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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16화 (1,115/1,559)

제1116화

에반젤린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힘을 주어 검을 찔러넣으려 해도 오딘은 맨손으로 그것을 낚아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있었다.

“오…… 오딘 님!”

놀란 에이리아의 외침이 들려오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쩌어엉!!

그러자 에이리아의 신형이 마치 빛처럼 흩어지며 멀지 않은 곳에서 생겨났다.

상당히 정교한 전이 마법이었다.

한쪽 눈에 피눈물까지 흘리며 손을 파르르 떠는 에반젤린을 말없이 바라본 오딘의 외눈이 한차례 번뜩였다.

“정말…… 얄궂구나.”

그렇게 말하며 검을 놓기가 무섭게 에반젤린이 스프링처럼 튕겨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아직까지 손이 떨리는 건 여전하지만, 에반젤린은 흑색의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오딘에게 겨누었다.

“상처도 참 오랜만이야.”

담담하게 말한 오딘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콰앙!!!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거구의 체격을 지닌 사내가 폭격이 쏟아지듯 착지하자 오딘의 눈이 번뜩였다.

“어어? 이봐! 마신께서 여긴 어쩐…… 쿠억!!”

콰아앙!!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은 오딘이 작디작은 발로 날아 차기를 하듯 거구의 사내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사내는 갑작스런 오딘의 공격에 당황한 듯 튕겨 나가 쓰러져 버렸다.

“후우…… 늦게 오길 잘했네…….”

뒤이어 아폴론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일리나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오딘의 외안이 번뜩이며 아폴론을 바라보았고, 파랗게 질린 아폴론은 반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은 오딘이 그의 긴 머리채를 콱 틀어쥐고 당겨버렸다.

“으아아악!! 아파 이 미친년아!”

“내가 잘 보라고 했지.”

“아아아아!! 아프다고 이런 X!”

비명을 내지르는 아폴론을 차갑게 노려보던 오딘이 그를 퍽퍽 걷어찼다.

“내가 조금만 늦게 내려왔어도 저 아이 죽었어. 알아 몰라.”

그녀가 에반젤린을 가리켰다.

에이리아를 죽이려던 찰나. 에반젤린은 경악스러울 정도의 정신력을 발휘하기라도 한 듯 검 끝을 자신의 급소로 겨누었다.

단순히 정신력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에반젤린은 알에서 부화하기 전부터 정신 에너지나 감정 에너지를 흡수해온 아이였다.

아마 그 영역에 관해선 보통 생명체와는 다르리라.

“쩝…… 할 말이 없구만.”

“이봐. 말은 똑바로 해야지. 우리도 최선을 다했…….”

“그 말. 데이비 앞에서도 할래?”

그 말에 아폴론이 짧게 혀를 찼다.

“할 말이 없군…….”

인상을 찌푸린 채 돌아서는 아폴론의 대답에 오딘은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금빛 입자 같은 것이 가루처럼 터져나가며 흩어졌고, 에반젤린의 양팔과 다리를 빛의 사슬로 구속해 멈추게 만들었다.

쾅!! 쾅!!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저항하는 에반젤린의 눈에선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에반젤린…….”

“가까이 가지마. 경악스러울 정도로 스스로를 절제했지만 두 번은 없어.”

그 한마디에 일리나가 휘청거렸다.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건 즉 그녀의 정신적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던 일리나는 고개를 돌려 허망한 얼굴로 주저앉아있던 에이리아에게 다가갔다.

“에이리아.”

“미안해요. 언니…… 제가 조금만 더 눈치가 빨랐어도…… 언니를 의심하지만 않았어도.”

서로에게 의심을 품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자신만의 방법을 이용했던 두 사람이었다.

자칫 에이리아가 변한 상황에서 일리나가 에이리아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가 폭주할 가능성이 있었고.

에이리아의 경우 일리나의 변화를 단순 기분 탓으로 여겨도 될 정도로 미흡한 변화였기에 말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내가 너무 안일했어…….”

흐느끼는 에이리아를 다독이는 일리나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데이비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에겐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쾅!! 쾅!!

에반젤린이 또다시 저항한다. 얼마나 세게 저항했는지 빛으로 된 사슬에 묶인 그녀의 팔은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쩌어엉!!

그때 무형의 충격파가 에반젤린의 손을 때렸고, 에반젤린은 손에 쥔 트와일라잇을 놓쳐버렸다.

“저거…… 해결 가능해?”

“당장은 불가능해. 데이비와 같이 해결방법이 보이질 않아.”

당장 변해버린 것을 무슨 수로 되돌릴까. 그나마 로 아이아스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건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이봐. 일단 저 아이 재워야 하지 않을까.”

“…….”

아폴론이 에반젤린의 손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대로 두면 저 작은 손목에 흉터가 남을 거다.”

