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2화
촤르르르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을 끌고 내려가는 거대한 촉수 다발에 륀느가 한 손을 비집어 그 사이로 빼냈다.
“끈적거리는 감촉, 이것을 륀느가 낮게 평가.”
치지지지지직!!!
가루 같은 입자들이 그녀의 손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의 손등을 보호하는 보호대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이잉!!
그 보호대가 일렁이기 시작하며 푸른빛의 라이트 세이버가 만들어졌고 그녀는 그것을 강하게 출력시킨 뒤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서거걱!!
일순간 수차례의 빛의 궤적이 주변을 휘감았고, 얼마 가지 않아 굉음과 함께 륀느의 육신이 새빨갛게 익어 폭발하는 촉수 더미에서 빠져나왔다.
사박…….
가볍게 착지해낸 륀느는 좀 전 자신이 본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금 빠르게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본 것은 지금 그녀가 있는 것보다 조금 위…….
현재 그녀가 있는 곳은 이 촉수 다발의 둥지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동굴이었다.
쉬리리리리릭!!
당연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모를 촉수가 륀느를 놓칠 리 없었다.
바닥을 부수며 재차 쏟아져 나오는 촉수 더미의 모습에 륀느가 푸른 눈동자를 번뜩이며 몸을 웅크렸다가 폭발적으로 튕겨 올라갔다.
그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은 두껍고 단단한 암반층. 그녀를 끌어내린 촉수가 나온 통로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곳에는 어떻게 된 것인지 또 다른 촉수들이 꾸역꾸역 밀고 나오며 그녀를 휘감으려 들었다.
륀느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상당히 거북한 느낌이 드는 촉수 더미를 뚫고 가는 것보다는 출력을 소모하더라도 암반을 관통하는 게 백번 나으리라.
하나의 섬광이 된 것처럼 체공하며 닥치는 대로 촉수들을 베어 넘긴 그녀는 망설임 없이 천장을 향해 나머지 한 손을 뻗었다.
츠츠츠츳!!
동시에 그녀의 나머지 한 손에 거대한 대포 같은 것이 형성되었고 이내 고열의 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입자 고열포를 채택. 출력 20%,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쩌어엉!!!
초고열의 에너지에 노출된 금속이 시뻘겋게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암반이 녹아 흘러내린다.
엄청난 반동으로 튕겨 나간 륀느는 날개의 부유능력을 포기한 채 그대로 떨어져 내렸고, 그녀를 낚아채기 위해 날아드는 촉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딱 좋은 로프.”
그리고는 손을 뻗어 촉수를 한 손으로 강하게 틀어잡은 뒤 마치 고무줄을 튕기는 것처럼 떨어져 내렸다가 촉수의 반동을 이용해 퉁겨져 올라갔다.
기존의 가속에 그녀의 부유능력이 합쳐지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올라간 그녀는 광선이 지나가며 모조리 녹여버린 구멍 속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륀느의 출력은 과거와는 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그 성능 상승의 주범은 세피로스화. 즉 백익의 각성이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녀의 심장은 이 세상, 전 차원을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연금술의 정수. 데우스 엑스마키나(기계장치의 신)를 그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촉수들이 빠르게 추적해오지만, 륀느의 가속을 막을 순 없었다.
콰아앙!!!
기존의 암반과는 다르게 특수한 마나가 둘러진 석재 천장에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가한 륀느는 그 바닥을 일거에 철거하듯 박살 내버리며 거대한 공동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작은 날개를 펄럭이고는 천천히 착지했다.
동시에 그녀를 쫓아오던 촉수들이 마치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난 것처럼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스멀스멀 물러가기 시작했다.
스르르르르륵…….
“이곳까지는 진입하지 않는다고 확인. 륀느의 계산능력은 매우 우수하다 분석해.”
자화자찬하며 고개를 든 륀느는 조금 전 끌려오면서 봤던 그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데이비 님. 심상찮은 구조물을 발견. 이에 따른 추가 명령을 요청해.”
조심스레 데이비와 교신을 시도해보지만 상당한 노이즈만 들려올 뿐 제대로 된 교신은 들려오지 않았다.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륀느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엔 상당히 큰 사안 같았다.
그때 륀느의 시야에 누군가가 보였다.
팔 한쪽이 사라진 채 힘겹게 몸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소년, 벨가였다.
지잉…….
