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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55화 (1,055/1,559)

제1055화

-쓰으으…… 하아…….

짧게 숨을 고른 한 인영이 몸을 움직인다.

-대의를 방해하는 자를 막아라.

-헬의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들로 인해 엄청난 두통이 일지만, 괴물의 집념은 모든 의지가 하나로 모인 집합체와 같았다.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건 지금 육신의 모체가 된 그에게 있어서 최우선 목표는 이 사념들이 부르짖는 대로 움직이며 닥치는 대로 침입자를 배제하는 것뿐이었다.

거대한 균열 속에서 마치 그동안 억눌려 져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오듯 좁은 균열 사이로 어마어마한 수의 팔이 튀어나와 빠져나오기 위해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찌직…… 찌지지지직!!

공간이 마저 찢어지며 그 안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오며 그림자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비. 그거 내놔.”

이윽고 놈들의 출몰을 바라보던 다프네가 손을 내밀었다.

“안됩니다.”

“내놔.”

“다 때려 부술 거잖아요.”

“적당히 할 테니까 그냥 좀 내놔.”

그녀의 고집에 데이비는 한숨을 내쉬며 아공간에서 묵빛의 창을 꺼내 형태를 변형시켰다.

1형태. 십자가.

긴 손잡이를 지닌 거대한 십자형태의 둔기, 혹은 창의 형태를 지닌 무기가 되자 그녀는 그것을 손에 쥐고 조용히 뇌까렸다.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

“적당히 날뛰세요.”

“오랜만에 제대로 좀 뛰어다녀보자.”

그 말과 함께 그녀가 든 신창 롱기누스의 십자가 끝부분에 새하얀 성화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데이비가 나설 것도 없이 다프네는 마치 자신의 스트레스를 발산할 대상을 찾았다고 말하듯 서늘하게 웃으며 걸어 나갔다.

신창 롱기누스는 내가 가진 다른 무기에 비해 그 무게가 엄청난 편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그것을 작은 나뭇가지 휘두르듯 느긋하게 붕붕 돌리더니 몸을 살짝 숙였다.

콰지지직!!

동시에 검은 균열 내에서 엄청난 수의 그림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심연에서 기어 나온 생명체를 보는 듯한 모습이지만 심연처럼 어거지로 이루어지는 법칙에 적용받는 놈들이 아닌 이상 저기 회색 괴물처럼 압도적인 힘을 지닌 게 아니라면 다프네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비록 다프네가 현신을 위해 대량의 힘을 묶어두었다곤 할지라도.

그그극…… 터어엉!!!

십자가를 바닥에 질질 끌던 그녀가 일대 공간에 폭발을 일으키더니 날아들었다.

다프네는 신관치고는 참 육탄전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게 회랑에 와서 늘어난 실력인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재능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헤라클래스에게 처음 수련을 받고 몸이 단단해졌을 때 육체만 믿고 다프네에게 덤벼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주 걸레짝이 될 때까지 맞았는데.”

데이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장 먼저 쏘아져 들어오는 그림자를 향해 십자가를 경건하게, 그리고 신성하게 쥐고 풀스윙을 후려갈기는 다프네를 시야에 담았다.

쩌어어어어엉!!

도저히 금속으로 후려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엄청난 폭음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조각이 되어 찢겨 나갔다.

쩡!!! 쩌어엉!!

그 뒤를 이어 다프네는 아주 신들린 것처럼 십자가를 휘두르며 그림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하나하나의 실력은 못 해도 익스퍼트급은 되어 보였다. 게다가 놈들의 힘은 단순 익스퍼트급 존재들의 힘이라고 보기엔 조금 이질적인 특수한 힘도 스며들어있었다.

하지만, 익스퍼트급이 몇이나 모여본들. 특수한 능력이 있다고 해본들.

다프네의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어딜 가, 이 새끼야!”

공격이 실패하고 급히 자리를 벌리려는 그림자를 맨손으로 잡아 찢어버린 그녀는 아주 광기 어린 스매시를 갈겨 댔다.

롱기누스를 엄청난 속도로 휘두르며 때려잡다가도 그것을 던져 버리고는 맨손으로 그림자의 사지를 찢고 머리를 으깨버리거나 사지 관절을 꺾어 부러뜨리는 등 그것을 보고 있는 이가 기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더 있네? 들어와.”

