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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09화 (1,009/1,559)

제 1009화

“끄으…… 뭐야.”

띵하게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크리스 마텐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차의 내부였다.

그새 잠이 든 것일까.

혹여 사고라도 친 건 아닌가 싶을 만큼 기억이 드문드문하지만, 그가 타고 있는 차는 확실히 그가 아끼는 애마가 아닌가.

“음…… 주차도 문제없고.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지?”

고개를 흘끗 들어본 곳엔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꽤 고급진 호텔. 크리스는 몸을 기대듯 누운 후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뭐지? 뭔가 중요한 걸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곳에 있는 인간과 현아에 대한 선물에 대한 기억은 훨훨 날아간 후였다.

드문드문 기억이 지워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지만,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무슨 상관이야. 오늘은 운 좋게 살아남은 기념으로 아껴둔 와인이나 까야겠구만!”

부아아아앙!!

맹렬한 소리를 내며 그의 차가 내달린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호텔의 창밖을 내려보고 있는 한 인간이 있었다.

“그래서. 기억을 어떻게 지웠는데?”

“다 방법이 있지.”

빙그레 웃는 데이비를 보며 얇은 이불보로 몸을 가리고 있던 일리나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리고는 이불을 잡지 않은 한 손으로 화사하게 늘어진 밝은 금발을 틀어 묶었다.

“아가씨가 결혼 못 한다고 뭐라 뭐라고 하던데. 난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데이비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유를 알 거 같다고? 뻔하지 그 세발낙지를 누가 데려가. 어휴. 남자도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

그녀가 곁에 있던 베개를 잡아 확 집어던진다.

그리고는 그를 뚱한 시선으로 보며 물었다.

“고민이 있어?”

그녀의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가 웃음기를 지웠다.

본래 그를 이렇게 꿰어 보는 건 페르세르크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일리나에게도 그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화가 났을 때, 혹은 즐거울 때. 혹은 복잡한 심정이 있을 때. 웬만해선 얼굴에 티를 잘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그에게는 본인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버릇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좀 전에 현아의 곁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감지 됐거든.”

그 말에 일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뭐?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아니. 위협적인 건 아니었어.”

담담하게 대답하며 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조금 요상한 생각이 들어서.”

“요상한 생각?”

“붉은 공허를 처리한 뒤로 한 1년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그 1년 후부터 조금씩 자잘한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했지?”

정확히는 2년이 지났을 때 터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소수만 남아 눈치를 보고 있는 별자리. 그리고 아트렐리아 대륙의 로키 데반. 본래라면 지구에 있으면 안 될 고대에 봉인된 도깨비 두억시니까지.

이 이야기를 놈이 듣지 않게 데이비는 카드의 봉인을 확실히 해놓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좀 음모론 같은 생각이 드네.”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가고, 악역을 처리하면 그다음 악역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별자리도, 그것들도 다 그런 방식인 줄 알았는데. 묘하게 모든 일이 하나의 공통점을 이루고 있다.

“별자리는 프리아 여신의 흔적, 그리고 로키는 오딘의 흔적이지?”

“…….”

“이번엔 도사 우치.”

“데이비 그럼…….”

“그다음은 누굴까.”

그 물음에 일리나는 침묵했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이 일은 뭐라 단언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단순히 정말 음모론일 뿐이라며 말하기엔 데이비의 직감은 너무 예리할 때가 많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고.”

“뭐야…… 그냥 추측이야?”

“그렇지 뭐.”

묘한 표정으로 데이비를 보던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냥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데이비의 직감은 가끔씩 너무 무섭게 들어맞을 때가 많았으니까.

* * *

미국에서 생긴 두 개의 특수한 균열. 그중 하나가 사라지고 사흘이 지났다.

S급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어지간한 사고를 쳐도 그만한 전력을 함부로 버리진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더스크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 자책했고, 정부는 다수의 A급을 죽게 만든 원인인 더스크에게 납득할만한 범위의 처벌을 내렸다.

엄연히 국가 작전에서 독단을 저질렀고 다수의 인간을 죽고 다치게 했으니까.

목숨만 붙어있으면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진 자도 살아났다지만 이미 죽어버린 이들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물론, 드럼퍼 대통령의 입장에선 약속을 어긴 게 되어버렸기에 한 인간과의 협상에서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내어주지 않아도 될 것까지 내어주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지만, 미국 당국은 그럼에도 S급이라는 전력을 하나라도 놓지 않으려 했다.

