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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50화 (1,050/1,559)

제 1050화

다프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환영 때문에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간다.

“저기…… 데이비.”

다프네가 숲 저편으로 걸어가 버리자 뒤에서 보고 있던 필디르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방금 환영 말이야. 선배님과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

“맞아요. 분위기가 좀 다른 게 쌍둥이 같기도 하고.”

“어쩌면 본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맞아요. 필디르. 하지만 분위기가 저렇게 다르면 본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쌍둥이라고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서로 토론하던 루시아는 문득 내 시선을 눈치챘다.

“환영 자체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네.”

“맞아요. 이 암숲은 대륙과는 마나 흐름이 다르죠.”

“그래서?”

“간혹 이곳을 정찰하러 왔다가 환영을 본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환영의 조건이 뭔지. 누구에게 나타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명이 아닌 여럿이 동시에 볼 수 있는 환영이죠.”

루시아의 설명에 말없이 침묵하던 다프네가 나를 불렀다.

“데이비. 빨리 와.”

복잡한 심경이 서린 그 한마디에 나는 조용히 걸음을 움직였다.

암숲에 나타난 마굴은 현재 발견된 것만 12개.

그중 하나를 처리하고 11개가 남은 상황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프네는 개인적으로 조사를 할 게 있다는 명목으로 내게 그 마굴의 핵인 석상들이 숨겨진 곳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데이비.”

그 후 그녀는 뭔가 생각을 마친 듯 나를 불렀다.

“위치는 알려줬으니 이 이후부터는 너 스스로 해.”

“같이 안 갑니까?”

“나는 따로 움직일 거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검지를 둥글게 말아 들어 올린 뒤 내 이마를 딱! 소리 나게 때렸다.

그리고 남들이 듣지 못하게 내게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농땡이 피우지 말고 얼른얼른 부숴버려.”

성질머리 고약하지만, 그녀는 내게 옅은 미소를 지어주며 내게서 멀어졌다.

일리나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고 루시아 쉘만과 필디르는 갑자기 그녀가 일행과 떨어진 것에 의아함을 품는 모습이었다.

이후 나는 그녀가 알려준 방향으로 향했고,

정상적인 방법으론 절대 찾을 수 없는 지역에서 마굴의 핵인 석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엔 다른 동물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작은 석상을 발견한 루시아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정말 그분이 아니었으면 이걸 찾지도 못했을 거예요. 이걸 부수면 마굴이 이제 10개가 남는 건가요?”

“아마 그럴 거야.”

“방해꾼은 아까 그 선배님께서 해치웠으니 이제 석상을 어서 부수고…….”

“아니. 그놈 아직 살아있을 거야.”

“네?!”

마물왕을 찢어 죽이는 놈이다. 그런 놈이 지금의 다프네의 힘으로 단번에 죽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이윽고 내가 석상을 부수기 위해 손에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일리나. 칼디라스 들고 방해하는 것들 좀 치워줄래?”

“알았어.”

“저희도 신성력을 끌어올려서 볼 수 있으니 도울게요.”

“맞아.”

뒤이어 루시아와 필디르도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려 들었다.

석상을 부술 때쯤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것을 막기 위해 날아든다.

그것들이 마굴 속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석상이 만들어내는 것인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분명 이번에도 나오리라.

이후 내가 천천히 석상을 부숴버리려던 찰나였다.

“어라? 여기 글귀가 있는데요? 이전에 본 석상은 이런게 없었는데.”

석상을 바라보던 루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에 필디르도 다가와 그것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륙의 문자가 아닌데? 처음 보는 문자야.”

석상의 아래쪽엔 어떤 글귀가 쓰여 있었다.

“바라옵건대. 조율을.”

“응?”

내 중얼거림에 루시아가 나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읽을 수 있어요?”

“고대 문자야. 지금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잘 없지.”

고어라는 것이다.

아마 다프네가 살았던 시절에 존재했던 문자일 것이다.

“어떻게 읽는 거예요?”

호기심이 샘솟은 루시아의 물음에 나는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문자를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읽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해. 이 문자는 조합문자라는 거야.”

낱개의 문자를 조합하면 하나의 단어가 되고 다르게 조합하면 하나의 문장이 된다.

