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29화 (929/1,559)

제 929화

저쪽이 숨겨둔 한 수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저들이 하필 노린 것이 생명력 질기기로는 탑급에 속하는 요시아를 노렸다는 점.

그들은 요시아를 공격함으로써 나를 흔들 작정이었지만 역으로 내게 자신들의 밑천에 대한 대량의 힌트를 쥐여주고 말았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킹을 보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막대한 신성력이 쏟아져 나간다.

다프네가 고안해준 신력과 신성력을 이용한 대규모 간섭 마법.

그것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 * *

“후우…….”

“포기해라. 검의 공주, 넌 이제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일리나의 힘이 약해지고, 반대로 저쪽의 힘은 일리나가 약해진 만큼 강해진다.

한쪽으로 기울었던 천칭이 수평을 맞추며 힘의 밸런스를 엉망으로 맞춘 것이다.

마나가, 육신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고 정신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힘만 변한 게 아니라 저쪽에서 무슨 힘을 지원받고 있는지 공격 자체가 굉장히 위협적으로 변했다.

카아앙! 카가가가각 캉!!

물론, 힘이 약해진다고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급조된 강자와 강자였던 자 사이에는 엄청난 실력 차가 존재하니까.

그녀의 경이적인 검술이 그들을 막아내곤 있지만 결국 하드웨어의 차이가 승패를 조금씩 뒤집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수차례 계속된 공격에 지친 듯 칼디라스로 몸을 지탱한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일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도끼에 새하얀 화염이 더욱더 짙게 피어오른다.

“널 죽이면 데이비 올 라운의 파멸을 좀 더 빠르게 앞당길 수 있다.”

“우린 그와 절대 정면으로 맞서지 않아. 철저하게 그를 피해 다니며 그가 지켜온 모든 것을 파괴시킬 것이다.”

소중한 가족을 잃는 고통을 그도 느껴봐야 한다.

그들의 말에 일리나가 피식 웃어보였다.

“번지수 잘 못 찾았어. 이 쓰레기들아.”

그녀의 황금빛 금안이 번뜩였다.

“너희는 절대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야.”

휘이이이잉!!

폭발적으로 그녀의 몸 안에서 마나가 몰아친다.

“죽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지 모르겠군.”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이 도끼를 들어 올렸다.

“심판을 집행한다.”

이제 그들의 힘을 막아설 힘도 남지 않은 그녀였다.

그때였다.

그녀를 노리고 내리쳐진 도끼가 허공에 막힌 것이다.

“무슨?!”

“내가 말했지? 너흰 절대 못 이긴다고. 데이비만 없으면 너희 멋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이게 무슨?!”

좀 전까지 정신력 약화에 육체 약화 마나 약화 등등 수많은 디버프로 약해져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일리나였다.

그녈 몰아붙일 대로 몰아붙인 이들이 그녀를 죽이려던 찰나.

갑자기 그녀의 전신으로 막대한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를 공격하던 이들이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분명 천칭은 그녀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심판자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온 것인가.

그녀가 숨겨둔 힘일 리가 없었다. 아무리 숨겨놔도 밀리아가 펼친 천칭의 힘은 그녀의 힘을 강제로 끌어내 억제시켰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를 돕는 그 누구도 그곳에 없었다.

있다면 천칭이 그냥 둘리 없건만.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

힘이 약해진 그를 누군가가 다시 강화해준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강화마법을 걸기 위해선 이 숲을 넘어선 방대한 영역 내부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 있는 한 버프 마법을 걸어주는 이도 그 대상에 포함되기에 이만한 힘을 그녀에게 건네줄 수 없다.

그렇다면 범위 바깥에서 누군가가 힘을 준단 말인가. 그것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아는 심판자들은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혼란은 곧 이어진 일리나의 움직임에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카가가각!

“아…… 안돼!”

“될걸?”

[초중검]

[태산 쪼개기.]

쩌억!!

거대한 일섬이 근처에 있던 심판자들을 베어 넘기며 그들의 목숨을 갈취했다.

순식간에 다시 재역전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일리나는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천천히 웃어보였다.

“내 힘이 아니기에 그리 달갑진 않지만…….”

그녀의 눈에 황금빛 투기가 일렁였다.

“결국,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건 데이비가 아니라 너희들이라는 뜻이야.”

