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4화
241. 후일담(3)
“삼촌 아직 말을 못 해. 간혹 눈을 뜨고 계시긴 한데 하루 중에 대부분은 주무셔.”
“…….”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조금 지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오빠야가 보기엔 어떤데?”
현아의 물음에 나는 달님이를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삼촌의 맥을 짚었다.
“그쪽 세상도 맥을 짚어?”
“의술은 어딜 가든 비슷한 법이야.”
사이비 의술은 메인이 될 수 없으니까.
삼촌의 상태는 육신은 이미 거의 다 회복되었지만, 그의 영혼에 입은 변이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다.
이에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 천천히 그의 영혼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해 보이는 새하얀 빛이 그의 몸에 스며든다.
“일어나세요. 용사여.”
“오빠야, 니 미칬나.”
“장난이야.”
담담하게 말하며 그의 몸에 스며 넣던 빛을 거둬들인 나는 잠들어있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질 겁니다.”
그때 고요하게 잠들어있던 삼촌이 천천히 눈을 뜬다.
이렇게 단번에 효과가 온다고?
놀란 얼굴로 그를 보자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인상을 쓰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현수야…….”
“어?”
나를 바로 알아보는 그 모습에 나와 현아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가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현수야.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어떻게…… 아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물어봐야 의미가 없겠네. 삼촌, 잘 지내셨어요?”
“그래. 네 덕분이다.”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그가 내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네 아들이니?”
“넬타리드입니까?”
“껄껄걸. 신님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네 녀석 뿐일 게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들었다. 네가 이 못난 삼촌을 위해서 큰 걸 희생했다고.”
“뭐 별건 아닙니다.”
흉신을 잡고 나온 상자에서 얻은 것을 준 것뿐이다.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아까운 짓이지만 나는 그런 정말 무감각한 합리성을 마냥 좋아하진 않으니까.
내가 얻은 거 내가 원하는 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다리안.”
“예?”
“다리안이라는 이름은 어떨지 물어보라고 하시더구나.”
“그 양반이요?”
넬타리드가?
내 물음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넬타리드 교단이 무너진 지금 이 지구에서 넬타리드 신과 접신할 수 있는 건 그가 전부였다.
“다리안. 네가 사는 세상에서 아주 오래전 빛을 머금은 아이라는 뜻으로 불렸다더구나.”
“빛을 머금은 아이라…….”
“귀엽구나.”
“그렇죠? 볼 때마다 자꾸 웃음이 나와요.”
“원래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다 똑같은 것 아니겠니.”
“세상에…… 삼촌.”
현아는 삼촌이 일어나 말도 한다는 게 놀라운지 눈물을 글썽였다.
“못난 삼촌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았다. 현아야.”
“삼촌!”
“미안하다. 미안해.”
“무슨 소리하는 건데! 삼촌이 뭐가 미안한데!”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우는 현아를 보며 나는 곤히 잠들어있는 달님이를 내려다보았다.
다리안이라.
나쁘진 않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나를 바라본다.
“가려는 거니?”
“가야죠.”
“연희는 만나보고 가지.”
“다음에 오면 이야기할게요.”
내 말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록 전생의 삶이고 지금의 네 인생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찾아와서 건강한지라도 알려주려무나.”
“알겠습니다.”
“그래. 다음엔 조카며느리도 데려오렴. 삼촌이 직접 대접해줄 테니.”
거대한 국제기업의 회장이지만 그는 현아와 연희 누나에게 요리를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모두가 내가 죽은 이후의 이야기이기에 잘은 모르지만, 그가 그렇게 된 이유에는 나라는 존재의 죽음이 얽혀있다는 말은 들은 바 있다.
“이런, 시간이 이렇게 됐네. 삼촌,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현아가 내 등을 찰싹 때렸다.
“다음엔 깜빡이 좀 넣고 들어와. 갑자기 훅 들어와서 놀랐잖아.”
“그래 알았다.”
환생을 했어도, 현수라는 이가 죽었어도 이들은 그의 기억을 지닌 나를 자신의 오빠이며, 동생이며, 조카로 봐준다.
