우주에 내던져진 것 같은 공허함과 방대함을 느끼며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사령 마나에 짓눌려 의식이 날아가기 직전에 신격 각성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생명체와 창조주의 경계선.
대체 뭘 어찌하라고. 그렇게 생각했건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퉁…….
눈앞에 거대한 공간의 저편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치 초신성이 폭발하듯 거대한 버섯구름 같은 것이 양쪽으로 퍼져나갔고, 이내 인지도 못 할 속도로 어마어마한 색색들이 구름이 파장이 되어 나를 휘감았다.
[여신께서 이르기를]
[빛이 있으라.]
뭔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