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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55화 (854/1,559)

제 855화

242. 초단

쾅!!! 쾅!!

무거운 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자신은 크게 잘못한 것이 없건만.

현재 륀느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몸을 웅크리듯 영주성의 한적한 연구실 구석에 쪼그려 숨어있는 자신이 퍽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륀느, 이런 모습을 낮게 평가…….”

당당하게 나서고 싶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잘못 열어도 한참 잘못 열었다.

“꺄르륵!”

품에 안긴 작은 아이 에반젤린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작고 흰 손을 뻗지만, 륀느는 그저 식은땀만을 흘렸다.

“에, 에반젤린, 륀느가 낮은 소리를 노, 높게 평가…….”

“꺄르르륵!”

“쉬, 쉬잇!”

“쉬이이이.”

륀느를 따라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손으로 입을 덮으며 따라 하는 에반젤린의 모습은 참 천진난만하고 귀엽기 그지없었다.

에반젤린이 태어나고 벌써 6개월.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는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륀느는 에반젤린과 다리안이 눈을 뜰 때부터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한때 빈약한 가슴을 펴며 자랑스레 그것을 자랑한 것은 좋았다만.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뤼…… 륀느, 어린아이는 매우 위험하다 판단.”

쿵!! 쿵!!

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굉음은 륀느가 숨어있는 연구실의 문 앞에서 멈췄다.

기계장치의 신, 데우스 액스 마키나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제발 모르기를.

륀느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이 티 없이 순수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작은 아이를 조용히 시켰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숨 막히는 상황이 지나갔을까.

곧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쿵쿵! 거리는 소리는 멀어지듯 사라졌다.

“륀느, 발소리가 멀어졌다고 판단. 경보 레벨을 그린으로 다…….”

쿵!! 콰지직!!!!

“으헉!”

순식간이었다

륀느는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입을 쩍 벌린 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방금 전의 소리는 다름 아닌 단단한 목재 문이 거대한 도끼에 의해 구멍이 나버린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끼긱!! 끽!

이윽고 도끼가 비틀거리더니 빠져나간다.

사람 얼굴만 한 구멍이 생긴 틈 사이를 긴장한 채로 바라보던 륀느였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갑작스레 문틈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스윽 나타났다.

얼굴보다 조금 더 작은 틈 사이로 광기 어린 웃음이 보인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에반젤린을 꼭 끌어안고 있는 륀느와 눈이 마주친다.

“히얼스 륀느~”

“꺄하하하하하하!”

“윽!”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리며 굳어버렸다.

표정은 무표정이지만 누가 봐도 그녀가 격심하게 놀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틈으로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륀느의 소유자.

데이비 올 라운이었다.

“거기 있었니~?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며 얼굴이 틈 사이에서 사라진다.

콰직!!!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한 그의 팔이 문을 부수며 밀고 들어왔다.

“딸꾹!”

반사적으로 딸꾹질을 하는 륀느였다.

생체 골렘이 딸꾹질을 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말이다.

덜컥!! 덜컥!!

그리고, 굳어버린 륀느의 시선으로 데이비가 밀어 넣은 팔을 이용해 문의 잠금장치를 천천히 해제한다.

콰직!!

그리고, 팔을 빼냄과 동시에 데이비가 발로 문짝을 걷어차 박살 내버렸다.

아니 그럴 거면 뭐하러 팔을 넣어서 잠금장치를 해제한 건데.

륀느는 도망친다는 판단도 잊어버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고마워 륀느.”

빠득…… 빠드득.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동안의 데이터를 종합했을 때 데이비는 현재 99.8퍼센트확률로 극대노 상태라 할 수 있다!

“뤼…… 륀느! 불가항력을 강하게 어필해! 이것을 륀느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는 륀느의 얼굴을 데이비가 순식간에 낚아챘다.

데이비에게서 다운받았던 그의 기억 속에 이 기술의 이름이 있었다.

레슬링 기술, 아이언크로!

“으갸갸갸갸갹!!”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륀느의 머리통을 낚아채 들어 올린 데이비가 스산한 미소를 짓자 에반젤린은 뭐가 그리 웃긴지 자지러질 듯 웃어댔고 그런 에반젤린이 떨어지지 않게 륀느는 얼굴이 잡힌 상황에서도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륀느, 어떻게 할 거야. 내가 2달 동안 열심히 만든 취미생활을 니가 지금 아작냈는데 어떻게 할까?”

“뤼…… 륀느! 만드는 데에 의의를 둠으로써!!”

“그래! 너도 만들어진 것에 의의를 두고 지금 여기서 내가 널 부숴도 괜찮겠지?”

“데…… 데이비 님! 그깟 모형과 다르게 륀느의 내부 구조는 재구성이 불가능한!!”

