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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78화 (1,078/1,559)

제1078화

하늘에 뜬 거대한 마법진은 마치 타이머가 작동하듯 그 형태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뒤틀려버린 지형을 보며 산채의 인간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지변. 그들의 상식으론 현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 아니었다.

“두목! 크, 큰일 났습니다! 산이! 산이!”

“시끄럽다! 나도 눈이 있으니 이미 봤다.”

“어…… 어떻게 합니까?! 그, 그러니까 하인스 영지는 건드리지 말자고…….”

“괜찮아.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닥치고 전부 불러모아! 그리고, 그 빌어먹을 팍슨의 딸자식도 데려와!”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들을 보며 두목인 포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스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올 테면 오라지.”

-치익!

그때 단거리 통신용 수정구가 노이즈를 흘리기 시작했다.

-두목!! 서쪽 초소 쪽에서 침입자를 발…… 치직!

연결이 끊어지는 그 모습을 보며 포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이건 다 계획일 뿐이야…….”

* * *

“어이 멈춰라! 더 이상 다가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싸늘한 말투로 순식간에 포위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륀느에게 고개를 돌렸다.

“먼저 가. 인질로 잡혀있는 아이들을 전부 구해내.”

“데이비 님. 처단의 권리는.”

“제압만 해. 대신 산 중턱에서 계속해서 자기 자랑하고 있는 놈은 처리해도 좋아.”

스스스스…….

“업은 내가 전부 지고 갈 테니.”

검은 기류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나를 말 없이 보던 륀느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스스슥…….

그리고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후 륀느가 사라져버리자 나를 포위한 이들이 당황한 기색을 내비친다.

“오…… 오지마!! 오면 죽이겠다!!”

이윽고 그들이 기괴하게 생긴 장비를 꺼내 들었다.

“신기한 걸 가지고 있네.”

고작해야 불법을 저지르는 산적 같은 놈들이 가지고 있기엔 너무 기이한 무기였다.

“나는 너희들에게 그리 들을 게 없어.”

적어도 너희들에게는.

“하인스 영지에 왜 조직들이 판을 못 치는지는 알고 있을 거다.”

스스스스…….

하늘에 뜬 마법진들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를 포위하고 있던 이들의 몸이 비틀거린다.

“어…… 어어?”

“이게 무슨…….”

“기왕이면 최대한 덤벼. 그래야 덜 허무하지.”

서걱!!

그 말과 함께 붉은 궤적이 한순간 날아들었다.

인지도 못할 속도로 날아든 궤적은 일부분의 인간들 전부를 집어삼킨 후 뒤편의 거대한 능선까지 날아갔다.

쩌억!

그리고 약 몇 초가 지났을까. 갑작스런 파육음과 함께 거대한 능선이 반으로 갈라져 조각나듯 사라지며 궤적에 휩쓸렸던 이들이 일제히 피를 뿌리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스르릉…….

손에 쥐어진 붉은 검인 홍단이가 파르르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순식간에 수십 명에 달하는 제 동지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버리자 그들은 순간적으로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그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리는 데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왜 가만히 있나.”

내 말에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희 덕분에 나는 영지민 하나를 죽였으니…….”

그 대가는 비싸게 치러야지.

스르릉…….

검을 천천히 당긴 내가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자 그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주…… 죽여!!”

그 말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대로 해봐.”

* * *

피 냄새가 낭자한 시산혈해. 그 중심에 서 있던 나는 작은 흙인형으로 현신한 노아스에게 말했다.

“시신들은 전원 묻어.”

[음? 너희에겐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지금은 필요 없어.”

[음?]

“할 놈들은 널리고 널렸거든.”

내 말에 노아스는 침묵했다.

그리고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그그그그그극!!

대지가 뒤틀리며 그들의 시신을 땅속에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참. 여기 간혈천이 있던데.”

[그렇군. 인간의 기준에선 아주 좋은 물이지. 물론 나는 그리 달갑지 않지만. 특히 이곳의 물은 오랜 시간 마나를 머금어서 몸을 담고만 있어도 생명에게 윤기를 제공하지.]

“효과는 좋네. 돈 되겠다.”

[이봐 계약자.]

“가자. 노아스. 아직 쳐죽일 놈들이 많아.”

나는 하늘 위에 뜬 마법진을 향해 손을 뻗어 올렸다.

그러자 마법진이 서로 충돌하고 공명하며 거대한 빛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곧바로 손을 끌어내리듯 튕기자 거대한 빛 뭉치들이 일제히 창공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대의 마나 유동이 놀라울 정도로 더뎌지기 시작했다.

