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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66화 (865/1,559)

제 866화

“형.”

시우와 같은 팀 바시리안의 미드 라이너인 박선형이 굳은 얼굴로 자신의 팀원이자 선배였던 시우를 불렀다.

“아……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애써 웃으며 말하고는 가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선형이 다른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와. 선형 씨. 방금 뭐에요?”

그때 저 멀리서 tc의 멤버 중 탑라이너인 갈릭스피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가 다가오며 물었다.

“시우 씨 완전 멘탈 나갔던데.”

“그러게요. 뭔…….”

일반 유저도 눈치채는 걸 프로게이머가 눈치채지 못할까.

“망할. 시우 괜찮아? 대체 무슨…… 아 김박수 씨.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로?”

“안녕하세요. 바시리안 팀장님. 시우 씨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한번 보러온 거예요.”

실제로 tc의 라이너 김박수와 바시리안의 프로게이머인 시우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후우, 그러게나 말입니다. 컨디션이 안 좋았나…….”

“컨디션 문제는 아닐 거에요.”

팀장의 중얼거림에 선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우연이 아니라고?”

“두 번 똑같이 하면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건 저도 최대 포텐 아니면 절대 못 해요.”

“넌 라인이 다르잖아.”

“기본 피지컬이 뭐라고 해야 하나…….”

“아예 다른 벽에 있는 괴물.”

박수의 첨언에 선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사람이 아니라 알파고랑 하는 기분이네요.”

“그 정도야?”

“경기 봤어요? 움직임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사거리 하나하나 완벽하게 계산하면서 움직이니까 평타도 흘리고 스킬도 다 피하지. 한타는 몰라도 라인전에선 절대 못 이겨.”

그 말에 팀장의 눈이 진지하게 굳었다.

“아직 굉장히 어려 보이던데…….”

“게임에 나이가 어딨어요. 자동차 게임 프로게이머 중엔 어린애도 있는데.”

그 말에 팀장이 tc의 김박수에게 물었다.

“박수 씨는 어때요? 박수 씨도 그래요?”

“하하하 시우 씨도 맥도 못 추고 털렸는데 제가 어떻게 이겨요.”

“그래도 시우 씨에게 크게 밀린 적 없잖아요.”

“그건 버티는 거지 이기는 게 아니에요. 상대가 저 정도면 버티는 것도 힘들 걸요?”

사실상 게임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가 할 말치고는 너무 나약하지만, 박수는 확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어쨌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잘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웃기지 않아요?”

박수가 피식 웃었다.

“웃겨요?”

“이상하게 플레이가 익숙해서 봤는데. 하인스 클랜이던데.”

“그게 왜요?”

“저 팀. 내가 아는 그 팀이 맞는 것 같아서 좀 찾아봤거든요. 팀끼리 리플레이 같이 잠깐 돌려봤는데, 탑라이너보다 미드라이너와 정글이 진짜 괴물이에요.”

“탑과 정글요?”

“솔직히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부계정이라 입 다물고 있긴 했는데. 우리 미드라이너랑 정글 포지션 둘 다 멘탈 터져서 며칠 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어요.”

“무슨…….”

“진짜 상식이 안 먹히는 동선으로 움직여대니까 뭘 할 수가 있나. 언 듯 보면 초보자 같은데. 그게 무슨 체스 묘수풀이마냥 움직인 걸 나중에야 눈치채더라고요. 그땐 이미 스노우볼 한참 굴러간 후고. 감당이 안 되죠.”

“와. 실화냐 진짜…….”

그 말에 선형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쨌든 너무 침울해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우리 팀도 저건 못 이기겠다더라.”

“저렇게 잘하는 인간들이 대체 어디서 갑자기 솟아난 건지.”

개인 피지컬. 팀의 협동능력. 모든 점에서 괴물 같은 신인의 등장.

물론 그 신인들은 더 이상 리그오브리그, 통칭 리오리에 관심을 꺼버린 상태지만 이 일이 직장인 프로게이머에게 있어서 그들은 신흥 강자이며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할 존재. 혹은 거대한 장애물로 보일 정도였다.

덜컹!!

