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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20화 (819/1,559)

제 820화

국제연합 회의에서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건 사실 쉽지 않다.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범 대륙적 사기가 성공한다는 것과 같으니까.

그렇기에 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회색의 갑옷기사들을 만들어내 조종하고 있는 본체.

이클립스를 먹어치운 타나토스의 소재라 할 수 있다.

지도를 노려보며 나는 놈이 있을 만한 장소를 꼽아보았다.

대륙연합에는 최대한 싸움을 피해달라 말했고, 라스트 위스프 기사단에는 거대기사들을 유인하는 임무를 부탁했다.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방식으로 놈들을 조금씩 조금씩 대륙의 외곽으로 보낼 수 있으니까.

그 외에 마계는…….

이미 마계를 지켜줄 놈이 하나 존재하긴 한다.

남은 것은 타나토스의 소재.

이놈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찰나 내 감지에 무언가가 걸렸다.

“여전히 숨는 기술은 엉망이네. 들어와.”

“…… 당신이 너무 잘 찾는 겁니다.”

내 물음에 허공에서 방금까지 없던 검은 무복의 인물이 나타났다.

“잭이라 불러줄까? 아니면…….”

“아이나라 불러주세요. 유리아가 지금 없으니까요.”

“거 자매 상봉은 언제 할 거냐.”

“아직은…….”

“그래서, 네가 하려던 일은?”

내 말에 그녀는 복면을 벗어냈다.

다크 엘프의 연한 구릿빛 피부에 아름다운 미모가 드러난다.

“해결됐습니다.”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내 자금과 이름을 서슴없이 빌렸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찾는 게 누구인지는 대충 감이 잡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굳이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원하시는 정보가 있지 않나요.”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가 품 안에서 작은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계시문제로 대륙이 술렁이지만 조금 미심쩍은 구석이 너무 많아서 조사해봤어요.”

그녀가 내민 서류에는 한 지역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계시는 보증 인장이나 다름없죠. 하지만 이번 계시는 지금까지의 계시와는 조금 달라요. 이건 신의 계시라기보단…….”

악마의 속삭임에 가깝다.

“중부대륙 중앙에 위치한 호수를 기억하세요?”

“호수?”

중부대륙의 호수라면, 대륙 최대 규모의 거대호수, 셀리샤 호수가 있다.

팔란 제국의 영토에 속한 티오니스 대륙 최대규모의 호수로 그 규모가 어지간한 소왕국 몇 개는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이 시기에 호수의 중앙 부분은 거대한 안개가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시기에만 솟아오르는 섬이 있어요.”

호수주제에 민물 썰물이 확실하다라.

“여기에 뭔가 있다고?”

“얼마 전 배를 띄운 어부가 안개 속에서 섬 전체를 뒤덮는 기괴한 생명체를 발견했다고 해요. 겁에 질려서 도망치긴 했지만, 보랏빛으로 가득한 거대한 살덩어리라고 하더군요.”

빙고.

일정 시기에 떠오르는 섬. 그리고 겹치는 시기에 발생하는 안개.

사실 섬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우연찮게 안개가 나타나지 않아서였다고 하니 확실하리라.

“역시 정보원은 너만 한 녀석이 없네.”

내 웃음에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쏘아본다.

“그동안 메아리 정보원을 쉴 틈 없이 갈아치우셨다던데.”

“맞아. 너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감당이 안 되더라. 책임져.”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시죠?”

“그래 없어.”

“그럼…….”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연다.

“혹시…… 마계의 상황에 대해 아시나요?”

조심스런 그 물음에 나는 눈을 감았다.

“네가 마계에 대해선 왜 신경 쓰지?”

“그게…….”

“뭐,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 문제는 네가 왜 마족을 신경을 쓰냐는 거야.”

“그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있으니까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내게 이런 귀한 정보를 가져온 이유. 마계에도 나타났을 회색의 갑옷기사들로부터 구해달라는 뜻일 터다.

물론 마계도 난장판이겠지.

그녀가 왜 갑자기 마족을 두둔하는지 이유라.

그녀가 찾는 인물이 마족일 경우라면?

이미 나는 마계에서 아이나와 같은 보법을 사용하는 몽마를 본적이 있었다.

몽마 여제의 곁에 있던 마스터 급 이상의 강한 힘을 지닌 몽마의 존재를 말이다.