[이건…… 계약자 설마 이 일대의 마나를…….]

연쇄 마나 증발.

과거 뱀파이어와의 싸움에서 한차례 사용한 적이 있는 방법의 공격이었다.

“마나 EMP의 개량형 마법이야. 방법은 단순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제어가 안 되거든.”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있으니까 쓰지. 도망치는 것도 막을 겸.”

홍단이를 빙그르르 돌린 나는 마나가 동결된 채 단단하게 굳어버린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끄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몸이…… 몸이!!”

새하얀 섬광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배회하며 지상에 내리꽂혔다.

빛은 형체가 없는 물질 같았지만, 그 섬광에 관통당한 이들은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무력화된 이들에게는 초고열의 빛으로 이루어진 창이 쏟아져 내렸다.

당연히 아직 살아남은 이들의 표정은 경악과 두려움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괴…… 괴물 같은 년!”

“빌어먹을 이건 왜 작동을 안 하는 거야! 이 망할 고철 덩어리 같으니!!”

산채를 지키고 있던 이들은 손에 쥔 기이한 지팡이가 말을 듣지 않자 다급한 표정으로 평소의 냉병기들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저항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그들의 비밀병기나 다름없던 특수한 마나 파장을 이용한 무기가 고장 난 이상 그들은 일반적인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개중엔 익스퍼트급 이상의 존재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지금 습격을 감행하는 존재. 륀느를 감당할 리가 없었다.

산채가 모조리 일망타진 당하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무기를 든 채 홀로 남은 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륀느의 손에 묵빛의 빠루가 쥐어진다.

“괴…… 괴물…… 살려줘…… 살려…….”

퍼억!!!

피가 튀고 사내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던 륀느는 통신용 장비를 가동시킨 뒤 입을 열었다.

“데이비 님. 륀느의 가동 회로 오류.”

-뭐?

“전원 사망으로 추정. 륀느가 가동 회로 오류를 낮게 평가.”

뻔한 거짓말이었다.

륀느는 처음부터 이들에게 단 한치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고, 닥치는 대로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다.

-너 내가 한 명도 죽…… 후우, 아니다 고생했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끝내 하지 않은 데이비가 연결을 끊자 륀느는 고요한 시체의 산을 보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런 륀느가 도착한 곳에는 거대한 간혈천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뿜어져 나온 간혈천은 근처에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었고, 일부는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뜨거운 김과 함께 흘러내리는 웅덩이를 말없이 바라보던 륀느는 이내 천천히 맨발로 뜨거운 물웅덩이 내부로 들어갔다.

붕대가 감아진 새하얀 발은 뜨거운 물이 쏟아짐에도 붉어지는 기미조차 없었다.

무릎까지 오는 곳까지 걸어 들어간 륀느는 조용히 쏟아지는 온천수의 폭포를 보다 입을 벌렸다.

“으가가가가가가…….”

그리고는 온천수를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뜨거운 물을 받아마시던 그녀는 한참 후에야 새하얀 팔로 입가를 스윽 닦으며 중얼거렸다.

“풍부한 마나. 하지만 미묘한 맛.”

그리고는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쪼르르 날아오르고는 간혈천이 쏟아지는 웅덩이 위에 무언가를 톡톡 쏟아부었다.

그 후 다시 본래 자리로 내려와 입을 쩍 벌리자 그녀가 쏟아낸 가루가 물에 녹아 독특한 색을 비추며 륀느의 입안으로 쏟아진다.

“으가가가가가가…….”

기괴한 행동을 하는 륀느의 눈에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물을 받은 륀느는 몸을 한차례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새로운 맛. 매우 높게 평가.”

그녀의 주머니는 사실 달의 숲의 수장이자 괴식 전문가인 유리아가 륀느에게 준 선물이었다.

유리아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륀느의 괴식 레이더는 어딜 봐도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 * *

업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륀느의 돌발행동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나는 그녀를 타박하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채를 주목할 뿐이었다.

갱단이 소유한 이 산의 산채는 총 일곱. 그중 여섯이 괴멸된 상태에서 남은 것은 눈앞에 보이는 곳이 전부였다.

머릿수는 약 50 정도. 모두 합치면 갱단의 수는 무려 200여 명에 달하는 수였다.

내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노아스로 인해 도망치지도 못하고 하늘을 뒤덮은 마법진이 마나를 동결시킨 탓에 다른 수작도 부릴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숨어서 농성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오…… 오지마라!! 한 발짝만 더 오면 이 꼬맹이들의 목숨은 없다!!”

