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1화
“걱정 마, 성녀 다프네는 아직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떠나는 다프네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 짧게 한숨을 내쉬는 데이비의 뒷모습.
루시아 쉘만은 눈을 부릅 뜬 채 나무 뒤에 숨어 충격적인 사실을 귓가에 담았다.
‘내가…… 내가 뭘 들은 거죠?’
그녀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몸을 웅크린 채 파르르 떨었다.
지금 그녀가 들은 진실은 그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거대했다.
데이비와 다프네의 이야기를 나무 뒤에 숨은 채 엿듣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목이 타서 근처의 개울가에 목이라도 축이려고 가던 찰나였다.
우연스레 데이비의 뒷모습이 보여 가까이 갔을 때.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프네와 데이비가 사라진 후 파르르 떨리는 손을 꽉 잡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야…… 아니야…….’
그녀가 이토록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들은 이야기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믿어온 것들 절반을 부정당한 꼴이었으니 말이다.
인생 절반 손해 봤다는 말이 이런 곳에서 쓰이는 것일까.
복잡한 심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 사실을 유일한 파트너이자 가장 소중한 친구인 필디르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냥 꿈꾼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뛰고 있는데.”
“애초에 이상하잖아. 천년도 전에 죽은 성녀가 살아있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데이비가 널 눈치채지 못했다고?”
“어?”
그 말에 루시아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너 알지? 데이비. 은신 계통 특질능력자도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내는 거. 네가 죽었다 깨어나도 데이비랑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눈치도 못 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그럴까요.”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걸 보니 아직 멀쩡하네. 쟤들도 쉬어야 하니까 세수나 하고 와. 아참.”
그가 루시아의 머리를 쿡쿡 눌렀다.
“성녀 다프네는 눈부신 은발이라고 알려져 있어. 머리색부터 틀리잖아.”
“그……그렇네요.”
그제야 상황판단이 되었다는 듯 그녀가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 괜한 일로 착각한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석상 나왔다. 움직이자.”
그때 생각보다 빠르게 석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두 사람은 곧 동굴로 들어온 데이비와 일리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처리하고 돌아가서 쉬고 싶네요. 성녀 다프네 님의 일대기를 다시 읽고 싶어요.”
“그래. 어서 끝내고 돌아가자. 슬슬 페르도 입질이 왔을 테니.”
홀로 중얼거린 그를 뒤 따라가기를 한참.
일행은 좀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곳에 커다란 인간형태의 석상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 마굴의 매개체…….”
석상이 부서지면서 마굴이 사라진 건 이미 확인했다. 본래라면 마굴이 있어야 했던 장소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현재 이 암숲에서 발견된 마지막 마굴은 단 하나. 그것도 석상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본래 마굴은 몬스터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 다른 곳으로 바뀌었으니까.”
“네?”
“아무것도 아니야. 가까이 가지마. 멀쩡해 보이는데 일정 거리 가까이 가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거야.”
그리고 그렇게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검은 회오리 형태의 균열을 바라보던 필디르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알 수 없는 오한이 그를 자극한 것이다.
“그런데 추가적으로 조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위험요소만 가득하니까 얼른 없애는 게 좋을 거야.”
마굴의 조사가 우선이긴 하지만 만약 마굴이 맞다면 그것을 없애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게 기사단의 결정이었다.
괜한 조사보다 위험을 감수할 순 없으니 말이다.
“이게…… 마지막 석상.”
“그런데 이 석상만 유일하게 사람의 얼굴이네요. 지금까진 사람의 몸에 새, 호랑이. 고양이 등등 동물의 얼굴이더니.”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가 석상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신성력을 끌어올리려던 찰나.
쩌적!!!
갑자기 석상에서 균열이 생겨나더니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슨?!”
알 수 없는 힘의 충격파에 놀란 필디르가 방패를 꺼내 들고 루시아를 막아서듯 보호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저항하나 보네.”
그 말과 함께.
석상의 눈이 번뜩이더니 이내 아무것도 없던 등에서 돌로 된 날개 4쌍이 펼쳐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악!!!
동시에 엄청난 괴성을 내지르며 석상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만든 뒤 엄청난 밀도의 에너지가 축약된 광선을 쏘아 보냈다.
쿠웅!! 쿵!!