그녀가 쥔 백은의 거검인 신검 칼디라스가 막대한 신성력이 섞인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동시에 그녀의 검이 다시 시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 * *

“신호가 왔다. 전원 신의 뜻을 왜곡하는 이단을 처단하라!!”

3군단 집행관 힐데스노바가 힘차게 소리쳤다.

“하아아아압!!”

동시에 막대한 힘을 얻은 이단 심문관들이 거대한 도끼를 들고 맹렬하게 심판자들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후…… 후퇴!! 뭔가 잘못됐다!”

당황한 그들의 외침에 두려움이 서린다.

지금껏 밀리아의 힘으로 어떤 강적도 처리해왔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한켠에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반대편 쪽에선 거대한 검기가 허공의 균열을 만들어내며 닥치는 대로 찢어발겼다.

비록 이단심문회의 이들은 천칭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심판자들의 실력이 강해 자칫 전멸당할 뻔했다.

하지만 막대한 신성력이.

경이적일 정도로 농도가 짙은 버프 마법이 그들을 감싸며 완전히 변했다.

익스퍼터급이던 심문관들은 더 이상 심판자들이 마냥 찍어누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오랜 시간 훈련을 받고 손발을 맞춰왔다.

그 협동성에서도 단시간에 모인 심판자들이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단 후퇴!! 후퇴해라!!”

도망치는 그들을 향해 이단 심문관들이 쫓으려 한다.

하지만 힐데스노바는 조용히 팔을 들어 그들을 말렸다.

“집행관님! 왜 멈추시는 겁니까! 지금 저 이단들을 당장 잡아야!!”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마세요. 3등 집행관.”

“네?”

“그가 포위망을 만들 겁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성흔을 받은 성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은 리나 성녀에게서도 볼 수 없는 절대적인 위압이 숨어있다.

같은 인간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버프 마법과. 진형 전술.

저들은 자신들이 교란 전술을 펼치면서 서서히 몰아붙인다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역으로 교란 전술에 당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행동반경 하나하나가 이미 데이비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우우웅…….

그녀의 몸에 빛이 서린다.

“이동합니다. 저들은 포기하고 B 포인트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성기사 사단은 북쪽으로 향해서 D 포인트로 가세요!”

힐데스노바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대륙의 성자가 가진 저력에 온몸에 전율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니 리나 성녀도 마냥 그를 신뢰하고, 그 깐깐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앨리스 대주교조차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정말…… 적으로 만들기 무서운 사람이네요…….”

그가 나선 이상 애초에 이 싸움의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 * *

연결된 선이 끊어진다.

동지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나 함정이었다.

그래도 천칭의 힘을 이용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금 전역의 상황은 끔찍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동지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힘들이 빠르게 그녀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막대한 신성 버프 마법을 쓰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데이비 올 라운이 이곳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도망쳐야 합니다! 이대로는 전멸당할 거에요!]

“이미 늦었어요. 도망치기엔.”

총괄적으로 전장의 상황을 보고 있는 밀리아는 지금 적들의 움직임이 야금야금 자신들을 유인하고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완벽할 정도로 자신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또 어떻게 이토록 대량의 신성 버프 마법을 정교하게 부여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르르륵!! 퍼어엉 펑!!

저 멀리서 거대한 폭음이 다시 들려온다.

“도망쳐야 합니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요!”

“여기서 물러나면 저희는 대부분 붕괴합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요.”

말 그대로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데이비 올 라운에 대해 조사했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을 전혀 판단하지 못한 멍청한 생각이었다.

치이이잉!!

고개를 들자 숲 저편 하늘로 새하얀 섬광의 천사가 날아오른다.

동시에 천사의 머리 위에 있는 기하학 형태의 원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공명하고 날개의 끝으로 새하얀 섬광들이 모여 마치 종말을 선고하는 신의 일격처럼 지상을 불태워나갔다.

‘물러날 수 없어. 여기서 싸워도 승산이 없다.’

그렇게 판단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어리석은 자신의 실수를 탓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녀가 눈을 위험하게 번뜩였다.

“진입합니다. 현재 그들은 저희가 퇴각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포위망을 짜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진입해서 의식을 진행하는 이들을 모두 죽여 심판하겠습니다. 그들을 제물로 바친다면 이길 수 있어요.”

데이비 올 라운이 없기에 속았지만. 데이비 올 라운이 없기에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활로 또한 가지고 있다.

