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7화
투쾅!!!!
그녀의 전신에서 사기가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섬광이 일었다.
장벽 너머 기다리고 있던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쏘아져 들어와 그녀에게 파고든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손에 쥐어진 빠루가 정확히 그녀를 후려치듯 휘둘러져 들어왔다.
“륀느. 감정회로가 차가워지는 것을 감지. 이것을 께름칙함이라 판단.”
쩌어어엉!!!
막대한 힘이 서린 일격이 그녀를 후려친다.
하지만 그녀의 육신에는 닿지 못했다.
마치 사기가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를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어에 륀느의 눈이 아주 잠깐 뜨여졌다.
투쾅!!!!
동시에 무형의 힘이 그녀의 전신을 강하게 후려쳐 날려버렸고 륀느의 신형이 힘없이 튕겨 나갔다.
콰드드득!!
지면을 부수며 밀려 나간 륀느가 정확히 그녀를 시야에 담았다.
“무형. 특수한 에너지를 감지. 륀느가 이것을 미지라고 판단해.”
“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향해 륀느의 손에 라이트 세이버가 서렸다.
마치 채찍처럼 늘어난 라이트 세이버는 곧 그녀의 의지에 따라 정확히 그녀를 향해 파고들었고
섬광처럼 수차례 그녀를 공격했다.
기존의 언데드와 다른, 그녀를 따르는 존재들이 일거에 휩쓸려 나가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쾅!! 쾅!!
오히려 세피로스화 하지 않았다지만 충분히 강한 륀느를 서서히 압도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흑마법사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의 사기가 주변을 감싸고 검은 안개가 되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그녀를 보호하고 반격을 가했다.
그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기가 그녀를 보호하고 움직인다.
쩌엉!! 쩡!! 투쾅!!!
수차례 충돌 끝에 튕겨 나간 건 륀느였다.
바닥에 쓰러진 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륀느가 아무렇지도 않게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무덤덤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빛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세피로스화.
6익의 날개와 천칭을 녹여낸 창이 그녀의 손에 쥐어진다.
한 종족의 수장이었던 세피로스 륀느의 힘이 완전히 서린다.
“목표 변경. 륀느가 제거를 높게 평가.”
공기가 완전히 변한다.
륀느의 머리 위에 뜬 기하학적인 문양의 헤일로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며 막대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아앙!! 쾅!!
다시금 륀느와 차기 마탑주라 불리던 소녀가 충돌했다.
카가가가각!!! 쩌엉!!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이번엔 륀느의 공격이 그녀를 서너 걸음 밀어냈다.
드디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왜…… 방해하는 거야…….”
소녀가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사기가 안개처럼 퍼져나가며 쉴 새 없이 륀느를 압박하듯 공격해 들어갔다.
마법 같으면서도 마법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움직인다.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고 그 여파가 사방을 휩쓴다.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그녀가 불러낸 언데드. 즉 언데드이되 언데드가 아닌 망자들을 스켈레톤을 이용해 빠르게 정리했다.
“대체…… 차기 마탑주가 어쩌다가…….”
“알고 있습니까?”
“이 사태가 벌어졌을 초기에 한 번 들은 바는 있소. 사실 과격하고 호전적이긴 해도…… 루비 마탑의 마탑주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아이였거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혹…… 저 아이도 살되 죽은 망자인가.”
“아뇨. 망자는 아닙니다.”
쾅!! 쾅!!
그래도. 세피로스화 한 륀느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일 줄 몰랐는데.
그녀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는 사실 관심 없었다.
다만,
“륀느. 물러나.”
카아앙!!!
차기 마탑주, [로 사우란]과의 맞충돌 후 바닥을 끌며 거리를 벌린 륀느가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등 뒤로 돋아난 6장의 날개가 펄럭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데이비 님. 륀느가 해치울 수 있다고 판…….”
“아냐. 널 못 믿는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를 물린 뒤 내가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육체…… 육체!!”
“그럼 어디 한번 집도해보자.”
쩌어어엉!!!
순식간에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사기로 이루어진 검은 안개가 그녀를 보호하지만, 충격이 전해졌는지 그녀의 육신이 비틀거렸다.