“혓바닥이 좀 길다?”

“지, 지원요청!! 생존에 지대한 위협을 감지 륀느가 지원을 요청!!”

“계속 쫑알거려봐. 누가 오는가.”

륀느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빠…… 빠빠!!”

그때 구원 줄이 내렸다.

륀느의 품에 안겨있던 에반젤린이 데이비를 향해 조막만 한 작은 손을 뻗으며 안겨 오려 했던 것이다.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애교에 데이비의 표정이 일순간 풀어졌다.

이에 륀느를 들고 있던 데이비가 그녀를 놓으며 에반젤린을 조심스레 받아냈다.

“에반젤린. 재밌게 놀았어?”

“꺄르르륵!”

아직 말문이 안 트인 아이에게 말해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에 데이비는 에반젤린을 고쳐 안고는 등을 토닥여주었고, 에반젤린은 그런 데이비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 순식간에 잠들어버렸다.

“으…… 윽, 데, 데이비 님.”

“쉿. 에반젤린 잔다.”

구원 줄이다! 살았음을 직감한 그녀가 다시 거리를 벌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소리가 들려서 깨면 안 되지.”

그제야 륀느는 알 수 있었다. 에반젤린을 그의 품에 안겨준 게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날린 것임을.

“으그그그그극!”

비명은 짧았다.

* * *

“저하. 이것으로 분기별 예산안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시녀복이 아닌 예쁜 정복을 입은 에이미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영지 대리관리인.

그녀의 영지 관리 능력은 제법 출중하다.

물론 그 근본에 베르닐 시종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상 단기간에 그것을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실행하는 강단은 재능의 영역이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강단을 밀어붙여서 내 곁에 끝까지 남아있었다.

“수고했어. 더 보고할 게 있나?”

“그게, 영지 내에서 조금 이상한 일이 보고 되어서요.”

“이상한 일? 뭔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나지막이 그녀를 올려다보자 그녀는 고민하는 듯하다 조심스레 말했다.

“하인스 아카데미에 관한 일이에요.”

“음?”

“무슨 이야기 중이야?”

창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일리나를 보며 내가 눈을 가늘게 뜬다.

“넌 문 놔두고 어디로 들어오는 거야.”

“자기도 맨날 그렇게 들어오는 주제에.”

입을 삐쭉이며 그녀가 다가왔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에이미가 굳은 얼굴로 말한다.

“그게…… 하인스 아카데미에 유령이 나타난다고 해요.”

“유령?”

이건 또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내 의문에 일리나가 기억이 난 듯 손뼉을 짝! 하고 부딪혔다.

“아. 교수님들께 들은 적이 있어. 하인스 아카데미에 밤만 되면 나타나는 귀신 이야기.”

일리나는 나와 혼인한 이후에도 하인스 아카데미에 출석하며 배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로 검술과 교양학이지만 사실상 제국의 황녀이며 단순 검으로 치면 역대 최고의 재능을 지닌 이답게 오만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와 혼약을 한 이후에도 그녀는 언제까지고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이로 남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고르네오 남작님이 당직을 서실 때 음악교양실에서 밤중에 누군가가 악기를 연주했다고 해. 그 외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연금 실습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계속 들려왔다고도 하고.”

“침입자?”

하인스 아카데미는 일정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기숙사로 돌아간다. 사실상 방금 언급된 장소들은 밤에는 엄중하게 결계를 치고 아무도 들이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공부가 하고 싶은 학생인가.

투명망토라도 뒤집어쓰고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무언가…….

는 아닐 것이다.

하인스 아카데미 결계는 내가 직접 쳤으니까.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 엄중한 결계를 뚫고 들어갈 리가 없다.

“그래서 이상한 거야. 네 결계는 멀쩡하거든. 그런데 그 결계가 엄중하게 쳐진 장소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거. 그게 가능하다 생각해?”

일리나가 양팔을 끌어안고 으스스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즉, 마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혼이 아닌가 하는 거지.”

영혼을 직접 본 적도 있으면서 귀신을 두려워하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인간은 본디 미지에 대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누가 밤마다 하인스 영지에 찾아와서 내가 쳐놓은 결계를 개 무시하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한다고.”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아카데미 내에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출현 주기는?”

“거의 매일입니다. 한때 신학을 가르치시는 앨리스 대주교님이 직접 엑소시즘을 해보려 하셨지만…….”

놓쳤다고 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오히려 앨리스 대주교가 내가 쳐놓은 결계에 걸려서 된통 골탕을 먹었다고 하니 보통 놈은 아닌 모양이었다.

“특징은?”

“밤중에 본 것이라 잘 보진 못했지만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소녀였다는 모양이야.”

“처녀 귀신같은 건가? 티오니스에 처녀 귀신이 있을 리가 있나.”

