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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90화 (990/1,559)

제 990화

전쟁의 종전.

갑작스런 종전으로 인해 경악하는 이들, 속으로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 의심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국왕과 저항군 사령관 일레이나는 묵묵히 상황을 해결했고, 우선적으로 무기한 휴전 상태에 돌입했다.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국왕 쪽도, 일레이나 쪽도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물론, 휴전과 종전은 다르고, 그런 만큼 오래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느리긴 하지만 일방적인 힘에 의거한 강제적인 종전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오딘과 함께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땅에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많은 의견의 교환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들고자 했고, 그녀가 하려는 것을 확인한 후 나도 말없이 그녀의 작업을 도왔으니 말이다.

“저기 데이비.”

“응?”

“그러니까. 이건 거대 마법진이지?”

“그렇지.”

페르세르크가 엉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하는데 쓰는 마법진인 게야?”

“휴대폰 터뜨릴 때 기지국 쓰는 건 알지?”

“응.”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가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들자 장난기가 샘솟는다.

하지만 눈치 빠른 페르세르크는 내 뺨을 콱 꼬집으며 경고했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아.”

“쯧.”

이래서 눈치 빠른 것들은.

“이 대륙 인간들은 마나에 축복받은 인간들이야. 마나의 양은 티오니스가 높지만, 친화력은 이쪽이 좋거든.”

“음?”

“그런데 호의가 계속되니까 이것들이 둘리인 줄 알더라고.”

내 말에 그녀가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주는 축복을 거둬가기로 마음먹은 거야.”

내 말에 조용히 마법진을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되면 차별이 더 심화될 텐데? 소수의 몇 명만이 모든 것을 독점하겠지.”

“응 구라야.”

“…….”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한발 두발 물러난다.

그러더니 이내 사뿐사뿐 다가가 마법진에 열중하고 있는 오딘에게 말했다.

“은사님. 데이비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어찌해야 할는지요.”

“쟤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야? 비켜봐.”

심드렁하게 말하면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치맛자락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더니 가볍게 점프한다.

후우우웅!!!

가벼운 점프.

하지만. 곧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바람의 흐름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앙!!!

륀느가 사용하는 중량을 이용한 미사일 드롭킥과는 격이 다른 한방이 내가 있던 곳을 찢어발기며 지나갔다.

“미쳤습니까 휴먼?!”

“미친 건 너겠지. 어디서 사랑스런 와이프를 놀릴 생각을 해.”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지팡이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자비하게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넌 그냥 좀 맞아야 해! 이 자식아!”

퍽퍽퍽!!

“으억!! 억!”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내가 버둥거리자 그녀는 아예 나를 깔고 앉은 채 스태프를 휘둘렀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을까 보다 못한 페르세르크가 씁쓸하게 웃으며 그녀를 진정시켰을 때 오딘은 스태프를 내려놓을 수 있겠다.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얄밉다는 말.

여기서도 쓸 수 있을 듯싶었다.

나를 향해 혀를 쏙 내밀고 장난스레 웃는 그녀를 보니 내가 어떤 짓을 할지 알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게 틀림없다.

귀엽게 혀를 쏙 내민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는 그녀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진다.

“촉수…… 촉수를 다시 꺼낼 때가 됐다.”

“이게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득해진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오딘이 대규모 마법진의 기반을 완성한 후였다.

미묘하게 몸에 있던 피로가 싹 간 느낌이었다.

* * *

“이거 얼마나 갑니까?”

“누가 9서클 초월을 넘어서 부수지 않는 이상 반영구적으로 이어진다고 하던데.”

대답을 한 것은 오딘이 아닌 페르세르크였다.

그녀는 자리를 비운 오딘을 대신해 내 머리를 받쳐 앉아있다가 키득거렸다.

“오딘은?”

“글쎄. 어딘가에 잠시 들렸겠지?”

“이게 뭔지는 들었어?”

“그래. 다 들었어.”

내 뺨을 살짝 꼬집으며 그녀가 장난스레 웃었다.

아트렐리아는 마나의 밀도가 짙고 활동성이 강하다. 그탓에 수많은 인간들이 마법을 자연스레 쓸 수 있는 것이고.

하지만 왜 비율이 70퍼센트만 쓸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아트렐리아에서 70퍼센트가 마법사고 30퍼센트가 마법사가 아니라는 건 틀린 말이었다.

