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5화
“뭐하나. 이제 니 자슥들이다. 확실하게 마무리 지라.”
“예.”
더 이상의 말은 오가지 않았다.
수르트와 나는 아무 말 없이 해야 할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불에 달궈진 홍단이의 검신을 놓고 다시 접었다가 펴며 두드리기 시작했다.
금속 자체에 자아와 권능, 그리고 오랜 시간 모여든 힘이 아직 모여있다.
같은 합금이라도 지금 내가 두드리는 건 규칙을 벗어난 권능을 발현하는 마검이다.
그리고, 자아를 가지고 나를 아빠라 불러주던 아이들이다.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
후끈거리는 열기로 인해 땀이 비 오듯 쏟아지지만 나는 망치를 강하게 틀어쥐고 내리쳤다.
타앙!!
청명한 소리와 함께 무형의 파장이 퍼져나간다.
수르트는 내가 망치를 두드릴 수 있도록 집게를 쥐고 빠르게 위치를 고정시켜주었고 나는 마치 홀린 것처럼 붉게 달아오른 두 자루의 검을 두드렸다.
그렇게. 내가 작업실에 들어간 지. 약 보름이 흘렀다.
* * *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작업실 전체를 녹일 듯 뜨겁게 몰아치던 열풍은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붉은 빛과 푸른 빛을 번뜩이는 두 자루의 검이 밤하늘의 강렬한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작업이 끝나고 수르트는 말없이 잠들었다.
그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보조할 뿐 어떤 조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나와 맞게 움직였고, 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망치를 두드리고 작업을 이행했다.
두 자루의 검이 내 손을 떠나 서서히 떠오른다.
[이기어검술]
[천상무희]
그리고 내 손끝을 따라 마치 춤을 추듯 하늘을 꿰뚫으며 날아올랐다.
물리법칙을 베는 것과 비 물리법칙을 베는 것과는 별개로 두 자루의 검은 아비트의 절대보옥이 스며들어 완전히 새로운 힘도 품고 있었다.
고대룡의 마나, 시간의 힘.
효과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아비트가 시간을 다루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홍단이 청단이도 비슷한 힘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참을 유영하던 두 자루의 검을 천천히 끌어내린다.
그리고는 두 아이의 자아를 완전히 깨워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두 자루의 청적색 환도가 빛으로 화하며 두 명의 아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외향은 변함없지만. 홍단이와 청단이가 뿜어내는 힘은 가히 칼디라스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칼디라스가 수르트의 인생을 바쳐 만든 무기라면 이것은 수르트의 수천 년을 지나 내 손에까지 도달했으니까.
게다가 그 재료로써 무려 고대룡, 아비트의 드래곤 하트가 들어갔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빛에 휩싸여 나타난 원피스를 입은 두 아이가 천천히 눈을 뜬다.
그리고는 예쁘고 앙증맞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게 달려드는 두 아이들을 버텨낼 힘도 남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아버리자 녀석들은 오랜만에 나와 만난 게 그리 기쁜지 마구잡이로 머리를 가슴팍에 비벼댔다.
“아빠! 아빠! 홍단이 막! 막! 신기한 꿈 꿨어!”
“청단이도 꿈꿨어요!”
어린아이처럼 발음이 뭉개지던 예전과 다르게 아직 아이 특유의 순진무구함은 남아있지만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두 아이가 내뿜는 막대한 고대룡의 힘이 느껴진다. 권능의 여파가 더 강해진 것이다.
당장 청단이와 홍단이의 힘은 검을 처음 잡는 이가 잡아도 소드마스터 이상급의 실력을 끌어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말없이 두 아이를 끌어안고 조용히 침묵했다.
목숨을 걸고 싸우진 않았지만 당장 목숨이 걸린 것처럼 망치질 한 번에 혼을 담았다.
당연히 진이 빠질 수밖에.
청단이 홍단이도 완성되었고, 신격도 이제는 완벽해졌다.
타나토스가 어떤 대비를 해오건 이제 내게 남은 건 놈을 끝장내는 것뿐이리라.
“데이비 님.”
이윽고 내 뒤로 다가온 륀느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이에 내가 말없이 그녀를 보자 그녀의 눈이 푸르게 빛난다.
“륀느…… 가 아니구나.”
한때 륀느에게 강신한 적이 있던 존재.
프리아 여신이 나를 찾아왔다.
“우웅? 륀느으?”
홍단이는 륀느를 보자마자 달려들 것처럼 환하게 웃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능적으로 륀느이되 륀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의아한 듯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리는 두 아이를 바라보던 프리아 여신은 륀느의 몸을 빌려 조용히 두 아이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스며든다.