“조합 방식은 여기 이걸 보고 맞추는 거지.”

“오오…… 신기하네요.”

내 설명에 루시아는 노트를 꺼내 그것을 적고 해독하는 방법에 대해 기록했다.

“필요한 단어는 여럿 있지만 간단하게 발음하는 방법만 알려줄게.”

자세하게 알려줄 순 없지만 간단하게 읽는 법을 알려준 뒤 나는 문장을 해석했다.

“바라옵건대. 창세를. 바라옵건대. 조율을. 바라옵건대. 구원을.”

“대체 무슨 뜻이야 이게.”

“기도문…… 같네요.”

“신의 이름 아래에 나의 이름을 새기오니. 다프네의 이름으로 천상에 빛을. 닿으라.”

사실 별로 의미는 없는 단어였다.

원래 기도문이라는 게 들쭉날쭉 실속이 없는 경우는 많으니까.

사실 해석을 하면서도 나는 이게 뭔 헛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다프네라는 이름이 나오자 루시아의 눈이 반짝였다.

“기도문!! 성녀 다프네 님의 기도문이군요! 세상에 이걸 여기서 보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흐음…….”

그때 일리나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일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나는 석상을 부수기 위해 신성력을 끌어올렸고.

역시나 석상에서 기이한 비명과 함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카아아앙!!!

하지만 칼디라스의 힘을 빌린 일리나부터 우리 넷 모두가 신성력을 다루고 있는 만큼 제대로 보진 않더라도 그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번 겪어봤으니 두 번은 안 당한다는 것인지. 일리나의 검에 의해 빠르게 날아들던 벌레 같은 것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직…… 콰득!! 콰드득! 콰아앙!!!

이윽고 두 번째 석상이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공격해오던 것들이 일순간 증발했고, 또 한 번 숲 어딘가에서 거대한 힘의 파장이 느껴졌다.

소멸의 파장. 두 번째 마굴이 흩어진 것이다.

“빨리 움직이자 아직 많이 남았다.”

내 말에 세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놀랍게도 석상은 모두 글귀가 있었다.

하지만 처음 글귀를 발견했을 때와는 달랐다.

“그녀는 신성력을 다룰 줄 알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은 마를 정화하였고, 아픈 이를 회복시켰다.”

석상이 하나 부서져 내렸다.

“태생이 좋지 않았으나 그녀의 마음가짐은 세상을 감명시켰고 그에 따라 세상에선 그녀를 성녀라 칭송하였다.”

석상의 내용은 모두 달랐으나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용이 전반적으로 성녀 다프네의 기록들이라는 점이었다.

“설마 아까 저희가 본 환영이 성녀 다프네 님이었던 걸까요?”

“에이 설마. 아까 선배님과 거의 똑같이 생겼었잖아. 쌍둥이면 말이 안 되지. 초대 성녀는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이라고.”

필디르의 중얼거림에 루시아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네요. 하지만 오래전 사람과 흡사한 외모를 지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아마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사실 그게 사실인지는 입증된 바가 없지만.”

이후의 석상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다프네의 업적이나 생애를 기록해놓았지만 나는 그것을 읽을수록 점점 더 신뢰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픈 이의 비명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올려?

그 여자가? 어림도 없는 소리.

증오로 가득 찬 왕국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100일 동안 쉬지 않고 기도를 올려 기적을 불러내?

내가 아는 다프네는 전쟁을 틀어막아야 하면 당장에 달려들어서 멱살을 잡고 [전쟁을 멈출래. 내 손에 뒤질래?] 라고 물었을 인간이다.

즉. 이 석상에 적힌 말들은 죄다 거짓부렁이었다.

하지만 다프네의 광신도나 다름없는 루시아 쉘만은 알려지지 않은 성녀 다프네의 기록을 눈으로 보았다며 너무도 기뻐했다.

아무리 봐도 다프네가 아니다.

하지만 다프네의 업적으로 남아있다.

사실이지만 내 마음속에선 이게 정말 맞는 기록인지 의심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다프네도 과거엔 좀 더 유순했을지도 모르지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그녀를 보면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석상을 부술 때마다 방해는 계속해서 들어왔다.