“다만, 거긴 손대지 않아.”

“그건?!”

“마족은 적 아니었나?”

“다…… 당신은 마족의 적이 아니라고 했…… 읍!”

“쯧.”

정보원이라는 게 이리 다급해서야 원.

“마계는 내버려 둬도 돼. 거긴 파수꾼이 있거든.”

담담하게 말하며 내가 일어났다.

“어디…… 가시는 거죠?”

“준비 다 됐으면 패 뒤집어야지. 정보 고맙다. 덕분에 시간을 한참 단축시킬 수 있었어.”

후우우웅!!! 쿵!!

그 말과 동시에 바깥 창문으로 거대한 흑룡이 내려선다.

* * *

셀리샤 호수는 현재 안개로 가득하여 외곽을 제외하면 배를 띄우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이곳은 유별나게 일정 시즌만 되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곤 하는데 그 정도가 상당히 짙어서 바로 앞에서 보는 게 아니면 구분하기도 힘들다는 게 현실이다.

다만 지금은 평소와 달랐다.

안개의 빈도가 미묘하게 옅어져 있었다.

마치 무형의 힘에 의해 바뀐 것처럼 말이다.

소왕국 몇 개에 달하는 거대한 영역을 자랑하는 셀리샤 호수는 몇 가지 별명이 존재한다.

신의 축복이 서린 호수.

대륙의 오아시스 등등.

실제로 셀리샤 호수의 방대한 물은 마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삼 제국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던 팔란 제국은 가뭄의 피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재 그 셀리샤 호수가 마냥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었다.

일정 기간에 이르면 약 한 달에서 두 달간 셀리샤 호수는 거대한 안개로 뒤덮이는데. 이 기간에 호수 내부로 들어가는 건 어지간히 미친놈이나 탐험가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짓이기도 하다.

철푸덕!!

스르륵…… 스르륵…….

고깃덩어리가 떨어지며 새하얀 피부를 지닌 여성이 비틀거리듯 걸어 나온다.

“으읏…… 여긴 뭐지.”

침묵하던 그녀가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안개로 가득하고 주변은 마치 살아있는 살점처럼 고깃덩어리로 가득하다.

그리고, 넝마를 걸친 그녀의 앞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따라와. 네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어.”

싸늘한 말투였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고고하면서도 차가운 인상의 여성은 곧 넝마를 입은 여인을 데리고 검은 살점 덩어리가 가득한 동굴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도 서너 명 정도의 여성이 더 있었다.

각기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넝마를 입은 여인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동족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서 오거라.”

이윽고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넝마를 입은 여인은 반사적으로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웅크렸다.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아…… 나의 창조주시여…… 나의 근본이시여, 나의…….”

고개를 숙인 그녀가 말을 잠시 멈춘다.

“나의, 구원이시여.”

“네게 베르샤라는 이름을 주겠다. 본래 다른 이의 이름이었으나 이제 네가 그 이름을 물려받거라.”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울림이었다.

“베르샤……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나의 창조주시여.”

좀 전까지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인 검은 머리에 검보랏빛 고딕 레이스 풍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보자마자 본능이 그녀를 이끈다.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스스스스슥…….

이윽고 각성을 마친 존재. 아만다가 검은 원피스를 입은 채 천천히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없던 정보들이 채워진다. 자신이 어떤 힘을 가진 존재인지를.

눈앞의 존재가 누구인지를.

서서히 피어오르는 검은 힘. 저주의 힘을 익숙하게 다뤄낸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가서 진입하는 적을 막아다오. 나를 죽이려는 악마로부터, 나를 지켜다오.”

가련한 목소리. 창조주치고는 너무도 무력한 모습이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어떤 모습이건 이들, 새로이 태어난 심연의 공주들에게 그런 건 의문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쿨럭!”

피를 울컥 토하는 타나토스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인 심연의 공주들이 부복한다.

“부탁하마.”

그 말과 함께 새로이 태어난 심연의 공주들이 하나둘 일어나 거대한 살점으로 가득한 동굴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이클립스의 몸을 잠식한 타나토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타나토스 고유의 신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타나토스의 상징인 황색. 그 색으로 변한 그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타나토스를 뒤로한 채 섬의 외곽으로 향하던 심연의 공주들은 하나같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심연의 공주들이라곤 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막대한 힘을 지닌 존재였다.