정확히는 10퍼센트가 마나 과잉.

30퍼센트가 마나 고갈.

나머지 60퍼센트가 일반적인 케이스라는 점이다.

“음?”

“쉽게 말해서 이 땅의 마나가 불균형한 밀도를 지닌 탓에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적용되어야 할 마나가 일부인간들에게 몰린 거야. 재능을 떠나서 유별나게 마나가 많은 인간들.”

“오호?”

“원래 그런 케이스는 극히 일부만 나오는 법인데. 여기선 10퍼센트 비율로 거의 나오는 편이거든.“

즉, 세상에 퍼진 불균형을 본래대로 만들면. 지금 당장은 몰라도 못해도 10년 안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거…… 완전히 대륙 전체를 개조하는 것이구나.”

“나는 몰라도 오딘이면 가능해.”

그녀는 그런 짓을 성공시키고도 남을 마법사니까.

“그녀를 많이 신뢰하는구나.”

“성질머리 저래도 마법에 관해서 그녀를 따라올 사람은 없어.”

로 아이아스와는 다른 계열로 그녀는 업계 최고의 존재라는 건 분명하다.

다른 영웅들과 다르게 그녀가 내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 말은 싫다 싫다 해도 그대가 얼마나 애착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았어.”

“헛소리는.”

“그녀의 행동도 이해가 되고.”

그녀의 말에 내가 멈칫했다.

“뭐?”

“음?”

“오딘이…… 대체 뭔 짓을 했길래.”

내 물음에 그녀는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글쎄. 본녀는 잘 모르겠는데.”

“야. 페르세르크!”

벌떡 일어나 그녀를 붙잡으려 하자 그녀는 뒷짐을 진 채 사뿐사뿐 걸어 내게서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어허, 그런걸 캐묻는 건 좋지 못한 짓이야.”

“나는 알 권리가 있다! 당장 이리 안 와?!”

대체 그녀가 내가 뻗은 사이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페르세르크는 입에 자물쇠라도 채운 것마냥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잡았다!!”

이윽고 내가 그녀를 붙잡아 바닥에 쓰러뜨린 뒤 올라타 제압했다.

“좋은 말할 때 말하자?”

“데이비.”

깊은 빡침의 미소를 보이며 내가 말하자 그녀가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무리 부부관계라지만 선은 지켜야지.”

그녀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 딱히 이상한 건 없는데.“

“비켜.”

퍽!!

그녀가 내 얼굴을 콱 밀치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빠져나왔구나. 아하하핫!”

그리고는 다시 도망쳤고, 나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년이?

* * *

“폐하…… 정말 괜찮은 것이옵니까.”

집행관 최고참인 7서클의 마법사이며 현 국왕파의 수장인 국왕의 오랜 친구이자 충신이었던 그는 걱정스레 제 주군을 바라보았다.

“바크, 왔는가.”

저항군 쪽에서 보내온 협상내용을 보며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종전은 피할 수 없네. 적어도 당분간은.”

“하지만…….”

“바크, 아무리 이념을 따라 일어났다지만 인간이 가능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지 않은가.”

“하위 지휘체계에선 갑작스런 평화협상에 의아한 입장입니다만…….”

“집행관들은?”

“만장일치로 현 전쟁을 잠시 멈추자는 입장입니다. 또한, 저항군 쪽에서도 비슷한 입장인 듯 보입니다.”

그는 용의주도했다.

지도자 둘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실세들을 모두 불러 그 자리에서 힘의 차이를 일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잡음을 대번에 없애버린 것이다.

“후우…… 복잡하군…… 로키 데반은 아직도 연락이 없는가.”

“예. 그에게 지원했던 마법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딘의 눈과 같은 힘을 이용해 이 대륙의 불평등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 말하던 그의 계획에 찬동했던 국왕은 그에게 지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완전히 연락이 끊어졌다.

“애초에 그자는 쉬이 믿을만한 자는 아니었지…… 잡설이 길었군. 원한이 깊어도 이렇게라도 전쟁을 멈췄다면 차라리 그 후의 일을 생각하는 게 옳을 터.”

“저항군 사령관 일레이나는 완전 평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이념과는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적절히 조율해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국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항군은 완전한 평등을. 그리고 여론을 통한 압박을 통해 지도자를 견제하는 식의 민주주의를 원했다.

