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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16화 (815/1,559)

제 816화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을 볶아먹는 속도가 이러할까.

“륀느, 넌 계속 여기 있었으니까 언제부터 이걸 준비한 건지 알겠네.”

“륀느, 무거운 입을 높게 평가.”

자랑스레 빈약한 가슴을 펴며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무표정인데 상당히 만족한듯한 모습이다.

“그래. 언젠가 할 일이긴 했다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곰곰이 생각하며 눈을 내리깔고 침묵하고 있자 륀느가 다가와 내 가슴팍에 새하얀 꽃을 달아주었다.

“가자.”

고민해서 무엇할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회랑의 그들이 모두 보고 싶어 한다면, 망설일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가자.”

내 대답에 륀느는 뭔지 모를 상자들을 주섬주섬 주워들고는 나를 따라 쪼르르 날아올랐다.

결혼식을 위해 준비된 성녀의 안식처는 처음과 같이 다수의 영웅들이 난간에 걸쳐서 기다리고 있었다.

페르세르크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두 사람을 도와주고 있으리라.

이윽고 주례석에 서 있던 다프네가 내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왔으면 빨리 와서 서 인마.”

“거 성질도 급하긴.”

툴툴거리면서도 그녀는 맞은편에 선 나를 직시하다 피식 웃어버렸다.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굳이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내 대답에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도 너 진짜 눈이 높긴 높구나? 이미 부인이 있으면서, 참 고운 아가씨들과 연을 맺었어.”

“의도한 건 아닙니다.”

“근데 말이다. 그 수인족 아가씨는 알 거 같더라.”

“뭐요?”

“로 아이아스와 닮았던데.”

그 청초한 분위기가.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쯧쯧 미련한 X끼.”

그녀의 말은 나름대로 정곡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이윽고 성녀의 안식처 회랑으로 두 명의 소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

멍하니 그녀들을 바라보자 시선을 내리깐 채 두 명의 소녀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상황이 이러니까. 동시에 식을 올리는 건 이해해 줬으면 해.”

다프네가 귀찮다는 태도를 보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때? 너무 고와서 입이 안 떨어져?”

다프네가 나를 놀리듯 키득거려왔다.

“그러네요.”

“어?”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수긍해버리자 외려 벙쪄 버린 그녀가 떨떠름하게 물러났다.

“의상은 뮤트가 만들어준 거야.”

뮤트, 내게 음유시인으로써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영웅.

고개를 돌려보자 한쪽에 고이 앉은 작은 체격의 요정이 보였다.

로 아이아스와 동일한 페스리사 대륙 출신의 님프족이며 내게 다른 건 몰라도 노래만큼은 하지 말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던 요정.

그녀가 조용히 손을 흔들어준다.

“데이비.”

“아…… 음.”

“나…… 어때?”

조금 불안한 얼굴로 새하얀 드레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일리나였다.

부끄러운 것일까.

긴장하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건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

“괜찮네.”

“…….”

“예쁘다. 엄청.”

내 대답에 대뜸 표정을 찌푸린 그녀는 곧 이어지는 내 말에 쿡 하고 웃어 보였다.

이후 면사를 뒤집어쓰고 있던 에이리아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녀는 일리나와 조금 다른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는 일리나와 다르게 아름답다기보다는 몽환적이며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에이리아도.”

“데…… 데이비 오라버니도 정말 멋지세요.”

저 뒤편에서 페르세르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게 보였다.

“자자. 됐고. 시작하자.”

이후 다프네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온다.

이명 뮤트, 혹은 뮤즈. 님프족인 그녀가 자신의 고유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하며 두 사람과의 식이 천천히 거행되기 시작했다.

* * *

결혼식 자체는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중간중간에 짓궂은 다프네의 장난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런 행동으로 인해 분위기가 좀 더 밝아진 것도 사실이기에 굳이 그녀에게 무언가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나는 요시아 프랑소스의 힘을 빌려 만든 반지를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고, 에이리아와 일리나는 각기 준비해온 반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본래 측실은 혼약의 반지를 교환하지 않지만 나는 세 사람을 동등하게 대할 작정이었기에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물론 한 손가락에 모두 낄 순 없지만 말이다.

“축하해 데이비.”

