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95화 (895/1,559)

제 895화

255. 조작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나는 죽은 듯 잠들어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인스 영지에 소속된 영지민들은 하나같이 내가 이끌고 지켜나가야 하는 이들이다.

그건 비단 하인스 영지 또한 마찬가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던 뮤우를 위해 타국, 타 영지의 아카데미가 아닌 하인스 영지에 아카데미를 만들지 않았던가.

한번 시작한 일이라면 반드시 책임을 지는 게 타당한 일이다.

하인스 영지가 내려다보이는 내 개인 정원의 벤치에 앉아 영지를 내려다보던 나는 근처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왔어?”

“에반젤린. 아빠에게 안기렴.”

“꺄하하하핫!”

그 말과 함께 내게 다가온 페르세르크가 작고 귀여운 아이를 내 품에 안겨주었다.

에반젤린은 나를 보고는 해맑게 웃으며 내 품에 안겼고 목을 꼭 끌어안은 채 머리를 묻었다.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던데.”

“별거 아니야. 이상이라 불리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내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본래라면 두 개의 달이 존재해야 하지만 이제는 세 개의 달이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데이비. 이상이라는 건 보기에 따라 다른 게야.”

그녀가 내 옆에 앉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대곤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 번째 달 타나토스가 만들어진 것도 다른 이들에겐 이상에 가까운 세계니까.”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존재하게 만들었으니 어떤 의미로는 이상에 가깝다.

“이상과 기적은 한 끗 차이이니까.”

“까아! 까아!”

칭얼거리는 에반젤린을 토닥거리자 녀석이 고개를 들고는 그대로 내 뺨에 제 입을 맞춰왔다.

“일리나가 자주 뽀뽀를 해주니까. 배운 모양이야. 에반젤린은 다리안과 다르게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니까.”

딸아이의 뽀뽀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카데미 문제 때문이야?”

“어? 아아. 전반적으로. 너무 영지에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아서.”

전체적으로 내가 관리한 것이 없던 건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이 사는 이 영지 내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데엔 일손이 딸릴 수밖에 없다.

그 반증이 바로 하인스 아카데미였다.

“자살시도를 한 그 아이. 확인해봤어?”

“본인의 의도로 목을 맨 건 확실해. 정신 조작 흔적도 없고, 저항 흔적도 없으니까.”

일방적으로 제압당하고 목을 맸다고 하기엔 뮤우가 처음 그를 발견했을 때 그의 의식이 있었다.

“그 일 때문에 뮤우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더라.”

눈앞에서 아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그녀가 놀랐다는 증거는 내가 그녀에게 붙여준 땅의 정령이 멋대로 움직였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인스 아카데미는 실제로 하인스 영지에서 가장 문제가 많을 수 있는 공간이다.

전쟁고아들도 그렇지만 각기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는 각국 귀족들이나 왕족들도 입학해있으니 말이다.

“원래 신생 아카데미는 인기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는데 말이야.”

“교수진이 워낙에 빵빵하니까 그렇겠지. 게다가 지원도 좋은 편이고.”

그것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내가 직접 작정하고 굴린 교수진 이외에도 많은 교수들이 있다.

학생이 많은 데에 비해 교수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인간 하나하나를 보지 못한 것도 내 잘못이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 아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봐.”

“이름 타디아. 서부대륙 출신의 평민으로, 나이는 열다섯입니다. 뮤우 아가씨와는 같은 동아리 출신이더군요.”

“동아리라…….”

하인스 아카데미 내에 내 허가를 받고 공식 활동을 하는 서클 동아리는 총 100여 개.

뮤우의 동아리는 그림 동아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상당히 흥미가 있는 뮤우가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만난 듯 보인다.

“그게 이번 일과 관련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뭐야.”

“간단한 인적사항이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법 장난칠 줄도 아는 아이나의 행동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의학부 교수 중 하나인 촌치 교수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촌치 교수?”

“네. 하인스 아카데미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교수더군요. 본래 중부대륙에 있는 중앙 아카데미 소속 교수였으나 모종의 일로 아카데미 교수직을 사퇴하고 하인스 아카데미로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종의 일은 뭔데.”

