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3화
조용한 침묵 속에서 암살자들은 서로의 시선을 살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올빼미. 지금부터 반란분자를 처단한다.”
그 말과 함께 암살자들이 일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간을 보는 듯한 움직임이다. 틈을 보여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해보겠다는 그런 태도였다.
주변은 고요하기에 보는 이들 따윈 없었다.
결정을 내린 순간 망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심해라. 아티펙트일 가능성이 높다.”
“마나가 느껴지지 않으니 놈의 육체 자체는 별다른 힘이 없을 거다.”
빠르게 나를 분석한 그들은 다방면에서 내 급소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퍼엉!!!
후방 심장. 쇄골, 비장 등을 노리고 한치의 변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정확하게 찔러 들어오는 솜씨는 이들이 사람 한둘 죽여본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들의 눈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고, 그들의 검은 정확히 내 몸에 닿았다.
퍼엉!!!
하지만. 그들의 검이 찌르고 지나간 내 몸에서 터져 나온 것은 파육음이나 피가 아닌 검은 연기였다.
“무슨?!”
당혹스러운 감정을 토해낸 암살자들이 급히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세 명의 암살자 중 한 명은 끝내 도망치지 못했다.
검은 연기가 사라지고 그들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 후방에서 나타난 내가 한 명의 뒤통수를 움켜쥐고 그대로 움직임을 고정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거 한번 해보고 싶었다 개자식들아.”
싸늘하게 일갈한 내가 그들을 바라본다.
어딜 공격하는 겁니까, 그건 제 잔상입니다.
물론 진짜 잔상은 아니지만,
“큭!?”
내게 잡힌 사내가 급히 몸을 비틀어 내 급소를 노리고 반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공격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뒤로 흘러나온 악마 형상의 일렁임이 주변 전체에 어마어마한 압박을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추에 깔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눈에 공포가 어린다.
“네, 네놈 대체 정체가…….”
푸확!!!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비틀려 죽어버린 그가 허무하게 침묵하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피어 마법에 당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들로썬 현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발이 굳어버린 것처럼 쉬이 움직이지 않는지 당황한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내 뒤로 스멀거리던 악마의 형상이 점차 커지며 손을 뻗어 나간다.
“좀 전에 너희들이 말했지.”
퍽!!
가장 가까이 있던 암살자의 목을 틀어잡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말한다.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가 하는 일이니 감히 고개 뻣뻣이 들지 말라고.”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냐고 소리치는 눈빛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반대로 말해줄게. 너희들이 납치한 그 양반은 말이야.”
내 상사야.
그것도,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창조주이자, 세계의 창조자.
물론, 이 말을 들어본들 놈들이 이해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 살려…….”
“니들 덕분에 내가 많은 걸 잃었으니까. 그 대가는 확실히 계산하자.”
으드드득!!
그들의 두개골을 잡아 으스러뜨리며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으리으리한 저택을 시선에 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아르부트 왕국은 도시국가지만 그 도시의 규모가 상당한 편이다.
그리고, 재상이 머무르고 있는 저택은 내가 본 어떤 건물보다 거대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고위귀족이고, 생각보다 인심이 넉넉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미소 속에 비틀린 무언가를 느꼈다.
그런 놈들 치고 생각보다 깨끗한 놈들 잘 없지.
평화롭고 고요한 저택은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과 저택을 배회하는 사병들, 그리고 조용히 움직이는 몇몇 시녀들이 창문으로 보이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심을 하려 해도 할 건덕지조차 없는 그런 저택의 내부를 걸으며 나는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걸음을 옮겨 나갔다.
역시 이곳에는 프리아 여신은 보이지 않았다.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녀가 그런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였을지는 알 길이 없었다.
정말 착각한 것일까.
그럴 리가.
나는 인적이 드문 복도에서 천천히 몸을 숙여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파장을 퍼뜨렸다.
투웅…… .투웅!!
무형무색무취의 파장이 한번, 두 번, 대여섯 차례 퍼져나갔을까.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기 계셨네.”
역시 감이 틀린 적은 없더라.
망설임 없이 기검을 방출한 나는 바닥을 갈라버렸고, 단단한 바닥 아래로 보이는 지하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위에 저택은 누가 봐도 평범한 고위귀족의 저택이다.
하지만. 그 아래 숨겨진 지하에서는 상상 이상의 악취가 올라오고 있었다.
“음?”
그렇게 지하로 내려왔을까.