그리고. 그 변화가 상당한 크기의 변화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일리나의 말에 데이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예상 범위 내야. 지금부터 저항이 제법 거셀 거다. 내가 이걸 부수는 동안 알아서들 목숨 지켜.”
지켜주는 게 아닌 목숨을 알아서 챙기라는 말에 루시아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 * *
석상은 마굴의 매개체다. 세상의 한 파편인 마굴이 그대로 물러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즉, 석상이 부서지면 스멀스멀 고개를 들이밀고 새로운 몬스터의 여왕을 찾으려는 시스템이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의지는 없지만,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그것을 그냥 둘리가 없다.
다만 이 석상은 당장 나를 막기보다 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물러나면 시스템이 설계한 그대로 끌려가게 되는 일.
“하.”
‘조율자를 너무 우습게 보네.’
차가운 조소를 흘린 나는 신성력을 지금의 것보다 배 이상 끌어 올렸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신성력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하자 석상이 미친 듯이 흔들리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으악 젠장! 대체 이게 무슨 물량이야!!”
“꺄악! 오지마!”
비명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저항하는 마굴의 흔적들을 쳐내려 하지만 그 수가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리나의 일검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무더기로 쓸려나가는 탓에 직접적인 타격 자체는 거의 주지 못했다.
이윽고 석상 대부분에 금이 가며 부서지려던 찰나.
갑자기 석상이 다시금 빛을 끌어내며 거대한 힘의 파장을 일으켰따.
“읏?!”
나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 튕겨 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밀려난 이들은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야?”
석상이 스스로 박살 나면서 나타나 그것은 처음 보는 어떤 존재였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 또 누구인지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르르르르…….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여성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엔 피 칠갑을 하고 반쯤 찢긴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육신의 대부분은 베이고 찢긴 상처로 가득했고 입가에선 알 수 없는 진액 같은 것이 마치 피처럼 천천히 흘러내렸다.
본래 새하얀 피부가 있어야 할 팔 부분엔 알 수 없는 눈알 같은 것이 덕지덕지 붙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인간이 반쯤 괴물화 한듯한 모습.
그게 바로 그녀의 모습이었다.
“환영으로 본…… 그 여자…….”
필디르가 중얼거렸다.
이곳 암숲에 왔을 때 다프네와 함께 보았던 존재.
다름 아닌 페르세포나의 환영이었다.
물론, 그녀가 페르세포나라는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지만 다른 이들도 환영을 통해 그녀를 본 만큼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다만, 환영과 다르게 눈앞에 있는 이것은 엄연히 실체.
영혼이 조각나 죽은 페르세포나가 분명하건만 그녀는 이렇게 부활한 것처럼 나타났다.
“데이비!!”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필디르가 소리쳤다.
“물러나.”
강대한 힘을 품는 그녀는 엄연히 다프네가 죽을 당시의 힘에 가까운 것을 품고 있었다.
신성력과 흡사하나 뒤틀려버린 듯한 신성력.
신의 사랑 따윈 하나도 받지 못하고 있는 타락한 형태였다.
고작 영혼의 잔재만으로도 이만한 증오가 서린 형태라니 새삼 놀라웠다.
-죽이겠어…… 죽이겠어…….
그녀는 기괴한 목소리를 내며 괴성을 내질렀다.
-캬아아!! 다프네!! 죽여버리겠어!
끔찍한 증오가 서린 외침에 루시아와 필디르는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다.
그리고, 일리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심하게 증오에 빠졌는데. 구원이 안 되는 수준이야.”
내 중얼거림에 페르세포나가 손을 휘둘렀다.
이미 죽어 시체가 된 그녀에게 남은 건 의지도 없는 영혼의 잔재. 즉. 그녀가 내뱉는 말은 죽은 사념이 내뿜는 의지일 뿐이었다.
수천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고작 영혼의 조각으로 버티는 것도 용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 영혼이 온전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윤회는 불가능.
그렇다면. 남은 것은.
“윤회를 포기하고 여기서 소멸시켜야겠네.”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한 손을 펼쳤다.
터엉!!
그리고는 허공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쩌저저저적!!
동시에 엄청난 크기의 결계가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워프 마법이 발현되며 필디르와 루시아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워프 마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미안하지만 계획 수정합시다. 그녀는 윤회 불가입니다.”