서슬 퍼런 단검을 쥔 채 잡혀있는 어린아이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사내가 소리친다.

“으허어엉!! 살려주세요!”

“으아아앙!!”

겁에 질린 아이들은 그대로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울어댔고 산채의 갱단원들은 긴장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

“괴물 같은 놈. 근처 산채에 무려 150명이나 있었다! 전부 죽여버린 거냐?!”

“그래. 다 죽였지.”

“괴물 같은 새끼! 위선자가 따로 없군!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하는 성자가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거냐?! 네놈은 사람의 목숨을 뭘로…….”

“어이.”

싸늘한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짓눌린다.

“너희 때문에 나는 영지민 한 명을 베었다.”

그 한마디에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다시 말해주지만. 내게는 너희 200여 명의 목숨보다.”

영지민 한 명의 목숨이 더 무겁다.

“그러니까 힘 빼지 말고 얌전히 죽으면 돼.”

“사…… 살인마 새끼!”

“살인마라니. 말이 심하네.”

빙그레 웃는 내가 홍단이를 스르릉 들어 올리자 산채의 두목 포그가 황급히 아이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우…… 움직…….”

서걱!!

짧은소리와 함께 포그의 팔 한쪽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아아아아아악!!”

이후 나는 남은 손에 청단이를 들었고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걱정 마라. 너 한 명 정도는 살려둘 테니.”

“이…… 이럴 순 없어!!”

바닥을 뒹굴며 그가 소리 질렀다.

“뭐하는 겁니까!! 우리가 위험하면 도와준다 하지 않았나!!”

그 절절한 외침과 함께.

산채 내부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갱단원과는 다르게 상당히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젊은 소년이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들의 눈동자 안엔 묘한 광기가 어려있었다.

“쟤야? 쟤가 이 땅에서 제일 강한 애 맞아?”

“그…… 그렇소.”

“그럼 저거만 치우면 우리가 이 대륙의 최강자네?”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 그 행동에 나는 무감각하게 뜬 눈으로 물었다.

“티오니스 인간이 아니구나.”

내 말에 소년이 손뼉을 쳤다.

“정답이야. 원래 우리 목표는 네가 아닌데 말이야. 사람을 하나 찾고 있거든.”

“사람?”

“그래. 아리아라고.”

아리아. 그 이름을 쓰는 이는 내가 아는 한에서 단 하나뿐이다.

휴가를 나온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 그녀와 관련이 있는 존재.? 이들은 일반적인 인간이지만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티오니스 인간과는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지만 또 어떤 면에서 보면 티오니스의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와 같이 온 이들이 네 영지에서 그 여자의 기척을 찾았더라고.”

그냥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저런 놈들은 없었는데. 아니. 저런 힘은 존재할 수가 없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즈음 그가 말해왔다.

“이봐. 수수께끼 하나 내줄까?”

“뭐?”

갱단원들을 뒤로한 채 느긋하게 걸어 나온 그는 천천히 등에 멘 롱소드를 뽑아냈다.

그러자 검 끝에 기이한 검은 화염이 서린다.

마나는 아니었다. 정령 마나나 신성력 혹은 사령 마나 또한 아니었다.

단순 특질능력이라고 하기엔 그것도 이상하게 괴리감이 들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이들이 왜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를 알고 있으면 그녀를 찾으려 하는가였다.

이윽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소년이 검을 빙그르르 돌리며 말했다.

“넌 몇 초일 거 같아?”

여유로운 말투로 말하는 소년의 물음에 나는 한 발 내디뎠다.

터업!

동시에. 기이한 감각과 함께 그가 내 목에 검을 겨누었다.

“1초도 못 버티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그가 내 목젖에 검을 들이밀었다.

“사람이라는 게 생각보다 나약하거든. 아무리 강한 힘을 지녀도, 결국 죽으면 끝이라서.”

그렇게 말한 그가 빙그레 웃으며 검을 찔러넣었다.

“너무 원망하진 마. 나도 사적인 감정은 없어. 약속은 약속이라 지켜주다 보니 충돌한 것뿐이네.”

카앙!!!

망설임 없이 내 목에 검을 찔러넣은 그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멈칫했다.

무슨 힘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순식간에 접근한 소년의 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검은 화염이 서린 검이 내 피부에 닿기도 전에 멈춰버리자 그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마침 나도 네게 용건이 생겼는데.”

