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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38화 (837/1,559)

제 838화

235. 초대형 문 프로젝트

데이비가 사라진다.

남겨진 페스리사 대륙의 이들은 좀 전 벌어진 사건을 보면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들이었다.

“탑주님…….”

지친 얼굴로 다가온 슈바이츠 장로가 입을 열었다.

“대체…….”

“예?”

“그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들 한다.

그게 현재 사파이어 마탑주의 신념이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 현상은 도저히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도저히 인간이 도달할 수 없을 법한 언데드 지배력을 지닌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검술? 그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간간이 마검사라는 존재가 없진 않으니까.

그런데.

인간이 대륙 전체의 생명력을 컨트롤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인간이…… 일개 인간이…… 달을 만들어?”

하늘에 뜬 작은 달.

페스리사 대륙에 떠 있는 하나의 달은 거대하다.

그것에 비하면 작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땅을 들어 올려 뭉치고, 그것으로 달을 만드는 존재.

아무리 전설상의 9서클이라 해도 이런 것이 과연 가능한가.

‘아니, 절대 불가능하다!’

곰곰이 생각한 마탑주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장로!! 장비! 장비를 가져오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명력 측정장치를 가져오라 이르게! 어서!”

마탑주의 당황한 외침에 슈바이츠 장로는 허겁지겁 연락을 넣었고 곧 생명력 측정장치를 가져와 사용했다.

그리고 모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인간이 품고 있는 기존의 생명력을 아득히 뛰어넘던 수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저…… 장로님, 탑주님.”

그것도 놀랍건만.

곧이어 한 마법사가 가져온 서신을 본 이들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그…… 데이비 마법사. 그자가 주고 간 서신과 책입니다. 자신이 사라지면 그때 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탑주는 홀린 것처럼 서신을 낚아채 펼쳤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털썩 주저앉은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이에 놀란 슈바이츠 장로가 책을 받아들고 그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 또한 털썩 주저앉았다.

도저히 읽을 수가 없는 문자로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서신 만큼은 페스리사 대륙의 어로 적혀 있었다.

[이 책이 앞으로 당신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겁니다. 해석은 뜻대로 하세요.]

그 내용이 전부였다.

“탑주…… 설마…….”

그리고 그들은 데이비라는 인간이 남기고 간 편지를 이상하게 곡해하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아무래도 주신께서 강림하신 모양일세…….”

신을 보좌하는 6익의 천사. 그리고 달을 만들어낸 신.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압도적인 힘. 어마어마한 지배력.

대륙을 감싸는 생명력 전체를 제어하는 것까지.

“장로. 신전을 하나 만들게.”

이윽고 탑주가 중얼거렸다.

“이것은 아무래도…….”

근엄하고.

진지하며.

아주 경건하게.

그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았다.

신을 부정하는 마법사가. 기도를 올린다.

“이것은 경전이로구나!”

착각이다.

데이비가 준 것은 단순히 로 아이아스가 저술한 흑마법학 개론 중 아주 일부일 뿐이었지만.

그것이 경전으로써. 또 데이비라는 인간이 동상까지 세워지며 신으로 추앙받는 데엔 많은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붉은 공허의 균열, 일루미나티 추락자 등등. 부서져 가던 페스리사 대륙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 * *

“데이비!”

티오니스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나를 발견하고 달려든 것은 일리나였다.

그녀는 시녀들이 보고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지 그대로 돌진해왔고, 그대로 내 품에 몸을 던지듯 안겨 왔다.

“컥!”

순식간에 깔아뭉개듯 안겨 끌어안는 일리나의 뒤로 에이리아가 청초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잘 있었어?”

“당연한 걸 물어? 대체 어딜 가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며칠인데?”

그래. 새색시를 두고 며칠 동안 비운 것부터가 이상하긴 하지.

일리나와 에이리아 또한 신혼여행을 가야 하건만.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건지.

“며칠?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격하게 소리친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

뭔가 서러움이 폭발한 것일까.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너…… 두 달 동안 행방불명이었어…… 알아?!”

고작 며칠이었는데?

표정이 굳은 내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에이미! 지금 일자가 몇이지?”

“저…… 그게 저하……”

이후 그녀가 말해준 시기는 놀라울 정도였다.

내가 페스리사 대륙에 간 것은 고작 며칠 정도.

하지만 이곳에선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말이 안 되는데.

차원의 벽이 허물어진 것도 있지만.

각 세계의 시간대가 비틀리는 경우는 사실상 굉장히 어려운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물론 초기 지구는 넬타리드로 인해 시간대가 엉망이 되어있었다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이렇게 시간대가 멋대로 넘나드는 건 신격에 의한 무언가가 아니고서야…….

