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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02화 (1,002/1,559)

제 1002화

균열 채로 잡아 비틀었다고? 이건 또 뭔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균열은 잡아 비튼다고 비틀어지는 성질의 무언가도 아니거니와 균열 자체를 파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써보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아니 애초에 균열 내부로 들어가서 부수는 건 일반적인 경우지만 이걸 입장도 하지 않고 균열 채로 부숴버리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벙찐 각성자들은 곧 데이비에게 사정 청취를 듣기 위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데이비는 없었다.

* * *

“새언니. 오빠 괜찮은 거 맞아요?”

커다란 치즈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는 미묘한 표정을 짓던 일리나가 고개를 돌렸다.

“데이비? 흐음…… 솔직히 반응이 조금 의외이긴 했죠.”

“원래 안 그래요?”

“저렇게 대놓고 툴툴거리는 경우는 잘 보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더 귀엽잖아요.

이어지는 그 말에 현아는 마시던 콜라를 뿜어낼 뻔했다.

“음…… 염통이 쫄깃해지네…… 나도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이라도 해야 하나…….”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데이비가 질투를 해주는 건 정말 너무 사랑스러운걸요.”

일리나가 미묘한 표정으로 치즈버거를 내려놓았다.

“너무 기름져…… 더 못 먹겠어…….”

“무리하게 먹지 말아요. 원래 음식이라는 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거니까.”

“영화에서 볼 땐 정말 맛있어 보였는데…….”

그녀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의 차이가 주는 괴리감에 묘한 기분이 든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단순 야구 시즌이라서 이곳까지 온 거예요?”

“실은 언니 부탁으로 시구 관련 일도 해결하기 위해서 온건 사실이지만 본론은 그게 아니에요.”

그녀가 핸드백에서 작은 사진 두 장을 꺼냈다.

“이건?”

“미국 제51구역과 마이애미 주에서 발견된 균열이에요.”

균열은 흑색과 보랏빛이 뒤섞여있었고 그 크기는 무려 20미터에 달했다.

“지금까지 이런 사이즈나 색, 그리고 특수파장을 내뿜는 균열은 없었어요. 미 특수재난 대책본부에서도 이 일을 예의 주시하고 있죠. 섣불리 접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흐음…….”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이 균열. 사람에게 최면을 건다는 소문이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새언니도 조심해요.”

섣불리 접근할 수도 없다라.

“지금까지 이런 균열은 없었어요. 신성 그룹은 각 세계의 각성자 관련 서포트를 해주고 있는 회사인만큼 이와 관련된 소식은 반드시 전해져 오게 되어있어요. 이건 미국 지부에서 온 연락을 보고 확인 차원에서 온 거죠.”

균열의 정보를 많이 알아야 적은 수의 희생자를 낼 수 있다.

UN과의 결의에 따라 신성 그룹은 세계 각지의 위험 균열에 대한 정보를 일정 취득하여 각 세계에 제공해주고 있다.

“오우, 레이디 현아. 오랜만이군요.”

그때 조용한 레스토랑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슈퍼 히어로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 크리스 마텐이었다.

그는 마치 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현아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드디어 내가 보고 싶어진 겁니까?”

“일 때문에 왔으니 손 치워요. 뺀질이.”

차갑게 일갈한 현아가 그를 쏘아본 뒤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해요. 새언니, 좀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라…….”

“오우. 여기 또 아름다운 레이디가 있었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크리스 마텐이라고 합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크리스를 보며 현아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저 인간, 엄청난 플레이보이니까 조심해요”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히어로 영화나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일리나 입장에선 제법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반가워요. 일리나라고 해요.”

“크리스 마텐입니다. 반가워요. 레이디.”

“듣자 하니 미국의 영웅이라던데 혹시 사인해줄 수 있어요?”

“오우. 당연한 말씀을.”

그는 일리나가 건넨 종이와 펜을 쥐고 고민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내민 뒤 조용히 말했다.

“나는 레이디 같은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사인이면 충분해서.”

“그러지 말고, 오늘 밤에 파티가 있는 데 참석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말에 일리나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동시에 그녀가 가볍게 손을 뻗어 제 어깨 올려진 크리스 마텐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결혼한 사람에게 이런 행동을 취하는 건 그리 좋지 않은 거 같네요.”

“네? 으어어어어억!!!”

