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10화 (910/1,559)

제 910화

“거두절미하고 물어보자. 네가 이 사태를 일으켰나?”

내 물음에 그는 말없이 나를 직시한다.

“이 사태?”

“주변 좀 둘러보지? 꼴이 말이 아니잖아.”

내 말에 그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군. 이곳의 생명체는 나를 감당하기엔 너무 미약한 것인가.”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에너지가 강한 곳이기에 와보았건만, 이래서야 힘을 쌓는 것도 힘들겠군.”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가 나를 향해 검을 뻗는다.

“그래. 뭐라고?”

“그쪽이 이 일을 만들었냐고.”

“흠. 뭐, 맞는다면 맞고 틀리다면 틀리겠군.”

“똑바로 대답안하면 좀 험한 꼴 볼 거 같은데.”

담담하게 말한 내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놈, 내가 영향을 뻗치고 있는 차원에서 나타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온 놈이라는 소리인데. 적어도 외부에서 온 놈 중 멀쩡한 놈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험한 꼴이라……. 흐……흐흐.”

갈라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가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서걱!!

그리고 아주 잠깐의 텀 끝에 내 바로 옆 공기가 잘려 나갔다.

검을 휘두르는 소리도, 모습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지만 정확하게 나를 노리진 않았다.

“파하지 않는것이냐. 좀전 내가 보여준 검로를 본 것이 단순 우연이었느냐. 이질적인 홀른이여.”

“홀른이라는 단어. 보통 지금 이 땅에서 잘 안 쓰는데.”

“음?”

“전에 한번 온 적이 있나 보네.”

내 물음에 그는 짧게 탄성을 흘리며 붉은 안광을 더욱 번뜩였다.

“역시 이질적이구나. 주변에 있는 미약한 이들과 다르게 별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내 검로를 아주 잠깐이나마 보았다라. 그런 주제에 눈썰미도 예리하고, 마음에 들었다. 받아라.”

그렇게 말한 그가 주변에 있는 검은 갑주의 검을 하나 빼앗아 내게 던졌다.

“검을 잡아라. 홀른. 네가 보여 준 검로를 보는 눈이 진짜인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이봐요. 지금 사람 죽여 놓고 한다는 말이 그게 단가요!?”

일리나가 차갑게 그를 노려보며 소리치자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죽여? 아 그렇군. 그래. 부정하진 않겠다. 하나 묻도록 하지. 야생에서 강한 포식자가 먹이를 잡아먹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라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섭리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하지 않지. 그렇다면 지금과 그 상황이 다른 게 무엇이냐.”

그 말에 일리나가 이를 악물었다.

이에 그녀가 한 걸음 내딛으려던 찰나.

내가 팔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데이비! 왜 막는 거야!”

“아니. 그래도 머리에 박힌 잘못된 생각은 잡아 줘야 할 거 같아서.”

“뭐?”

“네 말대로 포식자가 먹이를 잡아먹는 건 자연의 섭리긴 해. 그런데 말이야.”

담담하게 말한 내가 손에 쥔 검을 붕붕 휘두르다 그대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부욱!!

그야말로 일순간 그의 앞에 나타났다.

동시에 그의 안광이 거칠게 번뜩였다.

“잡아먹힌 피 포식자의 무리는 제 동족을 잡아먹은 놈을 절대 이해하지 않아. 그건 네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업보라는 거다.”

설사 그게 힘 있는 대상이라면 더더욱.

쩌어엉!!

순식간에 점프하듯 날아들어 그의 머리를 걷어차 날려 버린 내가 가볍게 내려섰다.

콰아앙!!!

걷어차인 후 튕겨져 나간 그는 놀랍게도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아 냈다.

십여 미터 까지 밀려나긴 했지만 마스터급 정도는 우습게 날려 버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는 순식간에 조각나 버린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반대로 그의 몰골을 본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저히 인간의 근육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독특한 살점이 힘없이 추욱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게의 속살처럼 말이다.

“껍질이 깨졌군. 별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도 이만한 힘을 가진 홀른이 있다는 건 내 기억에 없는데.”

그는 진심으로 마음에 든 것처럼 안광을 일렁였다.

“좋다. 네가 가진 최선의 힘은 확실히 잘 보았다.”

최선?

설마 이놈은 자기만 힘을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적당한 자신감은 강자의 특권이니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내게 아주 잠깐이나마 닿을 수 있는 포식자로 인정하겠다.”

“그럼 이야기를 좀 해 줘도 되겠지?”