다시금 라이트 세이버를 꺼내든 륀느의 눈빛이 푸르게 번뜩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가는 수많은 시험관 중 가장 중앙에 있는 거대한 시험관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다른 것과 다르게 유일하게 사람이 아닌 어떤 예쁜 보석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만 유일하게 초록빛의 빛을 강하게 내뿜고 있었다.
“차…… 찾았다…….”
그는 홀린 것처럼 중얼거리며 시험관을 향해 다가갔고, 천천히 떨리는 손을 뻗었다.
“움직이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해.”
하지만 그의 행동은 곧 륀느의 라이트 세이버가 목에 겨눠지며 멈춰졌다.
“설명을 요구. 이곳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고개를 돌린 벨가는 지친 얼굴로 말했다.
“너 대체 뭐야?”
역으로 질문하는 벨가였다.
“마법은 내게 타격을 거의 주지 못해. 하지만 네 공격은 마법 같으면서도 내게 치명적이지.”
“질문은 륀느가 해.”
륀느의 차가운 경고와 함께 라이트 세이버의 검날이 순간적으로 그에게 닿았고 섬뜩할 정도로 예리한 고열의 검이 더욱 그를 자극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죽일 것 같은 그 모습에 벨가는 말없이 륀느를 보다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그냥……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온 것뿐이야.”
그 말에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있다고 생각했어.”
“정확한 해석을 요청.”
“나도 잘 모른다고. 그런데 그냥…….”
그가 천천히 보석이 담긴 시험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에 륀느가 그를 제압하려 했지만, 벨가는 보석을 보고 확신했다.
저건 어떤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보석 안의 영혼은 다름 아닌 벨가에게 육포를 주며 미소지어주던 한 소녀의 것이었다.
튜나 드 머전트.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이야 사실 얼마나 죽건 그에겐 관심 밖의 일이지만 이번엔 조금 본인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 자신은 이곳까지 필사적으로 오려 한 것일까.
이곳에 와서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라고.
“마지막 경고. 움직이면 목숨을 보장하지 못해.”
“…….”
벨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영혼이 담긴 보석이 관 안에서 진동하기 시작했고 주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시험관들에게서 연결된 파이프들이 일제히 초록빛을 뿜기 시작했고, 그 관들은 모두 하나로 모여들어 튜나의 혼이 담긴 시험관과 연결되어 공명했다.
파스스……
동시에 백여 개에 달하던 시험관 속 인간들의 육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시험관 속의 인간 형체들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튜나의 영혼석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쿠웅!!! 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흠칫 놀란 륀느가 라이트 세이버를 뒤쪽으로 휘둘렀다.
서걱!!!
동시에 좀 전까지만 해도 없던 촉수 더미가 그녀를 휘감았다.
“매우 불쾌. 감정회로가 고속으로 가열 중! 이것을 륀느가 분노라 명시!”
지잉!!! 서걱!!
그녀는 라이트 세이버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촉수 다발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쿵!!! 쿵!!!
이윽고 지상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굉음이 그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걸어가는 듯한 소리에 륀느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쉬리릭!! 파악!!
당연히 바깥에 정신이 팔려 있던 륀느와는 다르게 촉수들은 처음부터 집요하게 그녀를 노렸고, 이내 그녀의 팔과 다리, 목과 허벅지 등등 아예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모조리 포박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그녀를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건지 꾸물꾸물 그녀를 휘감으며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세피로스의 힘을 사용한 지 얼마 안 되어 리바운드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륀느로썬 꽤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이에 륀느가 자신의 심장을 과부하 시키려던 찰나.
파스스스스…….
비틀거리며 다가온 벨가가 륀느를 포박하여 고정시키던 촉수 다발에 손을 올렸고, 동시에 생명력들이 빨려 나가며 촉수들이 풍화되어 먼지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자신을 도와주는 벨가의 행동에 륀느는 과부하 되어가던 심장을 다시 안정시킨 뒤 그를 바라보았다.
“너…… 힘 세지?”
벨가의 질문에 륀느는 침묵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저건 죽이고 싶지 않아.”
벨가는 마치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륀느에게 말했다.
“죽게 두고 싶지 않아. 그녀는 내 열쇠야. 그러니까 날 도와.”
적이었던 튜나를 왜 이렇게 지키고 싶어졌는지. 벨가로썬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의지를 가질 때부터 사라지지 않은 이 지독한 공복.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세상의 구성에 반하는 초월적 존재인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벨가를 포함한 모든 정신체들은 같은 의지를 지니고 있었고.
