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6화
갑작스런 행동에 주변의 분위기가 말도 못 하게 차가워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큭……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적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는 사내를 한참 동안 직시하던 내가 그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쿨럭…… 쿨럭쿨럭…… 빌어먹을 놈이! 저자를 제압하라!!!”
“누구 마음대로.”
쿠웅!!!
전신에서 상당량의 마나가 흘러나온다.
그래, 애초에 그런 인간들도 있으니까.
이해는 한다.
하지만, 왜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은 전혀 없다.
“읏?! 마…… 마나가!”
“마나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당황한 마법사들의 외침에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마법이 안 나와?”
이 땅은 사령 마나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세상이 되었다.
게다가 사령 마나는 위계질서가 상당한 마나에 속하기도 하고.
지금의 내겐 저런 이들의 마법조차 원천 차단시켜버릴 정도의 지배력을 지니고 있다.
“당연하지, 누구 허락받고.”
“이익!! 발현되라고!!”
악을 쓰는 마법사들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마법 쓰고 싶나?”
“다…… 닥쳐라!”
“원하는 대로 해줄게.”
따악!!
손가락을 튕기기가 무섭게 그들의 사령 마나를 제압하던 마나가 다시 흩어진다.
대신.
“어어어어?! 마, 마나가! 으아아악!!!”
다시 움직이는 마나를 이용해 흑마법을 발현하려던 이들이 갑작스레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사용하게 해줬는데 이번엔 또 뭐가 불만이야.”
내가 한 것은 간단했다.
제압하던 마나를 풀어주는 대신.
화끈하게 폭주시켜놓았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마법을 쓰는데 마나 유동량에 비해 경지가 낮으니…….
심장의 서클이 뒤틀려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커헉!!”
“쿨럭!! 괴…… 괴물…….”
순식간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마법사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상황에 놓인 건지 이해한 듯 보였다.
그리고, 마법사로서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겼던 일이 사실이라는 것에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나갔다.
“큭……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을게요. 루비 마탑과의 전쟁을 원한다면…….”
“저…… 전쟁이라니! 그건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탑주의 외침에 사내는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자가 나를 공격하지 않았소! 이게 선전포고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마탑주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 물었다.
“해봐.”
“뭐…… 뭐요?!”
“해보라고. 사파이어 마탑은 애초에 나와 관계가 없으니 내게 전쟁선포를 해. 그럼 그대로 받아줄 테니.”
담담한 내 말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개개인의 힘을 믿고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군!”
“개개인의 힘?”
피식 웃으며 내가 그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퍼엉!!!
동시에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육신이 크게 한 차례 흔들리며 침묵한다.
내장이 폭발하여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데이비 마법사…… 대체…….”
“호칭 편하게 해주세요. 이쪽도 불편하니.”
“어쩌자고 그를 죽인 게요…….”
“어쩌긴요. 저는 그렇게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
“이 땅에 인간이 몇이나 남아있을 것 같소. 아무리 루비 마탑이 고압적이고 지배적인 곳이라지만 그들도 이 땅에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요.”
“처음엔 사파이어 마탑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대답을 회피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생존지에 사람이 몇 남았습니까.”
“몇천이 전부요.”
“그 외에는요?”
“루비 마탑도 다수가 존재하지만, 그 외엔 없소. 확인된 바에 따르면…….”
“생존자는 그들뿐이라 이 말이죠.”
“물론, 소수의 생존자도 있을 순 있겠지만.”
“타…… 탑주님!!”
그때였다.
“루……루비 마탑에서 대규모 병력을!”
“뭐라?!”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었네요.”
그 노림수가 나인지, 아니면 사파이어 마탑인지는 굳이 생각해본들 의미가 없다.
* * *
사파이어 마탑과 동시에 또 다른 생존지. 루비 마탑.
그곳은 현재 마탑주가 공석이다.
하지만 차기 마탑주라는 이름의 한 인물이 대부분의 지휘를 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했다.
찬반으로 결정되는 사파이어 마탑과 다르게 루비 마탑은 의외로 마교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난다.
사파이어 마탑주의 말에 따르면 루비 마탑은 전투 전문 마탑이라고 한다.
마도 병기부터 공격형 마법 또한 사파이어 마탑에 비하면 상당이 고수준이기도 했다.
문제는.
“루비 마탑도 원래 이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니었다고요?”
