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9화
266. 용신검 트와일라잇
고열을 머금은 묵빛의 괴가 빠르게 변화한다.
마치 펼칠수록 계속해서 늘어나는 금처럼 천천히 얇게 펴지고 형태가 잡혀간다.
붉게 달궈진 상태에서 오로지 망치만 가지고 형태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냥 금속도 아니고 다루기 까다롭기 그지없는 헬릭시윰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망치질 한 번에 내부의 결이 변하고 그것이 자연 마법진의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헬릭시윰제 무기는 최대한 간단할수록 가벼워진다.
카앙!! 캉!
한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멈추지 않고 망치를 두드리면서도 절대 집중력을 풀지 않았다.
결을 따라 두드리고 내부를 변형시킨다.
자연스러운 마법진 형태를 보이되 한겹 한겹의 마법진은 큰 효능이 없는. 그것들이 모두 뭉쳐져야 가능한 형태로.
나는 수르트에 비하면 검 자체에 혼을 짙게 담아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가진,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혼을 담는 것을 대신한다.
“와아…….”
에반젤린의 작은 탄성. 화기 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덥지근하기 그지없는 열기가 전신을 에워싼다.
상의를 이미 벗어 던진 채 망치를 두드리다 보니 괜스레 예전 생각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수르트에게서 극한의 미션을 받았을 때.
그리고 페르세르크와 함께 홍단이 청단이를 완성했을 때.
차이점이라면 홍단이 청단이 때보다 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이었다.
카앙!! 캉!!
묵빛의 괴는 이내 커다란 대검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한 번 식으면 다시는 열기로 제련이 불가능하다.
헬릭시윰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열기인데 제련이 끝나면 이놈의 금속이 열기에 대한 절대 내성까지 얻어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홍단이의 권능. 혹은 초단이의 권능으로도 벨 수 없는 것이 바로 헬릭시윰으로 완성된 무기가 아니던가.
그만큼 구하기 힘들고, 강하며 제련하기 힘들기에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것이기도 하고.
커다라면서도 유려한 곡선을 지닌 검이 붉게 달아오른 채 형태가 고정되어 간다.
검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이 검의 내부에는 무수히 많은 겹층으로 나뉘어 수백 수천 장의 마법진이 겹쳐지고 있었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마법진이기에 무게가 직접적으로 늘어나진 않지만, 이것들이 모두 모이면 하나의 마법진이 되어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리라.
이것들은 내가 미리 촉매제로 준비한 드래곤 하트 파편의 발판일 뿐이었다.
검의 주인인 에반젤린이 쥐었을 때 그 힘이 극도로 증폭될 수 있는 그런 힘 말이다.
신창 롱기누스엔 쓸데없이 이 기능 저 기능 집어넣었다가 그 무게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감이 없잖아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순 없었다.
‘드래곤의 힘을 증폭시키는 건 드래곤 하트로 충분해. 그걸로도 이미 검의 수용 한도 무게는 초과다.’
형태 변환을 걸 수 있다면 얇은 검으로도 바뀌게 할 수 있겠지만 무게가 늘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게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가만.
이거, 신의 금속이라는 이름을 내가 붙인 게 아닌데.
처음 괴를 봤을 때부터 신의 금속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신력과 잘 맞는 금속이 아닐까.
과거엔 신력을 지니지 않았기에 불가능한 시도방식이었다.
설사 그게 맞다고 해도 이게 틀리면 이 검은 쓸데없이 큰 무게를 지니게 되리라.
실패한다면…….
그냥 수르트에게 좀 더 받아오자.
나는 붉게 달아오른 검을 보며 마치 홀린 것처럼 신격을 개방했다.
신성한 기운이 주변 곳곳에 퍼지며 새하얀 빛의 깃털을 만들어낸다.
퍼져나가 깃털의 형태로 뭉쳐진 신력들이 천천히 떨어지며 헬릭시윰 검에 닿자 빛과 함께 스며들 듯 파고 들어갔다.
동시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내가 결을 따라 만들어낸 마법진들과 신성력이 뒤섞인다.
내 의지가 담긴 신력은 헬릭시윰 곳곳에 스며들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야…… 이건 몰랐네.”
에반젤린. 아빠가 끝내주는 거로 만들어줄게.
나는 망설임 없이 망치질을 시작했다.
신력을 받아들임으로써 금속이 다시 변하기 시작한다.
그 금속의 숨겨진 어떤 기능들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 * *
혼이 빠져드는 것처럼 깊고 깊은 빛이 마지막으로 닿는 심해에 홀로 던져졌을 때처럼.
