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9화
암숲은 극도로 위험한 숲이다. 그런데.
“선배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이런 숲에 사람이 홀로 돌아다니고 있다? 게다가 필디르와 루시아 쉘만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리인포스 알파의 선배님들이나 선생님들 중에 저런 분은 없었어요. 게다가 방금 섬광은…….”
루시아가 나를 바라본다.
“성자이신 데이비 씨가 사용하던 성마법 아닌가요?”
“나도 조금 의아하네.”
아무리 다프네가 다른 영웅들에 비해 강림이 쉬운 편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내려와서 나를 기다리는 건 그녀로서도 엄청난 부담을 지고 간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다프네는 말없이 묵묵히, 그리고 마치 길을 알고 있다는 듯 들어갔다.
본래 빛이 퍼지지 않아야 할 곳이다.
하지만 다프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을 환하게 비추며 나아갔다.
“여기…… 암숲 맞지?”
“맞긴 한데…… 대체 어떻게 빛이 저렇게 강하게 터져 나오는 걸까요.”
다프네가 빛의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대체 저분은 뭐죠? 선배님이라는 거짓말을 믿으라는 건 아니겠죠?”
“어허. 거 프리아 교단의 신관이 그렇게 믿음이 없어서야 쓰나.”
필디르와 루시아는 계속해서 그녀의 정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선배라고 대답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갔을까.
다프네는 어두운 숲에 홀로 이질적인 어떤 석상의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태의 동물 인간의 모습을 지닌 석상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 눈에는 결단코 정상적인 석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건 원래 있던 겁니까?”
“아니. 생겨난 거지.”
다프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이거 못 부숴. 네가 부숴.”
그녀의 말에 나는 필디르와 루시아가 주변을 경계하느라 우리의 대화를 못 듣는 것을 기회 삼아 물었다.
“미쳤습니까? 내려와서 힘까지 쓰고? 아주 소멸하고 싶어서 환장했죠.”
“그 주둥아리 닥쳐. 안 그래도 힘든데 화나게 하지 말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은 거칠지만 내게 그녀는 정말 고마운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거 투덜대시기는.”
“뭐 임마?”
“자자 너무 화내지 마세요. 다프네 언니.”
그때 일리나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자 다프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건강해 보여 다행이네.”
“언니도요.”
서로 언니 동생 할 사이는 아니었지만, 일면식이 있는 만큼 일리나는 제법 사교성 좋게 그녀를 다뤘다.
이윽고 다프네가 나를 바라보았다.
“굳이 내가 내려온 건 개인적으로 확인할 것도 있고, 그리고 네게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어. 내가 없었으면 넌 마굴을 그냥 으깨는 수준에서 멈췄을 테니까.”
이윽고 그녀는 석상에 대해서 설명했다.
“현재 이 판도라 영역에는 이런 석상들이 생겨나고 있어. 자연스럽게 생긴 게 아니라 몬스터의 영혼이 지닌 힘이 응축되어서 석화되어 나온 게 이 석상이지.”
“마굴이 나온 건 맞나 보네요. 그럼 이 석상…….”
“잠깐만요. 그럼 그게 정말로 기사단 고서에 남아있는 최악의 재앙사태인 마굴이라는 소리인가요?”
뒤늦게 합류한 루시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맞아.”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 애초에 선배님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선배님이 맞으신가요?”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의심 어린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다프네가 성질대로 루시아를 한 대 쥐어박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우려를 거둬들였다.
“선배라…… 그걸 알아서 뭐하게?”
“뭐라고요?!”
다프네의 대답에 루시아가 화가 난 듯 씩씩거렸다.
“데이비 씨! 정말로 이분이 선배님 맞아요?!”
“맞다니까.”
“애초에 이런 분은 본적이 없는데요! 그리고, 명령서에 저희보다 먼저 이곳에 오기로 된 분은 없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그녀가 외쳤다.
“이봐. 그걸 내가 해명해야 해? 지금 중요한 건 이 빌어먹을 석상을 부수는 거야.”
다프네의 말에 나는 언쟁을 끝내기 위해 석상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서서히 힘을 가한다.
“신성력으로 부수는 거야.”
다프네의 설명에 나는 마나를 포함한 여러 힘을 가해보았다.
효과는 있지만, 다프네의 말대로 제대로 힘이 가해지는 건 신성력뿐이었다.
이에 신성력을 서서히 밀어 넣기 시작하자…….
쩌적…… 쩍!
-끼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석상의 입이 주욱 찢어지기 시작하더니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꺅?! 무슨?!”
“으윽 귀가!”
