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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45화 (844/1,559)

제 845화

237. 데이비 올 라운

아비트가 있는 곳은 붉은 공허의 입구나 다름없다.

그곳을 지키며 공허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존재를 틀어막는 수문장.

그것이 바로 아비트였다.

과거 넬타리드를 처단할 때 이용했던 공간 또한 이미 아비트에게 지배되고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맹주. 조심하십시오.”

“성자도 했고, 마왕도 해 먹었는데 여기라고 못 할 거 같나?”

내 대답에 아비트는 대답 없이 조용히 물러났다.

동시에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읊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변 공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막대한 바람이 불며 마치 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아아악!!!

그리고, 일순간 붉은 안개가 걷히며 나타난 것은…….

불타오르는 대지였다.

“여긴 뭐야.”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제가 당신을 보좌할 수 있는 건 아주 잠시뿐입니다. 당신이 이곳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변이체들이 바깥으로 새어나가려 들 테니까요.”

붉은 공허를 지배하는 방법은 심플했다.

그저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뭘 하면 되는데.”

“당신의 몸에 품어진 힘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지배력입니다.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이 공간 전체에 퍼진 방대한 요소들이 당신에게 저항하겠지요.”

“그래서?”

“살아남으십시오. 모두가 저항을 포기하고 당신께 고개를 숙일 때까지.”

불타는 대지는 시작일 뿐이다.

이 붉은 공허는 사실상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사라진 아비트를 뒤로한 채 나는 붉게 타오르는 화염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차가움.

“차가워?”

불이 차갑기 그지없다. 단순히 고열로 타오른다는 개념이 완전히 뒤집혀버린 이 어처구니없는 화염에 헛웃음을 흘리던 내가 멈칫했다.

잠깐만.

“차갑다고?”

화염에 가져다 댄 손에선 미약한 냉기가 느껴졌다. 단순한 냉기가 아니다. 한서불침 상태의 내게 닿는 냉기였다.

“와 이거.”

인상을 찡그린 내가 고개를 든다.

그러자 저 멀리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중력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임의적으로 조절하는 게 아니었다. 정해진 방향이 없는 규칙과 개념들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난이도 장난 아니네.”

문제는 더 있었다.

“컥?!”

갑작스레 몸 안 금기의 힘이 폭주하듯 멋대로 활성화되며 내 주변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봉인해둔 금기의 힘이 멋대로 날뛰기 시작하자 상시 활성화 상태가 된 포식의 특성과 뒤틀린다.

“망할. 이걸 처리해야 하는데.”

정신이 아찔해지며 의식이 흔들린다.

다시 한번 공복의 광기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금기의 힘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할 수만 있다면 광기를 제어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먹은 그 어떤 힘조차 그것은 불가능했다.

금기의 힘과 뒤섞일 수 있는 힘이라는 게 흔한 것은 아니니까.

차라리 놓아버릴까.

어차피 살아남는 것이라면 광기로 폭주한 상황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타나토스와의 싸움에선 어떻게 해결했지만. 나는 이 공간을 지배해야 하지 파괴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 너머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금기의 힘은 이 공간의 힘이다. 그걸 먹어치워 변화시키는 것도 이 안에 열쇠가 있는 건 분명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포식의 특성은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그야말로 힘이다.

나는 이 공간 안에 멋대로 퍼진 개념과 힘, 그리고 구성하는 모든 입자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공복이 점점 심해진다.

이에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진법 활성화.”

그리고, 마법진을 활성화한다. 정신력을 강화하는 일종의 마법진이었다.

아주 잠깐이면 된다.

아주 잠깐 동안만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먹어치운 새로운 개념과 힘들이 금기의 힘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됐다! 변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부족하다.

본래라면 두 개의 힘이 뒤섞여 내게 스며들었지만, 금기의 힘은 내가 먹어치운 것만으론 불가능하다 말하듯 계속해서 나를 공복의 광기로 몰아넣었다.

‘아직 부족해. 더 필요하다.’

이에 나는 이 공간 안에 있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모든 요소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이게 실패하면 최후의 수단밖에 남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포식의 힘을 버리는 수단까지 이미 결심하고 있다.

이미 먹어치워 버린 힘은 내 것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후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필요 없는 요소는 버리고 금기의 힘과 뒤섞이는 것들만 모조리 먹어치웠다.

이쯤 되니 주변의 불안정한 모든 것들이 전부 먹잇감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단 먹고 보자!”

* * *

격변하던 세상이 안정화되고 서서히 지배하에 놓인다.

하지만 처음 보았던 냉기로 가득한 불지옥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마치 거대한 피스를 끼워 맞추듯 나는 미친 듯이 먹어치우고 필요한 것들만 남긴 채 금기의 힘과 뒤섞었고 상당한 시간을 들일수록 점점 금기의 힘이 포식의 특성과 엮여 생겨나는 공복상황을 점차 약화시켜나갔다.

처음엔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아찔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이제는 상당히 거슬리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 그 냉기의 불지옥은 나흘이 걸렸다.

그 이후 끝없는 사막에서는 일주일이 걸렸다.

고작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잠을 얼마나 안 잔 거지.

비록 수면이라는 것에 크게 얽매이는 육신은 아니라지만 쉬지 않는 육신은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다.