애초에 원혼이 있으면 내게 바로 들켰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혼은 애초에 내 결계 못 뚫어.”

영혼도 결국 사령 마나로 간섭 가능한 존재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귀신이라는 건 말이야. 의외로 간섭할 힘이 굉장히 적어. 사람과 귀신을 놓고 누가 더 위험하냐 물으면 전자 쪽이 압도적으로 위험한 거다.”

“으으…… 알면서도 조금 섬뜩하더라.”

누가 됐건 괜한 소문 내서 주가 떨어뜨리지 마라.

나는 침대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곤히 잠들어있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바라보았다.

요즘 잠이 좀 많아졌네.

* * *

하인스 아카데미의 밤은 엄중한 결계가 활성화된다.

누가 됐건 괜한 침입을 했다가 좋은 꼴을 보기 힘들 것이다.

사실상 밤중에 결계를 풀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려면 최소 나와 같은 수준의 마법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가능성이 있는 건, 신의 영역에서 나를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마법사의 신, 오딘이나.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 정도지만 그녀들은 그 힘이 너무 강한 탓에 신의 영역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며 누구인가.

대륙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 중에 재능이 있는 이가 없다고 할 순 없다.

“이쯤일 거예요.”

앨리스 대주교.

과거엔 리나 성녀와 함께 성녀 후보로서 경쟁했던 인물이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프리아 여신이 기적을 내렸을 때 그녀는 마음에 두고 있던 짐과 욕심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리고, 성녀 후보를 사퇴하고 대주교로서 활동하다 현재 가장 낮은 위치라 할 수 있는 전쟁고아들에게 신학과 신성 마법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일하고 있다.

애초에 성국의 사람인 그녀가 라운 왕국에서 체류하는 것으로 말이 꽤 나오는 편이지만 앨리스 대주교는 제법 수완이 좋은 여자였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방해가 되는 정치공작 따위 가볍게 묵살시켜버릴 정도로 말이다.

“앨리스 대주교. 무섭습니까?”

“누, 누가 무섭답니까?!”

버럭 소리치는 그녀를 보니 무서운 게 확실해 보였다.

신을 모시는 대주교가 귀신이 무섭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퍽 재미있으리라.

“재밌네요.”

“재…… 재미있다니요! 솔직히 저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전혀 모르니까. 도리어 께름칙해진 거라고요. 결코, 두려워서가 아니라…….”

“워!”

“꺄악!!”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당장이라도 악을 쓰며 내게 덤벼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일어나세요. 앨리스 교수님. 영력은 없네요. 단순한 침입자입니다.”

성국의 신관들이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굳건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령술사와 마찬가지로 영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이라면 두려울 만도 하지.

“단순한 침입이요? 어떤 미친놈이 왕자님이 쳐놓은 결계를 제집 드나들 듯 돌아다닌단 말이죠? 그건 대현자님도 불가능할 겁니다.”

대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 일리나의 은사이며, 윈리의 부군이자 나의 친우인 율리스 중앙장로의 직계스승.

대현자라 불리는 그의 마법 실력은 나를 제외하고 사실상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 영역에 이른 존재다.

하지만 그도 이런 결계를 뚫고 그렇게 여유롭게 다닐 수 없다.

하물며 일리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소녀라니 더 황당할 수밖에.

“누가 됐건 한번 보면 알겠죠.”

그렇게 말하며 사일런스로 소리를 완전히 죽인 나는 도서관의 문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세 개의 달과 촘촘히 박혀 밤하늘을 환하게 비춰주는 별빛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한 소녀를 말이다.

“오딘과 로 아이아스가 아니면 결계를 무시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는 이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딱 한 명 더 있었네.”

붉은색과 푸른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 책을 읽고 있는 소녀는 마치 공부를 하는듯한 모습이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오드아이를 반짝이는 소녀는 참 아름다웠다.

조용히 책을 읽던 그녀는 뭔가 결심이 섰는지 완드를 꺼내 들고 허공에 흔든다.

실습실에 있는 마법실습용 완드였다.

“위, 윙가르디스 아르…….”

퍼엉!!

마나가 폭발하며 그녀가 비틀거렸다.

그리고 작게 기침을 하며 손사래를 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눈을 크게 뜨더니 그대로 창문을 깨고 뛰쳐나가 버렸다.

“…….”

“바…… 방금 그 소녀가…….”

“귀신소동의 주인이겠죠. 근데 좀 어처구니가 없네.”

나는 허리춤에 채워진 청단이와 홍단이를 흘끗 내려다보고 그녀가 사라진 창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출하면 혼난다.”

내 말에 후다닥 도망치던 소녀가 움찔하더니 멈춘다.

“초단아.”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복잡한 사정 따윈 묻지 않고 조용히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내게 등을 돌리고 있던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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