“하하하하하! 좋다! 말해 줘도 되겠지. 나는 6번째 별. 거해궁의 피조물이다. 이름 따윈 존재하지 않아. 나는 거해궁께서 만든 하나의 존재일 뿐이니. 물론 그중에서도 나는 이름을 하사받을 자격을 가진 존재라 할 수 있다.”

거해궁.

게자리를 칭하는 단어다.

“그래서?”

“곧 [궁]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태초신이 사라진 이상 우리에게 제약은 없으니 너희들에게 영광을 하사하겠다. 이 차원의 가능성을 보아…….”

“대충 네게 들을 이야기는 그게 다인가보다.”

담담하게 그의 말을 끊은 내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은 검을 주워 들었다.

감촉이 마치 단단한 갑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들었다.

“네 창조주와 넌 이어져 있나?”

“아니. 난 궁의 의지에 의해 파생된…….”

“아 그거면 됐어.”

“뭐라?”

담담하게 말한 나는 손에 쥔 검을 왼손으로 옮긴 뒤 오른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동시에 새하얀 인챈트 스크롤에 독특한 문양의 문자가 새겨진 부적이 오른 손가락 마디 사이에 두어 장 쥐어졌다.

마치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화르르륵!!

이윽고 두 장의 부적은 빠르게 푸른 화염으로 타오르며 괴황지처럼 노란빛으로 변했고 이내 막대한 도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막대한 도력이 전신을 감돈다. 이놈들의 힘은 마나와 비슷하면서 이질적인 힘이다.

그렇다면 마나와 가장 관련이 적은 힘을 사용하는 게 좋으리라.

[특급 주술]

[괴신 강림]

[천하대장군]

일순간 남빛의 거신이 내 등 뒤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듯 드러났고, 그 손에 거대한 푸줏간의 칼과 같은 것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몸에서 막대한 위압감이 느껴진 탓일까.

검은 갑주는 안광을 크게 일렁이더니 급히 손을 휘저어 보였다.

너희들에 대한 정보를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

별과 관련된 힘이라면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

현 상황에서 신의 영역에 가장 전문적인 존재들에게 물으면 되는 일이리라.

직접 나서든 아니든 알아서 나쁠 것은 없을 테니.

“흡?!”

공간이 찢어지며 좀 전 날아들었던 거대한 기둥, 아니 검을 쥔 갑옷 거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무려 20여 미터.

고개를 까마득히 올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다.

구구구구궁!!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갑주는 내 뒤로 타나난 거신을 향해 검을 빠르게 휘둘러 들어 왔다.

하지만.

하늘 높이 거대한 칼을 들어 올린 괴신 천하 대장군은 강렬한 안광을 번뜩이더니 그대로 갑주의 거신을 검으로 내리찍어 버렸다.

쿠우우우우웅!!!

주변이 진동하는 어마어마한 충격음과 지진이 일어난다.

대지가 뒤틀리고 막대한 힘이 한 점에 모여 순식간에 거인 갑주를 향해 내리찍었다.

일전에 섬을 지워 버린 일격수준으로 내리치면 주변이 모조리 휘말린다는 알량한 생각 때문에 힘 조절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어디까지 통용이 되는지 확연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틈 사이에서 놈에게서 받았던 검은 검을 절도 있게 튕기듯 고쳐 잡은 뒤 그를 향해 다시 한 발 내딛었다.

[축지]

부욱!!

공간이 일순간 생략되며 파고든 내가 그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놀랍군!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검이로다!!”

그가 감탄하며 자신의 검을 당겨 잡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반격하기엔 이미 늦은 후였다.

하지만 거해궁이라는 독특한 존재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는 달랐다.

“허나 아직 모자라다! 그 정도 검술로 내게 닿을 순 없으리!”

일순간 그의 검이 나를 향해 정직하게 내리쳐진다.

허초도 실초도 구분되지 않는 정직한 내려 베기였다.

하지만 내 시야에 비친 것은 일곱 방향이 넘는 갈래로 내리쳐지는 채찍 같은 검기들이었다.

상대의 검기를 튕겨 내고, 그리 밀도가 높지 않음에도 초단이의 절삭력이 떠오를 정도로 예리한 검기다.

단순 검기이면서 오러블레이드도 잘라 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섬뜩함을 품고 있었다.

단순 검으로 막기 힘든 막대한 검기의 파도에 나는 담담한 얼굴로 그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물론 쉴 새 없이 파고드는 공격에도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상쇄시켜 버렸다.

그 모습에 그의 안광이 흔들렸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하게 하는 건 나도 가능한데.

“아직…… 더 숨기고 있었나?!”

“고작 이걸로 놀라면 쓰나.”