생각하던 내가 멈칫했다.

“데이비?”

“아무것도…… 아니야.”

굳은 얼굴로 중얼거린 내가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시간대가 뒤틀린 모양이야.”

“어서 가봐. 페르 언니가 너만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리고?

“좋은 소식도 있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는 에이리아를 보며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후 페르세르크를 찾아간 나는 담담한 얼굴로 뜨개질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다녀왔어. 페르.”

“누구십니까?”

“뭐?”

“손님이시군요. 죄송합니다만 준비가 미흡하니 다음에 다시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야. 장난치지 마.”

“장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생긋 웃는다.

“혼인 올린 지 얼마 안 된 신랑이 아이까지 생긴 부인들을 내팽개치고 두 달 동안 소식이 없어 놓고 장난?”

“그건…… 시차가 뒤틀…… 잠깐.”

뭐라고?

내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미묘한 공기 속에서 나는 문득 그녀가 뜨개질하고 있는 것이 목도리나 커다란 옷이 아닌 마치 인형의 옷 같은 작은 옷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방금 뭐라…….”

“에이리아. 아이를 가졌어. 데이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굳어있던 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에이리아가 붉어진 얼굴로 옅게 웃어 보였다.

“이번엔……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소중한 아이를…….”

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나로 인해 프리아 여신이 점지해준 아이를 잃었다.

그 당시엔 내가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이 망할 태초 신은 그런 내 정보를 그녀에게 담아 넣어 처녀 수태를 시켜버린 것이다.

에이리아를 받아들였던 것도 사실상 그것이 원인이었고.

“언제…… 부터야?”

“알아낸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본래라면 더 있어야 증상이 나타날 테지만……고르네오 남작님이 건강진단을 해주시다가 알게 되었어요.”

고르네오 남작. 현재로선 하인스 아카데미에 의학 교수로서 부임하고 있으며 내가 없을 때 페르세르크를 포함한 세 여인의 건강을 확인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있자 에이리아가 문득 불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혹시…… 원치 않으셨던 건가요. 오라버니?”

침울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나는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인해 주체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아빠…… 내가 진짜 아빠가 됐다고…….”

오랜 시간 병실에서 살아오며 전자매체를 제외하고 세상 사람과 만나지도 못했던 전의 삶.

수많은 문제로 인해 사실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던 이번 삶.

두 개의 삶에서 처음으로 얻은.

정말로 내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에이리아의 배 속에서 태동하고 있다.

“내가…… 내가 아빠가 된다고……”

“데이비?”

“뭐……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 애기 꼬까라도 먼저 구해야 하나? 아니면 애기 방을? 모빌은?!”

“진정해 미친놈아!”

“아니 어떻게 진정하라고 이걸!”

허둥지둥거리는 그 모습에 일리나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페르세르크는 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 꼭 그때 같구나!”

“그때…… 요?”

“그게…… 데이비가 본녀와 혼인했던 날.”

그 한마디에 일리나와 에이리아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축하해 데이비. 그대도 이제 진짜 아빠가 된 게야.”

“고…… 고마워 에이리아.”

“제…… 제가 더 감사한걸요. 오라버니…… 이렇게 소중한…….”

결국, 눈물을 보이는 에이리아를 끌어안아 주자 그녀는 내 품에 안겨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눈물을 그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소중한 것을 쓰다듬듯 자신의 배를 만지는 에이리아를 보며 일리나가 킥킥 웃어 보였다.

“경사지? 에이리아가 제일 먼저 네게 알리고 싶다고 해서 아직 아무도 몰라. 다만…….”

“이 사실을 린디스 제국의 데오르트 황제가 알게 되면 참 재밌을 테지.”

페르세르크의 장난기 서린 눈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혼인식도 제대로 올리기 전에 그녀에게 손을 댔다는 뜻이 될 테니까.

극진한 딸바보인 데오르트 황제가 대뜸 칼을 들고 와 설치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이다.

물론 정말 그런다면 가만히 맞아줄 생각은 없다.

그녀와 나는 이미 혼인의 맹약을 맺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장인어른인데…… 한 대만 맞고 열 배로 돌려드리면…….

“좀 부럽긴 한데…… 좋겠다?”

“너무 놀리지 마셔요. 언니, 제가 운이 좋았던 것뿐인걸요?”

“나중에 아이가 먼저 태어났다고 구박받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본녀가 책임지고 데이비를 아작낼 테니 걱정 말아.”