신의 기적.
저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힘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른 부류의 축복이 아닐까 싶었다.
“아빠. 홍단이 머리가 이상해!”
“이상해!”
두 아이의 질문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말없이 양손을 모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위로 새하얀 깃털이 떨어져 내린다.
“이건…….”
당연하게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깃털을 가지런히 모은 손 위에 올려 내게 건네듯 내밀었다.
마치 가져가라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 동안 그녀를 직시하던 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다시 깃털을 권하듯 손을 내민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 신의 의지가 전해져 온다.
[닿지 못할 시련, 바꿀 수 없는 흐름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그녀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그딴 건 없다는 겁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할 겁니다.”
[거래자의 선택에 축복을.]
역시, 눈치챘구나.
내가 뭘 하려는 건지.
그녀는 말없이 내게 깃털을 다시 권했고, 나는 조용히 그녀가 내민 깃털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깃털이 살아있는 것처럼 내 가슴에 스며든다.
이걸 전해주기 위해 직접 강림한 것일까. 아니면 애먼 짓 하지 말라고 경고를 에둘러 표현한 것일까.
그녀의 대리자이며 거래자이나 그녀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단순히 보기엔 네 선택을 존중한다 말하는 것 같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순 없었다.
이윽고 목적을 다 한 듯 프리아 여신은 조용히 내게서 한발 두발 물러났고. 이내 눈을 감으며 서서히 신력이 되어 흩어졌다.
프리아 여신이 사라지고 지지할 힘을 잃어버린 륀느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두통이 오는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끙끙거렸다.
“으윽…… 륀느 사고회로 재부팅…… 이것을 지독한 숙취라 판단.”
“요즘 골렘은 술에도 취하나?”
륀느가 아무리 생체 골렘이라지만 알코올까지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쓴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방금 내게 건넨 깃털은 마냥 막대한 힘을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특이한 느낌을 풍겼다.
그녀는 대체 어디까지 알아내고 내게 정체 모를 깃털을 건넨 것일까.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데이비 님. 륀느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구.”
“내가 아나.”
“륀느, 납치는 나쁜 것이라 분석. 이것을 낮게 평가.”
“네가 온 거야.”
“륀느의 사고 회로, 이곳으로 발걸음 한 적이 없다고 분석해.”
“그러니까 네가 온 거라고.”
“데이비님 륀느의 소유자. 거짓말은 나쁘다고 판…… 윽!”
결국, 녀석의 머리를 콱 잡아 누르자 녀석이 옅은 신음을 흘렸다.
“뭐야, 그 할머니는 왜 여기 있어.”
륀느의 연식이 만년도 더 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다프네의 악의 없는 물음에 륀느가 무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륀느, 개체연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 정신 연식이 1년 남짓. 따라서 노인 다프네에 비해 매우 파릇파릇하다고 분석해.”
“하여튼 저 주둥아리는 한 번도 지질 않아요…….”
이미 몇 차례 이곳에 와서 다프네와 투덕거렸던 모양이었다.
“너 당장 해부하려고 드는 이바에게서 내가 널 구해준 사실을 잊었냐? 으이?”
“륀느, 쓸데없는 참견을 매우 낮게 평가.”
이미 골이 상해버린 륀느는 무표정이지만 확실히 삐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 이바 그 양반에게 물어볼 것도 있었는데.
유르기안 대륙의 그 꼬맹이. 이바노프가 정확히 어떤 녀석인지.
한참을 투덕거리던 륀느와 다프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물러났다.
그리고, 머쓱해진 다프네가 내게 물어온다.
“완성됐나 보네?”
“예.”
“아빠, 아빠! 예쁜 언니가 왔어!”
“예쁜 언니!”
다프네를 보며 팔짝팔짝 뛰는 두 아이를 보며 그녀가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렸다.
“꼬맹이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무슨 일입니까? 훈련은 없다고 하더니.”
“훈련은 끝났어. 우린 이제 더 가르칠 것도 없고. 이 이상은 우리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네가 개척하는 거야.”
과거 영웅들이 다다랐던 벽.
어느새 나는 그 벽에 도달해있었다.
“언니언니! 홍단이에요!”
“처…… 청단이라고 해요…….”
홍단이와 청단이가 다프네에게 매달려 귀여움을 어필하자 입을 씰룩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가 두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행복해하는 두 아이를 보며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아이는 참 부럽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홍단이 청단이라고 했던가?”
“네!! 홍단이에요오!”
“처…… 청단이라고 해요!”