반면 국왕은 그렇게 될 경우 남아있는 악습을 역이용하려는 자들이 나와서 다시 그 끔찍한 의원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직접 그 악습들을 부숴버리고자 일어났다.

종착지는 같으나 방식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처음엔 상대의 이념을 마냥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방식이 달랐으니까.

저항군 측에선 선거제보다 왕정체제가 더 심각한 부패를 일으킬 수 있다 하여 절대 반대를 외쳤고.

왕실 측. 즉 국왕의 입장에서는 선거제를 무너뜨리고 다시 선거제를 세우는 게 말도 안 된다 여겼다.

그런 마당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국왕의 어린 딸이 저항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전쟁이 터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조금 미심쩍은 곳이 있었다. 물론, 딸을 잃은 슬픔에 분노한 국왕에게 그 당시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후 협상 중에 일레이나가 내세운 진실과 로키가 전달해준 진실에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런 생각이 드네 바크.”

“폐하.”

“전쟁이 끝났다고 단순히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내세운 정의 이념이 마냥 옳았는지…… 조금 의문이 들기 시작했네.”

“아마 저항군 측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시 협상 날짜를 잡게.”

그때 허겁지겁 들어온 한 마법사가 대륙 곳곳에 기이한 탑이 서른 개 이상 생겨났다는 보고를 해왔다.

이에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 * *

“왜 표정이 그래.”

“마법 부적격이래요.”

중립도시 아트헴. 저항군과 왕실군 모두가 점령하지 않는 중립도시인 아트헴의 공원 의자에 앉은 한 소녀가 울상을 지었다.

소녀의 정체는 마법사 길드에 소속된 한 마법사의 딸이었다.

“마법 부적격?”

“네. 마법 부적격 몰라요?”

“몰라.”

“그게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법을 쓸 수 있는 대다수와 그렇지 못한 일부가 있다고 해요.”

소녀가 설명했다.

“저는 마법 부적격자구요.”

태어나면서부터, 그리고 3살에 5살에 10살에. 그리고 15살에.

마법 재능을 점친다.

하지만 소녀는 10살이 되어 검사한 적성검사에서 부적격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대륙에 있는 30퍼센트.

그게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마법 쓰고 싶었는데……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울상을 지으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마법 부적격을 받은 이는 아무리 마나를 모으려 해도 마나가 모이지 않는다.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마나가 거부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중얼거림에 내가 물었다.

“마법을 쓰고 싶어?”

“네. 하지만 제 몸에는 마나가 모이지 않는다고 했어요.”

울먹거리는 그녀를 보며 내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이거 한번 만져볼래?”

“네? 이게 뭔데요?”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야.”

내 말에 소녀는 평범한 램프를 이리저리 들어보다가 옆면을 문질렀다.

퍼엉!!

“자 소원을 빌어봐.”

“풉…… 애들 장난이잖아요.”

그녀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곧 다시 마법 부적격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울상을 지었다.

“그래요……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마법을 쓰고 싶어요. 나도 마법사가 되고 싶다구요. 어릴 때부터 꿈이었는데.”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가락을 들었다.

“막 이렇게 파이어! 외치면 불이…… 응?”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 부적격. 즉 마법사가 될 재능이 전혀 없는 낙오자인 30퍼센트로 판명된 그녀의 손가락 위로 조그마한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램프가 소원을 이뤄줬나 보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축하해.”

“어…… 어어…….”

어버버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를 뒤로한 채 자리를 뜬다.

오딘의 마법진이 내가 대륙 곳곳에 대지의 정령을 혹사시켜 세운 거대한 탑을 중계하여 대륙 전역의 마나를 골고루 퍼뜨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닌 건 분명했다.

이에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재료로 사용해버렸다.

자신의 흑안을 이용해 반쯤 작용하고 있던 우로보로스 프로젝트의 힘을 마법진과 연동시켜버린 것이다.

그녀를 압박하던 프로젝트는 그렇게 흩어졌고. 그녀를 이 땅에 묶어두고 있던 모든 원인도 사라졌다.