“왜 내가 뭉개지는 건지 설명 좀 해봐라.”

눈을 흘기며 페르세르크를 째려보자 그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인다.

“적어도 본녀는 일리나와 에이리아를 그런 거로 차별할 생각이 없거든.”

“나…… 나도 마찬가진데…….”

“저도에요.”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알면서 이렇게 모인 이들이다.

게다가 왕위계승권이 없는 나의 입장과 차기 가주라는 자리는 애초에 누가 되건 상관이 없는 이들이었다.

일리나가 입맛을 다시며 에이리아를 간질이자 그녀가 꺄르르륵 웃으며 버둥거렸다.

에이리아의 회임.

경사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페르세르크에게 먼저 눈이 갔다.

그녀도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다.

반신의 격에 올라 그녀를 환골탈태시켰음에도 생명의 징조는 오로지 온전히 프리아 여신의 손에 탄생한 생명체에게만 허용되는 것이니까.

페르세르크의 본래 육신은 이미 오래전 검신 하레스의 노네임드킹과 함께 소멸했다.

“죄송해요. 페르 언니…… 제가 먼저…….”

“아니. 거듭 말하지만, 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아.”

“하지만…….”

“씁.”

그녀가 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본녀는 비록 아이를 가질 수 없지만…….”

그녀가 키득거렸다.

“청단이와 홍단이가 본녀를 엄마라 불러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게지.”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그 순수한 두 아이가 엄마라고 따르는 건 페르세르크가 전부였다.

퐁!! 퐁!!

“엄므아아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멋대로 아공간이 열리며 두 자루의 검이 멋대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앙증맞은 청발의 꼬마 소녀와 적발의 꼬마 소녀로 변하며 대뜸 페르세르크에게 달려들 듯 안겼다.

“엄마! 홍단이 막막! 륀느랑 놀고 와써!”

“청단이도 재, 재밌게 노라써요!”

워낙에 흥분한 건지 말이 꼬이지만, 확실히 처음에 비하면 발음이 엄청 좋아진 게 보였다.

아비트의 시간의 힘이 서린 드래곤 하트를 먹어치우며 두 아이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단이처럼.

“청단이 홍단이. 재밌게 놀았구나. 그래. 본녀도 이리 기쁠 수가 없는 게야.”

“헤헤.”

“엄므아!”

해맑게 웃으며 페르세르크에게 포옥 안기는 두 아이의 모습에 에이리아와 일리나가 옅게 미소지었다.

“저, 얘들아. 나한테도…… 안겨보지 않을래?”

일리나가 떨떠름하게 팔을 벌리며 제안한다. 그러자 서로를 마주 보던 청단이와 홍단이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긴장하는 것처럼 일리나가 식은땀을 흘렸다.

어색해하면 어쩌지. 그래도 몇 번이고 봐온 사이인데.

경계하면 어쩌지.

얼굴에 그런 감정들이 다 드러난다.

하지만.

“꺄르르륵!”

뭐가 그리 즐거운지 두 아이가 맹렬하게 달려들어 그녀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그녀의 걱정이 한순간에 종식되었다.

“꺅! 너무 좋아!”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꼈던 차갑디차갑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회임소식은 나중에 알릴까 해요.”

“왜?”

“지금…… 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 거죠?”

에이리아의 말에 내가 멈칫했다.

“제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이유로 인해 데이비 오라버니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게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계속해서 엮이게 될 테니까.

“아직 시간은 많은걸요. 저는 기다릴게요.”

“다만 이번처럼 너무 늦지 마.”

“어차피 이번엔 멀리 갈 생각이 없어.”

티오니스에서 전부 해결할 것이다.

생명력 문제는 이제 거의 해결된 셈이니까.

압도적으로 거대한 달.

옅어진 차원의 벽으로 인해 모든 세계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거대한 마법진 그 자체.

암석이되 마나 수로이며, 그 흐름은 모든 세상을 관통하리라.

프리아 여신은 끝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시련이라 표현했다.

절대 불가능한 것을 두고 시련이라 부르진 않는다.

‘문 프로젝트…… 시작해보자. 그 전에…….’

나는 배시시 웃고 있는 에이리아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꺅?!”

놀란 그녀가 허둥지둥거리지만 물러나지 않는다.

“음…… 소리가 안 들리네. 아직인가? 아가야? 아빠야. 대답 좀 해봐.”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영지민들은 들어라. 너희 주군의 아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 아직 2개월 정도밖에 안 된 애기가 어떻게 소리를 내!”

일리나가 나를 걷어차 버리는 것으로 잠깐의 해프닝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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