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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31화 (830/1,559)

제 831화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요소엔 어떤 것이 있는가.

막대한 군사?

아니면 완벽한 전술?

다른 건 몰라도 지금의 상황은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았다.

-키아아아아아악!!

괴악한 비명을 내지르며 괴인 하나가 거대한 마나 전기톱에 의해 처참하게 갈려 나간다.

그 모습을 본 괴인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감정이 없다고 알려진 괴인들이지만 지금 보는 그들의 붉은 빛으로 된 눈동자에 서린 감정은 혼란과 공포 그 자체였다.

철컹!!

이윽고 마나 전기톱으로 적을 가차 없이 갈라버린 디셉티콘 편대의 막내 골렘, 둠은 독특한 하이바를 쓴 얼굴을 갸웃거리더니 마치 포탄처럼 쏘아져 나가 도망치던 괴인의 머리를 잡아 으깨버렸다.

그야말로 무식한 힘의 결정체.

그 괴악한 행동 인격은 어디서 넣은 것인지.

원소 마탄을 포화하며 괴인들을 쓸어넘기는 저거노트와 적들의 진입을 막는 탱커의 위용은 그야말로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시선을 모으는 것은 전장을 날아다니는 천사와도 같은 륀느였다.

한 줄기 빛의 궤적을 남기며 날아다니는 륀느가 한번 방향을 꺾을 때마다 수십 가닥의 빛줄기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포격하며 적들을 학살했다.

“가만히 있어요.”

괴인의 공격에 당해 피를 울컥울컥 토하며 죽어가던 마법사의 환부에 손을 올리며 신성력을 끌어올린다.

신의 성역을 펼친 것으로 어마어마한 회복영역이 설치되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한 이들은 직접 돌아다니면 치료를 행한다.

“자네…… 대체 정체가…….”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은 전부 한자리에 모아주세요.”

“자네…….”

“지금 쓸데없는 걸 따지다가 후유증 남아도 책임 안 집니다.”

괴인의 공격에 금기의 힘이 옅게 서려 있다.

그렇기에 직접 부상 상태가 심각한 이들에겐 좀 더 강한 회복마법을 걸 필요가 있었다.

“다 죽게 둘 겁니까? 빨리 빨리 움직이세요!”

벙찐 얼굴로 서 있던 이들을 향해 소리치자 그제야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전장은 마스터 급의 화력을 지닌 디셉티콘 편대와 륀느의 활보로 순식간에 정리가 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장벽을 지키던 이들이 직접 무리해서 싸울 이유는 없었다.

“살았어…… 살았다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이건 신의 기적이다!”

마법사가 신을 외치는 꼴이라니 퍽 우습기 그지없다.

자신의 생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친다.

“세상에…… 괴인으로 변하지도 않았어!”

“분명 치사량이었을 텐데!”

그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곧 다가온 슈바이츠 장로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괴인에게 일정이상 공격을 당한 이들은 생명력에 변화가 생긴다.

마치 좀비가 변하는 것처럼 이들도 괴인이 될 신세였다는 소리였다.

그런 것을 내가 치료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이라곤 단순히 옅게 서린 금기의 힘을 걷어낸 것이 전부였다.

“혹…… 신께서 보내신 사자입니까.”

이 양반들은 마법사가 신을 자꾸 찾네.

“일단 다친 사람이 더 없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평소에도 이런 습격이 자주 있습니까?”

콰앙!!

마지막 괴인을 륀느가 창으로 꿰뚫어버리는 것을 끝으로 전투는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두려움을 모르던 괴인들조차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게 만드는 골렘들의 무자비함에 치를 떤 것이리라.

“아닐세…… 이런 경우는 거의 없어. 변종 괴인이 나타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이렇게 다수가 몰려오는 건…….”

역시 그놈들이 나타난 이유는 나라는 게 확실해졌다.

결국, 내가 여기 있으면 이들 모두에게 피해가 되리라.

‘그래도, 확실히 신력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데.’

가기 전 이들을 치료해주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신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없었다.

적어도 이 생명력 증폭 현상이 왜 일어난 것인지 명확하게 알기 전에 함부로 손을 댔다가 자칫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완전한 신이 아니기에 기적은 내릴 수 없다.

창을 거둬들이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빈약한 가슴을 당당하게 폈다.

“데이비 님. 륀느의 공격 능력을 높게 평가해.”

“또 뭘 주워 먹은 거야.”

“독특한 미각 데이터. 륀느가 이것을 별 한 개로 평가.”

퉤 하고 뱉어낸 것은 특이해 보이는 열매였다.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독버섯과 같은 색을 띤다.

“자……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상황이 정리되자 슈바이츠 장로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확실히 이만한 사태를 일으켰으면 당황할 법도 하다.

“여행자 겸 마법사죠 뭐 별거 있습니까.”

