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9화
229. 배수의 진
사람의 분노가 실핏줄로 돋아나 표현된다면 나는 지금쯤 실핏줄이 빠직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을 것이다.
절로 웃음이 나온다. 웃겨서 혹은 기뻐서가 아니었다.
중요한 순간을 방해한 자에 대한 맹렬한 분노로 인한 웃음이었다.
이공간이 무너진다.
단순한 습격이 아니라 타나토스가 이공간의 흐름 자체를 뒤틀어버려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영웅들은 이 이공간에 묶여있기에 공간이 부서지면 그들 또한 소멸하게 된다.
아마 타나토스가 노린 건 나의 방해가 아닌 이곳에 있는 영웅들의 척살이리라.
“머리 썼네.”
거대한 크레바스를 만들며 무너지는 평야를 보며 다프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시간 축을 1:1로 맞추면서 괴리가 생겨났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이곳에도 존재하니까. 같은 게 존재할 수 없다는 조건하에 무너지는 거야.”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는 세상을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잠깐 정도는 버티겠네.”
“가봐야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봐.”
“이런 상황에서 대체 뭘요.”
짜증스레 중얼거린 내가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타나토스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나머지는 그 후에 생각합시다.
그 대답에 다프네는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돌렸다.
“뭘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랄게.”
* * *
이공간을 떠나면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담담하게 나를 배웅하는 이들을 바라보자 신의 히포크리아. 즉 히아 누님이 나를 조용히 끌어안아 주었다.
“이걸로 우리의 연은 끝이구나.”
완전한 끝.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 네 일만 생각하면 돼 데이비.”
타나토스와의 싸움이 전면화되면 영웅들은 자신을 희생해 내가 소모해야 할 업을 대신해서 소모할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사라질 것이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데이비.”
“내가 더 이상 누구 하나 희생당하는 일 없게 만들어줄 테니.”
담담한 내 말에 그녀는 말만이라도 기분이 좋은 듯 옅게 웃어 보였다.
“잘 가, 발목지뢰 같은 자식아.”
다프네의 거친 인사.
“행복하세요.”
청초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로 아이아스와 더불어 다른 모든 영웅들.
그 짧은 새에 정이라도 든 것인지 에이리아는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어서 가. 여기서 네가 할 일은 끝났어. 이제부터 우리는 널 도울 수도, 돕지도 않을 거다.”
지금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조용히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비록 온갖 가차 없는 방식으로 나를 굴려댄 양반들이지만 그들이 내게 준 것을 평생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벌써부터 죽은 것처럼 굴지 마세요.”
이미 사라진 영웅들은 몰라도, 적어도 지금 남은 당신들만큼은 지켜낼 테니.
그렇게 말하며 내가 망설임 없이 돌아서자 일리나가 당황한 듯 나를 뒤 따라왔다.
“저…… 저기 그렇게 미련 없이 돌아서도 되는 거야?”
“완전히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뭘.”
“완전히 헤어지는 게 아니라고? 너 여기서 떠나가면 저분들은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잖아.”
“누가 그래.”
짧게 일축한다.
“누구 마음대로.”
스팡!!!
내 앞에 열리는 균열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내가 선언했다.
“저들까지 죽게 두진 않을 거다.”
내 단호한 한마디에 페르세르크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나를 따라와 주었다.
* * *
영웅들의 희생을 뒤로하고 하인스 영지로 돌아왔을 때.
나는 티오니스의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현재 확인된 곳만 총 여덟 왕국이에요. 통칭 거대기사라고 부르고 있어요.”
내가 회랑에서 베어 죽인 초거대 갑옷기사.
그 크기가 지상에서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하여 겉보기엔 무슨 벽처럼 보이지만 그건 엄연히 움직이는 적이었다.
타나토스가 만들어낸 회색의 갑옷기사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 인간과 큰 차이가 없는 사이즈의 적이 존재하고 내가 베어 죽였던 초거대의 갑옷기사 또한 존재한다.
둘의 힘은 천차만별이지만 차이점 또한 지니고 있었다.
작은 갑옷기사들은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그리고, 거대 갑옷기사의 경우 그 수가 적지만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크기가 워낙에 거대해 어지간한 마법으론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게 현 상황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차례 이클립스와 타나토스가 나타나며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던 검은 늪지대가 그들의 시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적을 죽이면 시체가 늪지대 일부가 되어 일대 영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든다.
