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4화
아다만티움의 궤멸.
인어의 비늘을 이용해 부활한 고대 종족 반트.
그 외에 여러 가지 일들이 하루아침에 벌어졌다.
아스가르드의 마나 EMP로 해결이 된 한국과는 다르게 반트 종족의 출현으로 문제가 생길 뻔한 일본의 경우 어느 정도 사상자가 나온 게 사실이었다.
륀느가 발현한 성흔의 힘이 고위계 성마법을 발현했다곤 하지만 그것으론 즉사한 이들까지 살릴 순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일본의 입장에선 이번 사태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이 사태를 일으킨 테러조직 아다만티움의 존재에 대해 극렬한 분노를 일으키는 입장을 표명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없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이번 사태의 사상자를 최대한 부풀려서 공표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피해자가 클수록 일본이 아다만티움에 대해 간섭할 권한이 많이 생기는 것이니까.
현재 아다만티움은 세계 각국의 공적이지만 반대로 한번 손에 넣으면 대량의 연구 데이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보물 고블린 같은 존재였다.
“먹을 걸 준다고 그걸 따라가냐?”
낭랑한 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륀느였다.
“륀느. 새로운 미각 데이터를 높게 평가! 이것을 신대륙의 발견이라 명명해.”
소파에 앉아 저렇게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륀느에게 긴장감 따윈 없어 보였다.
“신대륙은 얼어 죽을. 뭐 쓸데없는 말은 안 하던?”
“륀느, 대량의 미각 데이터를 받았다고 보고. 이를 높게 평가해.”
따로 없었다는 말이다. 아마 그녀를 통해 나와 접촉해보려는 시도였을 터다.
“그럼 됐다. 가자.”
그렇게 말하며 녀석의 팔을 잡고 그대로 마법진을 발현한다.
애초에 일본에 들른 이유는 코오나의 예언대로 일본에서 생길 금기로 인한 대참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 추가적으로 지국의 국가에 공식적으로 엮일 이유는 없었다.
금기를 어긴 자들은 모두 심판을 당했다.
부활한 반트를 륀느가 제압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넬타리드의 신의 심판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신이 금기를 어긴 자를 심판하는 경우는 그 금기를 어긴 상황이 심각할 경우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프리아 여신도 금기에 관해서 심판받을 영혼을 올려보내는 건 내게 맡기곤 했으니 말이다.
즉, 신이 아닌 신의 사자가 움직이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넬타리드는 자신의 힘을 제물로 바쳐 이런 대규모 기적을 강행했다.
마치 꾹 참아온 것들을 터뜨린 것처럼 말이다.
금기에 관한 모든 데이터는 소멸했고, 금기를 어기는 데에 참가한 이들 대부분이 넬타리드의 신벌에 당해 사라졌다.
아다만티움의 정보를 노리고 있던 국가들은 그곳에서 챙길 데이터들을 노리고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것이 된 후였다.
이 문제에 관해 케인을 통해 넬타리드와 접촉한 나는 그가 반트 사건이 터지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온을 관장하는 신답지 않은 선택이지만 인어의 비늘과 피를 먹고 영혼 없이 부활한 반트의 육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인어 소야의 증언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죽은 자의 부활이요? 솔직히 말도 안 되죠. 이미 환생한 영혼을 다시 불러올 수 있나요? 아쉽게도 제 피와 비늘에 그런 힘은 없어요. 산자의 생명력을 증폭시켜 불사에 가깝게 살게 하긴 하지만 죽은 이를 부활시키는 건 이야기가 다르죠. 그냥 육신만 살리는 거예요. 영혼이 빈 껍데기를.]
넬타리드는 반트의 육신을 되살리고 그곳에 새로운 영혼을 채워 자신의 사자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넬타리드를 대신해 움직여야 할 사자는 필요했으니까.
인어 소야는 베헤모스와 함께 태평양 어딘가로 떠났다.
계약은 했다지만 굳이 베헤모스를 내 곁에 둘 이유도 없고, 그를 데리고 온다고 할 경우 소야까지 데리고 와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귀찮은 정치적 문제는 죄다 코오나와 서윤에게 떠넘겨버린 나는 비명을 지르는 두사람을 무시한 채 티오니스로 귀환해버렸다.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어요. 고르네오 남작이 쓴 보고서에요.”
“뺘. 뺘.”
“다리안. 아빠 일하는 중이니까 잠시만.”
“꺄아악!! 뺘뺘!!”
“이런…….”
에이미가 건네준 서류를 스윽 훑으며 나는 내 다리에 앉아 서류를 잡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다리안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제는 제법 칭얼거릴 줄도 알게 된 소중한 아들이다.
녀석의 귀가 쫑긋거리자 나는 다리안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뒤 말했다.
“잘됐네. 이거 이대로 진행해. 우선은 영지 내에서 불후한 사고를 당해 눈을 잃은 사람들부터.”
그 수가 많진 않지만, 그들이 최우선인 건 당연한 일이다.
“한데. 금액은 어떻게 책정할까요.”
“금액?”
“자선사업을 할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너무 고액으로 책정하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이도 생길지 몰라요.”
“수술비는 비싸게 받아. 블랙 슬라임 코어를 받는 대신 이쪽도 내줘야 하는 게 제법 되니까.”
“그렇게 되면…….”
“대신 특채 분야를 조금 정해서 평민들은 한 달에 몇 명까지 수술할 수 있게.”
“어느 정도로 할까요?”
“얼마나 가능하다던?”
“시간에 치이지 않으려면 한 달에 50명 정도가 한계에요.”
“일단은 그렇게 진행하자.”
내 말에 에이미가 고개를 숙여 나갔고 나는 다리안을 품에 안아 든 채 나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집이 최고지.”
