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01화 (1,001/1,559)

제 1001화

277. 무제(無題)

타앙!!!

위기에 몰려있던 인질범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대부분은 경찰이지만 제법 많은 시민들의 수도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 상황에서 누구 하나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찰나였다.

“휘이이이이이이호오!”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동시에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슈퍼히어로 같은 복장을 한 유쾌한 인상의 사내가 빌딩 위에서 고속으로 낙하하며 순식간에 인질범을 제압하고 인질을 구해내는 기행을 보였다.

“와우…… 어셈블.”

그 모습을 본 일리나가 눈을 번뜩였다.

“이야. 역시 영화에서 본 게 마냥 허구는 아니구나!”

그녀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상당한 팬이었다.

특히 폭탄이 터지고 모조리 때려 부수는 액션 영화를 말이다.

경찰에게 제압당하는 범인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그녀는 수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는 현대판 미국의 슈퍼히어로를 보며 옅게 미소짓는다.

이게?

“야. 눈 빠지겠다?”

“안 빠져 괜찮아. 잠깐만. 나 사인 좀 받아도 돼?”

“안돼.”

묘하게 기분이 상하는 느낌이 든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나쁘다.

그런 내 행동거지에 눈을 찌푸린 일리나가 이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데이비. 설마 질투하는 거야?”

“조용히 해. 넌 치즈버거 없다.”

“아 잠깐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내가 미국산 치즈버거를 얼마나 먹어보고 싶었는데!”

박박 소리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인파를 뚫고 헤쳐나갔다.

데이트 와놓고 다른 사람한테 눈이 팔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미묘하게 화가 나는 것을 주체하기 쉽지 않았다.

“세발낙지?”

그런 내 귀에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엥? 꼴뚜기가 왜 여기 있어.”

동시에 고개를 돌린 내가 의외의 인물, 현아를 보며 멍하니 대답했다.

* * *

미국 현 대통령 드럼퍼와의 회담 겸, 미국 관광을 위해 찾아온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그래서. 오빠야는 왜 여기 있는데?”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당연 신성 그룹에서 후원하는 야구팀 멤버분들과 미팅자리를 가지려고 왔지.”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기우뚱했다.

“시구라는 게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었냐?”

“어? 새언니 제가 말 안 했어요? 메이저리그 관련해서 설명해 드렸는데??

“응? 아 했어요. 근데 그게 미국이에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하는 일리나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이런 우연도 다 있네. 설마 이곳에서 오빠를 만날 줄 몰랐는데.”

“난 네가 야구 광팬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언니가 광팬이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연희 누나가 야구 관람을 아주 좋아한다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럼 두 사람은 그냥 관광 차원에서 온 거야? 이 먼 곳을? 대체 언제 왔는데?”

“조금 전에. 하늘에서 내려왔어.”

내 대답에 현아가 혀를 내두른다.

“미국 방공망 싹 다 갈아엎어야겠네. 국방성에서 알면 아주 거품을 물 거야.”

뭘 새삼스럽게.

의도하지 않게 현아를 만난 터라 나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상당히 고급스러운 호텔에 방을 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 아무나 못 들어온다는 곳이야. 운 좋은 줄 알아.”

“그래. 너 잘났네.”

고급스러운 호텔로 들어서며 일리나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 여기 영화에서 본 적 있어.”

즐거워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묘한 표정을 짓자 현아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오빠야. 표정이 왜 그래. 싸웠어?”

“아니. 쟤가 잘못한 거야.”

“음? 새언니가 왜?”

“아니 그 쫄쫄이 입은 미국 히어로가 멋있다고 사인받아도 되냐고 그러잖아.”

내 대답에 현아는 멍하니 나를 보다가 풉하고 웃었다.

“쫄쫄이 입은 히어로? 아 크리스마텐? 새언니가 사인받고 싶어 해? 받아줄까?”

“히어로가 그렇게 흔하냐?”

“아니 뭐…… 그 뺀질이 신성에서 후원하는 미국계 길드소속이거든. S급 각성자로 미국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야.”

이쯤 되니 신성 그룹이 굴지의 국제기업이며 얼마나 저력이 강한지 새삼 깨닫는 느낌이었다.

“그럼 새언니 시구하는 거 허락한 거지? 자잘한 건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와서 공만 던지면 돼. 오빠나 새언니면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 광고효과로 엄청나게 돈도 벌 수 있겠네.”

“뭐래 꼴뚜기가.”

“요즘 세발낙지는 사람이 하는 말에 반박도 하나 봐?”

처음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수심을 품고 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녀는 쾌활해 보였다.

마음속의 응어리가 해결됐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마음대로 하시던가.”

괜히 기분이 상해져 있던 나는 꿍한 얼굴로 그녀에게서 돌아서 버렸다.

“새언니! 관광이라면서요. 우리 데이트나 할래요?”

“그럴까요?”

나를 보며 혀를 쏙 내민 일리나가 현아와 팔짱을 꼈다.

“그럼 언니. 뭐부터 하고 싶어요?”

“치즈버거!”

단호한 대답에 그녀들은 순식간에 의기투합하며 사라져버렸다.

홀에 홀로 버려진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 수 없는 심정이 소용돌이치며 나를 짜증 나게 만든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그 분위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근처로 왔다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보다 본능적으로 위압에 눌려 도망친 것이다.

