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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57화 (1,057/1,559)

제1057화

숭고하게 남은 그의 잔념일까.

나는 말 없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죄송합니다.

-성녀인 네게 보답을 바라진 않겠다. 그런 너를 마음에 품어버린 내 문제일 뿐이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가 품 안에서 작은 손수건을 꺼내 페르세포나에게 내밀었다.

-다만, 아주 조금이라도 만약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것을 보면서 나를 떠올려 주길 바란다.

-제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할지라도, 당신만큼은 절대 잊지 않을게요.

-페르세포나.

-그거 아세요. 아르타? 저도, 당신을…….

그녀가 너무 환하게 웃는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것을 끝으로 마치 장면이 전환되듯 다른 풍경이 드러났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처음 보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마굴의 균열.

그리고, 성녀복을 입은 채 말없이 마굴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다프네.

아니 정확히는 다프네의 금기 클론인 페르세포나가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서 있는 다수의 기사들도 보였다.

그들의 갑옷은 모두 달랐으나 그들이 차고 있는 배지는 내가 전에 본 적이 있던 과거의 라스트 위스프 기사단의 배지였다.

콰아앙!! 쾅!!

“그녀와 난봉꾼이 온다. 어서 들어가라.”

이윽고 중후한 인상의 한 사내가 엄하게 말하자 페르세포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짧게 숨을 골랐다.

이대로 들어가면 그 후엔 죽지도 못하는 끔찍한 삶이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자애로우신 프리아 여신이시여 제게 더욱 큰 용기와 광명을…….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가 마굴에 점점 가까워지자 마굴에서 이변이 일어나더니 검보랏빛의 손들이 그녀를 휘감기 시작했다.

마치 어서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콰아앙!!!

그때였다.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지며 누군가가 나타났고, 기사들은 말없이 침입자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아르타. 네놈에게 명령을 어길 권한은 주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옳지 못합니다.

“명령을 어기겠다는 것인가.

-그 누구도 그녀의 생을 멋대로 정할 권한 따윈 없습니다. 설사 주신 프리아 여신이라 할지라도.

“기어이 명을 어기는군.

그의 외침과 함께 기사들은 그와 싸우기 위해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러지 말아요! 아르타! 당신은 그렇게 죽어선 안 돼요!

그녀의 외침에 아르타는 묵묵히 검을 들고 정자세로 높이 세웠다.

마치 맹세하는 기사처럼.

그리고는 말했다.

-내 목숨은 당신께 있습니다.

그 말 이후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르타의 힘은 대단했으나 기사들의 수는 많았고 하나하나가 현재 기사단장은 우스울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큰 부상을 입어가면서 가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른 아르타는 결국 페르세포나를 지키지 못했다.

전투 도중 마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던 그녀가 마굴 속으로 끌려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후 광적으로 괴성을 내지른 아르타는 남은 이들을 모조리 베어버린 뒤 그들을 전부 마굴 속에 던져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가던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처음으로 감정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천천히 기어 마굴 안으로 몸을 던졌다.

스팡!!!

영상 속 사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서서히 가루가 되어 분해되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눈을 감았다.

아르타 폰 팔란.

현재 팔란 제국과 다르게 미들네임 [폰]을 쓰는 사내가 그렇게 죽어 사라진 것이다.

* * *

[내가 만약 깨어있을 때 그를 보았다면, 나는 일리나 이전에 그를 주인으로 한번 인정했을 거야.]

아르타의 사념은 나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본 듯했다.

아르타의 사념이 마치 충격파처럼 퍼져나가며 주변을 감싼 탓에 그 영향권 안에 일리나를 포함한 이들도 해당되었던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진실을 눈앞에 두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고, 몬스터 여왕의 위계를 넘겨준 뒤 그 회색 괴물에게 자신의 기억과 목적을 새겨준 페르세포나는 그렇게 떠났다.

다음 대의 몬스터 여왕이 된 회색 괴물을 뒤로하고 남은 것은 다프네와 나, 그리고 일리나가 전부였다.

“슬프네…… 좋아하는 데 좋아한다고 말도 못 하고 그렇게 결국 희생당한 거잖아.”

“그 빌어먹을 새끼들, 그냥 쳐 죽이는 게 아니라 아주 살가죽을 벗겨놨어야 했는데.”

다프네는 그날 이후 모든 상황이 종식된 후에 들어온 자신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괴물로 변해 미쳐버린 페르세포나를 끄집어냈고,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녀를 죽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페르세포나는 구원받지 못했고. 아르타를 포함해 마굴로 들어간 기사들은 자신들의 뒤틀린 신념을 가지고 사념으로 부활하여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다.

자신이 본 사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일리나가 문득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과연 그들이 마냥 나쁜 인간들이었을까.”

“적어도 본인이 희생할 생각도 없는 놈들이 신념을 핑계로 다른 이를 사지로 몰아넣은 점에서 이미 논점은 흐려진 거야.”

“그 인간들 나쁜 건 알지만. 결국, 그 인간들의 그런 미친 짓 덕분에 마굴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마굴, 즉 나락은 그리 위협적이진 않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당장에 공간을 비틀어 부숴버릴 수 있는 작디작은 공간이다.

하지만. 그건 내 기준이지 대륙적으로 마굴이 튀어나와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면 그건 절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는 참…….”

일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연 그 당시 인간들에게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데이비.”

그때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다프네가 나를 향해 말했다.

“페르세포나의 영혼이 윤회의 궤도에 올랐어. 우치가 그녀의 영혼을 잠시 회복기에 두고 그 후에 안전해지면 윤회시키겠다고 하네.”

“다행이네요.”

“나도 올라가 보려고, 영혼을 회복시키는 건 내 담당이니까.”