티오니스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적들을 생각하면 이건 아주 작정하고 이 땅 전체를 죽음의 늪으로 뒤덮어버리겠다는 의지와 같았다.
장소가 티오니스 한정된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타나토스라도 이만한 공습을 여러 세상 동시에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외에 보고할 건?”
“그…… 그것이…….”
잠시 고민하던 에이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하…… 계시가 내려왔어요.”
“계시?”
계시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차갑게 들리는 것일까.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데이비 올 라운의 신을 배덕한 행동으로 인해 신이 분노하여 생긴 신벌이라고…….”
뭐?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녀를 보자 그녀가 고개를 강하게 젓는다.
“저…… 저는 저하를 믿어요! 하지만 발샤스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같은 계시를 받은 이들이 하인스 영지와 라운 왕국에 항의를 보내와서…….”
갑옷기사들의 출현으로 이미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자들은 마음이 꺾이고 그 원망의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될 터.
“그래서?”
“저하께서 직접 출두하시어 모든 이들에게 현 상황을 해명하고…… 만약 저하께서 저들을 불러내신 게 맞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라.
“그게 현 대륙연합에서 올라오고 있는 사안이에요.”
대륙에는 내게 호의적인 국가도 많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견제하는 국가 또한 다수 존재한다.
이놈들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것들도 생각이 없진 않을 텐데.
“저하…… 정말로 계시가…….”
“프리아 여신이 아니야.”
내 대답에 그녀가 우물쭈물했다.
“그…… 그럼…….”
“지금 나와 싸우고 있는 불청객이 내린 계시지.”
계시는 오로지 신이 내린다.
그런데 불청객이 계시를 내렸다?
에이미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대륙 연합의 회의는 어디서 이뤄지고 있어.”
“파…… 팔란 제국 황궁이에요.”
“라운 왕실에도 서신을 보내. 바리스에게 절대 군사 활동을 하지 말고 오로지 방어, 그리고 만약 적들이 몰려오면…….”
그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후퇴.
절대로 수성전을 펼치지 마라.
내 명령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을 터다.
하지만 에이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명 받잡겠습니다. 저하.”
* * *
대륙 연합의 회의가 벌어지고 있는 팔란 제국의 황실.
그곳은 현재 다수의 국왕과 국왕 대리자들이 모여 회의를 펼치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성자 데이비 올 라운을 찾아 그를 체포하여 상황을 해명케 해야 합니다!”
이미 다수의 의견이 그러하다.
“티오니스 동부의 아래부터 시작하여 지금 대륙 전역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죽이면 늪지대가 발생하고 그 늪지대는 땅을 죽음의 땅으로 바꾸고 있어요!”
“게다가 출현 위치까지 제멋대로라 희생이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서부 왕국, 현국의 국왕이 의견을 피력해보지만 곧이어 날아든 서부왕국의 다른 한 국왕 대리자에 의해 막혔다.
“계시입니다. 현국의 국왕 폐하. 계시에 어떤 이견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맞소. 이것을 거부한다는 건 즉 신성모독을 하는 것과 같소! 아니 그러하오?!”
한 소왕국의 국왕이 성국 발샤스의 대리자로서 온 리나 성녀를 향해 물었다.
“흐음…… 계시가 내려온 건 사실이지만요오…… 데이비 님이 아직 해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몰아가는 건 조금…….”
리나 성녀도 계시를 받았다.
그렇기에 조금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그러니 하인스 영지에 압박을 넣어야 합니다! 그를 내놓으라고!”
“옳소!”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반대파의 외침에 살리반 황태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토 라 리리 공작 사건 이후 갑자기 무슨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데이비가 일리나와의 국혼을 받아들였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가 함께 있다면 일리나를 헤칠 수 있는 이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벌어지다니. 대체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단순히 그와의 친분만으로 그를 변호하기엔 상황이 너무 악화되어있다.
그만큼 대륙의 현 상황은 심각했다.
“저희 명국의 천녀께서는 이미 그 갑옷기사가 황성으로 침입하는 바람에 크게 화를 당하실 뻔하였소! 자비로우신 천녀께선 이번 일을 좀 더 조사해보라 이르셨으나 우리 대신들의 의견은 다르오! 일이 어찌 되었건 데이비 왕자에게 이번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오!”
명국의 한 관리가 거드름을 피우며 소리쳤다.
저들 중엔 정말로 피해를 본 자들도 있을 것이고 분위기에 편승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실상 대륙에서 내가 발휘하던 권세가 남달랐던 것도 사실이니까.
