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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53화 (852/1,559)

제 853화

240. 후일담(2)

늦은 시각. 정무를 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침실로 들어선 크리아네스 국왕은 은으로 만들어진 잔을 들어 독한 술을 머금었다.

통증이 심해졌다.

데이비가 모종의 힘을 이용해 병세를 약화시켰지만 이미 그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폐하. 수면에 드셔야 합니다.”

“조금 있다가 눈을 붙이도록 하지.”

“하오나 폐하.”

“괜찮다. 물러가라 베스퍼스.”

“예…….”

베스퍼스 시종장이 물러간 이후 홀로 남아 상념에 빠져있던 그는 갑작스런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물러가라 하지 않았더냐.”

“폐하.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그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드, 들어오거라.”

의외의 인물이 나타난 탓에 그가 조금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답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데이비가 걸어들어오자 그는 말없이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인가.

그의 얼굴엔 상당히 기분이 좋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오랜만이로구나.”

“강녕하셨습니까.”

“늘 그렇구나.”

말없이 그가 빈 잔에 와인을 따라주자 데이비는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술은 끊었다 들었다만.”

“사정이 조금 바뀌어서 말입니다.”

“그래.”

조용히 술을 받아 마신 데이비를 보며 크리아네스 국왕이 물었다.

“그래. 요즘 결혼생활은 괜찮으냐.”

“행복합니다.”

“다행이구나.”

담담하게 말하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작은 상자를 꺼내와 내밀었다.

“펠리스티 공국에서 보내온 과자란다. 한번 들어보겠느냐.”

그리 말하면서도 크리아네스 국왕은 긴장한 얼굴을 했다.

“그러지요.”

웬일로?!

크리아네스 국왕이 티 나지 않게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첫아들인 데이비는 그를 미워한다.

그렇기에 절대 국왕과 신하의 입장 이외에 절대 접촉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홀로 밤중에 찾아온 것도 모자라서 술을 받고 자잘한 것들까지 거부하지 않는다.

무슨 바람이 분 것인가.

“무슨 일이 있느냐.”

국왕의 물음에 데이비의 입가에 쓱 미소가 걸렸다.

마치 웃음을 참지 못해서 겨우 숨기고 있는 것처럼.

저런 미소를 눈앞에서 보여준 게 얼마 만이던가.

‘그래. 레니가 살아있을 적이구나.’

데이비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 아버지! 하며 자신을 따라주던 그때와 닮았다.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네가 그렇게 짐의 앞에서 웃을 정도로.”

“…….”

그 말에 데이비의 표정이 다시 굳는다.

하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에이리아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한마디에 크리아네스 국왕은 잠시 침묵했다.

“그렇느냐.”

“예.”

“다른 이야기는?”

“없습니다.”

떨떠름한 분위기가 오간다.

조용히 있던 크리아네스 올 라운 국왕은 말없이 술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축하한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술을 받아 마시고는 고개를 숙여 보인 데이비가 일순간 사라져버린다.

정말로.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이 밤중에 찾아온 거란 말인가.

마치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처럼 웃어대던 데이비가 찾아온 이유가 아들이 태어난 이유라니.

물론, 손자의 탄생은 기쁜 일이 맞지만, 그토록 선을 긋던 데이비가 뜬금없이 찾아와 자랑하고 가버릴 만큼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퍽 우스웠다.

“크흑…….”

한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은 그가 부들부들 떨었다.

“크큭…….”

그의 입매가 비틀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거친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런 그의 웃음소리에 놀란 베스퍼스 시종장이 뛰어왔지만 그는 껄껄껄 웃으며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폐하! 무슨…….”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시종장.”

“폐하.”

“짐이 무겁구나…….”

짧게 중얼거린 그가 눈을 천천히 떴다.

“시종장.”

“예, 폐하.”

“채비하거라.”

“어디로 행차하시올는지요.”

“하인스 영지로 간다.”