영혼의 윤회를 담당하는 여러 영웅들이 봤다면 모두가 쌍수 들고 거부를 외쳤을 정도로 증오가 깊다.
그녀의 영혼이 차라리 멀쩡했다면 정화라도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뒤틀린 잔재만 남는다면 정화과정에서 소멸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녀는…….”
“페르세포나. 다프네가 찾아 헤매던 마굴의 몬스터 여왕.”
내 대답에 일리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 여왕은 죽은 거 아니었어? 네가 그 시체를 확인했다면서.”
“맞아. 죽은 건 맞는데. 이건 영혼의 잔재야. 그것도 아주 극히 일부분. 그러니까 살아있는 게 아니라 흔적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
말 그대로 어떤 의지도 남지 않은 찌꺼기였다.
“다프네는 그녀를 찾아다니고 있었거든. 마음 같아선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후에 가볍게 정화해서 윤회의 고리에 올릴 생각이었는데.”
마굴이 저항하겠지만 그거야 다프네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기도 하고.
조각난 영혼의 잔재지만 윤회를 대여섯 번 반복하면 그 영혼이 어느 정도 회복은 할 테니 내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껀……”
“답 없다. 정화가 되는 수준이 아니야. 소멸시켜야 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청단이와 홍단이를 모두 뽑아 합쳤다.
동시에 청적색의 검신을 지닌 초단이가 만들어졌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의지도 없으면서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움직이는 건 식욕에 미쳐있는 좀비와 다를 게 없었다.
오로지 다프네에 대한 증오만을 내비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시간을 끌지 않고 그대로 그녀를 베어버리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하지만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다프네가 빛으로 된 창을 이용해 내 공격을 막아내고 그녀를 보호했다.
“하지 마.”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를 갔다 왔는지 모르지만, 현재 그녀는 저 증오만 남은 영혼도 아닌 잔재를 지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저 괴물의 힘은 굉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프네에게 해를 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소멸만큼은 안 돼! 이 씨xx할 xx한 새끼야!”
“저거 안보여요?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어요. 저 영혼 저대로 윤회시키면 다른 영혼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난리가 나게 된다.
“다프네. 내가 돕겠다고 한 건 그녀의 영혼이 이렇게까지 비틀린 게 아닌 상황에서 가능한 겁니다. 제일 잘 아는 양반이 왜 이래요, 진짜.”
“그래도 안 돼!!”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고집을 부렸다.
“그녀만큼은 이대로 소멸시킬 수 없어!”
소멸이라는 건 무서운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흐름 거부의 저주의 대가가 윤회가 없는 소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페르세포나는 과부한 벌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비키라니까…….”
“데이비. 내 영혼의 소멸 여부는 네가 쥐고 있지?”
그녀가 나를 향해 말했다.
정확히 말해서 프리아 여신의 권능과 그 힘을 이용해서 소멸한 영웅들을 다시 깨워낸 건 나인만큼 그들을 소멸시키는 것도 내 권한이다.
“나를 소멸시켜. 그리고, 그걸로 그녀의 영혼을 회복시킨 뒤에 정화해.”
그녀의 말에 내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말이 되는 소리를.”
“가능해. 페르세포나는 금기로 만들어진 내 클론이야. 그러니까. 영혼의 적합성은 충분해.”
그러니까 다프네를 소멸시키고 그녀의 영혼을 페르세포나에게 덧댄 뒤 정화시키고 윤회의 고리에 올리라는 소리였다.
“이대로 보낼 순 없어!! 지금까지 고통받아온 페르세포나를 이대로 지우라는 게 말이 돼?!”
그녀의 외침에 나는 눈을 감았다.
페르세포나가 오로지 다프네를 향한 증오만을 품고 있음에도 그녀는 자신을 희생하여 페르세포나를 구원하려 했다.
이에 내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이 눈에 비쳤다.
다프네를 향해 죽인다라고 외치던 괴물화된 페르세포나가 아주 잠깐 표정을 꿈틀거린 것이다.
‘어라?’
그리고.
갑자기 발작하듯 다프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다프네!! 죽여버리겠어!!
“크으?!”
갑작스런 페르세포나의 공격이 그녀에게 닿는다. 다프네는 저항하지도 못한 채 페르세포나에게 깔려 제압당했다.
