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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96화 (896/1,559)

제 896화

성적 조작.

그 한마디에 내 분위기가 차갑게 식는다.

“성적 조작이라…… 자세하게 이야기해줄래?”

내 분위기가 심상찮다 여겼는지 타디아가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그게…….”

“아, 미안하다. 네게 부담을 주면 안 되는데.”

화아악!!

순식간에 주변을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진다.

“촌치 교수와 바이스 교수라고.”

촌치 교수에 대해선 들었지만, 바이스 교수라면…….

아 기억났다.

“바이스 브로커, 검술 학부 교수였나?”

촌치 교수와 함께 후발로 하인스 아카데미에 취직한 타 아카데미 출신의 교수다.

비록 두 교수를 내가 직접 가르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실력이 제법 있다 알려져 있어서 부족한 교수진을 채우기 위해 섭외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네. 맞아요.”

그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비록 제가 천한 평민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네가 전쟁고아든 평민 출신이든 교육에 차별을 둘 생각은 전혀 없다.”

내 말에 그는 서러운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흐어어엉! 저하!”

그 이후 들은 타디아의 이야기는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하인스 영지는 평민과 귀족, 왕족 할 것 없이 공평한 교육을 제공한다.

교수진의 스펙이 빵빵한 것도 물론이오, 상당한 지원에 각 국가의 정체문제와도 연관 없는 중립계통의 통합 아카데미인 터라 인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타디아는 평민 출신이지만 재능과 노력이 뒤따르는 아이였다.

태생부터 정해진 자신의 계급을 넘어 무언가를 이루고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타디아는 그 누구보다 필사적이었다.

실제로 그의 그런 노력은 많은 교수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고 고르네오 남작 또한 그를 눈여겨보며 직계 제자로 받을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다만 매해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받아오는 그의 행보를 곱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라운 왕국과 타국에서 모여든 귀족자제, 혹은 왕족들이었다.

태생부터 귀하게 태어난 그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위협하는 평민의 존재들을 곱게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아카데미 생도는 모두 같다는 아카데미의 교칙도 무시한 채 살살 타디아를 포함해 열심히 배우는 평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애들 싸움은 점점 어른싸움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촌치 교수, 그리고 검술 학부의 바이스 브로커 교수.

이 두 교수에 의해서 말이다.

고르네오 남작의 부탁을 받고 자료를 도서관으로 가져가던 중 그는 은밀하게 두 교수와 만나고 있는 몇몇 귀족 자제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던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자. 이걸세.]

[좋네요. 확실하겠죠?]

[물론~ 당연하지. 자네들은 걱정 말고 이대로만 해주면 되는 거네. 대신…… 자네들의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주게나.]

[물론이죠. 막대한 보상을 약속해주실 겁니다.]

성적 조작.

다름 아닌 촌치 교수와 바이스 브로커 교수가 그들 귀족자제의 부모의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귀족 영식, 영애들의 성적을 조작해준 것이다.

어렵기로 소문난 시험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타디아는 억울했지만 참았다.

아무리 같은 생도라도 계급의 차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들의 성적 조작을 해도 매번 만점에 가깝게 성적을 받아오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성적조작. 즉, 노력도 하지 않고 집안의 힘만으로 높은 성적을 얻는 이들이 생긴다는 건 즉, 위에 있던 누군가가 강제로 떨어지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차 일이 커져만 간다.

자신의 노력이 일방적으로 부정당하는 느낌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너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자신들의 비리를 눈치챈 타디아를 그냥 둘 수 없었던 이들은 타디아를 뒷조사했고, 이번 일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도록 인질을 잡았다.

만약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닌다면 그를 죽인다고.

귀족에게 평민 하나 죽이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울까.

빌미야 만들면 그만인 것을.

그들은 그렇게 타디아가 사실을 떠벌리지 못하게 막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를 협박하여 해선 안될 짓까지 강요하기 시작했다.

실습에서 승패 조작까지 멋대로 시킨 것이다.

자신의 노력을 믿고 연습해온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다.

‘일부러 내몰았구나. 죽이려고.’