그 말에 시종장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하인스 영지는 크리아네스 올 라운 국왕이 몇 번이고 행차를 피했던 곳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손자가 태어났으니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

“폐하.”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시종장은 이번보다 한껏 후련해진 그를 보며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잘 자라주었다.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맙구나.”

그 중얼거림에 베스퍼스 시종장은 자신의 눈치를 이용해 상황을 분석해냈다.

“폐하. 지금이라도 데이비 왕자 저하께 사실을 말씀하심이.”

“무슨 사실을 말이냐.”

“그것이…….”

“그런 변명에 불과한 사실을 내놓는다 한들 달라지는 게 있더냐?”

“…….”

“되었다. 이일은 아들을 힘들게 한 못난 아비가 치러야 할 업이니라.”

그 말을 끝으로 시종장은 더 이상 제안하지 않았다.

* * *

신성 그룹의 공주님이라 불리던 여성, 현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시즌이 끝나고 이제야 숨을 좀 돌릴 때가 되었다는 게 퍽 안도감이 들었다.

“삼촌도 이제 눈을 떴고.”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소중한 이이며 신성 그룹의 실질적인 회장인 삼촌이 드디어 눈을 뜬 것이다.

그 덕분에 신성 그룹을 날름 집어삼키려던 이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여유가 생긴 건 사실이니까.

“현아야.”

“아, 언니?”

“바빠?”

“응, 아니. 이제 일 다 끝났어.”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정리하는 그녀를 보며 연희가 옅게 웃어 보였다.

“미안해. 언니가 해야 하는 일인데.”

“무슨 소리야. 언니는 푹 쉬어 이런 건 튼튼한 내가 하면 돼.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은 지아와 유나가 도와주고 있으니까.”

산소 윤지아, 마가 한유나.

한때 알프 온라인 유저였으나 이제는 각성자가 된 이로써 현재 두 사람은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출몰하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각성자들을 지원하는 신성 그룹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다.

한때 아포칼립스에 준하는 대재앙으로 휘청거린 것도 사실이지만 지구는 이전과는 다르게 다시 예전의 모습을, 아니 더욱더 성장하고 있다.

몬스터 관련 소재사업으로 말이다.

사라질 거라 예상했던 몬스터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당연 알프 온라인이 사라져 각성자가 태어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었지만, 그 또한 변했다.

자연 각성자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신성에서는 이들을 2세대 각성자라 표명했다.

그들의 힘은 1세대처럼 시작부터 어느 정도 힘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신성 그룹의 지원 아래에 힘을 키워 몬스터와 싸워나가고 있다.

세상이 격변하고 변했음에도 세상은 평화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리고 현아는 현재 자신이 밀어붙인 이 각성자 사업으로 상당히 주가가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뭐라도 먹을래? 언니가 라면 끓여줄까?”

“괜찮네요. 언니도 삼촌 간호하느라 바쁠 텐데 푹 쉬어.”

“그래.”

“언니.”

“응?”

조용히 연희를 부른 현아는 말없이 그녀를 보다 고개를 저었다.

데이비는 떠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에 대해 언급하는 건 사실 상처를 들쑤시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싱겁기는. 그보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어? 전엔 그 잘생긴 사람하고 만난다던데.”

“그 사람은 없어.”

담담하게 말하는 그 모습에 무언가 오해를 한 것일까.

연희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미안해. 괜찮을 거야. 세상엔 반이 남자라잖아?”

키득거리는 제 언니를 보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 걱정 말고 언니나 걱정해. 언제까지 내 뒷바라지만 할 거야. 언니도 이제 언니 삶을 살아야지.”

“나는 지금도 좋은걸.”

그렇게 말하며 떠나는 연희를 뒤로하고 현아는 피곤한 음성으로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아가씨. 모시겠습니다.”

“괜찮아요. 오늘은 좀 걷고 싶네.”

괜히 씁쓸함과 피로함으로 인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가씨…….”

“괜찮아요.”

물론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운전기사를 돌려보내고 사옥으로 향하던 그녀는 조용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피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걸음을 멈춘 채 손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활성화 시켰다.

식은땀이 흐른다.