“시우형?”

“그 아가씨 어디 있어?”

“형 잠깐만요 진정해요.”

“한 번만…… 한 번만 더해보자고 할 거야.”

그의 결연한 목소리에 선형이 그를 말렸다.

“안 돼요. 형! 이미지 메이킹 작살나요 그러다간!”

“이미지 좀 조지고 벽을 넘으면 그게 남는 장사다!”

단순히 침울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시우야, 진정해! 아직 우리 이거 안 끝났어!”

“아직 시간 좀 남았죠? 쉬는 시간에 잠깐 갔다 올 테니까.”

“음…… 나도 좀 끌리긴 하네.”

그렇게 말하며 허겁지겁 걸어간 시우와 그를 따라나선 선형은 팀 하인스의 개인 휴게실이 훤히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라? 하인스 팀 어디 갔어요?”

“기권하고 집에 갔어요.”

“네?”

“아마추어팀이 프레셔 못 이기고 기권하고 나가는 거야 한 번씩 있는 일이니까요.”

직원의 대답에 그들의 표정이 굳었다.

프레셔를 못 이겨서 기권했다고? 웃기는 소리.

이건 마치…….

그냥 잠시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기권이야 팀의 자유인 만큼 그들이 나가면 본래 4팀 중 한팀이 부전승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애초에 이것을 보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한두 팀 기권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라 말하는 정도였기에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찾아야 해.”

“형 진정해요. 일단!”

“한 번만! 아니, 두 번만 더해보면 진짜 벽 넘을 수 있어!”

그렇게 시동이 걸려버린 시우를 말리기 위해 선형과 팀장은 한참 동안 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 * *

“이 인간. 티비 나갔던데.”

국재원의 소속으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던 한유나는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는 익숙한 이들을 국재원의 국장에게 보여주었다.

“어…… 어어? 어어.”

거의 넋이 나간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국재원의 국장은 며칠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만한 큰일이 매스컴을 통해 퍼져나가던 조용히 항의가 들어오건 공적으로 일이 터지면 난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장의 자리에서 튕겨 나갈지도 모를 테고.

결과적으로 지금 그의 심정은 단두대에 걸려있는 심정일 것이다.

“봐요. 이 인간 지금 국재원에 관심 1도 없어. 걱정 마요.”

“저…… 정말?!”

마치 황금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는 오누이처럼 그의 얼굴에 급 화색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가 한유나가 보여준 인터넷 스트리밍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됐다!! 살았다!!”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며 만세를 부르짖은 그가 벌떡 일어났다.

“누나 근데 그건 어떻게 안 거예요?”

“말 안 해줬나? 우리 아빠 회사에서 지원하는 팀이 저기 나오잖아. 팀 tc. 거기에 아는 프로게이머 오빠가 하나 있는데. 아까 두리안 톡을 보내왔더라고, 눈 호강 제대로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확인해봤지.”

그 말에 포도맛캣타워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많이 변했네요.”

“내가?”

“네. 예전엔 진짜 미친년 같았…… 컥!!”

순식간에 포도를 걷어차 버린 한유나가 그를 째려보았다.

“뒤질래?”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람을 왜 걷어차요!”

“니가 이상한 소리 하니까 그러지!”

“예전엔 지아 누나 아니면 날을 바짝 세우던 인간이 갑자기 여기저기 안면 트고 다니니까 그러지!”

“나도 몰라.”

심드렁하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산소, 윤지아의 동생인 지환과 포도맛에게 미친년 소리를 듣긴 했었으니까.

언제부터였나. 그 인간을 만난 직후였나.

아니면,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포도 녀석과 함께 썩어가던 그때였나.

물론 중요한 건 아니다.

“그…… 그럼?!”

“솔직히 그 인간에게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닐걸요? 게다가 의외로 다정한 인간이라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 걸 아는 입장에서 그냥 넘어가 주는 걸지도 모르죠.”

“그…… 그럼!”

“그렇지 않고서야 일주일이나 이렇게 모른척할 리가 없잖아요.”

“그…… 그렇군! 그냥 넘어가 주는 건가?! 정말 다행이군! 오늘은 드디어 발을 뻗고 잘 수 있겠어!”

