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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20화 (920/1,559)

제 920화

일그러지는 별자리의 힘이 사그라진다.

티오니스에 얕게 깔려있던 별의 힘.

운석과 함께 내려왔던 힘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이 진동한다.

보통 생명체는 느낄 수 없는 흔들림일 텐데.

‘결국, 나도 사람이라 보기 힘들어졌다는 뜻이겠지.’

상위 신격을 각성한 상위 반신이라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이러면 안 된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이걸 이렇게 조율해야 한다.

그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내 귓가를 계속해서 간질이고 있으니까.

그 무형 무음의 속삭임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아주 사람이 미칠 정도로 속삭여 대고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처음엔 이 망할 불협화음을 없애버리기 위해 조언을 구하고자 회랑으로 향했고, 거기서 오딘에게 죽도록 마법공격을 받은 후에야 내 힘을 억제하여 격을 잠시 낮추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서서히 소음이 줄어들며 본래의 감각이 돌아왔고 나는 조용히 제단을 빠져나갔다.

이쯤 되면 그놈의 화신이나 피조물은 전부…….

텁…….

“음?”

고개를 돌려 내려보니 붉은 안광을 빛내는 화신 하나가 내 다리를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놈이 있네.

“살…… 려.”

피를 뿌리며 쓰러진 그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애걸했다.

“죽……고 싶지…… 않.”

별자리가 사라진다고 그 피조물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뜻인 듯 보였다.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화신.

아마 그는 티오니스의 일반 인간이었을 것이다.

거헤궁이 내려오면서 그 힘을 받아들이기 적합한 육신을 지니고 있었을 터.

일반인이 화신이 되면서 엄청난 무력을 손에 넣는다면 이건 어떤 의미로 굉장한 파장이 될 우려가 존재했다.

한번 화신이 된 이는 돌아올 수 없다.

물론, 그것뿐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거헤궁이 소멸하면서 그에게 힘을 받던 이들은 다시 약해졌으니까.

하지만.

“고향……에. 동……생이.”

그가 무슨 사정을 가지고 이런 짓을 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몰골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몰골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살려준다 해도 오래 못가 온몸이 괴사해 죽을 터.

스르륵…….

힘없이 추욱 늘어진 화신의 시체를 뒤로한 채 나는 에반젤린이 있는 곳을 향해 가기 위해 허공에 손가락을 그어 내렸다.

부욱!! 소리와 함께 공간이 찢어지며 틈이 벌어졌고 나는 미련 없이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런 내 뒤편으론 더 이상 아무런 생명체도 움직이지 않았다.

* * *

“어째서지? 힘이…….”

거헤궁의 피조물은 에반젤린에게 향하던 주의 힘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분명히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녀의 정신력을 파고들어 제어를 해야 했건만.

힘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어할 수 없다면 죽여야 한다.

자신의 ‘주’께서는 그녀를 제어하여 그녀가 혼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지 못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제거하라 하셨으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몸을 웅크리고 양손으로 제 팔을 끌어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에반젤린을 향해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이 모든 게 세계를 위해서다.”

쩌적…….

그의 검이 정확히 에반젤린을 향해 날아든다.

쩌저저적…….

‘아무리 세상의 균형을 뒤흔들 멸화룡의 씨앗이라도 아직은 발아도 못 한 새싹일 뿐!’

그렇게 검이 그녀의 목을 치려던 순간.

에반젤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몽글몽글 맺힌 얼굴로 고개를 든 그녀를 보며 피조물은 일순간 움찔거렸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잠시 멈칫거린 그가 한차례 비틀거렸다.

“죽어라!”

그리고, 이내 정신을 다잡은 듯 검을 다시 내리쳤다.

쩌저저저저저적!! 콰창!!!

자신의 죽음을 눈치챈 그녀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쏟아진 검이 그녀를 베어버리려던 순간.

고유 공간의 공간이 찢어지며 아주 옅은 바람이 불었다.

후웅…….

“퉤.”

짧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쩌어어어어어엉!!!

그의 검이 에반젤린을 베기 직전 순식간에 다가온 인영이 양손에 든 검은 크로우바를 마치 야구 배트 휘두르듯 그의 복부를 후려쳐 올린 것이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에반젤린을 향해 내리쳐지던 검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침묵했다.

그러기를 잠시.

콰직.

허공에 균열이 일어나며 찢어지기 시작했다.

투쾅!!!!

어마어마한 폭음과 원형태의 파장이 터져 나가는 것도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응도 못한 채 크로우바에 맞아 퉁겨져 날아간 그는 수십차례 바닥을 구르며 처박혀버렸다.

“아……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에반젤린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존재.

그것은 다름 아닌 데이비 올 라운. 그녀의 사랑하는 아빠였다.

마치 배트를 휘둘러 안타를 치고 멀리 날아가는 공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한 손으로 눈 위를 가리는듯한 시늉을 한 데이비가 조용히 돌아섰다.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있는 에반젤린을 조용히 바라보던 데이비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이에 에반젤린은 어째서인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하지만 곧 느껴진 것은 그녀의 본능과는 다른 것이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다.

“다행이다. 다친 곳은 없구나……”

그 말을 듣는 것을 끝으로 에반젤린은 의식을 놓고 쓰러져 버렸다.

