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7화
260. 종의 차이
[목표, 발견…… 회수 개시.]
검은 기사는 섬뜩한 기세를 내뿜으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체격으로 빠른 이동속도를 자랑하는 오우거나 트롤과는 격이 다른 엄청난 속도였다.
카앙!!!
반사적으로 곁에 있던 용병을 보호하기 위해 에반젤린이 홍단이를 뽑아내 반격하려 했지만 검은 갑옷기사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아무리 고대룡의 태생이라도 그녀는 아직 3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반면 상대는 강한 존재를 상대로 어떻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쾅!!!
수차례 구르며 튕겨 나간 그녀의 목을 틀어쥐고 나무에 처박아버린 검은 기사의 안광에서 붉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끄윽…… 크륵…….”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그녀가 공격을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익스플로전!!]
콰아앙!!!
장문 영창도 아닌 초 단문 영창으로 이뤄진 폭발이 일어나며 검은 갑옷의 기사가 튕겨 나가듯 밀려났다.
심연의 힘처럼 별의 힘이 치외법권 같은 사기적인 능력을 갖춘 건 아니었다.
성질이 다르긴 하지만 두 힘 모두 서로의 힘이 강할 경우 약한 쪽이 밀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막대한 폭발에 밀려난 검은 기사가 다시 검을 고쳐 쥐고 그녀를 향해 자세를 잡았다.
“아파…….”
에반젤린이 종의 특성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녀에겐 결정적으로 상대의 악의에 저항하는 방법을 몰랐다.
즉, 그녀는 현재 자신의 능력의 절반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소리였다.
상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무형의 감정.
에반젤린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며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것을 억지로 삼켰다.
“으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해온 용병들이기에 학살당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이토록 기습적으로 몬스터가. 그것도 오우거 같은 상위 몬스터가 들이닥치는 건 절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이럴 순 없어…… 대체 여기 왜 오거가 있는 것인가!!”
“피하십시오!!”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하자 에반젤린은 떨리는 몸을 끌어안듯 웅크린 채 이를 악물었다.
[바깥은 무서운 곳이야. 아무리 힘이 있어도 위기를 헤쳐나갈 용기나 지혜가 없다면 언젠가 크게 다칠 거다. 두려워하고 면밀히 생각해. 에반젤린.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야.]
[에반젤린이 만약 누군가에 의해 다치면…… 그땐.]
이 세상을 다 부숴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놈을 부순다. 거기에 어떤 정치문제도, 섞을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데이비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가 그녀의 검과 마법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 상당히 공을 쏟은 건 사실이지만 결국 그는 한 가지를 이뤄내지 못했다.
다리안과 같이 에반젤린도 너무 소중한 딸이기에. 너무 모질게 대하지 못한 것이다.
초보 부모가 주로 하는 실수였다.
잘못한 아이는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이것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안돼!! 다치면 안 돼!!”
이를 악문 에반젤린은 떨리는 몸을 억지로 제어하려 했다.
하지만 악의가 점차 강해지고 비명이 커질수록 그녀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녀는 감정을 다루는 힘을 지니고 있다.
좀 전까지 잘해주던 아저씨들이 두려워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감정을 내비치는 건 아직 어린 그녀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으…… 으아아아악!!!”
결국, 오거들을 제압하던 줄이 하나 끊어지고 거기에 노출된 용병 하나가 오거에게 잡혔다.
이에 에반젤린이 급히 그를 구하려 했지만 검은 갑옷기사가 그녀를 검으로 찍어누르며 점차 지독한 악의를 내비친다.
“흐…… 흐흑…….”
결국, 악의에 눈물을 뚝뚝 흘린 그녀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젠장! 갈고리 사슬 최대한 챙겨!!”
“굼벵이처럼 움직이지 마라!! 우린 프로다! 어떤 경우에도 의뢰는 완수한다!”
비명과 외침이 난무하는 속에서 또 한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까드득…… 까득…….
검은 기사의 검을 마주 대한 채 힘을 주어 버티던 에반젤린이 고개를 숙이고 이를 까드득 소리 나게 갈았다.
[저항하지 마라. 저항해봐야 소용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은 기사는 점차 그녀를 압박해갔다.
검은 기사의 검에 넘실거리는 검강이 생겨난다.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지만 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카가가가각!!
점차 밀려 나가던 에반젤린이 한쪽 무릎을 꿇을 정도로 밀린 그 순간.
“주…… 죽고 싶지 않아!!”
비명을 지르는 한 용병의 외침에 에반젤린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은 기사가 끝장을 내려는 듯 에반젤린을 강하게 찍어눌렀다.
하지만 동시라 할 정도로 에반젤린의 전신에서 막대한 무형의 무언가가 터져 나오며 기사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분위기가 변했다.
검은 기사가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휘두르려다 멈칫했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에반젤린을 보며 놀란 것이다.
평소의 에반젤린의 눈 색과는 다르게 짙은 자색으로 변한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진다.
그르르릉…….
낮은 용의 포효소리와 함께 그녀의 전신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웅!!!
그리고.
검은 기사가 검강을 두르고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을 때.
그를 노려보던 에반젤린이 다시금 왼팔을 들어 팔목으로 그의 검을 막아버렸다.
검강을 두른 검을 맨손으로 막아낸다?