다만 그 과정을 뮤우가 목격해버리는 바람에 그를 죽이는 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촌치 교수는 그들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한 그는 자신이 이 아카데미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로 인해 절망했고.

스스로 목을 매어 이 악운의 굴레를 벗으려 했다.

그렇게 설명한 그를 보며 나는 조용히 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빠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내 딱밤이 그에게 작렬했다.

“끄아아아악!!”

“함부로 죽지 마라. 자기 목숨 스스로 끊는 놈이 뭘 대단한 인간이 되겠다는 거냐.”

“하지만!!”

“이야기했어야지.”

내 외침에 그가 움찔했다.

“라곤 안 하마. 사실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어딨겠냐.”

“…….”

“고생했다. 그리고, 말해줘서 고맙다.”

“저하…….”

“형 믿지? 그놈들이 정말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게 확실하면.”

그땐.

“내가 책임지고 징벌해줄 테니.”

* * *

“곧바로 움직이는 건 반대야.”

“본녀도 같은 생각이야.”

일리나와 페르세르크의 의견이었다.

“저…… 이대로 가면 그 아이가 너무 가엽지 않을까요…….”

반대로 에이리아는 지금이라도 상황을 알아주길 바랐다.

“에이리아. 한쪽 말만 믿고 일을 진행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땐 돌이킬 수가 없게 될 게야.”

“설마…… 타디아 그 아이가…….”

“세상엔 단순히 얼굴만 보고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있어.”

일리나의 부연설명에 에이리아가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가여워서…….”

“걱정 마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뺘…… 뺘.”

작은 은구를 가지고 놀고 있는 에반젤린과 다리안을 각기 품에 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던 청단이 홍단이가 서로 소곤댄다.

“아빠 화났어. 홍단이 알아.”

“응응 막 화났어.”

소곤거리는 두 아이와 별개로 에반젤린과 다리안은 자신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에 바쁘지만 말이다.

“그냥 일을 치진 않았을 거야. 증거 하나 남기지 않았겠지. 그들을 캐물어 본들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직접 확인해야지.”

“직접?”

“왕자와 거지. 이야기 알잖아?”

그렇게 말한 내가 허공에 마나를 뿌렸다.

[메타몰포시스]

형태 변환 마법이 몸에 스며든다.

“마법이라면 들킬 텐데.”

“그 인간들이 날고 기어도 절대 몰라 괜찮아.”

“그래서? 타디아로 변해서 어쩌게?”

“곧 분기 시험이 있더라. 내가 대신 나가려고.”

물론, 타디아는 따로 시험을 치르게 할 것이다.

아무리 그가 안타까운 일을 겪었어도 시험 자체는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우선은…… 검술 시험인가?”

나는 타디아의 몸으로 변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빙그레 웃어보였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믿어야지.”

* * *

“타디아!!”

나를 향해 다가와 소리치는 학생들이 보인다.

대부분 평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귀족 자제들도 보였다.

“괜찮아? 병실에 실려 갔다고 들었는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하는 작은 소년에게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응. 괜찮은 거 같아.”

“다행이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라. 알겠냐?”

뒤이어 귀족 영식 하나가 다가와 멱살을 잡았다.

“자살 시도 같은 개 짓거리 하지 말라고.”

“어…… 어어.”

“이 자식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오늘따라 이상한데?”

“커, 컨디션이 좀 별로인가 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린 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질적인 그의 인간관계를 조사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볼 뻔했다.

“어서 가자. 오늘 검술 시험 있잖아.”

덩치가 큰 귀족 자제 하나가 내 등을 두드리며 떠밀었다.

“전처럼 이상하게 휘말리지 말고 제대로 가자고. 네 실력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래.”

담담하게 말하며 검술 학부 건물로 걸음을 옮긴다.

시험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바이스 브로커 교수와 함께 다수의 귀족자제가 보였다.

지원을 똑같이 하라 했는데 귀족자제들의 경우 장비가 더욱 번쩍거린다.

“뭐야. 죽다 살아난 귀신이 왔잖아.”