나는 내가 착지한 곳이 어떤 감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감옥의 벽면에 피 칠갑을 한 평범한 남성이 묶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독할 정도의 고문 흔적에 천천히 다가간 나는 그의 의식이 돌아올 정도만큼의 회복마법을 걸어주었다.
서서히 회복되는 육신 덕분일까.
벽에 매달려있던 사내는 천천히 눈을 떴고 이내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제발!! 제발 제 부인과 딸을 돌려주십시오! 제발! 나으리!”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의 얼굴엔 절망이 어려 있었다.
끔찍한 공포 지독한 절망.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를 향해 나는 천천히 물었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이야기해보세요.”
내 말에 횡설수설 외치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으리?”
묘하게 닮은꼴인데.
“혹시. 낮에 재상의 행차 중에 말이 걷어찬 돌을 맞은 아이의 아비입니까?”
그 아이와 이목구비가 닮은 터라 그냥 물어본 것인데.
“마……맞습니다! 제…… 제 딸아이입니다!”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 말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나는 조용히 인비져빌리티 마법으로 모습을 숨겼다.
거지 같은 광경이긴 하지만 일단 프리아 여신을 찾기 전까지만큼은 최대한 파장을 자제할 생각이었다.
“어이 시끄러워!”
“히익!?”
이윽고 철창문을 두드리며 거대한 체격을 지닌 사내가 다가와 소리쳤다.
감옥이나 지키고 있는 이라고 하기엔 실력이 지나치게 높다.
마스터급 기사의 수준이 어디 뉘집 개 이름일 리는 없으니 말이다.
“이……이상한데, 바……방금까지…….”
천장에 뚫린 구멍을 대충 빛을 굴절시켜 보이지 않게 가린 게 도움이 되긴 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간수는 말없이 사내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라고, 그러게 누가 미색이 고운 부인을 두라고 했나?”
“예……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곧 죽을 테니 말은 해주마. 재상님의 눈에 띄었으니 네 부인과 딸아이는 재상의 침실 시중을 들 거다.”
그 말에 사내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어떤 인간이 자신의 부인이 다른 남자의 침실 시중을 든다는데 가만히 있을까.
그가 괴성을 내지르며 소리 질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분명, 분명 재상께선 보상을 해주신다고!”
“쯧쯧 순진하긴. 그걸 믿었나?”
“무슨…….”
“뭐,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니 다행이라 여겨라. 적어도 재상의 눈에 잘못 띄어서 저 꼴이 되진 않을 테니.”
그가 반대편 철창을 가리키자 그 안엔 팔다리가 잘린 채 추욱 늘어져 있는 어떤 여인이 보였다.
“물론, 잠자리 시중에서 재상의 심기를 거슬리면 저 꼴이 나겠지만…….”
그가 혀를 쯧쯧 찼다.
“제 아이는 이제 고작 12살입니다! 나으리!!”
작은 아이까지 침실 시중을 든다는 말에 그가 눈물을 토해내며 소리 질렀다.
“그래서.”
“예……예?”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재상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면 하는 거다. 이 나라에서 재상의 말은 곧 법이다.”
그렇게 말한 그는 근처의 화톳불에서 금속꼬챙이를 꺼내 들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꼬챙이가 보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을 준다.
“분명히 말하는데. 조용히 있어라. 괜히 난동부리면 나도 피곤해지니까.”
“…….”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하는 충고지만…… 최대한 사지 멀쩡하게, 고통 없이 죽고 싶다면 가만히 있어.”
저항하고 날뛸수록 끔찍한 일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
“여기선 그 누구도 널 구해주지 못해. 이 나라는 그런 나라다.”
쇠꼬챙이로 위협한 뒤 다시 화톳불에 던져 넣은 그가 걸어가 버리자 사내는 절망한 듯 중얼거리며 추욱 늘어졌다.
비가시 마법을 이용해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
쯧.
그리고는 전이 마법을 통해 철창 밖으로 나온 뒤 맞은편 철창 안을 바라보았다.
삶의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듯 늘어져 있는 여인은 끔찍한 몰골이었다.
당장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끔찍한 형태.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감옥 곳곳에는 별의별 형태로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는 이들이 다수 보였다.
‘투스카니 광견병’
본래 사람이 걸리지 않는 질병에 걸려 온몸에 보랏빛 반점이 가득한 사내.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채로 마치 고기를 걸어놓듯 갈고리에 걸려 있는 여인 등등.
차마 눈 뜨고 보기 흉악한 것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조용히 의자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편으로 어떤 방이 보였다.
끼익…….
그리고, 잠시 뒤 그 방문이 열렸고, 그 내부가 보였다.