당연히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

개개인이 세상을 부술 정도의 괴물.

그런 그들의 압도적으로 넓은 시야에 무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등불 하나만 달고 있는 작은 배 한 척.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고요한 배 위에는 두 명이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두 명의 인영 중 한 명은 키가 상당히 작았다.

“뭐야 저건.”

“내가 알아? 어떻게 할래. 네가 치울래?”

베르샤의 이름을 물려받은 심연의 공주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제대로 된 힘 하나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일반 인간이다.

“슬리지아.”

이윽고 슬리지아 이름을 물려받은 또 다른 신입 심연의 공주가 한발 나선다.

“창조주께선 악마가 이 위치를 들키지 않게 흔적을 남기지 말라 했다.”

“내가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한 슬리지아가 천천히 손을 뻗는다.

그리고는 양손을 허공에 걸어 마치 부술 것처럼 뒤틀기 시작했다.

바다가 흔들리고 대기가 진동한다.

아무리 새로 태어난 심연의 공주라도 슬리지아의 이름과 힘을 물려받고 새로이 태어난 심연의 공주가 가지는 힘은 다른 여타 심연의 공주와는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그극…… 그그그극!!!

섬을 향해 다가오는 배가 맹렬하게 흔들린다.

“흡!”

콰드드득!!!

이윽고 배가 있던 공간 자체가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렸다.

심드렁하게 손을 툭툭 털어낸 슬리지아가 고개를 돌린다.

“귀찮아.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

“뭐? 네가 뭐라도 되는…… 컥?!”

한 심연의 공주가 짜증스레 묻기가 무섭게 슬리지아가 다가가 그녀의 목을 틀어잡았다. 그리고 스산한 목소리를 냈다.

“건방 떨지 마. 너희 잡것들과 내가 같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완전히 다른 인물, 힘의 방식만 비슷할 뿐 총량조차 진짜 슬리지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에게 그런 건 전혀 상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지금 이곳에 모인 새로운 심연의 공주들 사이에선 역시 슬리지아의 이름을 물려받은 자들이 강할 뿐이다.

“이봐.”

그때였다.

살점 덩어리에 걸터앉아 촉수 덩어리를 가지고 놀며 상황을 지켜보던 한 심연의 공주가 팔을 뻗었다.

이에 모두가 시선을 돌린다. 그들이 바라본 곳은 섬의 끝자락.

호수의 끝으로 언제 도착했는지 걸어오고 있는 크고 작은 로브의 인영들이 보였다.

“살아남아?”

“공간째로 뒤틀었는데.”

슬리지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발 나섰다.

아직 힘을 다루는 게 미숙해서 실수를 한 모양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슬리지아가 그들의 뒤를 순식간에 잠식했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말하며 키가 큰 로브의 인영을 향해 말했다.

“어머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들어오는 벌레가 있네.”

한껏 느긋하게 말하자 로브의 인영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로브를 걷어 넘긴다.

그리고 심연의 공주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로브를 걷히고 나타난 건 타나토스가 경계하는 프리아의 대리자. 프리아의 개.

데이비라는 이름을 가진 홀른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그들이 막아야 할 대상이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뭐야 이것들은 그새 분만이라도 하셨나?”

“륀느의 분석에 따르면 하나하나 모두 심연의 공주라 분석.”

“그건 척 봐도 알겠는데. 그놈이 새로 심연의 공주를 만들어낼 힘이 어디 있다고.”

데이비가 짜증스레 중얼거리자 슬리지아의 전신에 싸늘한 기류를 뿜어냈다.

“벌레가 건방지게 감히…….”

싸늘하게 일갈한 그녀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그극!!!!

이번엔 실패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가 데이비가 있는 공간 자체를 뒤틀기 시작했다.

눈앞의 적은 들은 것과는 별개로 딱히 위험해 보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표정 또한 평온하기 그지없다.

밟아 죽이면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하찮은 벌레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슬리지아는 서서히 공간을 압박했다.

“창조주께 가기 전에 여기서 넌 내 손에 죽어야겠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줄게.”

“이건…… 슬리지아의 힘이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질렸다는 듯 데이비가 동문서답을 해버리자 그녀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만만한지 보자!”

그그극!!! 이윽고 데이비가 있는 공간 자체가 뒤틀렸다.

