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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19화 (919/1,559)

제 919화

거대한 별자리.

반신의 존재.

그런 존재의 영향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자. 우리 서로 풀 것부터 풀자고.”

시체 투성이의 중앙에 비치는 사람의 팔뚝만 한 에너지 구체를 보며 내가 빙그레 웃어보였다.

“너희들은 이 땅에 현신하는 게 굉장히 힘들지.”

-우우웅…….

서로 대화는 필요 없었다. 할 일을 할 뿐이니까.

치직…… 치지지지직!!

이윽고 에너지 구체가 스파크를 일으키더니 이내 인간과 비슷한 어떤 존재를 만들어냈다.

낡고 열에 일그러진 갑옷을 입은 인영이었다.

쓰으으…… 하아아……

헬멧 바이저의 틈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화신…… 치고는 제법 단단해 보이네. 피조물 쪽인가?”

내 물음에 그는 바이저의 틈 사이로 붉은 안광을 일렁였다.

동시에 무겁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을 휘감는 열기와 별개로 굉장히 차가운 느낌이었다.

“홀른. 데이비 올 라운.”

홀른은 오래전 인간을 칭하던 명칭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프리아 여신이 내린 이름이었으니까.

“그래. 그쪽은?”

담담하게 말하며 기검을 꺼뜨린 내가 묻자 그가 천천히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굉장히 현실적인 무장에 장비였다.

“미안하지만 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뭐?”

“너의 존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방해가 된다고 판단됐다. 따라서. 거헤궁의 뜻에 따라 너를 제거한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상대가 나를 죽이겠다 판단했다면 이쪽도 거리낄 게 없다.

치지지직…….

이윽고 내가 가진 신격이 손으로 모여들며 이전보다 더 짙은 농도의 신검을 만들어낸다.

청단이 홍단이도 에반젤린이 가지고 튀어버렸으니 내가 사용할만한 검이라면 역시 기검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갑옷기사가 천천히 허리춤에 있는 자루를 꺼내 들더니 그 안에 있던 어떤 빛나는 가루를 흩뿌렸다.

저건, 별 가루?

별의 힘이 서린 가루다.

이윽고 사방으로 흩뿌려진 별의 가루들은 이내 얇고 오색으로 반짝거리는 장막을 만들어냈다.

파직!!

그리고.

“기검이 사라져?”

신력이 동결됐다.

검을 잃어버린 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바라보자 그는 흑빛의 검을 들어 나를 겨누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나를 향해 파고들었다.

마나는 살아있다. 신력도 멀쩡하다.

하지만.

기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숙인 뒤 나를 향해 검을 찌르는 놈의 공격을 슬쩍 흘려냈다.

그리고 손에 기공을 모으기 시작한다.

[혈마공]

[광신귀광격]

[폭마귀장]

화아아아악!!!

사령 마나와 내공이 뒤섞여 만들어진 혈마공이 빛을 발하며 일순간 검은 늑대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쩌어어엉!!!

막대한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검붉은 기운이 마치 화염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촤악!!!

놈은 멀쩡했다.

그리고. 오히려 내 몸에 상처가 생겼다.

내가 먹어치웠던 힘인 반탄 능력이었다.

검이 아니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기를 잠시 자세를 잡은 그의 바이저 너머의 틈에서 붉은 안광이 다시 일렁였다.

“죽어라. 신격이 불완전한 조율자여.”

촤악!!!

오색의 빛이 순간적으로 굴절하며 내 움직임을 제약한다.

같은 동격의 반신급의 힘이 제약하는 것이다.

파괴와 싸울 때도, 타나토스와 싸울 때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방식의 힘.

이래서 모르는 힘은 경계를 해야 한다.

팔뚝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마나와 신력으로 두른 육신의 방어능력은 이미 전신을 포함하여 공격능력을 원천차단하는 수준에 이르러있다.

그런 피부에 상처가 났다는 건 단순히 물리적인 힘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리라.

그때 공격을 하던 갑옷의 기사가 내게 말했다.

현재 거헤궁이 만들어낸 최강의 피조물. 자신을 대신하는 집행자가 눈앞의 존재다.

겉보기엔 초라하지만, 그 힘과 특성조건을 생각하면 심연의 공주 이상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비척비척 걸어오더니 이내 몸을 크게 경련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좀 전까지와는 다른 막대한 인지력을 지닌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별자리의 음성이었다.

“고대룡을 기르고 있더군.”

“…….”

“네놈이 감당할 수 없다.”

“그건 내가 판단해.”

내 말에 거헤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육신은 피조물이나 정신이 아주 잠시 위대한 자로 깃들어있다.