나는 장벽 너머로 밀려오는 다수의 마법사 병단과 마도 병기, 혹은 공성용 골렘들을 보며 물었다.
“그렇소. 조금 호전적이긴 해도…… 이토록 과격하고, 잔인한 곳은 아니었소. 하지만 전대 마탑주가 균열 조사 중 사망한 이후로…….”
균열 조사 중에 사망했다 이 말이지.
나는 말을 타고 다가오는 이들을 흘끗 바라보았다.
“차기 마탑주라는 자가 생겨나면서부터 모든 게 변했소. 그자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으나 루비 마탑의 이들은 마치 그를 하나의 신처럼 모신다고 들었소.”
“신이라…….”
우우웅…….
이윽고 장벽의 너머로 늘어선 마법사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왔다.
동시에 확성 마법이 사용된다.
[지금이라도 우리 루비 마탑의 마법사들을 죽인 그자를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오!!]
애초에 내가 죽일 거라고 판단했으니 저런 말이 나오지.
그 외침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듯 허공에 중얼거리며 주저앉아있는 사내. 루이를 바라보았다.
루이의 몰골은 척 봐도 좋지 않았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미쳐버린 것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자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30분 내로 수로를 복원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일부만 복원해도 놀랍다 칭찬해줄 정도인데 그것을 무슨 수로 그가 복원할까.
결국, 시간이 흘러 루이를 추종하던 이들이 모두 비명횡사하고 나서야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악을 쓰다가 그대로 미쳐버렸다.
물론, 중요한 건 루이의 신변이 아니었다.
“그 문제의 소지가 높은 차기 마탑주라는 놈은 오지 않았나 봅니다.”
“그…… 그런 듯하오.”
투웅!!! 퉁!!
그때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마도 병기로부터 거대한 광탄들이 마치 투석기 날아오듯 장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륀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아오른 륀느의 손등 위로 커다란 광자포 같은 것이 생겨난다.
치이이잉…… 투쾅!!!
그리고 단 한발이 수십 갈래의 섬광으로 쪼개지며 날아오던 광탄과 충돌해 모조리 지워버렸다.
모두가 경악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조용히 그들을 직시했다.
“륀느, 명령 대기 중.”
“아니야. 됐어.”
담담하게 말하며 홍단이를 뽑아 든 나는 망설임 없이 루이의 목을 날렸다.
서걱!!
홀로 중얼거리던 그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탑주님.”
“대체…….”
“루비 마탑이 전쟁을 건 대상은 사파이어 마탑입니까. 아니면 나입니까.”
내 질문에 그가 침묵한다.
“그러니까 나서지 마세요.”
담담하게 말하며 장벽에서 뛰어내린 나는 홍단이 하나만 내리 든 채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퉁!! 퉁!!!
동시에 나를 향해 마탄들이 날아든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마탑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을 향해 걸어가던 내가 천천히 남은 손에 청단이를 불러내 쥐었다.
[초중검]
[태산쪼개기]
쩌억!!!
압도적인 중량이 서린 종베기가 아래에서 위로 쳐올려 진다.
투웅!!
동시에 청단이의 권능이 발현되며 내 주변 영역 전체에 들어온 마법들을 모조리 잘라내 버렸다.
퉁!!! 퉁퉁!!
그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들은 하나같이 내게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타나토스도 어떻게 못 한 권능을. 고작 이들이 어찌할 수나 있을까.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이윽고 그들의 병대 뒤쪽에 있던 말을 탄 기사와 같은 이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쐐기형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제법 훈련이 된 상대.
애초에 이들은 이용당하고 있는 것뿐일 것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두두두두두두두!!!
맹렬하게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걸어가던 내가 홍단이를 가볍게 튕겼다.
[마령검]
[바람 베기]
간단한 일검이 내 손을 통해 펼쳐진다.
하지만 내가 쏘아 보낸 검기는.
절대 가볍지 않다.
“미안한데. 내가 이미 죽은 놈에게 윤리를 챙길 생각은 없다.”
동시에. 주변의 대지가 뒤틀리며 그 안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수의 스켈레톤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데스 로드의 이름으로 명한다.”
살되 죽은 자들을 모조리 척살해라.
“금기를 어기는 놈에게 자비는 사치다.”
금기라는 건 단순히 자신만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 주변, 거대한 영역, 혹은 차원 단위로 문제를 일으킨다.
그런 놈에게 자비?