생각지도 못한 하울링에 필디르와 루시아는 귀를 틀어막았지만 제대로 보호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비명이 짙어질수록 나는 더욱더 신성력을 밀어 넣었고, 이내 석상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크우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석상의 위기를 눈치챈 것일까.
좀 전 다프네에게 맞고 도망쳤던 기괴한 생명체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치울게. 넌 그거나 처리해.”
이에 일리나가 칼디라스를 소환하려던 찰나.
다프네가 일리나의 손을 잡았다.
“잠깐. 그냥 내버려 둬.”
“네?”
“내가 치울 거니까.”
그녀의 말과 동시에 그녀의 몸 주변으로 엄청난 신성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직!!!
동시에 아까보다 훨씬 커진 끔찍한 형태의 괴물이 촉수형태의 갈기를 마구잡이로 흔들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여전하구나, 너는.”
그렇게 말한 다프네는 감정 없는 어조로 한 손을 펼쳐 올렸다가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위에 모여있던 빛이 그녀의 주먹 속으로 사라졌고, 다시 펼쳤을 때 어떠한 팔찌 같은 형태가 되어 나타났다.
우웅…….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영창이 흘러나왔다.
[신께서 이르시길.]
쩍!!!
[엿이나 먹으라 하셨다.]
그래. 저건 다프네가 해야 더욱 찰진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쩌어어엉!!!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창과 함께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팔찌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사이즈로 불어났고, 공간을 찢는 소리와 함께 응축되었다가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서걱!!
그리고, 정확히 괴물에게 충돌했고, 빛의 고리에 맞은 놈은 맞은 부위부터 빠르게 분자화되듯 흩어지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세상에…… 저게 뭐야.”
루시아는 다프네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는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성력에 예민한 두 사람인 만큼 방금 다프네가 보인 게 보통 수준의 성마법이 아님을 눈치챈 것이다.
의심을 하면서도 이만한 신성 마법을 쓰는 이가 마물일 거라곤 생각지 못하기에 그 혼란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이봐. 꼬맹아.”
그때 다프네가 심드렁하게 루시아의 말을 끊었다.
“네?”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좀 조용히 하면 안 될까?”
그렇게 말하며 그대로 루시아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제 품으로 잡아당겼다.
[꺼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창과 함께 빛의 장막이 루시아를 노리고 날아든 무언가를 그대로 막아냈다.
“꺅! 무슨?!”
“다치니까 뒤로 와.”
거침없이 말하는 것치고 루시아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주는 그 행동에 루시아는 눈을 끔뻑끔뻑하며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보이지 않는데요. 저게 뭐죠?”
“석상을 보호하려는 것들이야. 신성력을 지닌 이가 아니면 보이지 않지.”
다프네의 설명에 일리나는 칼디라스를 변환시켜 활성화했고 이내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러네요.”
서서히 석상에 신성력을 쏟아붓던 내 시야에도 잘 보이고 있었다.
마치 벌 같은 것들이 날아들어 계속해서 다프네의 장막에 부딪히고 있는 것을 말이다.
“아직 멀었냐 멍청한 자식아?”
“다됐습니다.”
콰드득!!!
이윽고 석상이 박살 난다.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힘의 충돌이 일어났다.
“끄……끝난 건가요?”
방금 전까지 맹렬하게 충돌하던 것들이 사라지자 루시아가 긴장한 듯 물어왔다.
“이 망할 숲에 마굴만 12개가 생겨났어. 그 마굴 하나하나의 매개체가 이 석상들이고, 숲 전역에 퍼져있을 거야.”
그녀의 설명에 루시아는 이제야 그녀의 존재를 인정한 듯 입을 다물었다.
진짜 선배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그녀가 엄청난 성마법의 보유자이며,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꼴랑 이것 때문에 여기 온 겁니까? 그냥 따로 말해줘도 될 텐데.”
“말했잖아.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싶은 게 있었다고. 온 김에 네게 도움도 줄 겸 온 것뿐이야.”
그게 뭔지 묻고 싶었지만 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다프네는 석상을 연달아 부수면 엄청난 반사효과가 나타날 테니 30분을 주기로 하나씩 부수라는 말을 했다.
권능을 사용하든 다른 힘을 사용하든 마굴을 힘으로 찍어눌러 지우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마굴 또한 세상의 시스템 중 하나. 인간이 피해를 봤을 뿐 저것 또한 시스템인 이상 신력으로 찍어누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30분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고요한 침묵을 견디지 못했는지 루시아는 다프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프리아 교단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시작했다.
바로, 그녀의 광적인 신념을 말이다.
“그래서 성녀 다프네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싸움을 멈추세요!] 라고 말이죠.”