계속해서 밀려오는 그림자들을 보면 지칠 법도 하다. 하지만 다프네는 아주 물 만난 고기마냥 신나게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데이비는 그림자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회색 괴물을 끌어안고 빛을 부여하고 있는 페르세포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저 아이는 직접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 여왕으로서 육신이 죽고 영혼만 남은 기이한 현 상황 때문에 자연스레 태어난 아이일 거라는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저 회색 괴물은 압도적인 힘과 별개로 마치 어미 새를 따르는 새끼 새처럼 페르세포나에게 안겨 있을 뿐이었다.

그때 놈을 죽이지 않은 게 이렇게 스노우볼이 될 줄은 사실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콰앙!! 쾅!!!

다프네는 그 와중에도 균열은 건드리지 않고 어서 더 나오라고 말하듯 균열 밖의 그림자들만 찢어발겼다.

급기야 광기로 가득 찬 그림자들이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릴 정도로 그녀는 아주 문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었다.

“어이. 그만 구경하고 너도 나와서 거들지?”

그때 다프네가 싸늘한 표정으로 균열 내부를 향해 말했다.

“니들에게 볼일도 있고, 내가 지금 기분이 상당히 더럽기도 하니까.”

물론 균열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그녀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럼 직접 끄집어내는 수밖에.”

그렇게 말하며 십자가의 머리를 땅에 박듯 고정시킨 그녀가 양손을 깍지 끼며 모았다.

“다프네 하지 마세요.”

“아 몰라!!”

[10위계 초월 성마법]

[신의 문]

신성력을 영구 소모시켜서 발현하는 성흔을 이용하는 10위계 초월 성마법.

과거 나도 사용한 바 있지만, 신력을 이용해 편법으로 사용한 것과 다르게 그녀는 그녀 본인이 만든 성마법답게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저 미친…….”

얼마나 화가 났었기에 저것까지 쓰나.

데이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새하얀 깃털들이 마치 회오리처럼 회전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끄그그그그극!!

그리고, 과거 데이비가 사용한 것과 다르게 그녀가 사용한 신의 문은 경악할 정도의 농도를 지닌 성마법으로 발현되었다.

이윽고 균형이 뒤틀린다. 마치 신의 영역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변화 속에서 그녀가 손을 뻗어 주먹을 말아쥐었다.

콰드드득!!

동시에 주변이 모조리 뒤틀리며 균열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균열 통째로 아예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파스스스…… 파스스스스.

엄청난 힘이 방출되며 주변을 완전히 장악해버리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작게 뚫려 있던 균열이 완전히 개방되었고 동시에 다프네의 마법이 일대에 완전히 내리꽂히며 새하얀 섬광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섬광이 사라졌을 때. 다프네와 데이비는 눈앞에 나타난 다수의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림자보다 그 형태가 단단히 고정되어있는 존재들.

그들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들어 올렸고 다프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 중앙에는 갑옷을 입은 괴이한 존재가 홀로 고고하게 서서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몬스터 여왕은 오로지 페르세포나만이.

-그녀의 존재를 흔들지 마라.

다수의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괴음이 울려 퍼지며 기사들이 다프네를 향해 맹렬하게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신관치고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몸놀림으로 그들의 공격을 슬쩍슬쩍 흘려냈다.

콰직!!

아니. 정확히는 흘려내는 수준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을 역이용해 또 다른 상대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어우야 저건 나도 배우는데 한참 걸렸는데.”

다프네가 회랑에 와서 이런 걸 누구에게 배웠다고는 생각지 않는 데이비였다.

그녀 스스로 터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사들의 투구가 갈라지거나 롱기누스에 맞아 으깨지고 찢겨 나간다.

마스터급 이상의 힘을 지닌 기사들이지만 그들의 힘은 다프네에게 닿기엔 너무 미약했다.

적들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었다.

본래 이곳에 있어선 안 될 다프네가 여기 있어서 문제일 뿐.