사치도 적당히 부려야지.
* * *
데이비라는 인물의 실제 전투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감상은 참 간단했다.
경악스럽고, 보고도 믿기 힘들다.
마법사 중에서도 수많은 고위 마법사들을 봐왔지만, 그는 너무 이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강했다.
처음엔 륀느가 호위 역으로 있는 치료능력을 지닌 이라고만 생각했다.
너무 어린 외관도 한몫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는 그는 정말 그가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보게…… 륀느 양.”
탑주가 굳은 얼굴로 적의 본진을 향해 다가가는 데이비를 보며 륀느에게 말했다.
“자네의 주인을 말릴 순 없겠는가…… 고작 두 번이지만 저들도 충분히…….”
“데이비 님의 명령은 절대적. 륀느, 명령을 어길 이유가 없다고 분석해.”
“사람이 죽는 일이네! 외향은 저래도 전부 사람일세! 이 땅에 얼마 남지 않은……!”
급히 소리치던 탑주는 륀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멈칫했다.
“의문. 왜 저들을 사람이라 판단하는가에 대한 해석을 요구.”
“무슨…….”
“시체. 영혼이 빠져나간 꼭두각시. 살아있는 언데드. 데이비 님은 이들을 두고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고 분석해.”
“그게 무슨…….”
“모두 시체.”
다 죽은 이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데이비가 저토록 잔인하게 모조리 죽여나간 것일까.
“그…… 그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탑주의 당혹스러운 외침에 륀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 님의 신안을 륀느가 높게 평가.”
탑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협상을 위해온 마법사의 목을 틀어쥐었을 때 했던 말.
너희를 구원해주려던 생각이 싹 증발해버렸다.
그건 이 땅에 있는 인간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살되 죽은 자들.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말이었다.
곧이어 그의 주변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허억?!”
“세…… 세상에!”
경악한 외침이 사방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흑마법사이며 사령술사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데이비의 주변으로 기어 나오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어마어마한 양의 스켈레톤들이 그의 지배하에 놓인 것이며. 저 정도 양을 지배하기 위해서 그가 이뤄야 하는 경지가 어떤 수준인지를 말이다.
“대체…… 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탑주조차 혼란스러움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데이비의 무력을 직접적으로 본 이들 중에 데이비를 경계했던 이들은 아직 자신의 목이 붙어있다는 사실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콰앙!!!!!
그때였다.
데이비의 손끝을 따라 진군하던 스켈레톤들 사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 사이에서 누군가가 데이비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숨이 막히는 사기를 품은 자.
절은 인물이었지만 그 눈동자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찾았다. 나의 완벽한 육신.”
스산한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가는 그의 주변으로 스켈레톤들이 모여들지만, 무형의 힘에 튕겨 나가며 사라진다.
하나하나가 강대한 힘을 품은 스켈레톤인데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이다.
“저…… 저자가 차기 마탑주…….”
루비 마탑의 차기 마탑주.
이번 일의 원흉.
그의 등장이었다.
그는 상상도 못 할 사기를 내뿜으며 데이비를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놔…… 네 몸을.”
“육신은 얼어 죽을. 세 들어 살 거면 월세부터 내 이 새끼야.”
싸늘하게 일갈하며 데이비가 홍단이를 빙그르르 돌렸다.
“생명을 구원할 방법은 단 하나. 정화뿐이다만. 선을 넘은 이상 정화를 바라진 마라.”
그 말을 끝으로 데이비의 주변으로 유형화된 검은 기류들이 넘치기 시작했다.
“흐…… 흐흐흐흐…… 흐흐흐하하하!!”
그리고, 그런 데이비를 본 차기 마탑주가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광소하기 시작했다.
“이야…… 끝내줘…… 정말…… 완벽한 육체야.”
모두가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는 와중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데이비에게 다가갔다.
“그거 알아? 나 이런 것도 가지고 있어.”
차기 마탑주가 로브를 벗어던졌다.
긴 검은 머리를 지닌 소녀였다.
그녀는 스산한 미소와 광기 어린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으로 데이비라는 인물에게 익숙한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생각해보니 여기가 일루미나티의 본진이었지. 그런데 일루미나티는 내가 박멸해버렸는데…….”
그녀의 행동에 데이비가 고민하듯 중얼거렸다.
“너…… 설마…….”
그리고 놀란 듯 소녀를 바라본다.
“언 듯 닮았다 싶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