실제로 도망친 것으로 추정되던 그 촉수 짐승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리나로 인해 그놈 또한 손도 쓰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마물왕을 물어 죽인 괴물을 단신으로 처단하는 일리나의 모습에 필디르와 루시아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일리나가 일리나 했을 뿐이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석상들을 부수고 남은 석상은 단 하나.

이것만 처리하면 다시금 생겨난 마굴을 정화시켜서 문을 닫아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 석상은 앞으로 6시간 후에 나타날 거야.”

일정 시간에만 나타나는 석상. 조금 특이한 기믹을 지닌 석상 때문에 결국 기다리게 된 나는 숲의 한기를 막아주는 동굴 안에서 모닥불을 적당히 피워놓고 시간을 때우기로 마음먹었다.

“이것들을 전부 동기들에게 알려줄 거에요. 성녀 다프네 님의 업적이라니. 이건 다시없을 발견일 거예요.”

루시아의 재잘거림에 필디르는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계속되는 행군에 상당히 지친 얼굴이었다.

“눈이라도 붙이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알았어. 우린 먼저 눈 좀 붙일게. 후에 교대하자.”

이후 필디르가 루시아의 뒷덜미를 끌고 각자의 침낭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리나. 너도 쉬어.”

“고작 이 정도로 지치진 않아.”

“그런데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데?”

내 물음에 일리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내게 말했다.

“데이비. 이거 읽는 방식이 문자 조합이라고 했지?”

“그랬지?”

내 말에 일리나가 침음성을 흘렸다.

이후 침낭 속에 들어갔던 루시아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왜 그래요. 일리나?”

“아니. 그냥 내가 잘못 해석한 건가 싶어서.”

그녀는 두 번째 석상에서 발견했던 다프네라는 이름이 쓰인 문장을 고스란히 적었다.

“데이비 네가 알려준 대로라면 확실히 성녀 다프네의 기록이 맞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두 번째 석상의 글귀. 그걸 옆으로 읽으면…….”

그녀의 말에 나는 기억 속에 있 덕 석판의 문자를 세로로 비틀었다.

동시에. 본래 문자가 사라지고 새로운 문자가 된다.

“나의 소중한 진짜 성녀…… 페르세포나에게.”

“다프네라는 이름…… 이렇게 배치하고 돌려 읽으면 페르세포나라는 이름으로 나오네. 하하 그냥 짐작이겠지?”

일리나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운 숲 저편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위험한 짓이지만 일리나는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어디 가는데?”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그 말에 그녀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후 아무도 없는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온 내가 물었다.

“페르세포나와 무슨 관계입니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대답할 리는 없다.

하지만. 곧 어둠 속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프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 마냥.

“무슨 관계냐고?”

“네. 그냥 친했던 관계나 동료는 아닌 거 같던데.”

쌍둥이는커녕 가족 한 명 없었던 다프네가 쌍둥이 자매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아니. 분위기가 다르지 쌍둥이와는 달랐다.

“페르세포나.”

이윽고 나는 그냥 떠오른 생각을 그녀에게 물었다.

“설마 본인입니까?”

내 물음에 다프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뭇가지로 바닥에 어떤 문자를 새겼다. 다프네라는 고어지만 배치를 다르게 하면 페르세포나로 읽혀지는 단어였다.

“맞아. 페르세포나라는 이름을 배치를 바꾸면.”

“다프네가 되겠지.”

“일리나 그 아이는 참 영특해, 눈치가 빠르네.”

“그럼 그때 해준 이야기는 뭔데요?”

마굴에 떨어져 몬스터 여왕이 된 존재. 페르세포나에 대해서 말이다.

다프네의 말대로라면 그때 죽은 건 다프네 본인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다프네는 여기 이렇게 멀쩡히 있지 않은가. 비록 그녀가 영혼 상태라곤 하지만 마굴의 사건 이후로도 그녀는 세상에 크나큰 업적을 계속해서 남겼다.

즉. 페르세포나와 다프네는 같은 존재이지만 같을 수가 없다.

그게 내 결론이다.

그런 내 질문에 다프네는 조용히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래전에 교단에서 어떤 실험을 한 적이 있어. 금기를 어긴 클론. 정식명칭은 성녀 양산계획. 비록 양산은 실패하고 한 명만 성공했지만.”