“진짜…… 재수가 옴 붙어도 정도 것이지…….”

간혹 사람이 사는 영역 내에서 소환되는 몬스터가 있다.

그리고, 지금 그 현상이 일어난 듯 보였다.

콰드득…… 콰득!

무언가를 씹어먹는 듯한 소리에 조심스레 그녀는 몬스터가 워 트롤이라는 상위 몬스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괴물.

그 존재에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그녀는 누군가가 몬스터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미친 사람이!”

아무리 각성자라도 맨몸으로 워 트롤과 싸우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녀는 손에 활성화한 장비를 가동시키며 빠르게 그를 제지하기 위해 걸음을 옮겨 골목 너머로 돌아섰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워 트롤이 자신의 고간을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말이다.

“내가 오늘 피 냄새를 맡기가 싫어요. 알겠어요?”

장난스레 말하는 그 목소리가 묘하게 익숙하다.

“그러니까 운 좋은 줄 알아. 당장은 안 죽을 테니.”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워 트롤에게 손을 뻗은 인영은 곧 빛덩어리를 워 트롤에게 심어준 후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동시에 트롤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10초 동안 사는 거에 감사해라.”

그렇게 말한 그가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저런 강자가 있었나.

워 트롤이 보통 몬스터도 아니고!

놀란 현아가 그를 불러내려던 그 순간.

후드를 걸친 그가 천천히 후드를 걷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오……빠?”

“현아야 오랜만이다.”

데이비 올 라운.

전생의 이름 신현수.

바로 오래전 죽은 현아의 오빠였다.

“오빠가 대체 여기 어떻게…….”

“어떻게 오긴. 문 열고 넘어왔지.”

내가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속마음을 애써 누른 채 그녀가 눈을 찡그리며 다가갔다.

그리고는 곧 그의 품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멈칫했다.

“뭐야?”

“아들이래.”

“응?”

“아들이래.”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그녀는 한참 동안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아들?”

“그래. 아들. 사실 이것 때문에 넘어온 거야.”

“넘어왔다니 그게 무슨…….”

“우리 아들 자랑하러 왔다고.”

한때 대륙 전체를 뒤흔들었던 티오니스의 성자가.

단일 군단이라 불리며 세계의 힘 균형을 강제로 비틀어버렸던 괴물 같은 사람이.

오랜만에 돌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뭐?

아들자랑?

허탈함과 괜한 분노에 그녀가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는 포대기에 싸인 아주 작고 귀여운 수인 아기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꺅! 귀여워!! 얘야! 고모라고 해볼래?! 응?!”

“갓 태어난 애기 놀라게 뭐 하는 짓이야!”

“아니 조카 얼굴도 못 봐?!”

“너랑 나랑 지금 피 한 방울도 안 섞였거든?!”

“아 몰라! 내가 내 조카 얼굴 좀 보겠다는데! 오빠가 뭔 상관인데!”

티격태격 싸우기를 한참.

눈도 뜨지 못해 꼬물거리는 아이를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보던 그녀가 고개를 들며 데이비를 째려본다.

“삼촌 깨어난 건 알아?”

“그래?! 그럼 삼촌에게도 자랑해야겠네!”

말이 안 통한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이전과 많이 달랐다.

여유가 생긴.

또 고민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듯한 모습이었다.

삼촌을 만나는 것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으니까.

그런 오빠의 변화에 현아는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연희 누나도 만나고. 우리 아들, 달님이도 자랑하고!”

“달님이?”

“태명이야. 사실 그거 때문에 넘어온 거긴 한데.”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르가 여기 와서 아이 이름을 좀 얻어오라더라. 내가 지으면 평생 원망받을 거라고.”

지독한 작명 센스는 여전한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집 좀 알아봐주라. 돈 걱정 말고 아주 으리으리한 곳으로, 아니다. 그냥 새로 하나 짓게 커다란 부지 하나 알아봐주라.”

그 한마디에 그녀가 눈을 꿈틀거린다.

“뭐?”

“이제 자주 놀러 올 거야. 일리나가 이곳 문명에 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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