동시에 무너지려 하는 그녀를 감싸듯 검은 안개가 그녀를 부축했고, 남은 안개가 마치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취하며 그대로 내게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왔다.
쩌엉!! 콰직!!!
한 차례 공격을 막아낸 뒤 거리를 벌리며 바닥을 걷어찬다.
부서진 파편이 곧 퉁겨져 올라오자 나는 그대로 축구공을 차듯 가볍게 걷어차 날려버렸다.
물론, 가볍게 걷어찬 것치곤 그 위력이 완전히 다른 궤도에 이르지만.
부서진 파편에 마나가 스며들며 그녀를 감싼 안개를 후려쳤고 결국 안개는 파훼. 그녀는 그 충격파에 휩쓸려 튕겨 나가버렸다.
“세상에…….”
마법사가 육체능력을 발현하는 건 상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괜히 마법사에게 골방 약골이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이 붙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규칙에 가까운 사실을 전면적으로 내가 부정하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아…… 아파…….”
순식간에 소매 부분이 찢겨 나가고 피를 뚝뚝 흘린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반면 그녀와 한 차례 충돌한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신격을 얻었다더니 이제는 자잘한 흐름(운명) 같은 건 저도 모르게 변환시킨다라…….
덕분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게 씁쓸할 따름이다.
그녀의 이름은 [로 사우란]
이름이 비슷하다고?
로 라는 명칭은 절대적인 업적을 지닌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별칭이다.
뭐. 본래 초기 로 라는 명칭이 붙은 인물은 이 세계에서 지워졌으니 그녀가 첫 케이스이긴 하지만.
나는 그런 명칭을 떠나서 눈앞에 있는 검은 머리칼의 소녀만큼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 이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보호하는 사기.
내가 그녀에게서 익숙함을 느낀 이유.
어쩐지 모르게 그녀와 닮은 모습.
그녀는.
아무래도 로 아이아스와 무언가 연관이 있어 보였다.
혈육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애초에 그녀가 혼인을 했던가.
중요한 것은 데스 로드의 아티펙트를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데스 로드의 힘 중 일부인 막대한 사기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
마치 이 아이를 헤치지 말아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것도 정도에 따라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녀는 상태가 상당히 심각했으니 말이다.
첫 충돌 이후 그녀의 흐름이 보였다.
신격을 얻은 이후 간간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 인간에 대한 것들. 그것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한 힘을 지닌 자가 불안정해지면 그 여파는 거대해진다.
당연한 결과였다.
페스리사 대륙의 마탑 중 루비 마탑의 차기 마탑주라 불리던 소녀, [로 사우란]은 그런 존재였다.
탑주가 어느 날 데려온 그녀는 마법을 배운 초기부터 제 선생들을 우습게 넘어설 만큼의 재능을 보였다.
당연히 탑주는 그런 그녀의 재능에 매우 기뻐했다.
그녀의 마법은 파괴적이었고, 그 어떤 흑마법사보다 짙었으며, 그 어떤 사령술사보다 지배력이 강했으니까.
역사상 유례없는 재능을 선보이는 그녀가 부족한 것은 약간의 상식 정도였지만 상관없었다.
루비 마탑은 힘을 가장 고 평가하는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갈수록 성장해갔다.
마치 사령 마나가 그녀를 스스로 따르는 것처럼 강해졌다.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식을 배워가던 그녀가 뒤틀려버린 건 전대 탑주의 사망사고 이후였다.
그와 함께 균열 조사에 나섰던 그녀는 완성되지 못한 강대한 힘과 막대한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힘에 노출되었고.
그렇게 뒤틀려버렸다.
눈앞에서 사실상 부모나 다름없던 탑주를 잃은 그녀의 정신은 붕괴되어 본능만 남았고.
어째서인지 내 육신을 노리기 시작했다.
너무 강하기에, 오히려 더 불안정한 상황에 노출된다.
현재 그녀는 완전하지 않은 데스 로드의 사령 마나 중 일부. 즉 사기와 생명력이 폭주로 인해 생겨난 진짜배기 괴물이었다.