그것이 나는 너무 고마웠다.
산소 남매나 노예 12호 혹은 지구에서 사귄 친구들도 여럿 존재하지만 나는 곧바로 티오니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있는 에이리아와 진지한 얼굴로 회의를 펼치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가서 들어왔어?”
“그래.”
“어떤 이름?”
일리나의 물음에 내가 반문했다.
“뭐 떠올린 이름이라도 있어?”
“아니, 막상 지으려니까 말이 많더라.”
페르세르크와 일리나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안.”
“응?”
“빛을 머금은 아이. 넬타리드 신이 이름 자체에 축복을 내려서 건네준 이름이야.”
“아니, 전생의 가족에게 가서 알려주랬더니 신에게 가서 이름을 받아오면 우리가 무슨 수로 이기란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정도 축복은 나도 걸 수 있는데.”
내 물음에 일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리안이라는 이름, 괜찮은걸요?”
에이리아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녀도 괜찮아 보여.”
“그럼 달님이의 이름은 지금부터 다리안 올 라운이다.”
부스럭.
으우아아앙!! 으우아아앙!!
갑자기 뒤척이더니 엉엉 울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에 에이리아가 놀라 녀석을 받아들었다.
“녀석도 좋은 모양인데?”
“글쎄 모르지.”
키득거리는 모습에 나는 자리를 비켰다.
아이가 갑자기 우는 이유야 뻔하니까.
배가 고프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놀랐거나.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아픈 건 아닐 테고, 최적의 환경인데 놀랐을 리도 없으니. 단순히 배가 고픈 것이리라.
재잘거리는 세 사람을 뒤로한 채 방을 나선 나는 느긋한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침실에 들어서 흔들의자에 몸을 뉘며 따로 카드에 봉인해두었던 커다란 알을 꺼내 들었다.
고대룡 이클립스의 알.
사실상 세상에 남은 마지막 고대룡의 아이.
3만 년 동안 동면을 해왔고, 그 후로도 내가 붉은 공허를 지배하는 동안 방대한 시간을 알로 지내온 아이다.
사실 이 아이가 올바르게 태어날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었기에 나는 조용히 알을 방의 중앙에 내려놓고 손을 뻗었다.
“아빠?”
그때 상황을 보던 홍단이와 청단이가 창문을 열며 낑낑거리고 들어온다.
창문으로 불쑥불쑥 들어오는 버릇은 누구한테 배운 거야.
“우와! 큰 달걀이야!”
“큰 달걀!”
아이들은 이 알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기에 신이나 소리쳤다.
“큰 달걀이 아니고 알이야.”
“알?”
“그래. 홍단이 청단이 동생이 잠든 알.”
처음엔 이 이클립스의 알을 베르단데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베르단데는 혹여라도 자신에게 남은 심연의 힘 일부가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걸 원치 않았다.
“우응…… 그런데 동생이 왜 달걀 안에 있어어?”
“딱딱해…….”
커다란 알의 표면을 톡톡 두드리며 홍단이가 묻자 나는 조용히 대답해주었다.
“보호받기 위해서.”
“보호?”
“그래. 자. 이제 동생이 긴 잠에서 깰 시간이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알을 중심으로 힘을 퍼뜨렸다.
이 세상에 퍼진 막대한 생명력을 기반으로 한 나의 권능이 발현된다.
동시에 이클립스의 알에 봉인된 아비트의 시간의 힘이 서서히 흩어지며 멈춰버린 알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아비트는 알이 깨어나기 직전이라고 했었다.
아마…….
짜득…… 짜드드득!
“앗! 동생이 깨지고 이써!”
“알 깨져! 아…… 아프겠다아…….”
거 말이 좀 모호한 느낌이구나 청단아.
점차 큰 소리를 내며 깨지기 시작하는 알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알은 완전히 깨지기도 전에 무언가에 의해 멈춰졌다.
“어? 아빠! 알이 갑자기 잠들어써!”
“코코 잔다!”
조금 깨진 것을 기점으로 다시 침묵하는 알의 형태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베르단데는 알이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태어날 거라 말했지만 이렇게 알이 깨졌다가 멈추는지에 대한 의문은 인다.