-죽여버리겠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페르세포나…….”
-아파…… 너무 아파…… 괴로워……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녀의 찢어지는 절규에도 다프네는 저항하지 않았다 본래 성질대로라면 욕을 한 바가지 쏟아부으며 그대로 걷어차 버렸을 것이다.
그럴 힘도 있고.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미친 듯이 다프네를 향해 손톱을 내리치는 페르세포나였다.
다만 다프네의 자체적인 신성 장막이 그 공격을 막아낸다.
“미안해…… 미안해 페르세포나…… 너무 늦게 찾아서 미안해……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내가 널 구원해 줄게.”
결론은 났다.
“데이비?!”
놀란 일리나의 외침을 무시한 채 나는 초단이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녀를 베어버리려던 그 순간.
“페르세포나! 제발 정신 차려!! 나야 다프네라고! 제발 나 좀 봐!”
-죽일 거야!! 죽일 거야!! 다프네!!!!
처음 몬스터 여왕이 된 페르세포나에게서 태어난 그 괴물을 봤을 때. 그 새끼 괴물도 같은 소리를 했었다.
다프네를 죽인다고. 어머니의 원수라고.
무슨 증오를 품었건 이대로라면 페르세포나의 구원은 불가능한 일이다.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 제발.”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다프네의 애원은 계속되었다.
물론 그럴수록 페르세포나는 악을 지르며 다프네의 목을 더욱 세게 졸랐다.
오로지 다프네를 향한 증오만이 남은 듯한 모습. 다프네도 페르세포나의 이런 모습이 적잖이 충격이었는지 제대로 대처를 못 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가 페르세포나를 베어버리던 정화시켜버리면 그녀는 소멸한다.
구원이 불가능해진 이상 더 이상 고통을 주기보단 깔끔하게 쉴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게 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 페르세포나의 영혼잔재에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나는 문득 또다시 그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다프네의 목을 조르며 맹목적으로 증오를 토해내던 페르세포나가 아주 잠깐 나와 눈을 마주친 것이다.
눈앞에 증오의 대상이자 유일한 목적이 있다.
의지를 잃고 맹목적으로 증오만 품은 영혼잔재가 다른 것에 신경을 쓴다는 건 구조상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간단히 예를 들면 1번 행동을 하는 기계가 구조상 불가능한 2번 행동을 취한 것과 같았다.
그러니까.
의지가 남아있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의지가 남아있다면 그녀가 굳이 다프네에게 이토록 증오를 토해내 상황을 과열시킬 이유가…….
“있구나. 딱 하나.”
아주 찰나의 순간. 분명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
결심이 선 나는 초단이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고작 형상화한 게 전부인 페르세포나의 영혼잔재를 노려보며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쩌억!!
끔찍한 파육음과 함께 그녀의 영혼과 힘이 뭉쳐져 만들어진 육신이 갈라진다.
“안돼!!!”
그와 동시에 다프네가 눈을 부릅 뜨며 흩어지는 페르세포나의 영혼잔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페르세포나의 영혼은 점점 흩어져나갔다.
“안돼…… 안돼…… 안돼!!! 페르세포나! 안된다고! 제발!”
처절한 절규가 퍼져나갔다.
일리나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어째서.”
“내가 의문이 두 가지 들었거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그중 하나. 석상의 글귀.
그걸 남긴 건 다프네도 다른 어떤 이도 아니었다.
페르세포나. 본인이 남긴 것이다.
“그중 하나가 풀렸어 방금. 그리고 또 하나.”
내 물음에 일리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다프네를 향해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요 다프네.”
내 말에 다프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노려본다.
“저 석상. 페르세포나가 연기까지 해가면서 당신이 저걸 못 부수게 막는 이유가 뭔지.”
“…….”
다프네가 나를 더욱 노려보았다.
“x발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야, 이 개x끼야!! 페르세포나를 그렇게 소멸시켜야 속이 시원했냐 이 악마 같은 x끼야!”
페르세포나는.
경악스럽게도. 수천 년간 영혼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참아내며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내 결론이다.
절규하는 다프네를 뒤로한 채 나는 걸어 나갔다.
나는 나를 두고 연기를 펼치는 걸 곱게 봐줄 생각이 없다.
“오디션은 딴 데 가서 봐 이 인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