다만, 지금까지 본 지저분하고 흉한 감옥과 다르게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방이었다.
방의 중앙에는 침대가 있고, 침대엔 어떤 이가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기사 말고 다른 어떤 기사 한 명이 커다란 호스와 기괴한 약병들을 이용해 무언가를 투여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 *
아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바타에 강신해 있던 프리아 여신은 현재 양손과 발이 묶인 채 고풍스러운 방의 침대 위에 묶여 있었다.
기절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침묵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만. 어찌할까요.”
“재상께서는 나흘 뒤에 방문하기로 하셨다. 그러니 그 전까지 적당히 약에 절여놔.“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한 기사의 말에 그의 부하 기사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 운도 없군요. 그 와중에 재상의 눈에 띄셨으니 말입니다.”
“입 조심하게. 그나저나 따라오는 이는 없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처단부대가 나서서 증거를 인멸 시켰을 겁니다. 내일이 되면 그녀가 이 세상에 있었다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호스를 꺼내 들었다.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다 되면 보고 드리지요. 아참. 혹시 처녀가 아니면…… 조금 먼저 손을 대도 되겠습니까?”
“뒤처리만 잘하면 상관없다. 보아하니 말을 못 하는 걸 넘어 거의 백치 같은데.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한 기사가 밖으로 나가고 부하기사는 홀로 남은 채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호스 끝에 이어진 병에 약을 천천히 부어 넣었다.
그리고는 그 호스의 반대편 끝을 이용한 뒤 가만히 누워있던 프리아 여신의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기왕이면 아니길 바라지. 너도 그 돼지에게 안길 바에야. 나같이 젊고 잘생긴 사람에게 먼저 안기는 게 좋잖아?”
스산한 말과 함께 그가 손을 대려 할 즈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이 이상하게 짧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켜.”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사내는 호스를 들고 있던 채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곧 자신의 하반신과 상반신이 분리된 것을 깨달았다.
“어?”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지금 질투심 유발해요?”
그 물음에 조용히 묶인 채 침묵하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는 방금 전 기사를 베어버린 데이비를 향해 어디서 꺼낸 것인지 모를 수첩을 들이밀었다.
[구하고 싶니?]
그 질문은 전에도 받았다.
데이비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거에 간섭하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이긴 한데. 당신을 그냥 두고 갈 순 없어서 데리러 왔습니다. 설마 이 정도로 미래가 바뀌진 않겠죠?”
그 물음에 프리아 여신은 조용히 수첩을 흔들었다.
그러자 수첩의 글귀가 바뀐다.
[떠나지 않을 거니?]
“당장은요.”
[본래 나는 여기서 죽어.]
“…….”
[하지만 네가 다른 미래를 개척하려 한다면.]
글귀가 계속해서 바뀐다.
그녀가 말하는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 아닌 아바타의 죽음일 것이다.
“그 꼴은 내가 못 보지.”
데이비의 말과 함께 이내 이상을 눈치챈 이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네놈은 뭐냐!”
“바……방금전 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격하게 소리치는 그들을 무시한 채 프리아 여신을 보고 있던 데이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닥쳐봐. 지금 이야기하는 거 안보여?”
차가운 어조로 쏘아붙이는 데이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까.
마스터급 힘을 지니고 있던 간수는 허리춤에 있던 거대한 손도끼를 뽑아 들고 흉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침입한 이상 살아나갈 생각은 버려라.”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덤벼들어 데이비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그 와중에도 데이비는 프리아 여신의 손에 쥐어진 수첩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윽고, 수첩의 글귀가 알아서 변한다.
곧 도끼가 데이비의 머리를 가르리라.
간수장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쾅!!
도끼는 그에게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가버렸고 그의 커다란 육체는 갑작스런 압박을 견디지 못해 그대로 무너져 내려 무릎을 꿇었다.
“커억?! 이게 무슨?!”
붉은 눈동자를 본 그가 경악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을 들어 올렸다.
“너…… 너 대체 뭐야…….”
“방금 여신님이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천천히 고개를 돌린 데이비가 빙그레 웃었다.
“이 나라를 내가 하루아침에 지워버려도.”
미래에 어떤 영향도 가지 않는다고.
고삐가 풀린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사라진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라.”
데이비는 간수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프로메테우스]
동시에 푸른 화염이 일순간 일렁였고 간수장을 포함해 이곳으로 들이닥친 기사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기 시작했다.
콰창!! 콰창!!
동시에 굳게 닫혀있던 감옥 문이 일제히 폭발하며 부서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