각기 원하는 바는 다르지만 수많은 정신체들을 몸 안에 담고 있는 벨가의 고통은 공복이었다.
그런 그의 공복을.
단 한 명의 인간이 채워준 것이다.
원리도 이해할 수 없지만, 벨가는 한순간의 그 포만감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벨가의 제안에 륀느는 일말의 고민거리도 없다는 듯 라이트 세이버를 그의 목에 겨누었다.
“데이비 님의 명령은 대상의 제압. 포획. 명령은 오로지 데이비 님에게서.”
륀느의 대답에 벨가는 말없이 그녈 지켜보았다.
“그래. 알았어. 네가 날 도와주면 저항하지 않고 널 따라가지.”
이윽고 뭔가 생각한 벨가의 제안에 륀느는 뒤에서 계속해서 모여드는 촉수 다발을 바라보았다.
저 촉수들은 끝없이 그녀를 추격한다. 리바운드가 끝나기 전까지는 소모전으로도 그녀에게 큰 이득이 없었다.
반면 벨가의 힘은 촉수에게 극히 치명적인 힘.
그렇다면.
“자세한 계획을 요청.”
* * *
“아하하하하하하하!!”
수도를 향해 밀고 들어오는 거대한 괴물은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터뜨리며 전진해왔다.
당연히 수도를 방위하는 기사들과 경비병들은 갑작스런 괴물의 출현에 당황한 듯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성공했어…… 성공한 거야!”
“저게 뭔데.”
그림자에게 제압당한 채 바닥에 처박혀 있는 도나가 광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간 개조의 끝. 궁극의 진화.”
“설마…… 금기를 손댄 건가?”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진화하는 종족이라지만 선을 넘으면 그게 금기가 된다.
그런 내 의문에 언제 나타난 건지 모를 프리아 여신이 태블릿을 내게 들이밀었다.
[응, 아니야.]
간간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궁금해? 까짓거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는데.”
그녀가 스산하게 웃었다.
“저건 말이야.”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대 유적의 기술로 만든 인간이야. 정확히는. 개조에 실패한 실패작의 육신 100여 구와. 숭고한 영혼으로 만들어진 결과물.”
그녀의 설명은 간단했다.
바탄 왕국에서 만든 도나 같은 개조 인간은 성공확률이 극히 희박하다. 그렇다면 성공한 이들은 둘째 치고 실패한 이들은 어떻게 처분하였는가.
그 대답이 저기 있었다.
미스릴과 아다만티움 골조에 100여 명의 인간을 특수한 관에서 녹여 인간의 형체로 이어붙여 만든다. 100명을 붙인 것 치고는 괴물의 크기가 크지만 그거야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육체를 그렇게 만든다고 괴물이 움직일 리 없었다. 그렇게 이어붙여 본들 사실 인형에 불과할 테니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메인이 될 영혼이었다.
“이게 뭔지 알아?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물건이야.”
도나가 실실 웃으며 품 안에서 구불구불한 보랏빛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찌른 자의 영혼을 검에 봉인시키지.”
움직이지 못하는 파괴의 화신이 있다면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가.
그 대답은 간단했다.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을 넣어 움직이게 만든다.
“다만 확률이 좀 낮거든. 단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런데 얼마 전에 처음으로 성공했어. 궁금해? 그게 누군지?”
“아니. 안 들어도 알 거 같다.”
저승이는 튜나의 영혼을 찾지 못했다. 반대로 튜나의 혼은 육체를 빠져나갔었다.
내 대답에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저 웃음은 슬픔이 서린 웃음인지. 그저 미쳐버린 웃음인지 모르게 처연해 보였다.
“저 괴물의 영혼은 말이야! 튜나 드 머전트! 그녀의 영혼을 억류해서 그걸 매개체로 움직이고 있는 거야. 아하하하하!!”
광적인 웃음을 터뜨리던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그녀는 영원히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소멸하는 거야. 제아무리 잘난 파괴의 화신이라도 결국엔 쓰러지겠지.”
“잘 알면서 왜 이런 짓을 하나.”
“그전에 알베르타가 먼저 무너질 테니까. 그 후엔 그녀의 영혼도 해방되겠지. 차라리 잘됐어. 자신이 충성을 다해온 모국을 박살 내버린 기억은 없을 테니.”
감정이 사라진듯한 그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아공간 속에서 스태프 초월의 종언을 꺼내든 뒤 빙그르르 돌려 스태프의 끝을 외벽을 향해 다가오는 괴물을 향해 겨누었다.