혼이 빠진 듯 망치를 두드리고 형태를 잡는다.
집게를 정교하게 잡아 형태를 고정시키고 망치로 어긋난 부분을 아주 미세하게 조절했다.
시계장인이 한 땀 한 땀 부품을 끼워 넣는 것처럼 망치를 들고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른 것이다.
화르르륵!!
뒤이어 촉매제로 타오르던 드래곤 하트의 파편이 완성되었다.
따로 손대지 않았음에도 매끈한 타원형의 옥 형태가 된 최고의 마석을 천천히 빼든 뒤 다수의 인챈트를 가한다.
내 손끝을 타고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드래곤 하트에 스며들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검신의 하단부에 천천히 박은 뒤 밀어 넣었다.
그러자 금속이 서서히 녹는 것처럼 보석을 빨아들였다.
촉매는 부착했고. 이제 마무리 단계만 하면 되리라.
본래 한번 식으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신력을 쏟아부음으로써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형태를 잠시동안 고정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의 금속, 신의 금속 하더니. 괜히 신의 금속이 아니네. 신이 아니면 다룰 수 없으니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것이리라.
주변에 무슨 일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하던 나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검을 천천히 들었다.
크기는 굉장히 거대한 대검이지만 그 무게는 고작해야 5kg 내외.
그야말로 괴를 이용해 만든 그 무게 딱 그 정도였다.
본래 드래곤 하트를 박으면서 무게가 상당히 늘어나야 하지만 신력을 쑤셔 박은 게 엄청난 메리트가 되었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내 혼을 갈아 넣기 시작했다.
재료가 비록 사기적인 재료라곤 하지만 티오니스로 돌아온 후 처음부터 온전히 내가 완성한 무기가 아니던가.
빨갛게 달아오른 검을 보던 나는 그것을 다시 화로에 밀어 넣은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집중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만들어주자.
나는 아공간에서 미리 준비해둔 촉매제들을 모조리 꺼냈다.
그러던 중 아공간 속에서 제법 재밌는 걸 찾았다.
“이건…….”
[신의 눈물방울]
바로 희석시킨 엘릭서였다.
분명 내가 가진 엘릭서는 전부 쓴 거로 기억하는데…….
누가 내 아공간에 간섭해서 이걸 넣어놨나?
의아한 표정을 띄우길 잠시.
나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그대로 그것을 꺼냈다.
뭐, 어디서 생긴 건지 모르겠다만 있으면 좋은 거지.
그리고…….
“아 이것도 있구나.”
이후 나는 아공간 속에서 이런저런 재료들을 모조리 꺼내 담았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가공 재료들을 손질하고 그것들을 검에 첨가했다.
처음 투박하던 형태는 점차 아름다운 검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고 이내 검신에 붉은 고대용언 까지 새기고 난 후에야 끝날 수 있었다.
용언을 빼앗은 뒤로 나도 용언 정도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용언 그 자체를 새겼으니 에반젤린의 힘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으리라.
이후 나는 집게와 망치를 모두 집어 던진 뒤 거칠거칠하게 특수가공된 샐러맨더의 가죽을 맨손으로 잡고 나머지 한 손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검을 잡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문질러 거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검의 날을 세우고 벼린다.
십여 분 동안 미친놈처럼 손을 움직여 그렇게 검을 완성했을 때.
나는 놈을 곧바로 식히지 않고 허공에 널어놓은 뒤 추가 작업을 개시했다.
[세계수의 가지.]
이전의 세계수와 다르게 지금의 세계수 알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에 있다.
나는 그녀 몰래 꺾어왔었던 가지 일부를 빠르게 깎아내기 시작했다.
고작 나무하나 깎는 데 신력까지 쓰게 될 줄 몰랐는데.
고작 나무이면서 오러 블레이드로 수백 차례 내리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사기적인 나무가 바로 이것이리라.
쓸데없이 튼튼하긴.
이후 나는 검집과 폼멜. 그리고 가드를 만든 뒤 그것을 검에 조립하듯 끼워 넣고 고정시켰다.
동시에 마치 떨어져 있던 찰흙이 붙어 이어 붙듯 이음새가 사라졌고 이내 한 자루의 완전한 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물의 상급정령을 불러내 축복을 가하게 만든 물을 준비한 뒤 그것을 검 끝부터 천천히 밀어 넣었다.
치이이이이익!!!
고열이 일순간 식는 소리와 함께 물이 빠르게 증발한다.
동시에 수증기가 된 물기가 검으로 다시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 정령까지 스며들 줄 몰랐는데.