“뇌물사건입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계속해.”

* * *

제법 실력 있는 교수들 위주로 뽑은 게 마냥 좋지는 않았던 것일까.

나는 아카데미의 교수 연구실 중 고르네오 남작의 개인 연구실을 찾았다.

“아니! 데이비 왕자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인 일로…….”

“교수님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습니다. 시간 괜찮습니까?”

“아…… 물론이죠 드시지요.”

고르네오 남작은 내가 찾아온 이유를 짐작했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구를 하다 보니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연구실이 너저분한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요.”

허겁지겁 연구자료들을 치운 그가 자리에 앉는다.

“찾아오신 이유는 타디아 때문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예, 덕분에 뮤우가 꽤 크게 놀란 모양이더군요. 혹,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사실 정말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재능도 제법 있어서 몇 번이고 장학금을 타기도 했지요. 제가 알기론 그렇게 받은 장학금을 전부 저금해 고향에 있는 제 동생에게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쟁고아는 나이 상관없이 입학시키라고 했을 텐데요.”

“입학할지 말지는 본인의 자유니까요. 아마 개인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장죽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하나 피워도 될는지요.”

“예 편하게 하세요.”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장죽에 불을 붙였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시도를 했다는 말을 듣고 엄청 놀랐습니다.”

“갑자기 목을 맬 성격은 아니었다는 거죠.”

“그렇지요. 몇 번이고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해 하인스 영지 내에 취직하고 제 동생들을 데려올 거라 말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타디아를 제 제자로 점찍어둔 것이기도 하고요.”

“자살시도를 한 이유에 대해선 짐작 가는 게 없는지요.”

“그게…….”

그가 잠시 고민하듯 우물쭈물했다.

“귀족자제와 상당히 트러블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아무리 아카데미 내에서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한 생도라고 못을 박아도 태생적인 계급의 차이는 아카데미를 나서는 순간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지요.”

“그럼, 집단 괴롭힘의 가능성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자살시도를 할 만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이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타디아의 인적사항을 바라보았다.

“다만…… 최근 들어 상당히 초조한 기색을 내비친 것도 사실입니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님. 타디아는…….”

“괜찮을 겁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서 깨어나고 있진 않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강제로라도 깨울 생각이니까요.”

내 말에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까운 아이입니다. 부디 가엽게 여겨주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돕겠습니다.”

“혹시 아카데미 내에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평민 생도와 귀족 생도 간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가능한 두 집단을 엮지 않으려 하고는 있습니다만…….”

귀하게 태어나서 오만함이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평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건 퍽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고르네오 남작을 통해 내가 알아낸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이에 나는 타디아의 자살시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최근 시험결과 서류를 가져와 읽어내려갔다.

전체적으로 성적이 상당히 저조한 느낌이 강하다.

이전에는 상당히 고평가되고 있었으나 마치 어느 날을 기점으로 점수가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컨디션이 나쁘면 그럴 수도 있다지만…… 이건 뭔가 켕기는 게 느껴지는 점수였다.

매번 장학금을 타오던 아이가 갑자기 점수의 절반 이상을 까먹는다?

일부러 망치지 않는 이상 이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타디아의 병실이 있는 곳으로 향한 나는 병실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어서 상급 회복약을 가져와!! 어서!!”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하고 있는 타디아와 그런 그를 압박하며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는 의원이 보인다.

“무슨 일입니까.”

“아…… 데이비 왕자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타디아가 갑자기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해서!”

“비켜보세요.”

황급히 걸음을 옮긴 나는 숨을 못 쉬듯 버둥거리고 있는 타디아의 가슴팍에 손을 올린 뒤 흉부압박을 하듯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흡!”

투웅!!!

순식간에 흉부를 압박하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손끝을 타고 푸른 마나가 쏟아져 들어간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발작을 일으킨 환자를 흉부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라 상당히 놀란 듯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수차례 흉부를 압박하며 마나를 튕기듯 밀어 넣었다.

“쿨럭!!!”

동시에 타디아가 검게 뭉쳐진 무언가를 뱉어냈다. 검게 변질된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끄으으으으…….”