따악!!

그 말과 함께 오딘이 손가락을 튕기자 에반젤린의 육신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오딘의 사슬이 사라짐과 동시에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렸다.

“어이쿠. 쓰러지면 쓰나.”

순식간에 접근한 창의 영웅인 아스트레아가 그녀를 품에 받아냈다.

“어떻게 한 거냐. 마신님.”

“재웠어. 당장은 나흘 정도. 그 이상은 저 아이에게도 문제가 될 거야.”

“최악이네.”

아스트레아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우선 주변 정리부터 해. 그리고 아폴론.”

“왜.”

아폴론을 부른 오딘이 조용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브로치를 넘겨준 건 잘했어.”

에이리아에게 넘겨준 브로치를 언급하자 아폴론이 짧게 입맛을 쩍쩍 다시고는 돌아섰다.

“하…… 이래서 안 내려오려고 했던 건데. 입맛이 쓰네.”

아무리 능글맞고 방탕하며 재수 없는 성격이고, 데이비가 툭하면 짜게 식은 시선을 보내던 아폴론이지만 현재 아폴론에게 데이비는 어떤 이유로는 은혜를 입은 동생이었다.

그 덕분에 다프네가 하나의 짐을 덜어놓을 수 있었으니까.

“다른 일은 몰라도 다프네 그 여자와 연관되면 참 너도 멀쩡해지는데 말이야.”

“닥쳐.”

짧게 다툼을 벌이는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오딘은 심드렁한 얼굴로 일리나에게 다가갔다.

“오딘 님…… 에린이는…….”

“당장은 재워놨어. 이 이상은 미안하지만 나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간섭할 방법이 없는 게 문제였다.

“우선은…… 데이비가 뭐라도 물어오길 기대해보자.”

“흑…… 흐흑…….”

엉엉 으는 에이리아를 다독이며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오딘 님…….”

“그 말은 데이비에게 가서 해. 그리고, 못 지켜줘서 미안해.”

약간 붉어진 얼굴로 사과하는 그녀가 돌아섰다.

* * *

잠든 에반젤린이 날뛰는 걱정은 다행히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아스트레아와 아폴론이 주기적으로 그녀의 곁을 지켜주기로 했다.

세상을 조율하는 영웅이 고작 한 명을 위해 이렇게 내려 와있는 게 웃긴 일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해내면서도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

하인스 영지는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에반젤린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슬퍼하다 잠든 에이리아의 뺨을 페르세르크가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미안해요. 언니…… 제가 좀 더 똑바로 했으면…….”

“그대 잘못이 아니야.”

담담하게 말한 페르세르크가 쓰게 웃었다.

“오히려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본녀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일리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 이 사태가 벌어지고 가장 자책했을 것은 다름 아닌 페르세르크였을테니까.

“미안해요. 언니…….”

하지만 페르세르크는 끝내 울지 않았다. 그녀까지 무너지면 나머지 두 사람을 지탱해줄 기둥이 없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속은 얼마나 문드러지고 있을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언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리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요.”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한켠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는 오딘을 향해 물었다.

데이비가 간간이 피는 약초담배였다. 기존의 담배와 다르게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약초로 되어있는 편이었다.

“최대한 방법을 찾아내곤 있어. 피해자가 더 늘지 않게 막고도 있고.”

“…….”

다른 말로 하면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아아…….”

일리나가 침음성을 흘렸다. 에반젤린은 페르세르크는 물론 일리나나 에이리아에게도 너무 소중한 딸아이였다. 그런 만큼 딸아이가 정신적으로 죽은 상황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자면. 세계의 규칙에 대해 들어봤을 거야.”

그 말에 일부가 고개를 돌려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제 키만큼 큰 검을 검집에 넣은 채 묵묵히 침묵하고 있던 레이나가 고개를 든다.

“그래. 저 꼬맹이를 한참이나 몰아넣은 융통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프리아 여신의 일부지.”

프리아 여신이 세계의 주축이며, 사실상 세계 전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곳에 없었다.

“세계의 규칙은 온전히 규칙과 법칙에 따라 세상을 조율해. 그래서 그 외부의 변수에 대해선 철저하게 배제하고 온전히 규칙을 유지시키지.”

그녀의 설명에 레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지금 그 규칙이 변화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네가 지금 여기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있는 거고.”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오딘이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좋은 방향일 순 없어. 그 과정 때문에 지금 티오니스에서 갑자기 변해버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진 않을걸?”

린디스 제국의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

명국의 왕실근위대.

에반젤린.

그 외에도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더 많은 문제가 있다.

“아…….”

그제야 이면성을 깨달은 이들이 씁쓸한 침음성을 흘렸다.