처음엔 고작 몇십 몇백 명 되는 작은 영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하인스 영지는 어느 대규모 영지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활발한 영지이기도 했다.
다만, 영지가 커지는 만큼 내 눈에 닿지 않은 부분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
달칵!!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뮤우?”
“아저씨…….”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 뮤우가 그대로 내게 달려든다.
“으아아아아앙!!!”
그리고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뮤우? 무슨 일이야.”
“흐어어엉!! 흐엉!”
꺼이꺼이 우는 뮤우의 모습 때문일까. 내 품에 안겨있던 다리안조차 울음을 참는듯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두 아이의 그런 모습에 내가 허둥지둥거리며 달래보려 하지만 애 아빠라도 아직 서툰 부분은 존재한다.
“데이비. 다리안을 이리 줘.”
그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일까.
뒤늦게 찾아온 페르세르크가 다리안을 품에 안고 토닥여준다.
뒤늦게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에반젤린과 청단이 홍단이를 데리고 들어온 일리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집무실 내부를 본다.
엉엉 우는 뮤우와 다리안. 그리고 그것을 보며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나와 우아하게 다리안을 안고 달래주고 있는 페르세르크였다.
“데이비. 사고 쳤어?”
“아니. 나도 좀 당황스럽네.”
“흐응…….”
조용히 뮤우에게 다가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일리나가 뮤우를 달래주자 한참 동안 울던 뮤우는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그치진 못했는지 딸꾹질을 하며 힘겹게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었다.
“뮤우 말해봐. 무슨 일이야. 아카데미에서 누가 괴롭혀?”
“흑…… 흑 아니에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녀석이 말했다.
“타디아 오빠가…… 타디아 오빠가아…….”
“타디아?”
타디아라는 이름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타디아라면 고르네오 남작이 눈여겨보고 있던 아카데미 생도였다.
실제로 얼마 전에도 영지의 거리에서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타디아와 아는 사이야?”
“흐끅…… 같이 놀아주는 오빤데, 타디아 오빠가…….”
“타디아가 왜?”
“타디아 오빠가 막…… 막막 목에 밧줄을 걸고 괴로워하더니…….”
그 말에 주변의 공기가 잠시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흑…… 흐흑 흐아아아앙!!”
결국, 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뮤우의 모습에 겨우 진정되던 다리안과 에반젤린이 덩달아 울음을 터뜨린다.
반면 울음이 전염되진 않았지만, 울상을 지은 홍단이와 청단이가 울상을 지으며 두 아이를 달래려 애썼다.
“우웅, 울지마아…….”
“청다니도 슬퍼져.”
대뜸 울음바다가 되어버린 모습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좀 알아볼게.”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나는 에이미를 찾아갔고 그대로 물었다.
“최근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사고가 있었나?”
“아…… 저하.”
“있었구나.”
“…….”
내 말에 에이미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해요. 저하. 보고를 드렸어야 했는데…… 워낙에 경황이 없어서.”
“무슨 일인데.”
“아카데미 생도인 타디아라는 아이가 아카데미 연구실습실 쪽에서 목을 매고 자살시도를 했다고 해요. 좀 전에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보고가 올라왔어요.”
에이미의 보고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생명은?”
“다행히 뮤우 아가씨를 지켜주던 대지의 정령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의식 불명 상태라고 한다.
타디아에 대한 인적사항은 기억하고 있다.
보통 하인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인적사항에 대해선 한차례 전부 읽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아는 녀석은 상당히 미래가 유망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어떤 이유로든 자살을 시도할 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카데미로 가봐야겠다.”
“저…… 저하? 직접 나서시기보단 수사관들에게 맡겨보심이…….”
“아니. 요즘 아카데미를 너무 등한시한 것 같네.”
“……네 그럼 준비를.”
“아니 됐어. 따로 가볼 테니까 괜한 소문내지 마.”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곧바로 하인스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리고. 의학 병동 쪽에 누워있는 한 소년을 찾을 수 있었다.
병동의 의원들은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깜짝 놀란 기색을 내비쳤지만 내 표정을 보고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몇 시간 전에 타디아 학생이 실습실에서 목을 맸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습니다만…… 의식이 회복되지 않아서요.”
그 말에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타디아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 눈을 감았다.
맥이 약하다.
상당히 쇠약해져 있다는 증거였다.
딱히 저항 의지가 없고 정신제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 목을 맸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기에 조금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쟁고아 출신이라곤 하지만 의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던 우등생이다.
갑자기 자살시도를 할 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인가.
“저…… 저하. 저희가 책임지고 살리겠습니다. 굳이 직접…….”
“수사관 쪽에선 뭐라고 하던?”
“그게, 딱히 이상한 점은 없다고…….”
이유 없이 자기 목숨을 끊는 놈은 없다.
나는 타디아의 몸에 회복마법을 걸어준 뒤 병실을 나섰다.
“아이나.”
“이번엔 자신 있었는데요.”
“네가 백날 숨어봐라. 내가 모르는지.”
내 말에 아이나는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래 봬도 암살자 중에선 최고의 실력가인데요.”
“그거야 보통 기준이고.”
“후우. 다음엔 꼭 못 찾게 숨을 겁니다.”
아이나의 칭얼거림을 무시한 채 내가 명령을 내렸다.
“상황은 들었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정보를 캐오겠지.
아이나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6시간 정도 후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황당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자살시도 맞습니다. 이전부터 그런 낌새를 보였다더군요.”
“이유 없이 제 목숨 끊는 멍청이가 어딨어. 특히 그놈은 아니야.”
“잘 알고 계신가 보네요.”
“나는 한번 본건 못 잊으니까.”
내 대답에 아이나가 조용히 말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만. 타디아 학생이 얼마 전 새로 부임한 교수와 크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싸워?”
“아무래도 성적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