숨을 쉬지 못하다가 다시금 쉴 수 있게 된 타디아가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추욱 늘어졌다.

“……혈전 증상.”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타디아의 기도에 막혀있던 무언가를 본 교수들이 깜짝 놀라 웅성거렸다.

“대체 누구야!! 누가 이 환자에게 응고제를 투여한 거야!!”

당황한 의원의 외침에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증상은 간단했다.

혈소판의 부재로 혈액이 잘 응고되지 않는 환자에게 쓰는 응고제가 피를 뭉쳤다.

목을 매면서 생긴 내상에서 생긴 피가 응고제로 인해 굳으면서 기도를 틀어막았다.

본래라면 자연적으론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지만 누군가가 노렸다면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즉. 이건 단순 증상이 아니라 살인 미수였다.

“마지막으로 약을 투여한 게 누굽니까.”

“저…… 접니다!”

이윽고 여성 의원이 손을 들었다.

“하…… 하지만 전 아닙니다! 제가 약을 투여한 건 무려 3시간 전이라고요! 게다가 저와 함께 고르네오 남작님도 같이…….”

그녀가 아니라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누군가가 들어와 그를 죽이려 했다.

어째서?

이유는 간단하다.

타디아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완전히 은폐시키기 위해서.

“깨워야겠네요.”

“네?”

“심적으로 충격을 받은 환자라 그냥 두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내가 그의 머리에 손을 짚었다.

[9서클 흑마법]

[완전제어]

완전 제어 마법이 발현되며 내 의식의 일부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처박힌 의식을 강제로 각성시키기 시작했다.

이건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거니와 피 대상에게도 상당히 큰 부담이 되겠지만 그냥 둘 수가 없었다.

화아아아악!!

그의 전신으로 파고든 검은 기류가 이내 다시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온다.

그리고.

“커헉!!”

잠들어있던 타디아가 눈을 부릅뜨며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커헉!! 컥!!”

고통스런 기침을 토해내는 타디아의 생환에 의료진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존의 의학으로 살릴 수 없다. 신관들도 할 수 없다고 한 의식이 각성을 거부하는 증상을 내가 그 자리에서 깨워버린 것이다.

“역시…… 성자…….”

“대단하군요…….”

놀라워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타디아에게 꽂혀있었다.

“타디아.”

“……저…… 하?”

나를 보고 타디아가 우물쭈물하듯 중얼거렸다.

“어디 아픈 곳은 없나?”

“네? 아아…… 네.”

그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세요.”

“예? 하지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내 말에 의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물러난다.

그리고. 타디아와 나 만남은 병실 안에서 내가 대뜸 물었다.

“누구야.”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하.”

“널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게 누구냐고. 귀족자제냐? 교수야?”

내 호명에 그의 눈이 아주 잠깐 꿈틀거렸다.

“숨기려 들지 말고 말해.”

내 말에 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흑…… 흐흑…….”

“타디아.”

“억울해요…… 너무 억울해요. 저하!”

급기야 울음을 터뜨린 그가 내게 매달리며 소리쳤다.

“평민이라고! 전쟁고아라는 이유로 이렇게 차별받고 괴롭힘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 거죠?! 저는…… 저는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해온 건가요!”

그의 외침에 내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자세히 말해봐.”

“말하면 제 동생들을 죽인다고 했어요.”

“죽여? 누가.”

“…….”

“괜찮아 말해봐. 네 동생도, 너도 내가 반드시 지켜주마.”

내 말에 그가 눈물이 어린 얼굴로 나를 본다.

“정말인가요?”

“그래. 내 학생 건드린 놈이 누구든 내가 혼내주마. 형 믿지?”

그런 내 미소에 그가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초…… 촌치 교수와 바이스 교수님이…….”

촌치 교수는 타디아가 수업을 듣는 의학부의 교수고 바이스 교수라면, 분명 검술 학부의 교수다.

그런 그들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제가……그들이 이곳에서 저지른 비리를 아는 바람에…….”

그의 말에 내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역시. 인간은 세상이 큰 문제를 겪어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모른다.

그리고.

이상은 쉽게 실현되는 게 아니다.

“비리?”

“성적 조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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