“당장 변한 건 이정도야. 다행히 내가 직접 그 파장을 찾아내 차단한 덕에 더 이상 늘어나진 않겠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버틸지 몰라. 일주일 후가 될 수도 있고, 한 달 뒤가 될 수도 있지. 아니면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어.”

오딘이 이렇게 단호하게 불가능하다 말하는 것이 충격적이었는지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면…….”

“지금 걸 수 있는 건 데이비가 프리아 여신의 유산을 흡수할 수 있는가야. 로 아이아스는 거기에서 그 멍청이의 권능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속 편한 힘은 없다고 생각해.”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고개를 들어 외안으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따라서. 이쪽에선 이쪽 방법을 쓸 생각이야.”

어린 체격이지만 그녀에게선 린디스 황제도 감히 내지 못할 정도의 위압이 서려 있었다.

“방법이…….”

“방법은 못 찾았지. 안타깝지만 대륙에 이미 변해버린 인간들은 되돌릴 방법이 현재로선 없어. 하지만 에반젤린은 인간이 아니지.”

그녀의 물음에 페르세르크와 일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방법이 있어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에반젤린은 고대용이거든. 그것도 이클립스와 헤라클래스 그 근육 돼지의 피를 이어받은.”

단순히 이클립스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대룡이라는 종족 때문도 아니었다.

“에반젤린. 저 아이. 알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정신 에너지와 감정을 먹고 컸다고 했지.”

그렇다면 성장할 경우에 가능성이 보인다.

“어떻게 할래. 데이비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쪽대로 시도는 해볼 가치가 있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일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에반젤린이 알에서 태어날 때 정신 에너지와 감정을 먹고 힘을 축적했지. 오랜 시간 너희가 돌봐주면서 쌓인 것들이 또 인격에 영향을 미쳤어.”

즉. 에반젤린의 정신력은 성장할 때마다 큰 변화폭을 보인다.

“저 아이의 성년식을 강제로 앞당겨서 인격을 재구성할 거야. 그 과정에서 에반젤린의 예전 기억들을 조각모음 하여 이식시키고, 지금의 에반젤린의 정신 중 괴리감이 있는 부분만 쳐내는 거지.”

잔인한 수술이며,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나라면 가능해.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도움을 주긴 해야 할 테지만.”

오딘의 말에 주변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능성은 떨어져. 지금도 성공확률은 반반이지. 실패하면 미쳐버린 고대룡. 그것도 성룡이 날뛰는 걸 봐야 하는 거고, 성공하면, 그 아이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어.”

오딘의 말에 페르세르크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 대로가 아닐 테지요.”

“…….”

“저희가 보고, 저희가 느낀. 그저 말 잘 듣는 인형이 될 뿐이니까.”

아무리 곁에서 봐 왔어도 에반젤린을 가장 잘 아는 건 그녀 본인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말해.”

오딘이 장죽을 재떨이에 탁! 소리 내듯 쳐내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데이비의 딸아이만큼은 살려줄 수 있으니까.”

그 한마디에 페르세르크는 한참 동안 고민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정신적 죽음. 그것도 실시간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을 에반젤린을 살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아직 에반젤린은 어려요. 그런 아이가 벌써 성년식을 치른다면…….”

“……때로는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잃어야 할 때도 있어. 저대로 두면 저 아이는 영원히 폭주하여 닥치는 대로 죽이려 들 거야. 지금이야 아직 완전히 변한 게 아니니 저항도 하고 필사적으로 행동을 억눌러왔겠지만.”

“대체 왜 주변 모두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증오.”

담담하게 오딘이 답했다.

“정반대로 뒤집힌 거야.”

에반젤린이 모두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게 증오로 바뀌어 버리면서 모든 상황이 역전된다.

오딘의 잔인한 말에 일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유예기간은 사흘. 그 안에 결정해. 저 아이를 영원히 가둬둘지. 기억이 사라졌다 할지라도 에반젤린으로써의 삶을 꾸역꾸역 이어붙일지.”

결국, 결정은 내려지지 못했다. 그렇게 마치 3초가 흐른 것 같은 사흘이 지나버렸다.

“결정은 내렸어?”

새벽이슬을 나뭇잎에 받아 륀느에게 건네주던 오딘이 중얼거렸다.

오딘에게 받은 빛을 머금은 이슬을 홀짝 마신 륀느가 눈을 반짝이다 고개를 돌려 오딘이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욱한 안개 속에서 페르세르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결정은…….”

페르세르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천재지변이야. 그것도 단순한 폭풍이나 해일 같은 저급한 재해가 아닌. 세계 개변급의 재해.”

“그 아이를 죽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인 겝니다.”

페르세르크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살아만 있다면 언제든 살릴 방법이 있다는 거겠지요.”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만 목숨은 부지하겠지.”

오딘의 대답에 페르세르크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성년식. 필요한 재료를 말씀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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