“방금 그건 마법으로 보기에도 문제가 있었네. 애초에 자네의 몸에선 마나가 한 줌도…….”

“정확히는 신성력입니다.”

“신성력? 호오…….”

확실히 신성 마법은 사령 마나와 다르니까.

하지만 페스리사 대륙은 여러 종족이, 그리고 사령 마법 이외에도 많은 마법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좀 전의 전투로 본 것들은 대부분 사령 마나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시대가 변하면서 모종의 변화를 겪은 것이리라.

이런 상황은 보통 진화라고 하기보다는 도태. 혹은 퇴화에 가깝지만.

“어쩐지. 기록 수준이 엉망이더라니.”

“음? 뭐라 했는가?”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환자들은 쉴 수 있게 해주세요. 마나 역류 상태라 상당히 지쳤을 텐데.”

“그…… 그렇군! 환자들을 옮기게! 멀쩡한 이들은 장벽을 보수해주게!”

슈바이츠 장로를 뒤로한 채 나는 말 없이 올려다보는 륀느를 향해 말했다.

“여기서 나가자.”

* * *

사람의 이기심이란 무섭다.

일단 습격의 원초가 나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안 이상 내가 이곳에 남아있어 본들 서로 득이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일부는 그 사실을 모르기에 위험한 전투를 핑계로 내가 생존지를 빠져나가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안됩니다! 바깥은 너무 위험하오! 차라리 이곳에서 안전을…….”

“그처럼 대단한 회복마법은 듣도 보도 못했소! 게다가 이미 실전된 마법인 신성 마법이라? 우리는 저자의 힘이 필요합니다. 탑주!”

그리 마음에 들진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나는 버릴 수 없는 패로 다가오겠지.

게다가 이미 한차례 륀느의 전투능력조차 모두가 보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 내가 이 생존지를 떠난다고 하면 잘도 받아들일 것이다.

“좀 웃기네요. 전후가 좀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 그것은…….”

“일단 도움을 준 입장인데 이런 태도면 그리 기분이 좋진 않네요.”

내 말에 주변이 침묵했다.

이에 한 노령의 마법사가 급히 변명했다.

“위…… 위험해서 그런 것이네! 위험해서!”

“그렇네! 균열의 근처라 하였나! 우리도 수차례 그곳을 탈환하려 했지만, 균열의 근처는 사실상 가장 위험한 곳일세! 추락자도 다수 보이고 좀 전 본 것들보다 더 위험한 괴인조차 보일 정도일세!”

그들의 외침에 슈바이츠 장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네. 다들 몰릴 대로 몰려서 그런 것이니…….”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해는 합니다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네요.”

“그런데…… 왜 균열로 가려고 하는 겐가.”

“이일에 조금 흥미가 있어서 직접 조사해보려고 합니다.”

“위…… 위험…….”

“딱히 위험할 것도 없으니 상관없습니다.”

단호한 내 답변에 그들은 곧 륀느가 보여준 무위를 떠올린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데…… 저 소녀는 대체 무엇인가. 변이체가 육체능력이 강해지는 것은 봐왔지만. 저런 힘을 발휘하는 건…….”

“륀느, 매우 뛰어난 고성능 생체 골렘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무표정한 얼굴로 륀느가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하하. 골렘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릴.”

“그렇군. 허허허허.”

확실히 이곳에서의 골렘은 단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게 전부다.

자아를 가지고, 저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심지어 음식까지 먹어치우는 존재를 골렘이라 생각할 순 없을 것이다.

게다가 륀느의 모습은 골렘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어찌 되었건 이곳에서 와서 얻은 정보는 좀 전의 전투에서 모두 갚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마…… 마음을 고쳐잡을 순 없겠는가. 사실 우리는 자네의 도움이…….”

“아니.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시오.”

그때 나선 인물이 있었다.

마탑주.

지긋한 수염을 지닌 노인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균열을 조사하고 싶다 하였는가.”

“예. 직접 봐야 알 거 같으니까요.”

“슈바이츠 장로, 그에게 지도를 건네주시오.”

“타…… 탑주!”

슈바이츠 장로가 놀라 소리쳤지만, 그는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우린 그의 행보를 막을 권한도, 힘도 없소. 다들 잊었소?”

당장 륀느만 날뛰어도 이 생존지는 끝장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결과였다.

평화에 안주하고 고여버려 퇴화한 자들의 말로니까.

게다가 이런 대규모 사태를 겪고 지식까지 실전되었으니 이들의 몰골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탑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는지 결국 다른 이들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한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테지만.

“자네가 있어 준다면 우리에게 가해진 이 비참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진대…….”

“걱정 마세요. 제가 찾는 것도 결국 장로님이 찾는 것과 비슷하니.”

내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다만 우리를 구해준 은인을 어찌 그냥 보내겠는가. 길잡이와 호위 병력을 붙여주겠네.”