밀리아는 도끼를 내리 세운 채 달의 신 크리아스의 힘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숲 깊은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 * *

그녀가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본 것은 거대한 의식진과 제사를 올리고 있는 이교도들과 그들의 신변을 지켜주고 있는 일부의 성기사. 그리고 용병들이었다.

“저…… 적이다!! 무기를 들어!”

당황한 듯 그들이 소리치며 무기를 든다.

역시.

이곳은 의외로 방비가 허술하구나.

애초에 토끼몰이하듯 바깥으로 빼돌리는 움직임을 보였다.

아마 이곳의 방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저들을 죽여 영혼을 찢으면 이단을 심판한 것으로 판정이 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힘 그 이상으로 막대한 힘을 얻는다면 역공을 가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한번 발동된 천칭을 다시 재발동 시키는 것도 가능하리라.

누가 신성 마법을 사용했는지 모르나 두 차례의 천칭을 막아낼 순 없을 것이다.

“막아!!”

용병들이 각기 무기를 들어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서걱! 콰작!!

하지만 밀리아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뽐내며 용병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히익!!”

의식을 치르던 이들은 두려운 눈으로 밀리아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안전하게 보호해준다고 하였기에 본래 정기 의식을 미루지 않고 진행했다. 그런데 적이 호위병력을 뚫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이 와들와들 떨었다.

“회개는 당신들에게 사치야. 이단은 멸절한다.”

밀리아가 차가운 어조로 말하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힘을 주는 이교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흡수하기 위해 무기를 높이 들어 올렸다.

콰직…….

하지만 그녀는 전혀 몰랐다.

데이비가 펼쳐놓은 지도위의 백마 [킹]의 곁에 흑마[킹]이 도달했을 때 이미 두 개의 [룩]과 하나의 [비숍]이 퇴로를 차단하고 틀어막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곳의 이들에겐 지지 않아. 내겐 천칭의 권능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죽이면 된다. 그 후 자신을 포위한 이들을 각개격파하여 빠져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애석하지만 동지는 다시 모으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그녀의 도끼가 이교의 신을 모시는 귀족의 머리통을 쪼개려던 그 순간이었다.

크리아스 신을 모시기 위해 준비된 진법의 중앙으로 거대한 스파크가 일기 시작한 것을 말이다.

파직…… 파직…….

스파크가 수차례 튕기자 밀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크리아스는 권능이 없는 신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신을 상징하는 의식진에서 경악스러울 정도의 힘이 내려선다.

어떻게 된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녀가 불안함을 느끼고 급히 근처에 있던 이를 죽이기 위해 도끼를 휘둘렀다.

[멈춰.]

하지만 그녀의 힘은 강제로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치칙…… 투웅!!

스파크가 한차례 튀기기가 무섭게 의식진의 중앙에서 검은 균열이 일어나며 누군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서부대륙으로 향했던 인물.

밀리아가 절대 일정 거리를 내주지 않았던 존재.

데이비 올 라운이. 붉은 눈동자를 싸늘하게 빛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체크메이트다.”

체스에서 체크메이트는 장기의 장군과 다르다.

잡아냈다는 보고.

즉.

어떤 이변도 허용하지 않는 일방적인 싸움의 끝을 그가 선언한 것이다.

“흡?!”

다급히 밀리아가 도끼를 들어 올린 그 순간.

촤악!!

무형의 칼날이 그녀의 팔을 잘라버렸고, 그녀의 팔은 도끼를 쥔 채 그녀의 몸을 떠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를 원망하는 건엔 불만을 품지 않아. 어차피 결국 내가 죽인 이들에게도 사연이 다 있었을 테니까.”

“대체 어떻게 이곳에…….”

워프 마법과는 다른 것.

대체 어떻게 그가 이곳에 있는지 이해도 못 한 상황 속에서.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낸 데이비는 검붉은 색이 섞인 코트를 가볍게 흩날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네가 한 짓으로 인해 내가 페르세르크와 일리나를 위험에 빠뜨린 이상 너 또한 내게 원망할 자격이 없을 거다.”

섬뜩한 시선을 번뜩이며 데이비가 허공을 걷어찼다.

쩌엉!!

동시에 밀리아의 육신이 야구 배트에 맞은 야구공마냥 튕겨 나가 바위를 부수고 벽면에 처박혀 버렸다.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치명적인 충격파가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결국,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건 내가 아니라 너였고.”

상대를 과소평가한 건 밀리아 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