소란스럽던 균열이 정리되자 이 일은 미국 내의 언론과 외신에 알려지며 대통령 담화를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다.

겉으로는 미국의 S급 각성자 다섯과 A급 각성자 여럿, 티오니스 성자가 나서서 균열을 정리하였으며 균열 내에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등급. 아니 격이 다른 어떤 존재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연히 지구에 있는 국가들은 혹여 자신들의 영토 내에도 저런 막대한 균열이 나올까 부산스러운 조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반대로 미국의 경우 아직 남은 한 균열에 대해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균열이 일그러져 내부의 존재가 튀어나오진 않고 있지만, 추가적인 탐사는 현재로선 힘들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네가 있던 균열이 사라지고, 네 힘에 영향을 받은 인간들이 본래대로 돌아온 모양이더라.’

우치의 봉인이 약해지고 그동안 힘을 축적해온 도깨비왕 두억시니의 힘이 그의 제어를 벗어나면서 벌어진 게 최면 사태였다.

인간의 감정에서 태어난 도깨비인 두억시니의 힘은 인간에게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응?”

철컥…….

다수의 군인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군사기지는 일반적인 느낌보다는 마치 무언가를 위장하고 숨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전생에 병실에서 살 땐 나도 음모론 참 좋아했는데 말이야. 이 정도면 성공한 음모론 덕질이지.’

-뭐라는 건지 모르겠군.

‘이곳은 말이야. 소문만 무성하지 아무도 실체를 콕 찝는 인간이 없었거든.’

누구는 외계인 실험기지가 있고 누구는 땅속에 거대한 병기를 만들고 있다는 말을 한다.

한때 누군가가 이 일대에 접근했을 때 대량의 미군 차량이 진입하여 그들을 제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사실인지는 알 수 없어서 미스터리나 음모론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정말 인기가 많던 스팟이기도 했다.

“멈추십시오. 이곳은 출입금…… 아…….”

“화이트하우스 대통령 직속 호위대 릭 바스텀이다. 각하의 명은 이미 전달 되었을 텐데?”

“확인되었습니다. 내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51구역 군사기지.

묘한 공기가 감돈다.

-여기가 네가 말한 곳인가?

이제는 반말이 아예 붙어버린 두억시니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다수의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조용히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장소로 다가갔다.

직경 25미터 정도. 색은 검은색과 회색 그리고 보라색이 뒤섞인 균열이다.

겉보기엔 두억시니의 균열과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 균열은 두억시니의 균열처럼 주변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어서 들어가지! 예상이 맞다면 장산범 놈이 있을 거다! 분명해!

장산범.

한국의 귀신으로 새하얗고 수북할 정도로 긴 털에 기괴한 몸을 지닌 요괴다.

꽤 유명하게 알려지긴 했으나 사실 이놈도 한국 이외에는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문 존재이기도 했다.

“이곳입니다.”

회색과 검은색 보랏빛이 뒤섞인 직경 25미터 정도 되는 균열을 가리키며 릭 바스텀이 긴장한 표정을 했다.

두억시니 때도 S급이 다섯, A급이 서른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드럼퍼 대통령의 호위인 릭 바스텀 한 명과 내가 전부였다.

“비슷하긴 한데 외부 영향은 없네요.”

“저희도 일단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한 그는 타고 온 차량의 트렁크에서 커다란 슈트케이스를 꺼내 들었고 그 안에서 독특한 장비들을 꺼내 장착했다.

“뭐합니까?”

“예? 준비해야지요. 위험한 균열인데. 맨몸으로 들어갔다간……”

긴장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따라오세요. 그냥.”

이 양반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어.

-하하하하! 맞다! 나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괴물 같은 놈이 고작 장산범에게 당할성싶으냐!

두억시니가 봉인되던 시기 지구에는 백귀행이라는 수많은 요괴, 및 귀신이 활개를 쳤다.

거기서 두억시니와 하나의 세력 전쟁을 한 것이 장산범이라는 특수한 귀신이었다.

물론 놈도 두억시니와 비슷한 시기에 단신으로 쳐들어온 도사 우치에게 먼지가 나도록 털린 뒤 봉인되었지만 말이다.