상식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막아낸 그녀였다.
아니 정확히는 맨손이 아니었다.
그녀의 팔뚝에 검은 비늘 같은 것이 돋아있었다.
-그르르르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었지만, 주변의 공기가 마치 떨 듯 공명하며 두려운 울음소리를 냈다.
철그럭!! 철컹!!!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검은 기사가 다시 검을 벌리려 했다.
하지만.
붉은 검기를 드러낸 에반젤린의 손에 쥐어진 홍단이가 섬뜩한 검강을 뿜어내기 시작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검기가 아닌 마스터의 상징. 검강. 즉 오러 블레이드였다.
서걱!!
그리고. 홍단이의 권능. 생자를 베는 권능이 검은 기사를 훑고 지나갔다.
검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피할 순 없었다.
검이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일대 영역 전체에 이미 검기가 퍼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데이비가 강화했던 홍단이의 권능.
공간 전체를 베는 시간을 지워버리는 검기 방출.
수 미터가 떨어져 있어도 검이 닿는 중간 시간을 지워버린 일검이 검은 기사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서걱!! 서걱!
동시에 에반젤린이 바닥을 강하게 구르며 섬뜩한 시선으로 검은 기사를 향해 파고들었다.
낮게 파고들어 온 그녀의 완전히 변해버린 힘에 검은 기사는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팔도 다리도 몸도 반 토막 나버린 상황에서 그가 저항할 수단은 없었다.
서걱!!
또 한차례 붉은 검기가 주변의 나무와 오우거까지 모조리 잘라버리며 날아들었고 끝내 검은 기사의 목을 베어버렸다.
속이 인간과 다른 근육으로 가득 찬 갑옷기사의 목이 허공을 나른다.
아직, 죽지 않는다.
치명상이긴 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주는 힘은 남아있다.
다시 회복하면!
그렇게 판단한 검은 기사가 몸을 복구하려던 찰나였다.
쉬리리릭! 콰작!!
동시에 홍단이를 바닥에 꽂은 에반젤린의 손에 푸른 검이 원형으로 검기를 방출하며 일대 영역을 반구로 감쌌다.
파스스스…….
청단이의 권능. 사자를 베는 권능이 발현되었다.
데이비를 제외하고 그 권능을 제대로 발현하는 이는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청단이의 권능은 검은 기사의 근본까지 베어버렸고, 결국 놈을 완전히 먼지로 흩어버렸다.
“하아…… 하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에반젤린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듯 앉았다.
트롤과 오우거의 공격에 도망치며 저항하던 이들은 일순간에 목이 날아가 버린 오우거와 트롤들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 죽은 거야?”
목이 잘려나가거나 반 토막 나버린 몬스터들을 보며 용병들은 이내 가장 위험한 적으로 판단되던 검은 기사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기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무릎을 꿇은 채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엉엉 우는 에반젤린만이 보였다.
다른 이들은 그녀가 두려워서 운다고 생각했다.
오거는 크게 문제가 될 게 아니지만 검은 기사는 그런 오우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이었으니까.
아직 어린 소녀에게 그런 괴물은 너무 일렀다.
너무 가혹했다라며 용병들은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위험한 몬스터가 나도는 숲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검은 기사는 과할 정도로 뜬금없었으며 위험했다.
“젠장! 살다 살다 고성 유적지에서나 볼법한 다크 나이트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재수가 옴 붙었구만!”
“잠깐만! 바넷사! 바넷사는 어디로 갔어!”
“젠장 트롤 몇 마리가 안 보여! 이 새끼들! 설마 마나를 가진 사람을 전부 납치하려고 했던 건가?!”
다크 나이트.
주로 고성에서나 보이는 언데드 형 기사 몬스터로 이들은 그 검은 기사가 방랑하는 다크 나이트라 착각한 듯 보였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분명히 들었다.
목표발견.
그녀를 바라보며 그 기사가 했던 말을 말이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용병들과 별개로 에반젤린은 서럽게 울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몸 안에 있던 거대한 본성이 아주 잠깐 깨어나며 그녀가 자신의 아빠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말인 즉.
그녀는 데이비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홍단이 언니…….”
그녀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린이 울지마아…… 홍단이도 슬퍼…….]
“언니. 나는 아빠의 딸이 아니야?”
그 물음에 홍단이는 침묵했다.
[에린이는 아빠 딸이야!]
그리고 다시 말했지만 이제 와서는 소용없었다.
친아빠가 맞다면. 자신의 본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은 인간을 낳는다.
하지만 에반젤린을 눈치챘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거대한 무언가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같은 시각.
데이비는 사방에 널린 갑옷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에반젤린을 공격했던 갑옷기사들과 같은 놈들이지만 그 수가 무려 십수 명에 달한다.
콰작!!
살아있는 갑옷기사의 목에 황금빛의 창을 꽂아 넣은 륀느가 담담하게 물었다.
“데이비 님. 처단 준비 완료.”
“에반젤린이 의뢰를 완수하는 데 방해가 안 되게 이놈들은 직접 치워야겠다.”
그렇게 말한 데이비는 꿈틀거리는 갑옷기사를 발로 짓밟아 우그러뜨렸다.
의도하지 않게 행렬은 또 한차례 엄청난 위기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