“예, 예쁜 이름이네…….”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나를 본다.
아 나 저거 알아.
작명 센스가 왜 그따위냐는 시선이다.
아니, 청단이 홍단이가 뭐가 어때서? 내 생애 최고의 작명일 텐데?
뭐가 문젠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 멍청한 놈에게 뭘 바라겠냐…… 따라와, 독고준의 열반주가 좀 남았거든. 이제 회랑에 남은 모든 놈이 널 동등한 영웅으로 대우할 거야.”
제자가 아닌 동등한 위치의 영웅으로서.
수르트는 먼저 그리했지만 이제 다른 영웅들도 선택을 내린다.
“좀 섭섭하네요.”
“언제까지 밑에 있을 건 아니잖아? 그리고 네 부인인 페르세르크, 그 아이의 요청도 있고.”
“요청?”
“이곳에서, 하레스의 후손과 그 수인 아가씨와 혼인식을 올려. 너 이런 기회 잘 없다? 꼴에 영웅이라는 작자들이 전부 혼의 축복을 걸어줄 거야.”
영웅들이 말하는 축복은 단순한 축복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페르가…… 그걸 요청했단 말입니까?”
“앞으로 티오니스는 전쟁터가 될 테니까. 그리고, 네가 페르세르크 그 아이에게만 집중해서 두 아이가 소외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겠지.”
쓸데없는 걱정은.
다만, 이제부터 전쟁터가 될 티오니스보다는 내 대부, 대모나 다름없는 영웅들의 축복을 받으며 식을 올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아공간에서 두 개의 반지를 꺼낸 내가 조용히 그것을 바라봤다.
“뱀파이어? 너 모기 새끼랑도 알고 지낸 거냐?”
“마법학교 제자 중에 로드가 하나 있었어요. 인간처럼 살아와서 솔직히 영 시원찮긴 하다만.”
“뱀파이어 로드라니…… 대체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뭐 별건 없었어요.”
“평범은 x병 평범이 다 얼어 뒤졌나 그래,”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나간다.
홍단이와 청단이가 내게 다가오자 두 아이를 안아 든 나는 문득 쓸쓸해 보이는 다프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데 미묘하게 침울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침울하게 만든 것일까.
“오랜만에 재회했는데. 시간 참 빨리 가네.”
그 말에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왜 이리 침울해 보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사람들도, 나와 다를 게 없구나.
그러면서도 나를 위해 희생하는구나.
연이 닿았고, 연이 쌓였고, 정이 되어 한 명의 구성원이자 가족이 되었다.
그런 이를 떠나보내는 게 쉬울 리가 있나.
나는 마치 홀린 것처럼 그녀를 향해 말했다.
“나는 베드 엔딩 별로 안 좋아합니다.”
“미친놈이 굿거리장단으로 머리를 후려치기라도 했냐? 뭔 헛소리야.”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거 새침거리긴.”
“이 개 x놈이?”
표정을 찡그리는 그녀를 향해 다가가며 내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프리아 여신은 알고 있을까.
아니 우스운 질문이다. 다른 영웅들 모두가 몰라도 그녀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애초에 그렇기에 나를 찾아온 게 아닐까.
내가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 건지를 말이다.
“다프네.”
“뭐.”
“절대 죽지 마세요.”
당신들이 각자의 이유로 영웅이 되었다면, 나는 당신들의 영웅이 되겠습니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프네의 거처인 성녀의 안식처의 회랑 중앙에서 수많은 빛들이 마치 축복하듯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훈련을 핑계로 아직 만나지 못했던 다른 이들 모두가 보인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향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 사이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다가온다.
“꼭 이런 사고 치더라. 넌 나를 너무 못 믿어.”
“그대는 아직 어리니까.”
키득거리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반격하듯 입을 열었다.
“그렇죠, 천년 밖에 못살아온 나는 삼천…… 컥!”
말없이 주먹으로 내 복부를 후려갈긴 그녀가 화사하게 웃고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
박력 넘치게 나를 몰아붙이고 입을 맞춘 그녀는 이내 천천히 떨어지며 색기 가득한 얼굴로 혀를 이용해 입술을 핥았다.
“주둥이를 꿰매버릴 수도 없으니 틀어막아야지.”
그 한마디에 몇몇 영웅들이 낄낄거리며 나를 비웃는다.
“저 멍청한 놈 꽉 잡혀 사는구나.”
“낄낄. 내가 말했지? 쟤는 분명 저럴 거라니까.”
당신네들, 내가 얼굴 봐놨다.
회랑에서의 얼마 남지 않은 며칠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