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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58화 (1,058/1,559)

제1058화

지금까지 이렇게 박력이 넘쳤던 적이 있던가.

밤이건 낮이건 그녀와 많은 전쟁을 치러왔지만 이렇게 일방적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를 침실로 질질 끌고 가 침대 위에 던져놓은 뒤 그녀가 내 배 위에 올라앉았다.

당황하여 고개를 돌리니 륀느가 창밖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그것을 바라보다 휙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는 손만 쏙 내밀어 하던 거 계속하라는 시늉을 하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언뜻 보면 굉장히 야시시한 모습이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콱!

“끄아아악?!”

“그대, 본녀가 지금 장난하는 거로 보였나 보구나.”

가까스로 짜증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모습에 나는 장난기를 거두고 양손을 펼쳐 항복 의사를 전했다.

“그대. 본녀에게 뭘 먹인 거야.”

“어?”

“그대가 준 선물을 먹고 이렇게 됐으니 발뺌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터.”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증거로 지금 그녀는 여성이 한 달에 한 번 겪는다는 달 손님을 제대로 겪어본 바가 없었다.

비슷한 흉내만 낼뿐 그것도 의미가 없는 터라 반쯤 사라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의지와 다르게 이런 사고가 터졌으니 말이다.

“전에 일리나가 지구에서 사 온 게 아니었으면 낭패를 볼 뻔했어. 다시 묻는데. 뭘 먹인 거야.”

대답 여하에 따라 나를 조져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그 시선에 나는 눈을 살짝 피한 뒤 말했다.

“아이.”

“…….”

“가지고 싶어 했잖아.”

아니라고 말만 하지 그녀가 에반젤린이나 다리안을 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일리나의 경우 아직 아이의 생각이 없다곤 하지만 페르세르크는 달랐다.

그녀는 3천 년 넘는 시간을 존재해왔고, 그중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고 할지라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엔 충분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3천 년 모태 솔로 페르세르크.

1천 년 모태 솔로 데이비 올 라운.

처음 그녀와 혼인했을 때. 그 사실을 가지고 얼마나 비웃고 비웃음당했던가.

“계속 신경이 쓰였거든.”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녀를 바꾸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뛰어다닌 것이기도 했다.

구미호 비연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시도인 만큼 그녀에겐 여러 면에서 감사를 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그래. 충분히 가능성 있어. 다리안과 에반젤린 동생 만들어줄 수 있는 거야.”

내 말에 그녀는 멍하니 주저앉은 채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아이…… 아이라…….”

공허해 보이는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보였던 탓에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킨 뒤 역으로 그녀를 바닥에 뉘고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굳이 말하지 않은 건 그냥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하자.”

정확히는 성공확률이 반반이라서 문제지만, 지금 상태를 보면 꽤 좋은 효과를 얻는 듯싶기도 했다.

“…….”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달거리는 처음에만 조금 힘들 거야. 두 번째부터는 보통 사람, 아니지. 지금 네 상태면 사실상 통증이 없는 상태가 될 테니 걱정 마.”

내 말에 그녀는 말없이 제 배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울기 시작했다.

“어…… 음.”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는 그녀를 보고 있기를 잠시.

문이 끼익 열리며 에이리아와 일리나가 고개를 내미는 게 보였다.

“아, 미안. 하던 거 마저 해.”

“저희가 괜한 방해를 했나 봐요.”

잽싸게 도망치려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는지 다시금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엔 기다렸다는 듯 청단이와 홍단이도 반대쪽 문에서 고개를 쏙 내민다.

“아빠! 홍단이 동생 오는 거야?”

“청단이 동생 생기는 거야?”

아이들의 질문에 페르세르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 엄마 울지마아…….”

누군가가 우는 것을 보면 전염된다고 했던가.

홍단이와 청단이는 그녀를 따라 울먹거리며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고 다독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 괜찮은 게야. 이리 오렴.”

홍단이와 청단이를 끌어안고 울먹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말 없이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 * *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페르세르크는 생각 이상으로 저돌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이가 입을 옷. 의류는 어느 쪽이든 좋지만 역시 지구에 있는 아기 옷이나 장난감도 굉장히 좋은 게야.”

“마침 좋은 매장이 하나 있어요. 조만간 시간을 비워서 한번 찾아갈까요?”

이런 행동, 혹은.

“아이의 태명은 무엇으로 하는 게 좋을는지.”

“흐음…… 글쎄요. 아르샤는 어떨까요. 아르샤 별에서 따와서…….”

“그것보단 캐네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일단 태몽부터 꾸고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

영주성의 사용인은 물론, 때마침 나를 보기 위해 하인스 영지로 마나 게이트를 타고 온 바리스나 윈리까지 작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잠깐만. 분위기 박살 내서 미안한데. 아직 아기가 생기지도 않았거든?”

내 말에 모두가 침묵한다.

실제로 페르세르크는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된 것이지 아직 아이가 생긴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육체에 변화가 생기고 처음 보는 것이 아니던가.

내 말에 에이리아와 일리나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페르의 등을 떠밀었다.

“언니, 잘해봐요.”

장난기 서린 그 키득거림을 보며 그녀가 얼굴을 붉게 물들였지만 거부하지는 않는 모양새였다.

그래. 이대로 잘되면, 그것으로 해결이 될 텐데.“

세상일이라는 게 참 묘하게 흘러간다.

“데이비.”

개인정원의 벤치에 앉아 잠시 바람을 쐬며 영지의 문제 안건들을 검토하고 있던 나는 곁으로 다가온 다프네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돌아간 줄 알았더니 다시 왔네요.”

“응. 잊고 말하지 않은 게 있어서.”