“반신급은 반신급이라는 거네. 그것도 조금 독특한.”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때 거헤궁이 폭탄을 터뜨렸다.

“뭐라고?”

“그 아이의 친부모가 네가 아니며. 네가…….”

“야.”

“네가 그 부모를 죽였음을.”

콰아앙!!!!

엄청난 폭음이 인다.

기검을 만들 수 없어 그대로 그를 벽면에 처박고 내가 싸늘하게 말했다.

“오지랖이 짙다. 개새끼야.”

“넌 반신이다. 어찌하여 부질없는 인과에 얽매이는 거지?”

“…….”

“나 또한 내 생의 목적을 이루고 있다. 궁의 전쟁. 그것은 프리아 여신이 내린 우리의 굴레이며, 저주. 그리고 삶의 목적이다.”

“그래서. x발놈아. 그게 아직 어린 에반젤린을 자극하는 이유가 뭔데.”

서늘하게 말한 내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콰아앙!!!

공격은 먹히지 않았지만, 주변을 뒤흔드는 데엔 충분했다.

제법 힘을 담았는데도 놈은 멀쩡하다.

“멸화룡. 그것이 그 아이의 업이다.”

압도적인 절대자. 그것이 되리라 말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가 될 씨앗. 제 부모를 넘어선 존재.

단신으로 차원을 붕괴시킨 진화자와 심연의 신조차 죽이지 못해 타락시키는 게 전부였던 고대룡을 넘어선다는 건 그런 것을 의미했다.

“나는 너를 방해자라 생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네가 가진 의무를 인지하고 있다. 네 의무가 무엇인가.”

프리아 여신이 내게 맡긴 의무.

그것은 세상의 조율이다.

부서지지 않도록.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그 의무를 이행하고자 한다면 그 같은 위험한 씨앗을 너 스스로 죽여야 한다. 그것이 네 존재의무가 될 터.”

“…….”

“그녀를 살려두면…….”

거헤궁의 눈이 번뜩였다.

동시에 내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장면에 보인 것은 완전히 붕괴한 세상과 그런 세상을 공허하게 바라보는 흑발의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다.

에반젤린.

나의 소중한 딸. 에반젤린 올 라운이다.

푸욱!!!

동시에 거헤궁이 빙의한 피조물의 검이 내 복부를 꿰뚫었다.

“의무를 다해라. 그렇지 않겠다면 결국 넌 존재할 가치가 없다.”

“…….”

“그럼에도 너는 그 고대룡. 멸화룡의 씨앗을 품을 것인가?”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운명이란 참 얄궂은 거야.”

다프네는 고요한 테라스에 걸터앉은 채 눈앞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홍차를 음미하고 있던 은발의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에반젤린의 운명이라는 겝니까.”

“……빌어먹게도 말이야.”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은 수많은 별로 가득 차 빛을 비춘다.

“넌 감당할 수 있니?”

“…….”

그 물음에 페르세르크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난 운명…… 이라는 것에 요즘 상당히 회의적이야. 굉장히 역겹다고 느끼고 있지,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대륙은 흔드는 폭풍이 될 운명이고, 그걸 바꾸는 게 쉽지 않아도 넌 받아들일 수 있니?”

다프네의 물음에 페르세르크는 홍차를 들었다가 놓으며 침묵했다.

에반젤린은 결국 세상을 흔들 운명을 지녔다.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운명이 발하기 전에 그녀를 제어하거나 죽여야 한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문득 웃음이 나오는 페르세르크였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했을까.

페르세르크는 예쁜 얼굴로 하늘을 보며 입을 열었다.

“본녀의 아비는…….”

“하레스?”

“어찌 지냅니까?”

“어쩌긴 늘 그렇듯 지내고 있지. 그런데 그건 왜?”

하레스는 끝내 페르세르크를 만나러 내려오지 못했다. 아니 현신 가능한 존재가 현재 히포크리아와 다프네 라는 점을 생각하면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걸 갑자기 왜 묻는지 물어도 될까?”

“3천 년이나 떨어져도 아직도 그립습니다.”

그 말에 다프네가 입을 살짝 벌렸다.

“아버지가 본녀 심장에 칼디라스를 박았을 때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소중한 가족이니까요.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가족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을 테지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옅게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에 섞인 그 유려함에 다프네는 속으로 참 매력적인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년이 지나도 전생의 가족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천 년간 잠자던 분노를 터뜨렸고 금기의 힘을 다시 깨웠을 테지요.”

“너…….”

“천년이 지나도 친모인 레니 왕비님을 잊지 못하고 매달 그녀의 묘소를 찾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조용히 묘비를 보고 돌아오지요.”

“…….”

“반신이기에 운명을 중히 여겨야 한다 하였습니까. 틀립니다. 데이비는 반신이 아니지요.”