“글쎄. 내가 볼 때 성녀 다프네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곱게 말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어요. 성녀 다프네 님은 고결하고 신성한…….”
“장담하는데.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거야. [죽기 싫으면 다들 무기 버려.]”
다프네의 대답에 루시아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신성 모독이에요! 성녀 다프네 님은 고결한 분이라구요! 그렇게 뒷골목 깡패 같은 언행을 일삼는 분은 아닌…….”
“그거야 너도 모르잖아?”
“성녀 다프네 님에 대해 모르는 건 당신이에요!!”
이후 루시아는 나도 직접 들은 적 없는 다프네의 업적과 그녀의 생애에 대해 떠들어댔다.
극도의 다프네 광신도인 루시아는 그야말로 다프네학 개론을 펼치라 하면 책 몇 권을 써낼 기세로 떠들어댔다.
그러지 마. 네 앞에 있는 게 다프네야.
진실을 알고 있는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반면 다프네는 루시아 쉘만이 어떤 인물이고,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 깨달은 듯 살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일부러 살짝살짝 진실을 언급하여 그녀가 반박하는 모습을 보는 게 퍽 즐거워 보인다.
아. 이걸 말해줄 수도 없고.
“이봐 루시아. 그만해.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기서 그렇게 떠들면 또 귀찮은 것들이 몰려올 거야.”
“필디르는 좀 가만히 있어 봐요! 나 오늘 이 선배님께 성녀 다프네가 어떤 분인지 똑똑히 심어드릴 거라구요!”
“풉!”
루시아의 말에 일리나가 결국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보였다.
“상극이네…… 상극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필디르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 맞다. 이제와서 말씀드리는 것도 죄송하지만 선배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 물음에 다프네는 조용히 필디르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다프네.”
그 말에 루시아의 표정이 왕창 찡그려졌다.
“장난치지 마시고…….”
“다프네 맞아. 내 이름을 내가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그 물음에 루시아는 말문이 막힌 듯 침묵했다.
“그것도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들어.”
“아, 고맙습니다.”
다프네가 가방 안에서 작은 간식을 하나 꺼내 건네주자 루시아는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까먹듯 오물거리며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참 얄궂네요. 성녀님과 같은 이름인데. 성녀님을 그리 매도하시는 분이라니. 같은 교단 소속이지만 선배님과 저는 잘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아쉽게 됐네.”
“잘 들으세요. 성녀 다프네 님의 업적은 모든 교단의 신관들이 존경하고 롤 모델로 삼고 있어요. 실제로 성녀 다프네 님이 올린 창세 기도는 교단의 최고 기도문 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죠. 그 내용은 창세의…….”
그때였다.
갑자기 다프네가 눈을 크게 뜨며 벌떡 일어난다.
이에 우리 모두가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숲 저편에서 느껴지는 조금 이질적인 신성력을 두른 어떤 인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
그리고, 그녀를 발견한 내 표정이 조용히 굳었다.
다프네와 내가 시선을 돌린 곳에 보인 것은 마물이나 석상, 균열이 아니었다.
어떤 환영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환영이 내가 아는 인물이라면 조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초대 성녀 다프네와 똑같이 생긴 여성. 그녀는 품에 법전을, 그리고, 다프네가 오글거린다며 잘 입지 않는 신관의 정복을 입고 있었다.
현재 다프네가 왈가닥이라면 환영으로 보인 그녀는…… 너무도 신성하고 청초해 보이는 미인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익숙한 것에 정보를 먼저 종합한다고 한다.
다프네가 둘?
말 그대로 재앙이구나.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숲은 다프네가 내게 말하지 않은 어떤 진실이 숨어있는 듯 보였다.
이윽고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갑자기 환영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져버렸다.
“설명 좀 해주셔야겠는데.”
내 말에 다프네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조용히 웅얼거렸다.
“데이비 네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내게 말했을 때. 그러지 않을까 생각은 했는데, 역시, 남아있었구나.”
아니 그러니까 뭐가 남아있는데.
그런 내 의문에 해답을 주듯 그녀는 홀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페르세포나…….”
페르세포나, 분명 내가 지구에서 봤던 그 끔찍한 형태의 몬스터 여왕의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에 나타난 다프네의 환영이 페르세포나라는 뜻이 된다.
그렇지만 다프네와 페르세포나 두 사람은 너무도 닮아있었다.
쌍둥이의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역시 아니다에 결정이 서렸다.
페르세포나라 불린 여성은 쌍둥이 수준이 아니라. 다프네 본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흡사했으니 말이다.
“마치 클론 같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