당장 여기 있는 기사가 대륙에 풀리면 엄청난 혼란이 될거라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이곳 나락 [헬] 이 심연이나 흉신 때처럼 밸런스가 맞지 않을 수준의 힘을 지닌 것 또한 아니었으니 결과야 훤한 일이었다.

“…….”

콰직!! 콰직!!

수십에 달하는 기사들이 금속 조각이 되어 나뒹군다. 그러자 그제야 기다리고 있던 최후방의 기사가 한 손에 작은 단검을 또 한 손에 긴 롱소드를 들고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균형은 x랄. 네가 하는 건 균형이 아니라 아집이야 이x끼야.”

다프네의 걸걸한 욕설과 함께 보스 격으로 보이는 최후방의 기사. 모든 기사들의 본체이며, 이 사태의 원흉인 사념의 집합체가 그녀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째. 도와줄까요?”

“꺼져. 혼자서 충분하니까. 넌 페르세포나가 잘못되지 않는지나 확인해.”

페르세포나의 영혼이 상당히 호전되었고, 이번 일만 잘 풀리면 그녀의 굴레를 벗겨 윤회에 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녀는 최우선 순위를 무조건 페르세포나의 현상 유지에 쏟는 모습을 보였다.

카아아아앙!!!

-다프네…… 진실을 모르는 자여.

-진실은 쓰디쓴 고배와 같을지니.

-우리의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다프네와 역시 아는 사이였던 것일까.

데이비는 저 갑옷을 입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갑옷으로 감쌌지만, 놈의 육신은 분명 요시키 카사토 놈의 육신이 맞았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그새 저기 휘말려 들었구나.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어차피 언젠가 처리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요시키의 육체 안에는 엄청난 수의 영혼들이 마치 기워진 것처럼 모여 뭉쳐져 있었다.

저들이 다프네가 말한 나머지 배신자들일 것이다.

나락의 공포에 미쳐버린 놈들.

몬스터 여왕을 신봉하기 위해 다프네와 싸운 자들.

“한번 뒤졌으면 두 번 못 뒤질 것도 없지.”

쩌어엉!!

다프네가 새하얗고 작은 맨손으로 놈의 갑옷을 일그러뜨렸다.

싸움 자체는 놈에게 승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괴물이 된 요시키는 계속해서 균형 타령을 하면서도 다프네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리고.

“이 악물어라.”

놈의 아주 잠깐의 틈을 발견한 다프네가 드디어 양손으로 롱기누스를 잡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스트랭스]

[하이 스트랭스]

[하이 스트랭스]

[…….]

그리고.

쩌어어어엉!!

엄청난 수의 버프 마법을 중첩시키며 그대로 놈의 복부에 풀스윙을 꽂아 넣었다.

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놈은 힘없이 튕겨 나가 그대로 처박혀버렸고, 놈을 유지하던 갑옷의 반 이상이 찢겨 나가버렸다.

“후…… 속이 시원하네.”

그렇게 말하며 땀을 닦는 그녀를 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본래 싸움방식도 내버려 두고 무식하게 육탄전을 한 것도 기가 막히지만 그걸 이렇게 일방적으로 이기는 걸 보면 역시…….

“제일 강한 영웅 선발전 때 생각보다 오래 버틴 이유가 있긴 있었네.”

새삼 허탈한 기분이 드는 데이비였다.

이윽고 다프네가 놈의 요시키의 육신과 그 안에 담긴 괴물들을 모조리 찢어발기려던 찰나.

-안돼!!!

회색 괴물을 끌어안은 채 빛을 부여해주고 있던 페르세포나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들을 죽이지 말아줘!

“뭐? 그건 또 뭔 헛소리야. 넌 똑바로 양도나 해!”

다프네가 놈의 반쯤 찢겨나간 갑옷을 짓밟고 다시 힘을 끌어모았다.

-그들을 죽이지 말아줘! 제발!

그녀의 계속되는 외침에 다프네가 인상을 찡그렸다. 안광만 번뜩이며 계속해서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요시키의 육체는 이미 제정신이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이타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그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그들은 단지 미친 것뿐이야!

“그건 알아. 미쳤으니까 이 짓거리를 하지. 그래서 뭐.”

콰직!!

다만 이타적인 페르세포나와 다르게 다프네는 참 화끈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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