“반신이 아니다라…….”

“그는.”

그녀가 당당한 표정으로 다프네를 직시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싶고, 제 딸이 너무 귀여워서 견디지 못하는 그런 팔불출 인간일 뿐입니다.”

그 말에 다프네는 절로 실소를 터뜨려버렸다.

그녀의 말에 반박할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데이비에게 막중한 의무를 부과하는걸 싫어한 주제에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한 스스로가 웃기게 느껴지는 그녀였다.

자신들은 프리아 여신의 권위를 받으며 생각이 바뀌고 있었건만. 정작 자신들이 혼신을 다해 키워낸 제자 놈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다.

“본녀는.”

페르세르크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다프네는 조용히 그녀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절대 소중한 가족을 포기하지 않을 겝니다.”

* * *

콰직!!!!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듯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별자리의 힘으로 쳤던 결계가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그러진 것이다.

막대한 힘에 노출되고 일그러진 힘. 그것은 이미 동률의 반신급이라 볼 수 없었다.

마치 지금껏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듯 완전히 상황이 변해 있었다.

압도적인 위압. 같은 반신조차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무섭고 깊은 거대한 힘의 격류.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존재를 압박하던 계속해서 저항하지만, 손으로 만들어낸 검은 그것을 서서히 짓누르고 끝내 찢어발겨 버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런 힘은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웅크리고 있었다고 말하듯 그의 힘이 폭주하듯 늘어나며 어느새 별자리의 힘을 가볍게 짓밟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한 존재였구나.

세계의 기억 속에서 그의 존재가 흐릿하게 보인 것은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아…… 여신이시여…….

너무 강해져 버린 인간이기에.

반신으로써도 어찌해볼 수 없는. 같은 반신임에도 반신을 넘어선 무언가였기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풀게 만드네 개자식이. 꼴에 반신이라 이거지.”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판단이 장난이었다고 말하듯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반젤린의 운명이 세상의 균형을 뒤틀 거라고?”

“…….”

“그깟 미신을 믿고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다. 아니 있을지 모르지. 그런데 나는 아니야.”

“지금 제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의무? 삶의 존재 이유? 개소리 하지 마라.”

콰드드득!!

데이비의 손위로 마치 검날처럼 회전하는 막대한 신력이 모여든다.

거헤궁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은 곧 거헤궁의 결계를 그 자리에서 박살 내버렸다.

비슷한 반신급의 힘이지만 명백한 힘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내 삶의 존재 이유는 내가 만드는 것이고,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다.”

콰드드득!!

“그리고. 에반젤린의 운명이 그런 것이라면 내가 에반젤린을 지키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거다.”

콰자작!!

결국, 갑옷이 박살 나며 그 안에 있던 보석 같은 심장이 뜯겨 나왔다.

힘이 끊어진 거헤궁이 비틀거리자 데이비는 한 손을 들어 허공을 긁어내리듯 잡아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에반젤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아이는.

비록 피가 이어져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내 딸이야 개새끼야.”

퍼걱!!

허공을 찢어내듯 공간을 긁어내리자 일대 영역이 뒤틀리고 소용돌이치며 힘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해 거헤궁의 빛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게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빛을 잃고 서서히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제 진실을 깨달은 그 멸화룡이 널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군.”

그 비웃음에 비웃음으로 마주쳐준다.

“애들 반항기는 언제든 한번은 오기 마련이다.”

콰직!!!

공간이 찢어지며 그 공간 사이로 빛이 모여든다.

마치 별을 우그러뜨리듯 전신에서 막대한 신력이 쏟아져 나왔다.

양손으로 압박하기 시작한 별빛에 검은빛의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별자리는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강한 힘에 당황한 듯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지지직. 터무니없군!! 반신격의 존재가 지금 그 존재 의무보다 한낱 잠깐의 정에 휩쓸리겠다는 것인가?]

“한낱 잠깐의 정? 말조심해라.”

콰직!!

“에반젤린은 수천 수만 년이 지나도 내게 다시 없을 소중한 딸아이다.”

하지만 그 저항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다른 별자리와 다르게 거헤궁은 깨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힘을 마구잡이로 남발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메리트를 제대로 내세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멍청하다 욕할 생각은 없었다. 황도 12궁의 자아는 모두 제각각이니까. 반신들이 자신의 존재 의무에 충실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파스스스스…….

그렇게.

다시 눈을 뜬 열두 개의 별자리 중 하나가 그렇게 지듯 침묵했다.

동시에. 하나의 별자리가 궁의 전쟁도 아닌 다른 요소로 소실된 탓일까.

잠들어있던 나머지 별자리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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