다른 이들은 일반적인 사령 마나를 지닌 채 괴인, 추락자. 변이체가 되었지만, 만약 데스 로드 급의 사령 마나를 지니고 그렇게 뒤틀릴 경우엔?
본래 그 정도의 고위급 사령 마나가 뒤틀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만, 그녀는 불안정했다.
그래서 뒤틀렸다.
“후…….”
물어볼 수도 없고. 직접 저 소녀에게 물어본들 결과가 달라질까.
애초에 로 아이아스의 사망 이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그녀의 혈육이 남아있겠는가.
이바노프와는 다른 케이스였다.
애초에 영웅의 후손이 남아있는 경우는 사실상 칼디라스의 도움으로 존재해온 팔란이라는 성이 전부였으니까.
“…….”
내가 말없이 내 손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하자 그녀가 비틀거리며 손을 뻗었다.
동시에 검은 사기들이 순식간에 내 팔다리와 몸을 휘감는다.
“아파…… 갖고 싶어…… 내가 가질래…….”
그녀가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어마어마한 압박이 전해지며 사지를 찢을 것처럼 움직였다.
유형화된 사기.
그것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데…… 데이비!”
놀란 이들의 외침을 무시한 채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녀를 보던 나는 손목을 포박한 검은 안개를 무시한 채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르릉…….
동시에 청단이와 홍단이가 모여든다.
너무 강한 힘을 지녔기에 더 뒤틀린 존재.
너무 강한 힘을 지녔지만, 본인이 아니기에. 제어할 수 없는 힘이기에 뒤틀려버린 존재.
미쳐버린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사실상 이 땅에 남은 균열로 인해 생긴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구원은 못 해준다.”
“…….”
“운 좋은 줄 알아. 그래도 깔끔하게 소멸시켜줄 테니까.”
스릉…….
청단이와 홍단이가 합쳐져 만들어진 얇은 장검인 초단이가 청적색의 기류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내 전신에서 데스 로드급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데스 로드 급 마나는 로 아이아스의 마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경지는 거의 동일하다.
물론, 그녀에게 미치기엔 아직도 부족할 테지만. 아예 손도 못 쓰던 이전과는 달랐다.
“줘…… 줘…… 내게 줘…….”
칭얼거리듯 다가오던 그녀의 주변으로 막대한 사기가 모여들며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취했다.
동시에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던 사기들이 회수되며 그녀가 만든 언데드이되 언데드가 아닌 것들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정교한 마법도, 다른 무언가도 아닌 그저 데스 로드의 아티펙트를 이용한 막대한 힘을 이용한 단순한 공격.
“네가 왜 데스 로드의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는지는 묻지 않으마.”
애초에 그녀가 가진 건 일루미나티가 가진 것과 다르니까.
어쩌면, 그녀는 정말 로 아이아스와 무슨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더더욱.
내가 해야 한다.
초단이의 검에 뇌격과 화염이 머무른다.
과거 마계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려 했던 발록의 왕 투신 사우른에게 보여주었던 검신 하레스의 최종적인 검술이 다시 펼쳐졌다.
검게 변한 화염과 푸른 뇌격이 머무른다.
주변의 대기가 진동하고 신격을 얻은 내 전신으로 막대한 힘이 쏟아져 나왔다.
[중검]
[마스터피스]
[노네임드 킹(무명왕)]
콰지지직!!
그그그그그극!! 쩌어엉!!
소닉붐을 일으키며 내게 주먹을 휘둘러오는 검은 사기의 형체를 향해 정확하게 검을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비스듬히 쳐올렸다.
오른손을 따라 초단이의 검격이 지상을 가른다.
그리고.
쩌억!!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대지가 갈라졌고.
하늘이 갈라졌으며.
아주 한순간 하늘에 뜬 낮에도 보이는 달이 뒤틀린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촤라라라락!!