그리고 놀란 듯 안광이 일렁이는 그를 향해 내가 높이, 그리고 천천히 검을 부드럽게 내리쳤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면, 기어 1단을 올려 보자.

휘리리릭 쩌억!

“무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 알고 있나?”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포식자와 피 포식자의 위치. 바뀐 지 좀 됐다고.”

너희들이 포식자라 착각하는 모양인데.

잡아먹는 쪽은 이쪽으로 바뀐 지 꽤 되었다.

그러니 밸런스 패치를 하면 패치내역을 잘 읽었어야지.

그가 7~8번을 동시에 베어 준다면 나는…… 조금만 더 얹어서 베어 주리라.

동시에 20가닥이 넘는 검기가 촘촘하게 그의 퇴로를 차단하고 내리 꽂혔다.

서걱!!

단단하던 그의 갑피 같은 갑옷이 잘려 나간다.

그리고 떨어져 나간 그의 머리를 붙잡으며 내가 눈을 번뜩였다.

“너 때문에 보팔레빗이 강제 휴가를 떠났으니 가진 힘 좀 내놔 봐라. 책임은 져야지.”

“무슨 소릴?!”

“맛 좀 보자. 혀만 담그고 뺄 테니까.”

[포식]

콰드드드득!!

“커헉?! 이건 무슨?! 대체!”

무형의 거대한 입이 그의 머리를 씹어 삼키듯 먹어 치웠다.

그의 전신에서 독특한 힘이 내 몸안으로 흘러들어 온다.

만약 포식의 권능을 이용해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힘이라면.

그땐 미련 없이 버려야 하겠지만 놀랍게도 이 힘은 신력과 뒤섞이며 내게 스며들었다.

관련이 없는 힘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그……그아아아악?!”

당황한 그의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그의 육신이 분해되기 시작한다.

역시. 이놈은 육체가 아니라 그 거해궁인지 뭔지 하는 놈의 힘이 응집되어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고개를 돌린 곳에선 그와 다르게 상당히 약한 힘을 보유한 갑옷의 인영들을 일검에 베어 버린 채 검을 털어 내고 있는 일리나가 보였다.

여덟 중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불량품.

그럼에도 이 정도 힘의 기준이라 할 때.

예상이 맞는다면.

그 거해궁이라는 별.

어쩌면 반신급, 혹은 그 이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일부는 해석이 끝났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작은 소녀의 목소리에 검신 하레스가 담담하게 물었다.

“오딘.”

소녀의 정체는 마법사의 신.

헤라클래스가 사라진 회랑의 영웅 중 현재 최고령에 해당하며.

신급의 위계를 포기했으면서 인간의 육신으로 별의 힘에 닿은 절대경지의 대마법사가 바로 그녀였다.

“태초의 의지가 세상을 만들 때 떨어져 나간 열두 개의 힘은 막대한 자아 의지를 가졌다.”

그녀가 손끝으로 거대한 석벽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자아 의지?”

“떨어져 나간 파편, 편린. 뭐가 됐든 좋아. 어쨌든 간에 해석 계속한다?”

“부탁할게. 귀찮은 건 좀 사절인데.”

“문제는 이 자아 의지가 너무 거대한 탓에 프리아 여신은 떨어져 나간 파편을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별에 담아 봉인했다.”

열두 개의 별자리. 별의 힘.

“분명 성단과 블랙홀, 그리고 거대 성과 별자리는 프리아 여신의 힘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했던가.”

“그것뿐만이 아니야. 지금 눈을 뜬 건…… 일단 하나인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이 일의 원흉이 데이비 자식이 만들어 낸 달 때문이라는 거야. 망할 데이비 자식, 돌아오면 태워 버려야겠어.”

“그놈의 달은 여기저기서 부작용이 나오는구만. 그래서 그 별이 뭔데.”

“검의 별. 거해궁. 켄서. 검의 별자리.”

커다란 챙이 있는 검은 마녀 모자를 뒤집어 쓴 채 한쪽 눈의 안광을 번뜩이며 오딘이 중얼거렸다.

“데이비 좀 불러와 줘. 하레스.”

“어쩌려고.”

“어쩌긴 뒤처리 시켜야지. 제깟 놈들이 날뛰어 봐야 결국 손바닥 안이야.”

“…….”

너무 당당한 그 말에 하레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 딸아이가 싫어할 텐데…… 그보다 검의 별이라고?”

“그래.”

“데이비 그놈도 지금 경지만 따지면 검신급이 아닌가?”

“그래서?”

“둘 중 누가 더 뛰어날까 싶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