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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17화 (816/1,559)

제 817화

고요한 방안. 상당히 어질러진 네글리제를 입은 채 뒤엉켜있는 에이리아와 일리나.

그 외에 정체 모를 물건들이 가득하고 촛불로 무엇을 만들고 있었는지 모를 형태가 방에 늘어져 있다.

“데…… 데이비?!”

“으…… 꺅!”

비명을 지르는 에이리아와 화들짝 놀라며 물러나는 일리나의 행동은 그야말로 바짝 긴장한 신입을 보는 기분이 든다.

하던 것도 팽개친 채 다소곳이 앉아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대체 이것들은 뭐야?”

“그…… 그게……”

구속장치는 우습고…… 세상에 이건 뭐야 드릴?

“너희 무슨 사람 하나 담가버릴 생각이냐?”

파랗게 질린 얼굴로 묻자 일리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제 뺨을 긁적였다.

“여…… 영웅들이 주고 간 거야.”

“이 양반들이 진짜…….”

설마 취향이 독특한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가운을 입은 채 근처의 의자에 앉자 일리나와 에이리아가 홍시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제 무릎을 모은 채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바짝 얼어붙은 모습을 보니…….

괜히 괴롭히고 싶다.

“이건 쓸 수 있겠네.”

나는 가죽으로 된 구속장치를 들고 히죽거렸다.

“끅!”

그러자 에이리아가 당황한 듯 크게 딸꾹질을 했다.

“저…… 정말로요?”

“거짓말이야.”

괴롭히는 맛이 좋다곤 하지만 분위기도 봐가면서 괴롭히는 것이다.

“둘 다 괜찮아?”

“응?”

“지금 상황.”

자리에 앉아 내가 담담하게 묻자 일리나가 에이리아를 흘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오늘 너와 초야를 치르는 건 내가 아니라 에이리아의 몫이니까.”

“저…… 전 괜찮아요. 언니!”

“그래도…….”

“페르 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는걸요. 절대로 서로 간에 서열을 두지 말라고.”

그녀가 강조한 것은 서로를 향한 배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 그런데 데이비.”

“응?”

“이제…… 어떻게 해?”

사고가 똑바로 돌아가지 않는지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고 방의 한쪽에 비치된 한 물건을 집어 들었다.

평범한 조각상이지만 상관없다.

콰직!!

그대로 조각상을 박살 내버린 나는 창문을 열고 그것을 휙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곳을 노려보며 경고한다.

“선 넘지 맙시다. 이 빌어먹을 양반들아. 최음향이라니, 돌았습니까?”

당신네 그러다가 쇠고랑 차는 거야.

“쳇.”

“눈치 빠른 놈.”

“거봐, 내가 저놈 눈치챈다고 했지?”

“두고두고 놀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오…… 프리아 여신님. 저 미친 작자들이 과연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 작자란 말입니까.”

내게 실전 기술을 전해주었던 몇몇 영웅들이 아쉽다는 듯 물러났다.

“이 미친 새끼들이!!”

뒤이어 순식간에 달려온 다프네가 풀숲에 숨어있는 인간들을 잡아 끌어내 귀를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해서 될 게 있고 안될 게 있지! 뒤지고 싶어?!”

“으악 다프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옳다!!”

“시…… 시끄러워!”

뒤이어 영웅들을 한순간에 포박하여 허공에 들어 올린 로 아이아스가 곤란한 표정으로 그들을 던져버렸다.

보아하니 그녀도 제법 화가 난 모양새다.

“후…….”

“하던 일 마저 해 데이비.”

그렇게 말하며 다프네가 손사래를 쳐주고 사라진다.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비명을 뒤로 한 채 창문을 닫아 걸어 잠그고 봉인까지 하자 일리나가 물어왔다.

“그…… 그게 뭐야?”

“최음향. 히아 누님이 만든 약인 것 같은데. 효과는 이름 그대로야.”

내 대답에 일리나가 다리를 모은 채 몸을 베베 꼬았다.

“어…… 어쩐지 아까부터 몸이 좀…….”

“읏…….”

에이리아의 귀가 쫑긋거리며 몸을 파르르 떤다.

표정은 부끄러움과 수치로 인해 눈물이 고였지만 오랜만에 본 그녀의 꼬리는 사정없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저…… 데이비. 너…… 넌 알고 있잖아. 이제 어떻게 해?”

“글세…… 한 잔 할래?”

그녀들이 긴장하니 괜스레 나도 긴장하는 기분이 든다.