클론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이해시켜주었다.

“페르세포나는 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복제 인간이야. 하하 프리아 여신이 잠든 덕분에 내가 이걸 언급할 수 있게 되네.”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역시 그냥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그게 같은 유전자를 지닌 복제 클론이라면 그렇게 닮은 게 설명이 되었다.

“전에 환영으로 본 게 그녀입니까?”

“맞아. 교단의 더러운 욕심에 희생된 성녀의 더미.”

“…….”

“세상에 남아있는 성녀 다프네의 기록은 말이야. 데이비. 절반은 그녀의 것이야.”

의외의 대답이었다. 성녀 다프네는 본인이 했으면 했지 남의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위장하는 짓을 극도로 혐오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왜요? 성격상 그런 거 엄청 싫어할 줄 알았는데.”

“질문을 하나 할게.”

그녀가 내게 물었다.

“왜 내가 본래 이름을 버리고 다프네로 개명하면서까지 그녀의 기록을 이렇게 숨기듯 남겼다고 생각해?”

그녀의 물음에 나는 금기라는 단어를 상기했다.

존재의 중첩.

같은 존재가 세상에 둘 존재할 수 없다.

레이나와 일리나의 케이스와 다르게 어떤 빈틈도 없는 금기로 만들어진 게 바로 페르세포나였다.

그렇다면 성녀를 사랑하는 프리아 여신이 다프네를 지키기 위해 내렸을 벌은 뻔하다.

“페르세포나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단 하나도 기록을 남기지 않아 페르세포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소하는 것.

금기를 어긴 건 교단이지만 결국 벌은 페르세포나가 받게 된 꼴이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전에 보리스 선생님을 통해 페르세포나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페르세포나라는 이름을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하시더군요.”

보리스 선생님은 생긴 것과 다르게 고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즉. 그 또한 일리나와 같은 방식으로 페르세포나라는 이름을 흘끗 본 기억이 있다는 소리였다.

내 대답에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페르세포나의 이름으로 그녀의 업적을 단 한 글자도 남길 수 없어. 그래서 나는 이름을 바꾼 거야. 그녀의 것도 전부 품는 것으로.

알아보는 이는 없겠지만. 다프네의 기록이 남아있는 이상 그것은 영원히 페르세포나의 기록이 편법으로나마 세상에 남는다는 뜻이었다.

제법 머리를 썼다.

다프네의 기록을 고어로 치환하고 이름의 위치만 바꾸면 페르세포나의 기록이 된다. 하지만 사실 이건 억지에 가까운 기록이었다. 일리나처럼 조금 다른 시선을 보는 이가 아니면 발견하지도 못할 것이고, 발견한다 할지라도 말장난에 불과하기에 정식 기록으로 남길 수도 없다.

하지만 다프네는 자신의 이름을 바꿔가면서까지 그렇게 기록을 남겼다.

“나는 마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끝없이 고통받은 그녀의 영혼을 해방시킬 거야. 그동안 그녀의 영혼이 소멸한 줄 알고 있었는데. 네가 마굴에 대해 알려주면서 알았어.”

그녀의 의지는 완전히 침묵했지만. 영혼의 잔재는 아직 마굴 안에 남아있다고.

“좋네요.”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이일에 석상을 부수는 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굴의 힘의 매개체를 부숴서 마굴 자체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면 일리는 있다.

페르세포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을 보면 그녀는 다프네와 같이 영웅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였다.

“고마워. 데이비.”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런데. 그 몬스터 여왕에게서 태어난 새끼는 뭡니까? 페르세포나 아이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아니. 그건 나도 잘 몰라.”

다프네의 대답에 나는 조금 찝찝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마굴이야 존재는 하되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긍하면서도 나는 문득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녀는 석상을 스스로 부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왜 마굴의 출현 매개체인 석상에 이런 힌트 같은 글귀들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마치.

마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다프네.”

“왜.”

“나한테 숨기는 거 있죠?”

그렇게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건 그녀의 중지 손가락 하나뿐이었다.

“없어 그딴 거.”

“믿을게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 품지 마시라고.”

내 웃음에 그녀는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 성녀 다프네는 아직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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