다프네가 환하게 웃으며 뒤꿈치를 들고 내 머리에 손을 뻗어 헝클어뜨린다.

“행복해야 해.”

“다프네.”

“우린 망령이지만. 넌 산 사람이잖아요?”

연주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뮤트가 독특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페르세르크를 부른 뒤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에이리아와 일리나, 그리고 페르세르크 세 명에게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축복은 별거 없어, 애초에 음악으로 주는 축복이라고 해봐야 단기적인 것이니까.

그러니까.

페스리사 대륙의 마지막 님프로서.

“요정의 축복을 넘겨줄게.”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의 이마에 입을 천천히 맞춰준다.

따스한 힘이 그녀들에게 스며드는 것을 보며 내가 물었다.

“난 왜 안 해줍니까?”

“싸그리 털어간 주제에 뭘 더 받아가려고. 넌 어림도 없어요.”

역시 존대와 하대가 뒤섞인 기묘한 말투다.

“그나저나 아직도 그 지옥의 세레나데는 여전한가요?”

“그 정도까진 아닌데요.”

평범한 수준의 노래 정도는 할 수 있다.

“내 눈엔 음치 박치 고성방가나 네 노랫소리나 별 다른 게 없는데요.”

“하여튼 성격 비틀린 거 하곤…….”

혀를 차며 투덜거려 보지만 뮤트는 깔끔하게 그런 내 투정을 무시해버렸다.

요정의 축복을 받은 세 사람은 몸에 깃드는 따스한 기운이 신기한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번엔 내 차례네.”

이윽고 다프네가 다가와 에이리아의 손목을 잡고 검지와 중지를 붙여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만물을 관장하시는 프리아 여신님. 우리 막내가 슬퍼하지 않게 축복하나 거하게 내놓으세요.”

그녀의 독특한 기도와 함께 새하얀 빛이 에이리아의 몸에 스며든다.

“잔병치레는 없을 거야.”

그리고 일리나의 손을 잡아 똑같이 신의 문양을 손가락으로 그리며 똑같은 축복을 가해준다.

마지막으로 이번 결혼식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내 부인으로서 나와 함께해온 페르세르크를 끌어안아 주며 그녀가 말했다.

“정말 넌 대단한 대인배가 틀림없어.”

“…….”

“네 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새하얀 빛이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언젠가, 네가 원하는 기적을 이룰 수 있기를.”

다프네의 축복 이후 실질적으로 축복을 해줄 수 있는 영웅들이 하나둘 축복을 내려준다.

그렇게 할 때마다 회랑의 중앙으로 옅은 빛 가루들이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아름다운 광경에 의문이 든 내가 고개를 돌리자 륀느가 뒤편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박스에 든 무언가를 흩뿌리는 게 보였다.

좀 전부터 꼭 끌어안고 있더니 특수효과 담당이었냐.

내 그런 시선에 륀느가 눈을 반짝였다.

“륀느, 특수 효과를 매우 높게 평가.”

네가 그러면 그렇지.

직접적인 축복을 내려줄 수 없는 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 사람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덕담과 함께 하나둘 물러난다.

황족의 혼인치고는 정말 조촐하지만. 그 어떤 혼인보다도 화려하고, 웅장한 결혼식이 그렇게 끝을 맺었다.

* * *

초야.

참 무거우면서도 긴장되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두 사람은 완전히 얼음이 돼 있는걸.”

신전의 뒤편에선 이미 대부분의 영웅들은 다프네의 주도 아래에 모여 파티를 벌이고 있다.

애초에 영웅의 회랑에서 늘 보던 장면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페르를 포함한 나머지 셋에겐 그 광경조차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나이를 드실 대로 드신 분들이 저렇게 경박하게 노래를 부르고 낄낄거리며 웃는 걸 보고 있으면 말이다.

물론, 그들도 결국은 사람이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인 듯 보이지만.

괜히 나를 위해서 회랑을 비워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참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찌할지는 정한 게야?”

“뭘?”

“합방.”

한 명도 아니고 둘과 동시에 결혼했으니, 초야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가.

그 애매하면서도 오묘한 상황에 나는 침묵했다.

초야를 치르는 건 부부로서의 서약을 마무리 짓는 의무라 할 수 있다.