콰작!! 콰자자작!
그때 또다시 알이 깨지며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균열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갈라져 파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새끼 용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리안의 이름을 정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번엔 이 녀석의 이름까지 지어줘야 하나.”
알의 틈 사이로 비늘이 물러 보이는 귀여운 용의 앞발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거칠게 알을 부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나는 곧이어 놀라울 정도로 앙증맞고 귀여운 흑빛의 용이 나타나고 나서야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우!”
알에서 튀어나온 녀석은 축축해진 몸을 파르르 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우!!”
그러고 보니 새는 태어나고 가장 먼저 본 이를 부모로 인식한다 하였던가.
이 아이는 과연 어떨는지.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녀석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내 손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크게 뜨더니 환한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동생이 빛나!”
“막막 빛나!”
신이나 소리치는 홍단이와 청단이의 외침대로 빛에 휩싸인 녀석의 크기가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사라진 곳에서는 알몸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작은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는 게 보였다.
2살에서 3살 정도 되었을까.
이제 겨우 일어설 법한 크기로 나를 올려다보는 귀여운 여자아이는 이내 나를 향해 꺄르륵 웃어 보였다.
“아우!”
뭔가 속에서 벅찬 감정이 몰려왔다.
“네 이름은…….”
“에반젤린.”
내 중얼거림을 끊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온 것인지 베르단데가 조용히 다가온다.
“에반젤린?”
“예전에 저 아이를 어머니가 품었을 때. 딸아이가 태어나면 지어줄 이름이었어. 남자아이였으면 트엘레스. 여자아이면 에반젤린.”
“고대룡의 이름과는 조금 다르네.”
고대룡은 아비트, 이클립스 같은 중성적인 이름이 많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어떻게 들어도 귀여운 여자아이의 이름이었다.
“에반젤린은 고대어로 밤하늘의 별이라는 뜻이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반젤린.”
“아우!”
“마음에 들어?”
내 물음에 아이는 꺄르륵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이내 나를 향해 아장아장 다가왔다.
그리고는 작은 입을 살짝 벌린다.
화륵!
그러자 녀석의 입에서 아주 옅은 화염이 아주 잠깐 후욱! 하고 불려 나왔다.
“저 아이는 네 모습을 보고 떠올린 모습으로 변화한 거야. 아마 네가 여체화 하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살다 살다 내가 무성까지는 되어본 적이 있지만, 여성화는 처음 본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를 수건으로 감싸 안아 들며 내가 쓰게 웃었다.
“네가 데려가진 않겠지?”
“내 몸은 심연의 영향이 영원히 남아있으니까. 아이에게 그리 좋은 결과는 주지 못할 거야. 마음 같아선 데려가고 싶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저 아이는 처음엔 저 모습으로 2~3년 정도 있다가 그때부터 서서히 자랄 거야. 아마 성년이 되는 나이는 인간과 비슷하겠지. 널 보고 자라니까.”
고대룡이 자라는 것까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은 제법 흥미롭다.
“쯧.”
한순간에 아이가 둘이나 생겼지만 사실 상관은 없을 듯싶었다.
“부모로서 키울 거야?”
“이클립스 대신 내가 부모가 되기로 했으니까 알을 회수한 거야. 감당 못 할 짓이면 시작도 안 했어.”
딱히 이클립스와 정이 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와는 이래저래 인연이 있다.
게다가 이 아이는 헤라클래스의 유일한 흔적이 아니던가.
타나토스와 싸울 때 심연에서 힘을 끌어내지 못하게 단신으로 심연의 공간까지 찾아가 공간 자체를 부숴버린 이.
그가 없었다면 지금 나는 여기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아들도 아들이지만 딸도 한 명 있었으면 싶었다.
아니, 홍단이 청단이가 있으니 딸은 셋이나 되는 것인가.
“생각지도 못하게 딸 부자가 되어버렸네, 잘 부탁한다 에반젤린.”
에반젤린 올 라운.
내 미소에 아이는 꺄르륵 웃으며 내 품에 안긴 채 손을 꼬물락거렸다.
<본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