그때 나를 향해 누군가가 깐족거리듯 말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자 그중 하나가 다가와 비웃음을 던진다.

“시험 점수 망칠까 봐 겁나서 목이라도 맸나? 그럴 거면 그대로 콱 죽어버리지 뭣 하러 다시 살아나서 왔나 몰라.”

“이봐! 코시아!!”

“어허, 누구 마음대로 함부로 귀한 존칭을 불러! 난 공작가의 자제고 넌 변경의 백작가 자제일 뿐이야. 바샨.”

“…….”

“설마 데이비 왕자가 정한 교칙을 정말로 믿는 건 아니겠지? 그거 다 정치 쇼야. 어차피 세상은 계급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러니까 까불지 마. 내 한마디면 너희 집안이 박살 나는 건 한순간이니까.”

그 말에 내 곁에 있던 바샨이라 불린 귀족 영식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시아는 계속해서 빈정거렸다.

“뭐. 가진 거라곤 알량한 노력밖에 없는 천것이지만 말이야. 잘해보라고.”

낄낄 웃어 보이는 그 행동에 바샨이 참지 못하고 그에게 소리치려던 찰나였다.

“뭣들 하나!!”

엄한 바이스 브로커 교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감히 내 시험에 싸움이라니 죽고 싶은가?”

“죄송합니다~”

코시아의 느긋한 말에 바이스 교수가 나를 바라본다.

“오만한 놈들, 네놈들은 벌점 5점씩이다.”

“자…… 잠깐만요 교수님! 싸움을 건 사람은 코시아입니다! 왜 저희만!!”

“지금 내 결정에 불만인가? 그렇다면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나가도 좋다. 내가 직접 학장인 데이비 왕자에게 이 일을 보고하지.”

“큭…….”

바샨이 이를 악물었다.

“그만해. 편애가 하루 이틀은 아니잖아.”

다른 귀족자제가 창백한 표정으로 바샨을 말렸다.

“자 시험을 치른다!! 시험 과제는 총 세 가지!! 검술의 기본자세와 대련, 그리고 교수와의 대련이다!! 각 시험은 종목이 끝나는 대로 점수를 기재하여 저기 붙여놓을 테니 그리 알도록! 질문은?!”

엄한 얼굴로 소리치는 그를 보며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지!!”

내가 아는 선에서 타디아의 검술점수는 최근에 와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최근 시험에선 낙제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세가 엉성하고 겉멋이 들었다는 이유였다.

미리 준비된 깔끔한 목검을 손에 쥔 내가 피식 웃었다.

“빌어먹을 교수. 제 입맛대로 점수를 주기나 하고.”

“괜히 들으면 감점이야. 조용히 해.”

바샨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럼 첫 번째는 코시아!! 코시아 바룩스!”

바이스 교수의 외침에 코시아가 느긋한 걸음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이내 검술의 기본형인 종베기와 횡베기. 그리고, 비스듬히 베기와 연계 동작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깔끔해 보이지만 내 표정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훌륭하다! 군더더기 없는 자세! 검로! 그리고 손목의 힘 배분까지! 다들 코시아를 본받도록 해라! 물론 귀한 자제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코시아를 칭찬하는 바이스 교수의 언변에 그가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물러난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와 친구들이 모여들어 낄낄 대기 시작했다.

이후 다른 학생들의 시험도 치러졌고, 이내 내 차례가 되었다.

“타디아!! 타디아는 앞으로 나오라!!”

차례가 왔다.

나는 목검을 쥔 채 걸어 나가며 천천히 바이스 교수를 바라보았다.

“오만한 놈, 제 재능만 믿고 연습도 하지 않으면서 동급 생도를 업신여긴다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

연습을 안 해? 내가 조사한 바로 타디아는 독종이라 불릴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온 생도였다.

그렇다면 역시.

나는 시험을 시작하자마자 가볍게 자세를 잡으며 기존의 평상 자세인 종베기를 휘둘렀다.

후웅!!

깔끔한 파공음과 함께 목검이 허공을 가른다.

그 모습을 보던 코시아가 멀리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엉망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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