“뭐? 질투? 웃기고 있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부인이라는 사람이 말이야. 팬이랍시고 사인받아도 되냐고 묻는데 누가 화를 안 내.

그런 줄도 모르고 입을 삐쭉거리는 꼴하고는!

순간적으로 풀어질 뻔했지만, 역시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내가 그놈보다 못생긴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 질투. 좋다. 그녀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고, 이제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알아야 할 것이다. 내 질투는 참 쪼잔하다는 것을.

미국의 회담? 알게 뭐란 말인가. 지금 내 머릿속은 세상을 보는 안목 전체를 동원해서 일리나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에 쏠리기 시작했다.

이런 내 속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놈의 치즈버거에 정신이 팔린 그녀라.

“하…… 하하하하하…….”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페르세르크가 보았다면 그 나이 먹고 유치하게 뭐하는 짓이냐 하겠는데. 내가 회랑에서 배운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라고.

“남자가 한을 품으면 한겨울에 아스팔트 위에서 달걀이 익는 걸 보여주마.”

스산하게 중얼거리자 누군가가 움찔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에 고개를 들자 검은 정장을 입은 몇몇 사람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본다.

셋 중 둘은 각성자. 그중 하나는 좀 전에 봤던 그 쫄쫄이 자칭 히어로 놈팡이보다 강한 각성자다.

“뭐야.”

잔뜩 가라앉은 얼굴로 내가 묻자 그들이 움질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프…… 프린스 데이비. 맞으십니까.”

“그런데.”

“괘…… 괜찮으시다면 화이트하우스로 모셔도 될지…….”

“지금 내가 그럴 기분이 아니야.”

싸늘한 내 대답에 담긴 의미는 너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당장 하나라도 걸리면 다 패 죽일 것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이. 각성자.”

“…….”

“드럼퍼 대통령과의 회담은 아직 내가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잊었나?”

“…….”

“나중에 내가 화신을 줄 테니 돌아가.”

본래엔 나를 발견하고 사람을 접속해오면 만날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그와의 회담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리나를 어떻게 골탕 먹일지부터 생각해야겠다.

으르렁거리며 내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누가 나를 방해하면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균열이다!! 몬스터 균열이야!! 대체 어떻게 도로 한복판에?!”

“젠장 색만 봐도 A급이상 특 위험 균열이다!!”

비명과도 같은 외침.

빠득…….

이를 깨문 내가 환하게 웃었다.

“x병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대로 한복판에 생겨난 균열을 바라본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각성자들이 무기를 가져오기 위해 급하게 통화를 시도하려던 찰나.

“비켜.”

싸늘하게 말한 내가 그들을 밀치고 인파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콰득!!

직경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 균열에 손을 뻗었다.

“잠깐?! 뭐하는 짓…….”

콰드드득!

“으억?!”

놀란 목소리는 무시한다. 지금 내가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방해를 해?

파지지지지직!!

내 손에서 흘러나온 힘이 균열에 간섭하기 시작하자 균열이 비명을 지른다. 동시에 살고자 하는 균열이 그 안에서 몬스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붉은 피부를 지닌 소형 트롤. 크기는 트롤보다 작지만, 그 힘은 훨씬 강한 놈이다.

그런 놈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균열에서 반쯤 몸을 드러내 몽둥이를 휘두르려던 찰나.

균열에 뻗지 않은 남은 손을 이용해 놈의 머리통을 잡아챈다.

“들어가 x끼야.”

-크어어어억!!

괴성을 내지르며 균열 속으로 다시 밀려 들어간 트롤이 버둥거리지만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그 외에도 균열은 필사적이었다. 자아가 없는 현상일 뿐이지만 그런 균열이 살기위해 발악을 하는듯한 모습은 퍽 생소하기 그지없다.

계속해서 붉은 트롤과 보기 힘든 몬스터들이 고개를 들이밀며 절규하지만 나는 한 손 한 손 놈들의 머리를 잡아 밀어 넣어버렸다.

마치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는듯한 그들의 행동을 보며 스산하게 웃는다.

“야. 더 비명 질러봐 x끼들아. 지금 중요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산통을 깨?”

콰지지직!!

“저게 무슨…….”

“균열이 비명을 지르면서 몬스터를 급히 꺼낸다고? 이런 건 본적도 없어…….”

경악한 사람들의 외침이 들린다. 아무리 빨리 소집된 각성자라도 이 짧은 시간 안에 준비를 마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내가 광기 어린 눈을 번뜩이며 균열을 잡아 비틀어 꺾어버렸다.

콰드드득!!!

동시에 엄청난 소용돌이가 균열 내부에서 일렁이더니 이내 막대한 풍압을 일으키며 강제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직접 전달된 언어는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느낄 뿐. 처음의 위세는 어디로 가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균열을 짓이기며 나는 가볍게 선고했다.

응, 안돼.

그리고……

이내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사라져버렸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격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특수 긴급 각성자 부대가 뒤늦게 도착한다.

“특 A급 균열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균열! 균열은 어디 있습니까!!”

긴장한 얼굴로 소리치는 그들의 외침에 멍하니 보고 있던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방금 저 사람이…….”

“저 사람이?”

저 사람이 신고한 사람이라고?

그들이 그렇게 착각하려던 찰나. 그들의 착각을 박살 내는 대답이 들려온다.

“균열 채로 잡아 비틀어 부숴버렸는데요.”

“…….”

침묵이 감돈다.

조용히 해주세요. 생각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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