두 자루로 분리된 청단이와 홍단이를 회수한 나는 그대로 굳어버린 로 사우란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를 지켜주던 사기는 흩어져 사라졌고, 그녀의 육신에 남은 생명력이 모조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로 아이아스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를 이를 결국 내 손으로 베어버린 것이다.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
구원은 해주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흔적이라면 내 손으로 거둬주는 게 맞을 터.
그때였다.
“컥…… 커헉?!”
갑자기 상황을 지켜보던 마탑주가 고통스러워하며 무너진다.
그뿐만 아니었다.
생존지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며 무너진다.
“데이비 님.”
“폭주라…….”
너무 막대한 생명력이 폭주한다.
노네임드 킹의 여파로 갈라진 대지가 뒤흔들리고 뒤틀리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네.”
그녀가 죽으면 이런 여파가 생길 거라는 건 생각했지만 너무 빠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몸을 그대로 띄워 올렸고 빠르게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사령 마나와 신력을 이용해 대지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수십? 수백 킬로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내 의지를 따라 사령 마나들이 하나의 마법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곧바로 테스트해볼 줄은 몰랐는데.
“만물을 평안케 하옵시기를 태초의 의지 프리아 여신께 고하오니.”
기도를 읊기 시작하는 내 몸에서 너무 막대한 사령 마나가 빠져나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토록 방대한 생명력인데. 고작 이 대륙을 제어하는 게 전부였다.
[당신의 어린양이 어두운 길을 걸으매. 발 헛디디지 않게 밝혀주시옵고. 가시밭길을 걸을 때 찔려 상처가 나게 하지 않도록 하시옵고.]
사령 마나에 신력. 거기에 프리아 여신의 은총을 가한다.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이내 변하기 시작했다.
대지가 뒤틀리며 지면 속으로 파고든 마법진이 곧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땅이 떠오르며 곧이어 이내 하나의 구체처럼 모여들기 시작했고 서서히 내게 가까워진다.
[당신의 은총에 내가 날로 먹을 수 있기를. 기도하오니.]
[세상을 구하고 싶으면 있는 은총 없는 은총 모조리 끌어내 내게 투자하시지요.]
츄라이 츄라이.
콰드드드득!!!!
거대한 파편을 흘리며 떠오른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는 곧 거대한 구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 구체의 겉면에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의 정교한 수로가 만들어졌다.
방대한 생명력이 폭주한다. 생명력을 거둬들이면 되지만 그렇게 하면 이 땅도 얼마 안 가 생명력 고갈 현상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생명력을 거둬들임과 동시에 필요 생명력을 순환시켜 이곳의 차원을 본래의 모습으로 바꾼다.
타나토스의 신격이 서린 카드를 이용해 폭주하는 생명력을 먹어치우고 남은 생명력을 내가 만들어낸 거대한 달에 새겨넣었다.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는 생명력이 빨려 들어가고 다시 나오며 그 양이 조절되기 시작했다.
몇 차례 접고 접어서 만들어낸 거대한 구체형 마법진. 절대 파괴되어선 곤란하니 지상에 둘 순 없다.
나는 내게 허락된 신력을 다량이용했고 그걸 그대로 이 차원의 궤도 바깥으로 투사해버렸다.
어느 정도만 흘러나가면 그때부터는 알아서 공전할 테니까.
단단하게 뭉쳐진 거대한 구체는, 이 세상에 없던 또 하나의 작은 달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내가 만들어낸 작은 달.
쓰러진 채 그것을 보던 이들의 눈에 경악과 놀라움이 서린다.
단순 기적의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보일 테니까.
“쿨럭…….”
별을 부수는 건 쉽지만.
아주 작더라도 달을 만들어내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하는 페스리사 대륙의 생명력을 보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륀느에게 손을 뻗었다.
나를 향해 날아와 나를 부축하는 그녀의 팔을 잡은 채 말한다.
“돌아가자.”
이미 변해버린 이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부터 태어나는 아이들은 인간일 테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전부 끝난 셈이다.
그 말과 함께 차원의 벽이 찢어지며 나와 륀느의 모습이 창공에서 사라졌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신화에 가까운. 또, 듣는 것만으로도 온 손발이 오글거려 미칠 것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데엔 사실 그리 복잡한 과정도 필요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