이에 와인잔을 건네주자 일리나와 에이리아가 조심스레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

“아…… 다리에 쥐가 났어…….”

차원까지 가르는 검술을 지닌 강자가 다리에 쥐가 났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그녀의 한마디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와인 잔과 병을 들고 그녀들이 앉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그것을 따라 내밀었다.

“받아.”

그리고는 무릎을 모으고 양발이 좌우로 향하게 되어있던 그녀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자…… 잠깐! 벌써?!”

새하얀 다리를 잡아당겨 마치 안마를 하듯 발가락 끝을 잡아 밀고 당기듯 풀어주자 당황하여 버둥거리던 그녀가 고통에 옅은 신음을 흘렸다.

“으윽…….”

“참아. 조금 지나면 풀려.”

빠르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근육을 풀어준 뒤 에이리아를 보자 그녀도 다리에 쥐가 났는지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다리에 손을 대자 그녀가 눈을 크게 뜨더니 길게 솟은 귀가 찌르르 울리며 쫑긋 솟았다.

동시에 그녀의 꼬리는 전보다 더 빠르게 좌우로 흔들린다.

저게 입은 아니라면서 몸은 솔직하구나…… 뭐 그런 건가 싶다.

“아프면 말해. 근육은 생각보다 섬세하니까 똑바로 안 풀어주면 나중에 고생한다.”

내 말에 에이리아는 눈물 고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픔으로 인해 끙끙 대면서도 내가 그녀의 다리 근육을 풀어 주는 동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자 어느 정도 긴장이 풀어진 느낌이 들었다.

대화가 사라진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침을 크게 삼킨 일리나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는 내 입에 과감하게 자신의 입술을 부딪쳤다.

짧은 키스 후에 몽롱해진 얼굴로 내 목에 팔을 걸어 매달린 그녀가 나를 부른다.

“데…… 데이비…… 나…….”

최음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에 취해버린 그녀의 표정이 더욱 몽롱해진다.

괜히 나까지 휩쓸리는 느낌이 든다.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오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약속이다. 그녀들은 내가 반드시 책임지겠다고.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한가지.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

내가 일리나의 뺨을 쓸어내리고는 그대로 당긴다.

그녀는 저항하는 듯하면서도 내 품에 안겨들었다.

이대로…….

쿠우웅!!!!!!

“…….”

* * *

갑작스러운 폭음과 동시에 지상이 갈라진다.

마치 거대한 지진에 이어 분노한 신이 대지를 갈라버린 것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방안의 가구들이 쏟아져 크레바스로 떨어졌고 이에 놀란 일리나가 날렵하게 몸을 튕겨 갈라지지 않은 바닥을 지탱하듯 버텨냈다.

그리고 떨어지려던 에이리아를 안아 든 채 그녀와 마찬가지로 안전한 장소로 몸을 옮긴다.

“나도 떨어질 걸 그랬나…….”

이 와중에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일리나를 뒤로한 채 고개를 돌리자 륀느와 페르세르크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데이비!”

“뭔데.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양반들이.”

“아니야! 붕괴하기 시작했음이야!”

페르세르크의 외침에 내 몸이 움찔했다.

붕괴? 이 공간이 비록 만들어진 공간이라곤 하나 이렇게 빠르게 붕괴할 리가 없을 텐데?

내 의문에 대해 그녀가 답해줄 순 없다.

하지만 뭔가 심상찮다는 건 확실했다.

“안전한 장소로 가있어. 내가 상황을 알아볼 테니까.”

“그…… 그럼!”

당황한 일리나가 우물쭈물했다.

“미안한데 지금은 좀 힘들겠다.”

“읏…….”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녀였다.

아마 부끄러워하면서도 지금을 많이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초를 쳤으니.

분노한 일리나의 눈이 이글거린다.

“타나토스…….”

이를 부득부득 가는 그녀를 뒤로한 채 내가 영웅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잔뜩 술판을 벌였다 하면 밤새도록 노는 양반들이니 반드시 거기에…….

내 생각이 끊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거대한 기둥이 내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기둥?

아니다. 이건 다리.

수백 킬로미터는 될법한. 하늘에 닿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금속 거인이 나를 내려다본다.

“하…… 진짜 이 상도덕도 없는 새끼가.”

이를 드러내며 내가 손을 펼친다.

그러자 붉은 실과 푸른 실이 날아들어 내 손과 이어졌고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거대한 거인에게 영웅들이 당했을 리는 없는데.