안타까울 정도로 기뻐하는 국장을 보며 한유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예측이긴 하지만 정말로 그가 그냥 넘어가 주려는 건지는 모를 일이다.

“서윤과 윤석 씨는?”

“당분간 자격 박탈하고 근신 명령 때려놨잖아요. 본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있는지 얌전하고요. 전에 연락해보니까 밥은 잘 먹고 다닌다더라.”

“휴우…….”

짧게 한숨을 내쉰 그가 흐흐 웃었다.

“정말 십년감수 했네. 큰일 날뻔했다.”

매체에선 굉장히 근엄한 표정의 인물이지만 이렇게 보면 푼수가 따로 없다.

“자 그럼 일단 일도 잘 해결된 듯하니까 오늘은 회식…….”

“회식 좋네요. 나도 끼워주세요.”

그 말에 모두가 멈춘다.

그리고, 마치 오래되어 녹이 슬어버린 기계처럼 천천히 뻑뻑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 이 과자는 맛있네요.”

언제 온 건지 소파에 다리를 꼬고 편하게 앉아 과자를 와작거리고 있는 사신 때문이었다.

“데…… 데이비 왕자!”

“쉿.”

그 말에 그가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괜히 알려져 일 크게 만들고 싶은 거 아니죠?”

“…….”

“자. 그럼 매질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좋게좋게 이야기로 끝낼 수 있으려나.”

그 말에 국장의 표정이 십 년은 늙어버린 것처럼 변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국장의 검은 머리에 새치가 많이 보인다는 느낌이 드는 유나였다.

* * *

“오빠. 리오리 행사장 간 거 아니었어요? 지금 거기 오빠팀 이야기로 난리던데.”

“넌 왜 자꾸 오빠라 그래. 내가 뭐가 됐건 몸뚱어리는 10대인데.”

“나보다 힘세고 돈 많으면 오빠야.”

“…….”

그 황당한 발언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장님이시죠?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국재원 실 국장인 박서호입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티오니스 성자님.”

“어렵게 부르지 마세요. 아직은 개인적인 일로 찾아온 거니까.”

그 말에 박서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알프랜드의 일은 정말로 유감입니다. 하지만…….”

“뭐 변명거리가 많이 준비되셨나 보네요. 어쩔 수 없지.”

담담하게 말하며 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대통령님 전화가……”

“자, 자자자자. 잠깐만요! 잠깐만 진정해주세요!”

아직 이 일을 아는 이는 나를 향해 다가오며 그가 매달리듯 소리쳤다.

“일단 진정해주세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도 다 인지하고 있지요. 암 다 압니다.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럼 이 일에 대해서 조금 의논을 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후우…… 일단 공론화하지 않아 주신 점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뭐, 의도가 나빴던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재밌는 것도 알았고.”

내가 만든 달 타나토스. 달에는 의지가 없다.

하지만 그 달이 가진 생명력이 붉은 공허의 가능성과 엮이면서 그러한 괴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었다.

물론, 그건 이들에게 말할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네?”

“국재원에서 제게 원하는걸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칠뻔한 건 또 사실이고.”

협상도 서로 내놓을 수 있는 게 있을 때나 먹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쪽이 줄 수 있는 게 없다면?

협상의 결과는 결렬뿐이다.

“그 부분에 관해선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가능한 전부 협조하겠습니다!”

국장은 일단 공수표를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별로 끌리진 않네요.”

뚝! 뚝! 뚝!

또다시 내가 핸드폰을 조작하자 그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매달린다.

“제발! 제발 멈춰주세요! 어떻게 할까요! 이 일이 알려지면 국재원 자체가 뒤흔들릴 수 있습니다. 제발!”

“그럼 한번 흔들리고 나서 다음엔 조심하면 되겠네요. 어, 전화 걸렸다.

“으아아아악!!”

“장난입니다.”

담담하게 말하자 그가 십 년은 늙은 것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부탁했다.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선처를 베풀어주시면…….”

“그럼, 이렇게 할까요.”

내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조졌다…….”

그 미소를 본 한유나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넌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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