그의 말에 주변에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탑주의 표정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똑바로 직시하던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저 정도는 되야 탑주 해 먹는다는 거겠지.

그가 정말로 나를 돕기 위해서 호위병력과 길잡이를 파견할까.

절대 아니지.

그는 외려 나를 이용해 그곳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찾으려는 것뿐이다.

균열이 생긴 곳은 거대 서고로 마탑의 잃어버린 마법 기술과 연구 기록들이 그곳에 존재하니까.

본래 되찾지 못할 장소였으나 나라는 존재에 편승하면 그것을 회수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게 틀림없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내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생색까지 낼 수 있으니.

지도자로썬 나쁘지 않다.

게다가 나 또한 괜히 빙빙 돌릴 것 없이 길잡이가 있다면 편한 것도 사실이다.

“뭐, 길잡이는 필요하니 거부하진 않겠습니다.”

“위험한 길일세. 그 외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서로 거래 관계이니 윈윈할 수 있게 갑시다.”

내 말에 탑주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나와 처음 만났던 마법사 홀리곤 분대장과 20명의 부하를 내게 붙여주었다.

“몸조심하게. 비록 자네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은 정말로 위험하니…….”

그중에서도 슈바이츠 장로는 참 인격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연구를 위해 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사지로 내가 가는 게 그리 탐탁지 않아 보였다.

“절대 다치지 말게. 나는 자네 덕분에 목숨을 건졌네. 그런 은인이 죽는 건 절대 원치 않아.”

“걱정 마세요. 어디 가도 쉽게 죽을상은 아니니.”

내 대답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아티펙트네. 자네를 지켜주는 저 소녀를 생각하면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몸조심하게.”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생존지를 빠져나가는 길에 나는 의외의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형. 형이 우리 형을 살려줬다고 들었어요.”

푸석푸석한 감자 조각을 내미는 작은 소년이 나를 올려다본다.

“정말 고맙습니다.”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는 소년은 이 생존지에 살아남은 변이체였다.

꼬리를 늘어뜨린 채 내게 고마움을 표한 녀석은 이내 후다닥 뛰어 도망쳐버렸다.

소년뿐만이 아니었다.

이전의 전투로 내 마법을 이용해 살려낸 이들은 내가 떠나기 전 나를 찾아와 감사를 표해왔다.

살기 팍팍해도 인심이 아예 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애초에 나로 인해 벌어진 문제인데.

속이 쓰리다.

가슴속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감사합니다. 사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존지의 인간들은 나를 사자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사령 마법과는 다른 힘을 이용해 그들을 치료했으니 마법이 아닌 종교에 나 나올법한 신의 사자로 보였던 것이리라.

이들은 신성 마법의 존재조차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륙의 상황이 이들을 급속도로 퇴화시킨 것이다. 과연 페스리사 대륙의 재건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균열이 있는 위치는 사파이어 마탑에서 한참 빠져나와 능선을 넘어가면 나오는 거대한 왕궁에 있었다.

본래 왕실 서고 건물로, 대부분의 마탑에서 일정이상 정보와 자료를 왕실로 보내 이곳에서 보관했었다는 모양이다.

“곧 도착합니다만…… 이곳부터는 괴인들이 자주 출몰하니 조심하십시오. 실제로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 수차례 원정대가 꾸려진 바 있지만, 내부에 무엇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돌아온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10여 차례의 원정대가 전부 전멸했으니까요.”

안 그래도 사람 수가 적은데 더 줄어든 원흉이 원정이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말을 되새기며 걸어가던 내가 멈춘다.

“륀느.”

당장 명령을 내려달라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륀느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자 녀석은 한 손에 라이트 세이버를, 또 한 손에 빠루를 쥐어 들었다.

“마법사님?”

그리고, 그런 륀느의 행동에 의아함을 표한 홀리곤이 나를 부름과 동시에 사방에서 붉은 안광들이 번뜩인다.

“괴…… 괴인!!”

“바, 방진을 갖춰라!”

경악한 홀리곤 분대장을 포함한 20여 명의 마법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괴인의 접근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이들은 지근 거리까지 다가온 괴인의 존재에 경악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들이 나설 것은 없었다.

라이트 세이버와 빠루를 손에 쥔 륀느가 세피로스화를 하지도 않은 상태로 숲을 파괴시키며 닥치는 대로 괴인들을 때려잡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종횡무진 그 자체.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해버린 륀느가 내 앞에 내려섰다.

“높게 평가.”

많은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칭찬이 마음에 드는지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대체 방금 어떻게…….”

“소리가 들렸다고 명시.

“소…… 소리요?”

륀느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한다. 이에 륀느는 그녀가 쓰러뜨렸던 괴인의 팔을 질질 끌며 다시 나타났다.