“저…… 저 자식이…….”
보다 못한 일리나가 뛰쳐나가려는 것을 내가 막아섰다.
수많은 국가의 통치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동을 부리면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되지 호전되진 않을 것이다.
“어서 하인스 영지에 압박을 넣으시오! 황태자! 의장에 자리에 앉았으면서 무엇을 망설이시오!”
소왕국의 한 국왕의 말에 살리반이 조용히 그를 바라본다.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법이지.”
“흡?!”
그런 살리반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콘타스 대제였다.
그는 권태로운 표정으로 전갈 문양이 새겨진 옥좌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짐 또한 데이비 왕자에게 해명을 듣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해온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듯한 그 행동거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
린디스 제국의 데오르트 황제는 침묵한다.
살리반 황태자 또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콘타스 대제는 거침없었다.
“간신배가 따로 없군, 그동안 받아온 평화의 뒤에서 그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도 모르는 것들이.”
“무…… 무슨 소리시오! 황제! 그가 전쟁의 영웅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다른 모두 같은 상황…….”
“짐이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전 데이비 왕자가 서부대륙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대륙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특수한 범죄조직을 쫓고 있었지.”
“그게 무슨 상관이오!”
“상관이 왜 없나. 그가 나서서 그놈들을 막지 않았으면 대륙의 정세가 지금까지 유지되었을 것 같은가?”
“…….”
대제의 물음에 주변이 침묵한다. 다른 이도 아니고 삼 제국 중 한 제국의 황제가 내뱉은 발언은 그만큼 무거웠다.
“그…… 그건 억측…….”
“억측이라…… 무식한 새끼.”
콘타스 대제의 신랄한 비판에 그와 설전하던 왕국의 국왕이 이를 악물었다.
“이…… 수모는 반드시…….”
“덤빌 텐가? 그렇게 싸움을 원한다면 해주지. 상황이 이렇다 하여 감히 제국에 대항하겠다는 사욕에 가득 찬 자들의 행동거지는 나도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군.”
가장 혈기가 넘치는 콘타스 대제다운 발언이었다.
“그만! 우린 지금 싸우러 온 것이 아닐세. 대제.”
“황제.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텐데?”
대제가 언급하는 건 초대 리치 닉스에 관한 일이었다.
“적어도 당신은 알 거요.”
“계시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적어도 그가 직접 해명하지 않는 이상.”
“현재 그는 하인스 영지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요구하여 그의 신변을…….”
계속되는 설전에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타나토스가 계시라는 웃긴 짓을 하는 데에 혹여 다른 이유가 있는가 싶었는데.
그런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하인스 영지는 독립국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내 목소리에 모두가 멈칫했다.
타박…….
그리고. 가볍게 회담장으로 뛰어내린 나를 따라 일리나와 페르세르크가 내려섰다.
주변이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침묵한다.
“왜들 그러십니까. 계속하세요. 다만 한가지 짚고 가자면…….”
여유롭게 나타난 내 전신으로 신력이 터져나간다.
마나와는 다른. 압도적으로 상위차원의 힘이 그들을 짓누르자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게 마나가 아닌 무언가라는 것을 깨달은 듯 보였다.
“이런 경우 하인스 영지에 직접 요청하는 게 아니라 라운 왕실에 요청했어야지요. 나는 폐하의 신하이지 독립국의 왕이 아닙니다.”
싸늘하게 일갈한 나는 하인스 영지에 요청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을 쳐다보았다.
“커헉!”
“크윽?!”
반사적으로 신력에 노출되어 시선을 내리까는 그들이 두려움에 파르르 떤다.
“왕자…… 신기한 힘을 얻었군.”
나를 보며 콘타스 대제가 긴장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네요오…… 마치 프리아 여신님의 기적이 내릴 때와 비슷한…….”
리나 성녀의 중얼거림에 주변이 한 차례 더 경련했다.
“듣자 하니 계시가 내렸다고요.”
“그렇습니다. 왕자. 당신이 이번 사태의 주범이라는 계시가 내렸습니다.”
“그 계시…… 프리아 여신이 확실합니까?”
내 물음에 주변이 침묵했다. 그리고 성국의 한 대신관으로 보이는 자가 벌떡 일어났다.
“신성모독이오!! 감히 프리아 여신의 진위를…….”
“프리아 여신이 아닌데 프리아 여신의 계시라고 믿는 멍청한 놈들이 감히 신성모독을 논하나?”
쿠웅!!!!