뭐가 되었건 자신들의 창조주가 두려워하는 적을 여기서 막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뒤틀리는 공간 속에서도 그는 딱히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잘 찾아오긴 했나 보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네.”

“륀느의 연상에 따르면 타나토스의 존재 여부 98, 21퍼센트. 아이나의 정보를 높게 평가.”

“그렇지?”

자신을 무시하며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는 데이비를 보며 다른 심연의 공주가 나서려던 찰나. 슬리지아는 자존심이 뭉개지는 기분이 들어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꺼져!! 이 벌레는 내가 죽일 테니까!!”

“벌레 벌레 아까부터 더럽게 시끄럽네 진짜.”

그제야 슬리지아에게 관심을 준 데이비가 그녀를 바라본다.

“기껏해야 갓 태어난 햇병아리가.”

“뭐?”

“됐다. 말 안 통하는 것들하고 설전해봐야 무슨 의미겠냐. 여긴 상륙했다. 위치 파악되면 뛰어내려.”

그 말과 동시에.

안개가 자욱한 하늘이 일순간 원형으로 찢어지며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경악한 심연의 공주들이 고개를 들어 창공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허리춤에 채운 검을 천천히 뽑아내며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본능이 말한다.

저 푸른 머리카락의 여성은 엄연히 자신들과 동족이라고.

갑작스런 동족의 출현에 당황하던 찰나.

그들을 향해 검을 뽑아 든 푸른 머리칼의 여성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낙하한다.

푸른 머리칼의 소녀의 검에 막대한 힘이 서리기 시작했다.

[마령검]

[태산압정]

어마어마한 검기가 추락하듯 쏟아진다.

쿠우웅!!!

섬 전체가 진동하며 뒤틀리고, 그 여파에 휩쓸린 심연의 공주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동족이 어째서?!

경악한 심연의 공주들이 반격을 위해 힘을 끌어내려던 순간. 정체 모를 사슬이 그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배신 때릴거면 그냥 꺼져. 난 죽을 생각 전혀 없으니까.”

이후 그런 막대한 힘을 뿜어내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푸른 머리의 여성이 곧 나타난 검은 머리칼의 소녀를 향해 쏘아붙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내뿜는 그녀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인간은 담담하게 그들을 한 차례 둘러본 후 심연의 공주들이 지키고 있던 동굴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대륙의 곳곳에서 회색의 기사가 날뛴다.

티오니스 대륙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은 마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계에 터전을 잡고 있는 마족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수많은 회색의 갑옷기사들의 공세에 쉴 틈 없이 밀려날 뿐이었다.

“안돼!! 안돼! 후퇴! 후퇴하란 말이야!!”

대공 아스타로트의 손녀, 알리타는 피를 뿌리며 죽어가는 동족들을 향해 급히 소리 질렀다.

수성은 실패다.

죽이면 정체불명의 검은 늪이 나타나고 그냥 두면 무기를 휘둘러온다.

마법으로 처리하는데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수성 자체가 너무 일방적으로 뒤틀렸다.

벌써 그렇게 손도 못 쓴 채 잃어버린 성만 몇 개던가.

알리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 마왕이 있었다면…… 차라리 마왕이 남아있었다면.

“핫?! 내가 무슨 생각을!”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부정해보지만, 그의 힘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무력은 단순히 한 생명체의 개념을 벗어나 있었으니까.

그라면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조심하십시오. 알리타 님!!!”

이미 부하 마족들의 목숨을 이용해 명줄을 유지했으면서 도망친 게 고작 이것이다.

앞으로 대공이 되어 마계를 책임져야 할 지배계층인 주제에 이렇게 도망치기만 하다니 참을 수가 없다.

알리타는 결국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초거대 회색의 갑옷기사와 그를 따라 움직이는 작은 갑옷기사들은 이미 성의 절반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알리타의 뒤를 점하고 그녀의 목을 꿰뚫기 위해 창을 찔러넣는 회색기사를 보며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가 그대로 꽉 감았다.

콰아앙!!!!

하지만 곧 들려온 소리는 살점이 꿰뚫리는 소리가 아닌 거대한 무언가끼리 부딪친 충격음이었다.

“아…… 아아…….”

눈을 감은 채 파르르 떨던 그녀가 고개를 들며 눈을 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새하얗고 거대한 근육을.

“뀨?”

“…….”

속이 메스꺼워지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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