“미안하지만 내 어깨에 함부로 손을 올려도 되는 건 내 싸가지없는 남편뿐이라서요.”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며 그가 비틀거렸다.

일리나가 그의 손을 잡아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여리여리해 보이는 체격을 지닌 일리나가 손을 으깨버릴 듯 힘을 주자 그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자, 자자…… 잠깐만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만 놓아줘요!”

“새언니! 그러다가 저 사람 팔 부러지겠어요!”

당황한 현아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주 비틀어버려요!”

화끈하게 응원했다.

“크윽?! 레이디 현아! 나에 대한 호감이 식어버린 겁니까?! 잊었습니까?! 우리가 보낸 그 뜨거운 밤…….”

“새언니!! 저 새끼 죽여버려!”

빽 소리치는 현아를 보며 일리나가 힘을 더 주자 그가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탕탕 두드린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벌인 후 일리나가 그의 손을 놓아주자 그가 숨을 헐떡이며 유쾌하게 웃었다.

“후우…… 후우…… 내 손은 신께 감사해야겠군요. 설마 각성자일 줄이야…… 육체 계통 각성자인가요? 힘이 보통이 아니군요.”

십년감수 했다는 듯 말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여유로웠다. 일리나는 그가 일부러 아파하는 척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도 힘을 거의 주지 않고 살짝 비튼 정도였던 만큼 외려 그가 최선을 다해 버텼다면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험악한 분위기를 강제로 전환시키려는 듯 그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나는 여러 여성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편이지만 임자 있는 여성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라. 무례했군요.”

그의 말에 일리나가 현아를 바라보았다.

무언의 설명을 요구하는듯한 시선에 현아가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예전에 미국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저 인간을 파병한 적이 있어요. 그때 삼촌을 도우려고 그곳까지 갔다가 만났었죠.”

“아아…… 그때 보낸 뜨거운 밤…….”

“같이 밤새워서 균열 조사한 걸 쓸데없이 곡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은 현장에 있었고, 나는 상황실에 있었다는 걸 잊었나요?”

“물론, 당신의 뜨거운 숨결이 서린 브리핑을 잘 받았지요. 불끈불끈하게 힘이 솟아서 단번에 균열을 처리하고…….”

“한 번만 더 지껄여봐. 개자식아.”

현아가 단단히 화난 듯 벌떡 일어나자 그가 양손을 들었다.

“워워. 그만할게요. 진정해요. 이래 봬도 나는 신성과 굉장히 밀접한 계약관계인데.”

미국 최고의 히어로 같은 각성자. 크리스마텐.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사실 신성 그룹과 비밀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전력이었다.

그런 놀라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에 의문이 든 일리나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애초에 이 장소 자체가 신성 그룹의 소유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유쾌하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는 미소를 거두며 조용히 물었다.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왔어요. 오는 길에 방해가 좀 있긴 했지만…… 역시 마이애미 주에서 생긴 균열 때문인가요?”

“뭐 그래요. 느낌이 심상찮으니 직접 확인해볼 필요도 있었을 뿐.”

“안 그래도 국가에서 아직 허가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곧 토벌의뢰가 떨어질 것 같긴 해요. 상황이 점점 심각해 보이니…….”

“그런데 이쪽 레이디는 그래서 정체가 뭡니까?”

“국가 기밀인데 알고 싶어요?”

그 말에 크리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우, 국가기밀. 난 x나 이런 상황을 원했어요”

그의 태도에 일리나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원래 저런 인간이에요.”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반가워요. 국가 기밀 급 정체를 지닌 레이디. 크리스 마텐이라고 합니다. 신성 그룹과 계약 중에 있는 S급 각성자입니다.”

“일리나 데 라운이라고 합니다. 지금 일과는 관련이 없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이곳에 왔어요.”

“라운? 메이비…… 웟?!”

놀란 그가 현아를 본다.

“라운? 티오니스?”

이에 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눈을 부릅뜨며 신기하다는 듯 일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워호……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생각해보니 두 사람 모두 영화 광팬이네요.”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위해 현아가 기억하고 있던 사실을 하나 던지자 크리스가 눈을 반짝였다.

“영화? 어떤 걸 좋아하십니까?”

“할리우드 영화는 거진 다 좋아해요. 특히 펑펑 터지는 액션 류.”

“와우 할리우드! 두유 노 머블?”

“당연하죠. 그 시리즈는 밤을 새워서 다 봤는걸요.”