사실 두억시니든 장산범이든 그들이 이 장소에 있는 건 다시 봐도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 저 괜찮으시겠습니까?! 하다못해 이 어깨 보호구만이라도…….”

그가 긴장한 얼굴을 하며 손에 쥔 어깨 보호구를 내밀었지만 나는 미련 없이 균열에 몸을 던졌다.

* * *

본래라면 혼자 가려고 했다.

-가서 그를 지켜보게. 그가 정말로 어느 정도의 무력을 지니고 있는지.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기에 모두 믿지 않아. 하지만 자네는 믿네. 릭. 내 말뜻 알겠는가.

미국의 최고 각성자는 크리스 마텐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형의 힘을 다루는 각성자.

그 무형의 힘으로 방어도, 공격도 한다고 알려진 최고의 히어로를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릭 바스텀. 올해 나이 서른여덟인 그는 사실상 비공식적인 최강의 각성자이기도 했다.

물론 본인의 요청에 따라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대통령 직속 호위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까드드득…… 까드드득…….

균열 내부는 거대한 숲이었다.

그리고 입장하기가 무섭게 모습을 드러내는 기괴하게 생긴 각기의 영적인 존재들을 보며 릭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강하다!

한놈 한놈은 몰라도 저것들이 모이는 순간 아무리 S급이라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지금껏 봐온 그 어떤 균열과도 격이 다른 수준.

어째서 크리스 마텐을 포함한 이들이 그토록 고전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긴 제가 정리하면서 가겠습니다. 당신은 체력을 아껴…….”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데이비가 그가 보는 앞에서 무언가를 허공에 던졌다.

“전부 일어나라.”

철컹!!

그의 말과 함께 그의 손에서 던져진 4개의 정교한 큐브가 허공에서 빛을 내뿜으며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릭은 차가운 인상을 유지하는 것도 잊은 채 벙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거대하고 정교한 무언가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거대한 큐브가 순식간에 2족 보행형 거대 골렘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디셉티콘 편대. 명령을 하달한다.”

[명령 대기 중]

기계음과 함께 자아가 없고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있는 디셉티콘 편대의 편대장 메가트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적을 전부 말살해.”

개조에 개조 또 개조를 거듭하여 이제는 양산형이 아닌 특수 제작형 골렘이 되어버린 디셉티콘 편대의 움직임을 보며 릭은 침을 꿀꺽 삼켰다.

키잉…… 키이이이이이이!!!!

메가트론의 손에 거대한 전기톱이 쥐어진다.

그 뒤를 이어 미니건 같은 무기를 쥔 저거노트와 거대한 방패를 든 탱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뭡니까?”

벙찐 표정으로 릭이 물었다. 데이비의 저력을 두 눈으로 보라고 하여 그와 단둘이 균열 탐사에 왔다. 이 일을 위해 미국은 보유하고 있던 모든 보험까지 사용했다.

그리고 본 광경은 참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키아아아아악!!!

기괴하게 생긴 거대 원숭이를 맨손으로 잡아 바닥에 처박아버린 메가트론이 거대한 원숭이의 복부를 짓밟았다.

그리고는 복부부터 고간까지 그대로 마나 전기톱을 가져다 대어 그어버렸다.

원숭이의 피부는 질기기 그지없었던 탓에 어떻게든 버텨내려 했다.

하지만 곧 메가트론의 전신으로 특수한 힘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나 전기톱의 마나 밀도가 극도로 강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그대로 가죽을 종이 찢듯 찢어발겨 버렸다.

-키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에도 불구하고 메가트론은 가차 없이 적들을 찢어발겼다.

하나하나가 S급 존재들이다!

척 봐도 만들어진 존재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강한 존재가 있는 것인가.

릭은 저 디셉티콘 골렘에 대한 보고를 꼭 해야 한다며 머릿속에 남겼다.

저런 것만 있다면 미국의 치안은 극도로 안정될 것이다!

데이비라는 존재는 소유할 수 없다지만 그가 가진 저 골렘 중 두 개만 있어도 엄청난 효과를 낼 게 틀림없다.

절대 놓쳐선 안 될 정보였다.

“뭐긴요.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위험한 놈이 나오면 그때 나서기로 하고, 그전엔 데이터나 좀 수집하겠습니다.”

그 말에 디셉티콘 편대와 싸우던 귀신, 요괴들은 말을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며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가트론은 그에 맞춰 한 발 더 다가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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