그들은 침묵한다.

아무래도 공간이 붕괴하는 게 아니라 이 괴물이 출현하면서 생긴 지진이리라.

저게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저놈은 반드시 부숴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를 발견한 초거대 거인.

그가 하늘 저 위로 보이지 않는 높이까지 팔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거대한 검을 뽑아낸다.

“청단이 홍단이.”

이윽고 내 부름과 동시에 이기어검으로 날아든 두 자루의 직검이 내 손에 빨려 들어오듯 잡혔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예리를 내뿜으며 아비트의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아비트의 힘이 청단이와 홍단이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는지.

아직 파악은 못 해봤지만.

우선은 홍단이를.

나를 향해 내리쳐지는 어마어마한 물리력이 담긴 일격에 나는 홍단이의 검 끝을 아래로 내렸다가 왼발을 미끄러지듯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쳐올렸다.

남의 중요한 역사를 방해한 이상 곱게 못 뒤질 줄 알아라.

[중검]

[하늘 쪼개기]

쩌적!!!

순식간에 검기가 쏘아진다.

그런데.

“어?”

검기가 방출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검기가 생성된다.

마치 검기가 날아간다는 중간과정을 생략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쩌억!!

순식간에 홍단이의 물리법칙을 베어내는 권능이 그 궤적 안의 모든 것을 절단해버렸다.

권능의 영향까지 강해졌다.

이제야 실감이 가기 시작한다.

진짜 어마어마한 게 완성되어버렸다는 것을.

“…….”

* * *

같은 시각. 데이비가 존재하던 이 공간과 현실의 시간이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본래 데이비가 머무르고 있는 이공간은 프리아 여신의 권능과 공간의 특이성으로 인해 바깥에선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시간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올바르게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은 곧 수많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라진 오딘과 독고준이 실제 시간에 영향을 받았었으니까.

장소는 마계.

고대 마수들이 사라지며 태양이 비치기 시작한 마계는 현재 때아닌 복구작업과 농업이 가능해졌다는 사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내전으로 바쁘던 마족들이었지만 지금의 기회는 놓칠 수 없다.

마치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전쟁과 분쟁을 멈추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가짜로 만들어진 작물이 아닌. 이제야 진짜 작물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데이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대량의 지기가 땅에 맴돌면서 작물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었다.

이곳이 살만한 장소가 된다면 사실 마족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굳이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땅을 빼앗을 필요 없이 여기서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니.

마왕 데이비 올 라운.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다.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말이다.

비록 거스를 순 없지만, 그는 마족들에게 경계와 두려움, 증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어떤 마왕보다 완벽하게 마족들의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있었다.

“꼭꼭 심어야 해요! 그래야 튼튼하게 자랄 테니!”

마계의 실권자였던 아스타로트 대공의 손녀인 알리타가 마수들과 하위 마족들을 부리며 거대한 밭을 일군다.

그녀는 이제야 제대로 된 찐 감자를 먹을 수 있다며 아주 즐거워져 있는 상태였다.

보통 고기가 귀하지 채소가 귀하진 않다.

하지만 마계는 고기보다는 식물이 극도로 부족한 곳이었던 만큼 이곳에서만큼은 고기보다는 식물이 금값이나 다름없다.

“빨리 쑥쑥 키워서 소금치고 쪄먹고 싶다…….”

침을 꿀꺽 삼키며 좋아하는 알리타의 행동에 마족들도 동의하는지 점점 움직임이 빨라진다.

“자자! 오늘 할 수 있는 곳까지만 하자고!”

“예!”

그녀의 외침에 마족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힘들어도 일하는 맛이 나는 상황이다.

보다 못한 알리타도 괭이를 직접 들고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앞으로 아스타로트와 리리네 올로와쥬를 대신하여 마왕의 보좌까지 올라갈 수 있는 태생 상류층의 마족인 그녀의 지금 모습은 소박 그 자체였다.

그때였다.

피잉!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든다.

“어?”

의아한 소리에 놀란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하늘에서 날아온 것은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창이었다.

“…….”

근처에 있던 마족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알리타는 그녀를 구하고 죽어버린 마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셉…… 조셉…… 왜 그래…… 나 무서워…….”

눈물이 고인 얼굴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일어나봐…… 대체…… 대체 무슨…….”

“아가씨!! 피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하늘에서 또 한차례 거대한 창이 날아든다.

반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두 번째 공격을 피해낸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초 거대한 사이즈를 지닌 갑옷의 거인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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