그녀의 대답에 그는 애국심이 샘솟기라도 한 듯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악수를 청했다.

“나도 그래요. 이거 여기서 동지를 만나는군요. 나도 눈물을 흘리면서 7번씩 영화관에서 관람했습니다.”

크리스의 말에 현아가 비웃음이 서린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때마다 파트너가 바뀌고?”

“물론 그래도 좋지만, 그땐 혼자 보는걸 더 좋아했죠.”

독특한 말투, 독특한 억양을 이용하며 그가 퍽 즐거워하자 일리나는 현아가 싫다 싫다 하면서 제법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경계를 풀었다. 인간으로서 못 써먹을 인간이었다면 현아가 절대 가까이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왕자비는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합니까?”

“그 트랜스라는 영화가 정말 흥미 있었네요. 익숙한 골렘이라 이해가 쉬웠던 것도 있지만요.”

“와우. 저도 그렇습니다. 이잉치킹! 이잉치킹! 아이 엠 옥토퍼스 프라임!”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그가 신이 난 듯 소리쳐 댔다.

이윽고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이런! 사고가 터졌나 봅니다! 나는 현장에 구조작업을 가볼 테니 다음에 파티에 꼭 와줘요. 레이디 현아.”

“내키면 갈게요.”

손사래를 치며 어서 가라는 시늉을 한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크리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본적으로 인성은 된 사람인데. 워낙에 가벼워서…….”

그 말을 들으며 사인이 쓰인 용지를 보며 일리나가 옅게 웃었다.

“데이비에게 자랑해야지.”

“가려구요?”

“데이비를 너무 혼자 두면 안 되니까요. 잔뜩 삐져있을 텐데 키스라도 해주고 달래주지 않으면 화낼 거에요.”

타이밍은 무섭다는 걸 그녀는 아직 몰랐다.

* * *

균열을 맨손으로 잡아 비틀어버린 후 숙소로 돌아온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 채 침대에 반쯤 기대어 스마트폰의 영상을 바라보았다.

“사인받고 싶다고 했지…….”

현 미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히어로 각성자.

크리스 마텐의 영상이 보인다.

영상의 대부분은 그가 재난지역이나 사고지역. 몬스터에게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는 진짜 히어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구해내는 모습들을 자주 보였다.

인성 면에선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그의 행동을 보면 약간 난봉꾼 기질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히어로 영화도 좋아하는 일리나가 사인을 가지고 싶다 했던 건 그에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히어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리라.

내가 너무 치졸하게 생각했나.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이며 그 외에는 없다는 것을 잘 아는데. 어린애처럼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기선 그녀를 믿어주는 마음으로…….

딩동.

“룸서비스입니다.”

그 말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다.

그와 동시에…….

스팡!!!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문 너머에 있던 한 여성이 내게 덤벼들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암살?

생각지도 못한 암살시도에 황당함을 느낀 나는 그대로 그녀가 내지른 송곳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잡아당겨 팔을 꺾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녀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린 뒤 그녀의 위에 올라타듯 누르고 제압했다.

바닥에 제압된 그녀가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 몸에 손을 뻗었다. 무슨 상황이건 나를 해치겠다는 모습에 나는 그녀를 그 자리에서 죽이려다 생각을 바꾸고 주먹을 그녀의 머리 바로 옆에 내질렀다.

콰앙!!!

묵직한 소리와 함께 주변이 흔들린다.

그녀의 행동은 대담하고 과감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엎드리게 만든 후 팔을 살짝 꺾어 가볍게 제압했다.

제압이 되었으면 그녀를…….

그녀의 정체나 목적에 대해 알기 위해 내가 마법을 발현하려던 순간.

“데이비! 선물 사 왔어! 네가 좋아하는 도너…….”

털썩!!

봉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방 입구로 일리나가 들어왔다가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이에 잠시 침묵이 일었다.

“뭐야 이거. 아니다. 그냥 일 봐. 내가 빠져줄 테니.”

멍하니 있던 그녀가 몸을 돌린다. 쟤 갑자기 왜 이래.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표정을 찡그린 순간.

나는 곧 내가 한 여성을 바닥에 짓누르고 제압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악!! 왜……왜 이러세요! 고객님!”

동시에 내게 제압되어있던 여성의 얼굴에 표정이 생기더니 버둥거리며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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