신력이 또 한차례, 퍼져 나갔다.
점점 강해지는 신력은 이들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심어주게 만들었다.
내가 내뿜는 마나는 마나가 아니다.
마나를 모르는 이조차 그것을 느끼게끔.
나는 최대한 신력을 발현해 그들을 압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
“왕자…… 해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그 때문에 찾아온 겁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죠. 심연의 신. 잠과 꿈의 신인 타나토스. 그자가 대륙과 저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내린 가짜 계시입니다.”
“타나토스? 흥! 드…… 듣도 보도 못한 신…….”
“당신들이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는 진실이 없어지지 않아.”
싸늘하게 일갈하며 내가 한쪽 손목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까자 넬타리드의 성흔이 보인다.
“저…… 저것은…….”
“프리아 여신을 제외하고 타 세계에 존재하는 조화의 신. 넬타리드의 성흔입니다. 성흔에서 느껴지는 신력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죠.”
내 발언에 대신관이 우물쭈물했다. 이번 기회에 내 기세를 어떻게든 꺾어보려 했을 것이다.
성국 소속도 아니면서 가장 위계가 높으니 이만저만 골칫거리가 아니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가짜라고 하기엔 리나 성녀의 눈이 반짝인다.
“우와…… 신기한 힘이네요오…… 프리아 여신님과는 조금 달라요.”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아 여신은 두 명의 신을 만들었습니다. 익히 알려진 태양신, 달의 신인 사일러스와 크리아스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존재.
타나토스와 넬타리드.
“이제 타신의 존재를 믿겠습니까?”
“하…… 하지만 그런 타락한 신이 계시를 내릴 동안 프리아 여신께선 뭘 하셨단 말이오!”
“당신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프리아 여신은 이 땅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잊었나 본데…….”
나도 성자야 이 양반아.
“성자 앞에서 신을 모독하는 건 죽여달라는 소리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모릅니까?”
프리아 여신을 욕해도 되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욕심만 앞서서 피아 구분도 못 하는 멍청한 당신네가 아니고.
내 발언에 주변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반박하고 싶은데 내 몸에서 흘러나온 신력으로 인해 모두가 입을 쉬이 떼지 못한다.
“데이비 왕자는 그동안 타나토스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타나토스 신이 이 땅을 잠식하던 것을 막아왔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현 상황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평화에 찌들어있을 때 혼자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요.”
일리나의 한마디에 몇몇이 우물쭈물했다.
“그…… 그건 말하지 않으면…….”
“상황이 이런 상황인데도 적 아군 구분하여 정적을 만들고 있는데 그런 정보를 흘려서 혼란을 주는 게 맞다고 보나요? 기껏 목숨 걸고 대륙을 지켜온 이에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부터 묻고 싶네요.”
“무엄하오. 황녀! 감히 여기 있는 이가 누구라 생각하는가! 아무리 철이 없다 해도 이렇게 위아래 없는 건 황실의 특징이라도 된…… 커헉?!”
벌떡 일어나 일리나를 향해 화를 내려던 귀족이 팔란 제국의 황태자 살리반이 던진 물건에 맞아 그대로 쓰러진다.
“위아래가 없는걸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소. 볼타 후작. 팔란 황실 전체를 비하하겠다면 굳이 내가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소.”
짧게 일갈한 살리반 황태자의 한마디에 주변이 차갑게 식었다.
결코, 합리적으로 행동하던 그가 벌일 행동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돌발행동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살리반 황태자의 행동에 몇몇이 눈을 크게 뜬다.
“황태자! 데이비 왕자의 말을 믿겠다는 것이오?! 저 허무맹랑한 말을?!”
“적어도 위기 상황분간 못 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당신네보단 더 유익해 보이는군.”
“저건 마나의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일 터. 고서에서나 본 반신이라니 기가 막히는군, 좋다. 어차피 서로 믿기 힘들다면 콘타스 제국도 팔란 제국과 같이 이쪽에 패를 걸어보지.”
"발샤스 내부에선 말이 많지만요오…… 저는 이번 계시가 프리아 여신님이라곤 생각지 않아요오……."
리나 성녀까지 가세하자 분위기가 역전된다.
보통 정치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 감정적인 상황. 하지만 그런 감정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유도하고 있는 게 나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괜히 신력을 끌어내고 있는 줄 아나.
“말해보시오. 우리가 뭘 해주길 바라오.”
“간단합니다. 그냥 도망치세요.”
절대 타나토스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