혼을 담는 기술은 수르트를 제외하곤 아직 아무도 할 수 없기에 완전한 자아를 깨워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정령검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스로 검에 스며들어주는 정령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미친 정령은 많다더니.
나는 완성된 검을 스윽 훑었다.
긴 검신에 넓은 검폭.
칠흑 같은 검체에 검면에 새겨진 붉은 용언들.
겉보기엔 백은의 거검 칼디라스와 대비될 정도로 검고 붉은 검이지만 외려 신성한 느낌이 드는 고고한 검이었다.
“어디 보자…… 이름은 역시 에반젤린이 직접 지어주는 게 좋겠지.”
심연의 권능은 잃어버렸지만 신의 권능을 역으로 이용해 검의 진실을 파고든다.
그러자 아주 오랜만에.
물건에 대한 상태 창이 내 시야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명칭 : (없음)
상태 : 제작 완료 중.
형태 : 검날이 넓은 양날형 대검.
무기 칭호 : 용신검.
길이 : 1미터 50센티
너비 : 10여 센티.
무게 : 5kg
제작자 : 데이비 올 라운
완성도 : 99.9%
세부사항 :
-신격을 손에 넣은 반신. 데이비 올 라운이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그녀만을 위한 용검. 헬릭시윰 괴로 만들어져 칠흑처럼 검고, 검면에는 붉은 용언들이 새겨져 신력과 신의 눈물방울이 뒤섞여 새로운 시너지를 발현한다.
-세계수의 가지. 그리고. 세계수의 축복이 서려 겉모습과 다르게 자연과도 친숙한 힘을 지닌 검.
-위대한 대장장이의 역작이 완성되어. 검을 본 이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으리라.
-이모탈리티(절대 파괴 불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스며든 정령의 자아가 아직 재구성되지 않음.
-드래곤 하트를 입혔으나 고대룡의 힘이 스며들기 시작함.
-3가지 형태 저장(제작자. 데이비 올 라운이 소중한 딸 에반젤린에게 만들어주려던 일념과 의지가 담긴 신력이 서려 스스로 검이 형태를 저장.)
(대검)
(바스타드 쌍검)
(레이피어)
신력을 쏟아부었을 뿐인데…….
내가 쓰기 위해 만들었고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그 보조를 해줄 뿐인 신창 롱기누스와 다르게 과할 정도로 무식한 게 만들어졌다.
역작?
단순히 에반젤린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검을 만들어주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낼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멍한 얼굴로 검을 바라보던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던 에반젤린에게 검집에 검날을 밀어 넣으며 건네주었다.
“에반젤린. 한번 볼래?”
“우웅…… 졸려어…….”
“완성됐어.”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그것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검집에서 검을 천천히 뽑아냈다.
“와아…….”
“이름은 네가 지어줬으면 하는데.”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검신을 바라보았다.
“트와일라잇(황혼)”
그녀가 홀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트와일라잇?”
“네.”
황혼이라…….
굳이 그런 이름을 지을 필요가 있나?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반젤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검을 쓰다듬었다.
“너무 소중한 검이에요. 엄마와 아빠가…… 제 곁에 있는 것처럼.”
그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말한 엄마와 아빠는 분명 나와 페르세르크나 일리나. 그리고 에이리아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될까요?”
조심스레 나를 올려다보는 에반젤린의 불안한 시선이 보인다.
내가 화낼까. 혹은 내가 슬퍼할까 두려워하는 시선이었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래. 그거면 돼.”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내게 달려와 안겼다.
용신검이라면 사실상 신검 칼디라스에 버금가는 무기라는 소리인데.
설마 이런게 이렇게 단시간에 만들어질 줄 몰랐지.
사실 다시 만들라 한다면 아마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에반젤린에게 만들어주고자 한 사례가 있으니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내가 모르던 재료들을 가져다 썼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그냥 재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클립스에서 빼앗은 용언도 새겨넣었으니…….
그녀가 어쩌면 검 자체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부모의 향수를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소중하게 검을 품에 끌어안고 있는 에반젤린을 보던 나는 이내 반지하 작업실의 결계를 해제했다.
쿠당탕!!
동시에.
결계 벽에 매달려있었는지 몇몇 드워프가 그대로 작업실 바닥으로 볼품없이 추락했다.
“할파스 경?”
내 물음에 그가 벌떡 일어난다.
“그 검!!”
그가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다.
“나…… 나도 보여주시오!!”
흡사 광기까지 보이는 그의 시선에 에반젤린이 흠칫 놀라며 한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