* * *

축 늘어진 에반젤린을 품에 안은 채 조용히 내려다보던 데이비의 곁으로 륀느가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황금빛의 신장인 천칭을 녹여낸 창이 쥐어져 있었고 남은 한 손엔 게살과 비슷한 무언가가 추욱 늘어진 것을 쥐고 있었다.

“임무완수를 보고, 륀느가 이것을 높게 평가.”

“잘했어.”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가 다시 기절한 에반젤린의 뺨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우적우적.

“……너 뭘 먹는 거야.”

데이비의 물음에 륀느는 조용히 손에 쥐고 있던 게살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상당한 미각 데이터로써 훌륭한 소재임을 분석 개체명 포레스트 켄서…….”

숲 게? 잘 보기 힘든 별미의 몬스터인데 용케도 찾았네.

그런데…… 포레스트 켄서는 분명히 그 크기만 인간의 서너 배는 되는 거대하고 포악한 성질의 몬스터다.

다만 그녀의 손에 있는 건 작은 다리 하나 정도의 속살을 찐 느낌이었다.

“……너 설마.”

우적우적우적!

데이비의 말에 륀느가 한발 물러난다.

그리고는 평소 그대로의 무표정으로 작은 입을 앙 벌려 마구잡이로 포레스트 켄서의 속살을 먹어치운다.

“야 임마! 그 귀한 걸 혼자 다 처먹어?!”

그 말과 동시에 륀느는 부리나케 등을 돌려 데이비에게서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떨어진 바위 뒤편에 숨어 고개만 쏙 내민 채 입을 오물거리다가 말했다.

“복귀 준비?”

“……아니. 아직.”

그 말에 륀느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어리광을 너무 받아주면 교육에 안 좋아.”

“어리광?”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데이비의 얼굴엔 씁쓸함과 미안함. 그리고 애정이 담겨있었다.

* * *

“으읏…….”

정신을 차린 에반젤린은 단단하고 푹신푹신한 무언가가 머리를 받쳐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눈을 뜬 그녀는 곧 자신을 기대게 해주고 있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아빠?”

“잘 잤어. 에반젤린?”

부드러운 미소. 늘 그렇듯 느껴지는 든든함. 자상함과 애정이 묻어나는 목소리.

하지만 에반젤린은 그의 존재를 눈치채기가 무섭게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났다.

콱!!

그리고는 허둥거리며 데굴데굴 굴러 데이비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에반젤린?”

“가…… 가까이 오지 말아요.”

“뭐?”

놀란 데이비가 눈을 부릅뜨자 그녀는 경계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 아빠가 왜 여기 있어요?”

“소중한 자식을 걱정 안 하는 부모가 어디 있냐.”

“소중한 자식…….”

그녀가 그 단어를 곱씹듯 중얼거렸다.

“아빠.”

“그래.”

“아빠는 정말 제 아빠가 맞죠?”

그녀의 물음에 데이비가 눈을 감았다.

고민할 것도 없는 대답이었다.

“당연하지.”

“그럼…… 이클립스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그녀의 물음에 데이비가 입을 다물었다.

“이클립스?”

“……네.”

진지하게 말하는 에반젤린의 물음에 데이비는 잠시 침묵했다.

“그…… 글쎄?”

“거짓말!!”

그녀가 빼액 소리친다.

“아빠 다 알고 있잖아! 알고 있었어!”

“에반젤린!?”

“나 아빠가 거짓말할 때 버릇 다 알아! 엄마가 다 가르쳐 줬어! 왜 거짓말 하는 거야?! 아빠에게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 아빠는 아빠니까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했는데!”

울음기 섞인 그 외침에 데이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눈물이 몽글몽글 맺힌 채 그녀는 흐물거리는 입매를 가리지도 못하고 소리쳤다.

“거짓말! 거짓말! 아빠 진짜 미워!!”

그 외침에 데이비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갈 거야! 나 찾지 마!”

그렇게 에반젤린이 후다닥 도망가버린 이후에도 데이비는 한참 동안 굳어있었다.

그 후 륀느가 조용히 나타나 데이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데이비 님.”

“륀느…… 어떻게 하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반젤린이. 내가 밉다는데.”

당황한 데이비의 목소리에 륀느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여유는 남겨놓던 그에게서 어떤 여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돼! 에반젤린! 아빠가 잘못했어! 돌아와! 망할 이클립스! 죽어서도 방해를 해?!”

에반젤린이 화를 낸 건 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려는 데이비를 막는 데에 륀느는 각성의 힘까지 끌어내야 할 만큼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 * *

거짓말을 했다! 아빠가 자신을 속였다!

에반젤린은 겉보기에도 나 삐졌음! 이라고 외치는 듯한 표정으로 용병단에 복귀했다.

“아가씨?!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온 용병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았다면 좋았다.

조사는 문제없이 완수되었고, 근처의 제단을 조사하던 용병들이 잡혀갔던 마법사 용병 동료들을 제때에 찾아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사실 그 과정에선 뒤에서 몰래 돕는 륀느와 데이비가 있었지만, 용병이나 행렬을 이끄는 학회, 혹은 상단 측에선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도 사실 에반젤린이 있던 곳에서 큰 폭발이 난 탓에 우연찮게 발견한 것이지만 용병들은 그런 에반젤린이 복덩이라며 껄껄 웃어댔다.

그런 용병과 다르게 에반젤린은 잔뜩 토라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빠…… 나빠,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했으면서……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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