[9서클 광속성]
[플레어 스트라이크]
지잉…… 쩌엉!!!
순식간에 고열의 섬광이 팽창하듯 쏘아져 나가 괴물을 관통했다.
주변을 녹여버릴 정도로 초고열의 광선이라 당연히 거대 괴물의 복부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내놓았다.
지름 십여 미터에 달하는 바람구멍에도 괴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빠른 속도로 재생하며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재생이 불가능한 고열로 지져버렸는데 저렇게 재생하는 건 제법 놀라운 결과였다.
-그우우우우우우우!!
“지옥의 악마 새끼들도 너희를 보며 혀부터 내두르겠다.”
내 말에 그녀가 나를 비웃었다.
“적어도 그 말엔 동감이야. 이제와서 감성팔이 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바탄의 늙은 꼰대들은 그딴 건 상관없다는 주의거든.”
그녀의 말과 함께 외벽까지 다가온 괴물이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그리고는 구슬프게 피눈물을 흘리며 팔을 내리친다. 성벽에서 화살을 쏘던 병사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지만 괴물의 팔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쩌어어엉!!!!
물론, 그걸 그냥 둘 내가 아니었다.
여기서 이 이상 간섭하게 되면 정말 귀찮아지겠지만. 역시 그냥은 못 두겠다.
“이 일로 이의를 제기하는 놈들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수밖에.”
어디 가서 남을 호구라고 비웃을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헛웃음이 나온다.
손해밖에 없는 짓을 지금 내가 하고 있으니까.
“내가 호구 등신이다.”
[그래서 더 귀여워.]
태블릿을 보여주는 프리아 여신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손을 뻗었다.
“우선 저것부터 막아야겠네.”
재생력이 대단한 파괴의 화신이긴 하지만…….
“하. 아무리 당신이라도 저걸 죽이긴 힘들걸? 저건 진화하는 내성을 지니고 있지. 처음에야 당신의 공격이 먹힐지 몰라도 점점 먹히지 않게 될거야.”
그리고.
“또 재생력 또한 말도 안 되지.”
현 기술력을 아득히 넘는 고대의 기술. 줄여서 내가 고대놀러지라 부르던 것의 파편이다.
대체 헤라클래스 이 양반의 생전에 문명이 어디까지 발전했기에 저딴 게 나오는 것인지.
한숨을 내쉰 나는 바닥에 쓰러진 도나의 손을 가볍게 짓밟으며 말했다.
“그, 아가리는 좀 닥칠 수 없나?”
“크히히히히!”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무시한 채 한숨을 내쉰 내가 초월의 종언을 아공간 속에 던져 넣었다.
“저희도 가세할까요?”
그림자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리고는 건틀릿을 하나 꺼내 손에 끼웠다.
“이건 처음 써보는데.”
숨을 짧게 들이켠 내가 왼발을 미끄러뜨리듯 내밀었다.
그리고는 뒤로 당긴 오른손에 힘을 담았다.
[무왕 유르그 식(式) 필살격]
격투술의 달인 무왕 유르그의 사실상 비기나 다름없는 힘이 손에 모여든다.
[유체이탈]
정확한 명칭은 다르지만, 으레 그렇듯 나는 영웅들이 갈고닦아온 기술들을 하나같이 내 입맛에 맞게 개명한 바가 있다.
한 대만 맞으면 영혼이 튕겨 나갈 파괴력을 지녔으니 유체이탈로 제격이리라.
거리를 무시한 채 날아든 무형의 타격이 정확하게 괴물의 몸에 적중했고, 어떤 공격에도 버티던 괴물의 상체가 일순간 날아가 버렸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괴물의 상체를 날려버린 부분의 뒤편 공간 너머로 과도한 에너지 방출을 견디지 못한 공간이 깨져 나가버린 것이다.
괴물에 정신 팔려 있던 알베르타의 수비 병력들은 갑작스레 괴물을 날려버린 공격이 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양새였다.
조금 전 괴물의 공격에서 방어해준 마나 방벽 또한 같은 케이스일텐데.
그때였다.
“소용없어. 튜나의 혼은 저 몸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되어있는 거니까. 누군가가 그녀의 혼을 시험관에서 꺼내주기라도 하면 몰라~”
그녀의 빈정거림에 나는 손가락으로 괴물 쪽을 가리켰다.
“저거, 넘어가는데?”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