힘이 약해진 이상 그녀를 구속할 수 없게 된 대륙은 더 이상 그녀를 붙잡지 못했고, 그녀는 그것을 기준으로 아트렐리아를 떠나 다시 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전쟁이 끝날 거라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하자 양측을 포함한 모든 중립도시의 사람들은 드디어 전란이 끝난다며 기뻐하는 모습들이었다.

처음엔 탐탁잖아 하던 사령관 일레이나와 국왕이었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며칠 사이에 완전히 바뀌어 상당히 적극적으로 종전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마법사에게 주어지는 불균형한 흐름이 공평하게 변했고. 이제는 재능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마법사라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법 자체가 재능을 따지는 학문인 만큼 고위마법사가 되는 이는 극소수겠지만 말이다.

“우와아아아!”

신기한 듯 손가락을 들어 불을 일렁이는 그녀를 보던 내가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엉?”

“아저씨는 램프의 요정인가요?!”

나를 향해 소리치는 소녀를 향해 내가 빙그레 웃었다.

“요정이라…….”

담담하게 말한다.

“그런 거로 하자.”

그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강대한 바람이 불어왔고 눈을 감은 채 휘청거린 그녀가 나를 다시 찾았을 땐 이미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다 끝난 거야? 뭐…… 따라와서 내가 한 게 없네.]

“그러게 멍청하게 떨어지라든?”

[씨이…….]

골드 드래곤 호바나의 투정이 들려왔다.

“이대로 될까?”

“당장은 여기 남아서 할 게 없어. 지켜보면 답 나오겠지.”

오딘을 억압하던 대륙의 힘이 약해져서 그녀는 떠났지만 한번 일을 벌여놓고 나 몰라라 하기엔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다.

아주 조금…….

조금 정도는 애프터 서비스도 해줄 의향 정도는 존재했다.

내 말에 어깨에 앉아있던 페르세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가 사라진 걸 알면 다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하지. 게다가 로키 데반과 연결되어있던 이들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니까.”

어느 땅이건 미친놈은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두 집단의 수장을 이용했다.

“그래. 사령관이나 국왕이나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전쟁을 벌이려고 들겠지.”

아니면 전쟁이 아닌 분쟁을 벌이려 들거나.

하지만 만약 그들이 전쟁의 끝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을 통해 무언가를 느꼈다면.

반드시 전쟁은 멈출 것이다.

“그럼 로키 데반은 대체 뭐였던 게야.”

왕실파와 저항군. 두 세력의 출범과 전쟁은 사실 로키의 이간질로 시작되었다.

로키 데반.

그에 대해선 향후 오딘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성이 봉인된 상태에서도 일부분은 볼 수 있었던 그녀였으니까.

양 진영의 협상테이블이 열렸던 고르곤 평야의 버려진 요새의 마법사 출신이었던 그는 30여 년 전 어떤 실험에 참가했다.

그게 고르곤 평야의 요새가 버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그도 그 당시엔 그 사실을 몰랐다.

막대한 사고에 직격으로 휘말린 그는 오랜 시간 지하에 잠들어있었고 몇 년 전에야 정신을 차려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찮게 오딘을 만나버렸다.

자신의 후손일지 모르는 이를 발견한 것에 신경이 쓰였던 그녀는 답지 않게 그를 도와주었고,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문제는 이놈이 보통 또라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오딘을 붙잡기 위해선 대륙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의원제도를 무너뜨린 두 진영을 이용. 그들을 이간질해 대륙에 불화를 지폈다.

강제로 대륙의 절망을 부추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내 손에 사라졌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손에 놀아나 전쟁을 치른 두 집단은 그가 사라진 후의 대륙을 이제야 직시하게 된 꼴이다.

[그나저나 저 탑. 안 부서져?]

“공들여서 만들었으니까 쉽게는 안 부서질 거야.”

내 말에 호바나가 신기하다는 듯 거대한 석탑을 바라본다.

높이는 약 300미터. 대륙에 깔린 탑의 수는 총 서른 개.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다시금 본래의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돌아간 줄 알았던 오딘이 마법진을 허공으로 띄워 저 높은 창공으로 올려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안 갔습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보고 싶어.”

고통에서 벗어난 대륙이 이제야 느낄 행복을 아주 잠깐만 보고 떠나고 싶다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평소의 무뚝뚝함이나 심드렁함이 서린 얼굴이 아니었다.

언뜻 보면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법한 아주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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