말이 그렇지 결국 우치가 아니라 저승이가 할 일이긴 하지만.

“고맙다.”

“고마우면 보상이 있어야겠는데요.”

“뭘 원하는데.”

그녀의 물음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 * *

“선배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루시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가장 문제 많고 탈도 많던 270기 막내 후배들.

그중에서도 가장 건방지기로 유명한 베델이 루시아의 옆에 달라붙어서 그녀를 보좌하는 꼴이란. 퍽 우습기 그지없다.

“쟤 왜 저러냐.”

기사단 본부는 현재 마굴에서 튀어나온 괴물들로 인해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왔냐? 마물이 기숙사 습격했을 때. 루시아가 저놈 몸 던져서 살렸잖냐. 그래서 저러고 있다.”

루시아의 파트너인 필디르의 설명에 나는 다리에서 추락했던 그녀와 한 견습 기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선배님! 어깨 결리시죠? 제가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네.”

내 물음에 필디르는 짜증스레 혀를 찼다.

“몰라. 그냥 이상하게 짜증이 나네.”

루시아가 조금 구원해달라는 시선을 필디르에게 보내오지만, 필디르는 코웃음을 치며 무시할 뿐이다.

이에 나는 다른 268기 동기들과 그 윗대 선배들이 모여있는 식탁으로 이동했다.

“데이비. 뭐래?”

“질투한단다.”

“풉.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샤이르가 제 쌍둥이 자매인 펜디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내놔.”

그 말에 펜디르는 짜증스레 필디르를 노려보고는 품 안에서 예쁜 보석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이 씨 필디르 저 쭉정이는 왜 저러고 산데?”

“그야 나도 모르지.”

이미 이들은 필디르가 왜 루시아의 저런 상황을 보면서 짜증이 나 있는지 다들 아는 모양새였다.

“저러다가 저 베델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먼저 채가는 거 아냐?”

“하기야 꼭 파트너끼리 잘되란 법은 없지.”

이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은 참 웃기게도 파트너 출신으로 결혼에 골인한 이들이 어느 정도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필디르와 루시아 쉘만 모두 프리아 교단의 사람이라 그쪽 방면엔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있던 이들이기도 했다.

“필디르 저거 술 한번 먹여볼까? 혹시 알아? 밤중에 찾아갈지.”

“다무르, 그 입 좀 다물어.”

“왜 나만 갖고 그래.”

추욱 늘어지는 소년을 뒤로한 채 샤이르가 나를 바라본다.

“영웅이 된 기분이 어때?”

“영웅은 얼어 죽을. 얼마나 부서진 거야.”

“기숙사 건물 하나가 완전히 날아가서 새로 지어야 하고. 하나는 수리해야지 뭐.”

“직접 한다던?”

“우리한테 뭐 남는 잉여 인력이 있는 줄 알아? 얼마 전에 철책 공사하는데 4시부터 일어나서 아주 뺑이쳤다니까?”

그녀가 죽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자자 그만 놀고 움직이자! 급히 복구해야 할 것들부터 움직인다! 호명하는 기사단원부터 나와!”

이윽고 한 기사의 외침에 단원들의 표정이 대뜸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데이비. 네가 나서주면 참 좋을 텐데.”

그 말에 주변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맞다. 데이비가 나서…… 어라. 이 자식 어디 갔어?”

당황한 듯 헤그가 두리번거리지만 그는 끝내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이 새끼! 비가시 마법으로 튀었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는 이들을 무시한 채 나는 일리나의 팔을 낚아채 잽싸게 도망쳐버렸다.

아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몰라요. 모른다고.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건을 해결하긴 했지만 내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다.

세상의 붕괴 조짐이었던 붉은 공허 문제를 해결하고 은퇴를 선언했건만. 상황이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상하게 불안한데.”

“불안해? 키스해줄까?”

“…….”

대뜸 물어오는 그녀를 무시한 채 나는 하인스 영지에 무언가를 빼먹었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분명 없었다.

없어야 하는데…….

“어째……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

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쥐죽은 듯 조용히 다니고 있는 시종과 시녀들을 본다.

“어…… 어서 오십시오 저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르닐 시종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부르고, 그 뒤에 에이미가 숨은 채 울먹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뭐야.”

“무슨 일이죠? 시종장?”

나를 대신해 일리나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물었고, 이내 베르닐 시종장은 말없이 페르세르크의 방을 가리켰다.

“저하……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것이옵니까.”

“내가 무슨 짓을…….”

말을 하기가 무섭게 좀 전까지 느껴지지 않던 묵직한 압박감이 전해진다.

이건, 위험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온 김에 바로 영지 시찰하면서 상태나 확인…….”

“데이비.”

뒤이어 들리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본녀의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친 페르세르크의 표정은 그야말로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짜증은. 오로지 나를 향하고 있다.

“페르.”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생기의 구슬은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

다만 완전히 흡수가 안 되는 터라 천천히 변화를 주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언니…… 표정이 왜…….”

“괜찮아. 일리나. 데이비와 단둘이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잠시 괜찮을까?”

“무…… 물론이죠.”

처음 보는 박력에 놀란 그녀가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리고는 어떤 차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오고 있던 에이리아를 보고 후다닥 달려갔다.

“에…… 에이리아. 언니 왜 저래?”

“아…… 그게…… 달거리를 하셨나 봐요. 그런데…….”

“다, 달거리?”

“증상이 좀 과해서…….”

에이리아의 목소리가 내 귓가 고막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아…….”

미래 예지능력은 코오나의 전유물이지만.

나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페…… 페르! 다음에 이야…… 커억!”

그녀가 섬광처럼 날아들어 내 뒷덜미를 낚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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