그녀가 내 곁에 앉으며 말했다.

“페르세르크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면서.”

“그렇죠. 다행히 잘 된 거 같네요.”

“축하해. 그 아이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야.”

그녀는 작은 십자가 같은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간단한 권능을 남용해서 담아놨어, 태교에 좋을 거야. 그 아이가 아이를 가지면, 그때 선물해주도록 해.”

“잘 받을게요.”

범 세계적 편애라는 게 이런 것일까.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페르세포나.”

“예?”

“예전에 나는 그녀를 엄청 싫어했거든. 일단 신관 출신인데 대놓고 금기를 어긴 녀석이 태어났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

그녀는 그동안 해주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가 소멸하지 않고 다행히 구원받음으로써 윤회의 고리에 들 수 있게 된 탓에 상당히 안심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알게 모르게 그녀를 챙기고 있더라. 그렇게 모질게 굴었는데. 바보같이 헤헤 웃기나 하고.”

그녀는 마치 푸념하듯 자잘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 당시엔 그녀가 임무 중에 문제가 생겨서 끌려들어 간 줄 알았거든. 설마 내가 모르게 교단 측에서 그녀를 나 대신에 희생시켰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도 하고.”

“이제라도 찾았으니 됐네요. 그보다 아르타의 영혼은 좀 안타깝게 됐네요.”

비록 프리아 여신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성흔은 없지만 또 다른 성녀나 다름없는 페르세포나가 마음에 품었던 사람인 아르타 폰 팔란 에 대한 이야기를.

“차라리 기억을 잃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게 그녀에겐 더 좋을 거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프네.”

술도 마시지 않았으면서 평소 이상으로 수다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나는 괴리감을 느끼고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은데요.”

내 물음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나를 보다 조용히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초를 쳐서 미안한데. 아이를 가지는 거,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게 어때.”

그녀의 물음에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건 또 뭔…….”

“너도 알지. 우치도, 하레스도, 다른 영웅들도 전부 페르세르크 그 아이가 아이를 가지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거.”

그것은 그들이 페르세르크를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그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야기해봐요. 대체 뭐가 문제인지.”

그녀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하레스 그 인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페르세르크가 어릴 때 있었던 이야기야.”

그녀가 입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때 그녀에게 생긴 문제를 말이다.

그리고, 그 내막을 이야기해 준 내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굳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절대 문제가 없을 거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그러면 그렇지.”

나는 집무실의 테이블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다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X!!”

콰앙!!!

내 주먹을 이기지 못한 테이블은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고,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들이 허무하게 흩날렸다.

“저…… 저하?! 무슨 일이세요?!”

그 굉음에 놀란 에이미가 황급히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지만 나는 눈을 부릅 뜬 채 이를 악물었다.

“별일 아니야. 에이미. 미안한데 사람 셋만 보내줄래? 책상이 박살 나버렸거든.”

내 대답에 에이미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마냥 쉽게 진정할 수가 없었다.

다 잘됐다고 생각했더니 막판에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세상에…….”

이윽고 수인족 시종들이 들어왔다가 흠칫 놀랐다.

“미안한데…… 이것 좀 치워줄래? 에이미는 서류들 좀 정리해주고. 전부 결재해놨으니 가져다 놓으면 될거야.”

“저하…… 괜찮으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바람 좀 쐐야겠다.”

이후 나는 성큼성큼 걸어 영지가 내려다보이는 개인 정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페르세르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뒷짐을 진 채 영지를 바라보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왔구나. 무슨 사안이 있었기에 그대가 그리 열이 받은 게야.”

그녀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내가 앉은 벤치로 다가와 물었다.

이에 내가 답하지 않자 옆에 앉아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었다.

“고마워 데이비. 본녀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아이를 가지는 게 그렇게 좋아?”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와 나 사이에 물리적인 연결 끈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대를 구속할 명분이며, 그대가 본녀를 구속할 명분인 게지.”

늘 하는 말이 있다.

애 때문에 산다.

헛웃음이 나올 소리지만 그녀는 그런 말 자체도 그리 좋았던 모양이었다.

“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오늘 밤은 기대해도 좋을 게야.”

그녀가 장난스레 손을 오므려 고양이 흉내를 냈다.

평소라면 좋다고 반응이나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그대에게 이제와서 하는 말이라 조금 미안하네만…… 본녀의 아비.”

“어?”

“검신 하레스를 만나고 싶어.”

그녀의 요구에 나는 속이 더욱 쓰러졌다.

서로 잘 있으니 괜찮겠지 하며 침묵하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페르세르크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더욱더 좋은 일이건만. 이 일이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더욱 씁쓸하게 느껴졌다.

“페르세르크.”

내가 그녀를 불렀다.

“응?”

“아이…… 잠깐만 기다리자.”

진지한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조금만…… 기다리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야 마음속에 숨겨둔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는데 잠시 기다리라고 하니 안달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말했다.

“왜. 어째서. 본녀에게 설명해 봐.”

“페르 그러니까.”

“말해보라고!!”

그녀답지 않게 다급한 외침이었다.

“왜애애애!”

칭얼거리듯 매달린 그녀가 내 가슴을 퍽퍽 때렸다.

“왜! 말해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혼은 일반적인 마족의 혼과는 달라서.

아이를 가질 수는 있으나…… 그녀의 육신에 또 하나의 생명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녀에게 걸려 있던 어떤 기억의 락이 풀리게 된다는 뜻이다.

넌, 그 기억을 감당 못 해.

하레스 폰 팔란이 사랑했던 여인이자 그의 부인은 물론, 다수의 생명을 죽인 기억.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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