“하…… 우리 초야 때 기억나?”

내 물음에 그녀는 옛날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키득거렸다.

“그래. 서로 바짝 얼어서 어쩔 줄 몰라 했었던 게지.”

페르세르크는 아닌 척하면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와인 뚜껑에 박힌 코르크 마개를 딸 생각도 안 하고 병의 모가지를 손날로 처 날려버리지 않았던가.

서로 와인을 들이키며 눈치만 살피다가 마치 처음 이성을 만난 것처럼 우물쭈물했고, 그 후에 분위기에 취하듯 서로를 탐했었다.

“그때와는 다르지. 그대가 긴장했다지만 처음은 아닌 게야.”

그녀가 내 뺨을 쓸어내렸다.

“그러니 두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고 황홀한 밤을 보내게 해주면 돼. 만약 본녀가 마음에 걸린다면 지금보다 더 본녀를 사랑해주면 되는 일이고.”

물론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것 이외에도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둘과 동시에 초야를 치르는 게 좀…….”

“본녀도 생각 못 한 일이긴 한데.”

당연히 한 명을 만나면 한 명은 소박을 맞게 된다.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그게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씁쓸한 일로 남을지 모른다는 게 페르세르크의 입장이었다.

웃기게도 일리나와 에이리아는 서로에게 초야를 양보하면서 자신이 뒤로 물러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 상황을 보다 못한 페르세르크가 던진 폭탄.

어차피 언젠가 다 얽히고설킬 텐데. 뭐하러 나누는 겐지.

그 한마디가 가져온 여파는 컸다.

그 말뜻을 이해한 에이리아와 일리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둥지둥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를 배려한다 착각이라도 했는지 거부하지 않았다.

내 의견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후궁 수십을 둔 국왕조차 한 침실에 둘을 동시에 들이는 경우는 잘 없다. 아니 존재하기야 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역사서에 나오는 의자왕도 아니고.

“없으면 그대가 만들어야지. 본녀가 했던 말 기억나? 세상의 편견을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그대와. 본녀, 그리고 에이리아와 일리나 네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하자고.”

남들이 어떻게 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 그렇게 한다라는 말로써.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와인잔을 내려다보다 한 모금 마셨다.

술은 끊는다 했는데 결국은 다시 마시게 된 꼴이다.

“너도 갈래?”

문득 장난스런 기분이 들어 그녀를 놀리듯 말하자 그녀가 키득거렸다.

“죽고 싶으면 계속 쫑알거려봐.”

“거 성질 하곤…….”

나름대로 긴장을 풀어주는 방법이었던 모양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본녀가 아니니까.”

입을 맞추며 그녀가 물러난다.

“하루 정도 양보하는 게 무에 어려울까.”

내 등을 떠미는 그녀였다.

“자. 우리 낭군, 힘내시게.”

그녀의 미소를 뒤로한 채 에이리아와 일리나가 기다리고 있는 침실로 향하던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괜찮은 건지. 이제 와서 복잡하게 생각해봐야 의미가 없다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복도를 걷던 도중 바깥을 보자 와인병을 이리저리 흔들며 홍단이와 청단이의 손을 피해내고 있는 륀느가 보였다.

“홍단이 마시고 싶어!”

“청단이도 궁금해!”

“수…… 술은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소라 판단! 륀느가 압수할 것을 높게 평가!”

“륀느 미워!”

“청단이 꺼야아아아!”

땡깡을 피우는 두 아이와 식은땀까지 흘리며 두 아이를 말리는 륀느의 모습이 퍽 우습다.

술맛이 궁금해 호기심이 폭발한 두 아이를 제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냥 이곳에서 평생 살면 어떨까.

비록 격리된 시간대의 공간을 지닌 곳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행복하면 그만인 것을.

여기선 나도 진실이고 페르세르크나 일리나, 에이리아 또한 진실이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의 침실 문고리를 잡아 천천히 열었다.

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조용히 문을 열자 촛불로 이리저리 분위기를 맞추며 허둥지둥거리던 두 사람의 시선이 나와 부딪혔다.

저 모습을 보니 페르세르크와 초야를 보낼 때 그녀가 당황해하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니들 무슨 공예품 만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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