느긋하게 말하며 쓰러진 괴인의 팔을 잡아 들어 올린다.

아직 살아있는지 쉬익쉬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호흡, 다만 구조 변이로 인한 독특한 소리를 출,”

“그…… 그게 들린단 말입니까?!”

빈사상태의 괴인이라 소리가 큰 것일 뿐. 언뜻 들으면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륀느는 그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

륀느를 두고 경악하는 이들의 얼굴에 신뢰가 서린다.

무엇이 되었건 륀느와 함께 있으면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까지 생기는 모양이었다.

륀느의 사전차단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출중했다.

왕궁 서고로 향하는 길에 균열에 이끌려 모여든 괴인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많았지만 전부 일정 거리 접근하기도 전에 륀느가 쏘아낸 광탄에 모조리 쓸려나갔다.

디셉티콘 편대나 정령왕 혹은 내 힘을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애초에 세피로스화한 륀느의 힘은 단순한 골렘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한 종족의 수장이 바로 륀느다.

비록 지금은 진짜 수장이 아닌 구현에 불과하지만, 그 힘은 가짜가 아니었다.

“이곳이…….”

“입구부터 구역질이 나는군요.”

그렇게 긴장감 하나 생기지 않을 정도로 일방적인 진입이 계속되었을까.

넝쿨이 무성하게 자란 궁궐 내부의 서고에 다다른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왔다면 길을 찾느라 한참을 애썼을 것이다.

“균열은 이 안에 있습니다. 사실 지리적인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만…… 초기원정대도 이 내부에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졌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홀리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먼지가 가득 쌓인 거대한 서고의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이익!!!

기름칠하지 않은 문소리가 들리며 주변의 소음이 사라진다.

어두운 복도가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고 이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기세가 전해져온다.

“운이 좋았습니다. 거체형 변종 괴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실제로 생존지를 공격했던 거대한 변종 괴인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아무런 저항도 없이 진입하게 되었지만 좋은 게 좋은 법.

나는 곧바로 균열이 나타났던 장소를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

공간이 깨지며 발생한 붉은 균열.

그것을 처음 본 내 소금은 간단했다.

과거 지구의 중국에서 발견한 균열과 흡사하다.

아니, 똑같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도 있었다.

중국의 균열에서는 변이체가 나왔다면 이곳에서는 독특한 힘만 쏟아져 나온 것이다.

“적이 사라졌네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여성 마법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리자 홀리곤이 재빨리 명령을 하달했다.

“3인 일조로 주변을 수색하라. 조금이라도 수상한 것이 발견되면 절대 싸우지 말고 후퇴하여 보고할 것. 잊지 마라. 이곳은 과거 수차례 원정대가 전멸한 장소다!”

그는 그렇게 말한 이후 길잡이로 왔던 마법사 몇몇에게 추가명령을 내렸다.

“탑주께서 말씀하신 기록일지들을 빠르게 회수하시오. 적이 없다곤 하나 느낌이 께름칙하니 오래는 버틸 수 없을 테니.”

그 말에 마법사들은 긴장한 얼굴로 균열의 근처에 있는 거대한 원형 책장들을 뒤져 필요한 정보들을 챙겨 공간 확장 가방에 담아 넣기 시작했다.

“원하는 건 찾으셨소?”

이윽고 홀리곤이 나를 향해 물어왔다.

균열을 바라보며 마나를 끌어 올리고 있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내 표정 때문일까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진 않군.”

“아뇨. 생각보다 조금 황당해서 말입니다. 복권 터진다는 게 이런 건지.”

균열을 보던 내가 차갑게 웃었다.

대박.

이러니 헤라클래스가 전혀 발견하지 못했지.

망설임 없이 균열에 손을 밀어 넣는다.

나를 저항하듯 반발력이 가해져 오지만 나는 마나를 끌어 올려 그 흐름을 비틀었다.

그 후 신성력을 이용해 안정화 시키고 사령 마나를 밀어 넣어 방해되는 것들을 몰아냈다.

하나의 힘이 아닌 다수의 힘으로만 발견할 수 있는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어떠한 의지가 나를 막아섰다.

주변이 멈춘 것처럼 시간이 느려지며 처음 보지만 익숙한 힘이 나를 감싼다.

과거 용사 레이나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나를 끝도 없이 방해해왔던 이 세상을 이루는 근간에 해당하는 세상의 규칙.

본래라면 규칙에 간섭하는 미친 짓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지만.

나는 신격을 끌어올리며 의지를 담아 퍼뜨렸다.

안에 좋은 거 숨겨놓은 거 다 알아, 문 열어 새끼야.

일순간 무형무색무취의 강대한 힘이 한 차례 나를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는 내부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대박이 숨어있었다. 다른 영웅들이 찾아내지 못했으나 오로지 지금에 이른 나만이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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