파르르 떨리는 검을 맨손으로 잡아챈다.

소년의 힘은 독특하긴 그지없지만, 단순 위계만 따지면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했다.

맨손으로 검은 화염이 서린 검을 잡자 그가 눈을 부릅떴다.

“머, 멍청한 놈! 그 화염에 닿는 순간……!”

-먹어라.

콰득!!!

무형의 기류가 손끝에서 빠져나와 검은 화염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먹어 치워진 불의 조각들이 허공으로 흩뿌려지며 사라졌다.

순식간에 검은 화염이 사라져 버리자 그의 눈에 크게 뜨여졌다.

“이게 무슨…….”

그리고, 경악하는 그의 이마에 중지를 둥글게 말아 가져다 댄 내가 말했다.

“좀 전에 네 친구들이 하인스 영지로 향했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 말에 소년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좀 들려줄래?”

내 미소에 그가 몸을 파르르 떨다 소리쳤다.

“뭐…… 뭣들 하는 거야! 공격!! 공격해!”

하지만 소년의 외침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에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소년의 뒤를 봐주던 갱단의 남은 생존자 중 서 있는 존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상처하나 없이 자신이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린 그들을 보며 소년의 몸이 혼란, 그리고는 부정으로 더욱 떨렸다.

“너…… 너 대체 뭐야.”

“내가 할 말인데. 너 뭐냐?”

내 물음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와 직접 접촉하고 나서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너무 흡사해서 순간적으로 착각할 수준의 변화.

“사람도 아닌 게 사람인 척을 하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내게서 벗어나려는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푸욱!!!

동시에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를 홍단이가 그의 심장에 꽂혔다.

황급히 검은 화염을 피워 방어하려 했지만, 홍단이의 속도는 그의 속도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거봐 사람 아니잖아. 심장 날아가고도 멀쩡한 놈이 어떻게 사람이야.”

불사가 아니었다. 치명상을 입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것과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얼마 전 페르세르크의 기억을 조정할 때 하인스 영지에 나타났던 하늘의 균열.

그 힘과 비슷한 힘. 그리고, 그 힘과 어떤 또 다른 힘이 섞인 존재였다.

눈앞의 소년은…….

정신체의 덩어리가 뭉쳐진 무언가였다.

* * *

같은 시각. 하인스 영지.

영지 내에 폭음이 울려 퍼진다.

붕붕 소리를 내며 스태프를 가볍게 고쳐잡은 페르세르크는 눈앞에 나타난 수인 형태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이. 못난이. 너 말이야. 우리가 찾는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언니 물러나요.”

“일리나.”

“제가 제압할게요.”

그리고 또 다른 장소.

깜짝 놀란 에이리아와 그런 에이리아를 보호하듯 모습을 드러낸 새하얀 토끼가 근육을 꿈틀거린다.

“으, 징그러. 여기가 아닌데. 분명히 이 영지 안에 있는데.”

왜소한 체격의 꼬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아…… 이?”

“어이 거기.”

“…….”

“여기 아리아라는 여자가 있나? 그 여자만 찾으면 헤치지 않아.”

꼬마의 말에 에이리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대답 안 하면…….”

꼬마가 씨익 웃었다. 그 미소에 광기가 서린다.

“확, 그땐 깡패가 되는 거야.

꼬마가 순식간에 에이리아를 향해 달려들자 새하얀 토끼인 보팔레빗이 근육을 꿈틀거리며 그대로 소년을 낚아챘다.

콰아앙!!!!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엄청난 힘을 실어 지면에 내리찍어버렸다.

보통이라면 마스터급 존재도 버티지 못할 힘이리라.

하지만. 소년의 형체가 마치 빛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멀찍이 나타났다.

“어머니!”

“에…… 에반젤린?! 위험해 여기오면 안돼!”

“안돼요. 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가요!”

한 손에 트와일라잇을 든 에반젤린이 순식간에 에이리아의 곁에 도착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야. 줄줄이 방해꾼이네. 아. 방해꾼이 더 올 수 있으니까 영지를 좀 차단하자고. 거기 아가씨. 좀 비켜.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뿐이니.”

“단순히 물어보겠다고 위병들을 죽인 당신을 내가 왜 믿어야 하죠?”

영지를 공격한 소년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갑작스런 혼란이 서린 영지는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힘내 데이비.]

그러거나 말거나 영주성의 첨탑 꼭대기에 앉은 여인은 태블릿에 그런 글자를 적은 뒤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소년이 설치한 장막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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