점차 지쳐가면서 육신의 컨디션 또한 나빠지는 건 당연한 진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시야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끝까지 살아남아야 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쿠웅!! 쿵!!

거대한 시공의 뒤틀림이 일어나는 공간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며 내가 쓰게 웃어 보였다.

애초에 단순히 극한의 환경 속에서 버티며 그 공간 자체를 제어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앞으로 살점 같은 것들이 모여들며 누군가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한다.

놀랄 것도 없었다.

이미 한 차례 만나봤으니까.

변이체들이 모이고 모여 기괴하게 뒤틀리며 만들어진 나와 똑같은 존재.

금기의 힘과 신격은 없으나 그 외의 모든 힘까지 흉내 낸 가짜.

단순 가짜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하며 단순 가짜라고 하기엔 과거 지구에서 봤던 놈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하다.

“드루와 x끼야.”

비틀거리며 초점을 맞추고는 나를 직시하는 가짜를 향해 초단이를 뽑아 들고 한 손에 금기의 힘을 발현한 채 내가 걸음을 내디뎠다.

시간이 많지 않다. 알타이르의 힘으로 시간대를 뒤트는 건 좋았는데 그 때문에 틈이 생겨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알았다.

이곳에서의 생존과 지배는 마치 내가 신이 되는 과정을 정교하게 펼쳐놓은 것 같은 시련이다.

하지만 나는 신이 되고자 여기 온 게 아닌. 이곳을 회수하기 위해서 온 거다.

그 과정에서 신이 잠깐 된다 하여도 결국 도착지는 변치 않는다.

까드드득…….

순식간에 가짜 데이비가 품 안에서 붉은 검을 꺼내 들고 파고든다.

아무것도 없는 혼돈, 그리고 백지이기에 순식간에 나를 보고 색칠할 수 있다.

가짜 데이비는 그렇게 나를 향해 가짜 쌍둥이 검 중 하나인 홍단이를 휘둘러 들어왔다.

최강의 창과 최강의 창이 부딪히면 과연 어찌 될 것인가.

그 결과를 여기서 보게 되리라.

“어디 가짜가 진짜를 넘봐.”

카가가각!!!

촤아아악!!!

가짜 홍단이의 검신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핏방울을 일으켰다.

하지만 진짜 홍단이의 검신은 가짜 데이비의 육신을 반으로 갈랐다.

촤르르르륵!!!

잘려나간 데이비의 육신이 흩어진다.

그중 일부는 사라지지 않고 마치 이곳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또 빠져나갔다. 저거. 괜히 뭔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런 생각이 들지만 애써 무시한다.

* * *

“사라졌어.”

숲속의 나뭇가지에 앉아 꿰에엑 거리던 흉포한 멧돼지를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던 이실디는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와 말하는 베르단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앞뒤 다 짤라먹지 말고 똑바로 말해. 뭐가 없어졌는데. 미안한데 이 멧돼지는 내 꺼야. 내가 잡았다고. 니껀 딴 데 가서 알아봐.”

설마 베르단데의 아들이라던 인간이 잡아놓은 멧돼지를 슬쩍한 걸 들켰나?

식은땀을 숨기며 이실디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곧 그런 자잘한 건 이어지는 베르단데의 말에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데이비의 생명반응이 모조리 사라졌어.”

그 한마디에 손에 쥔 나무 작대로 멧돼지를 쿡쿡 찌르던 이실디는 자신이 무언가 잘 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베르단데를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리며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갔다.

“이건 뭔 개소리야. 똑바로 말 안 해?”

“사라졌어. 내가 그에게 힘을 보태줄 때 그의 영혼에 흔적을 양도한 적이 있어. 그게 사라졌어.”

거짓말을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멍하니 그녀를 노려보던 이실디가 베르단데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똑바로 말해. 정말로 없어진 거 맞아?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너부터 죽여버릴 거야.”

이실디는 베르단데를 상당히 싫어한다.

그럴 수밖에.

아무리 잘 해결되었다지만 그녀가 저지른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이실디가 짜증스레 허리춤의 검을 잡았다.

촤악!!!

동시에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쿠웅!!!

피가 흩뿌려지고 그대로 육신이 넘어간다.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던 멧돼지가 그대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앗! 예쁜 친구! 숲에 피를 뿌렸어! 신목님이 엄청 화를 낼 거야!]

“좀 닥쳐줄래, 얘들아?”

현신한 자연 정령들의 조잘거림을 무시한 채 검을 거둬들인 이실디가 베르단데를 똑바로 직시하며 침묵했다.

“그 말…… 사실이야?”

“확인해야 해. 하인스 영지로. 하지만 신목은 계속해서 나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몰래 빠져나갈 수 없어.”

“말하면 되잖아. 확인해보라고.”

“안돼. 이 숲 전체, 아니 데이비에게 영향을 받는 모든 곳에서 혼란이 생길 거야. 네 힘이 필요해 결계를 소리 없이 베어줄 힘이.”

하던 것도 모두 내팽개친 채 두 심연의 공주는 곧바로 숲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세계수 알의 결계를 뚫고 하인스 영지에 도착했을 때.

그녀들은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너희 왜 여기 있냐?”

있으면 안 될 존재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베르단데. 쟤 죽었다며.”

“내가 죽어? 뭔 헛소리야.”

아무렇지도 않게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청년이 피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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