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7화
현재 나는 로 아이아스의 유도대로 세계의 규칙을 온전히 잡는 것부터 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규칙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실체를 찾을 수 없지만. 사실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법칙의 총합이었다.
“이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선 한번 해볼까요?”
그녀의 단아한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로 아이아스가 만들어 낸 구체를 향해 포식의 권능을 발현했다.
그러자 마치 연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녀의 힘의 정수가 내 안에 스며든다.
그러자 멀리서 이걸 지켜보고 있던 앙큼한 인어가 내 자세를 보더니 똑같이 흉내 내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크으…… 내 손에 흑염소가…….”
[소야. 그 입 좀 다물어라.]
“수호자님은 대체 누구 편이에요?!”
[나는 내 편이다!]
“흥!”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베헤모스를 노려보지만, 베헤모스는 그런 소야의 불만을 가볍게 일축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가 만든 구체를 온전히 먹어치우려 했다.
“그런데 이게 연습하고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이건 프리아 여신이 남긴 권능의 일부에요. 그걸 임의로 비틀어놓았죠.”
“음?”
“아마 30초 후면 폭발해서 이 일대 전체가 날아갈 거에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나는 황급히 그 힘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불안정함을 넘어 폭주하기 직전인 힘이다.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예쁘게 웃어 보였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본래 형태로 되돌려보아요.”
웃는 얼굴로, 자애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교육방식이 가차 없는 건 그녀의 독특한 교육방법이다.
실제로 얼마 전 그녀가 내게 강제로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했던 짓을 생각하면 별로 웃긴 일도 아니었다.
‘사람을 구덩이에 가둬놓고 행성 개변급 마법을 압축시켜 쏟아붓던 인간이…….’
그녀는 프리아 여신의 권능을 특수한 작용을 일으킨 후 비틀어, 불안정하게 만든 뒤 내게 건네 고치게 만들었다.
“데이비가 가진 포식의 권능은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네.”
하나. 비물리 계통에 한해서는 거의 모든 상성을 무시하고 힘을 먹어치워 저장한다.
그 힘을 내게 소화시킬지. 다시 뱉어낼지는 내 의지에 달렸다.
물론, 같은 힘을 연달아서 계속 먹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둘째는 먹어치운 힘을 소화시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개변하는 것이었다.
이미 먹어치운 힘의 좋은 예시로, 일리나의 시공격검이 그런 케이스였다.
다만 이렇게 소화시킨 힘은 다시 방출하는 게 불가능하며, 변화시키는 데에는 반드시 소재가 될 힘이 필요하다.
재료가 되는 힘이 없이 소화시키려 하거나 그 힘을 강제로 제어하려는 순간 회까닥해버리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데이비, 데이비가 해야 할 일은 지금부터 그 두 가지를 종합하는 거죠.”
먹고 뱉는다.
먹고 수정한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이다. 즉, 포식의 권능으로 신의 권능을 먹어치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소재 없이 본래의 형태를 찾아 수정한 뒤 다시 방출한다.
연달아 먹어치우는 게 아니기에 이론상으론 가능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저기 로 아이아스 누님. 이 함 말입니다. 먹어치우고 뱉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제 임의대로 힘을 변형시키는 게 안 돼요.”
거의 본능적으로 변하니까. 내 의지로 이걸 어떻게 바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번 변한 힘은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연습해야죠. 데이비. 나는 데이비를 믿어요. 근원의 옥좌의 힘을 흡수한 이상 반드시 가능해요.”
과거 포식의 권능은 양날의 검으로써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내 손을 꼭 잡으며 그녀가 한발 물러났다.
“자, 그럼 슬슬 한계일 텐데.”
그녀의 말대로 나는 그녀가 말한 권능의 구슬을 먹어치웠다. 공복의 광기가 놀라울 정도로 약해졌지만 지속되면 이쪽도 그리 좋진 않았다.
“후우…….”
이후 나는 짧게 숨을 고른 뒤 먹어치워 버린 로 아이아스의 권능을 이리저리 조절해보기 위해 의지를 가했다.
하지만 날개가 없는 인간이 갑자기 날개가 생긴다고 날갯짓을 할 수나 있을까.
“흐읍…….”
어떻게든 바꿔 보려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결국, 다시금 그녀의 권능을 뱉어낸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애초에 저 권능은 내게 맞지 않아서 로 아이아스가 제어하던 힘이었다. 이제 와서 내가 건드리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아. 좋은 방법이 있네요.”
그녀가 생긋 웃으며 손뼉을 쳤다.
“포식의 권능은 태초의 포식자의 힘과도 흡사하죠.”
정확히는 태초의 포식자가 포식의 권능의 일부였다.
“그러니 그 힘을 사용하던 이에게 요령을 듣는 것도 좋겠네요.”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이에 내가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빈약한 소년의 몸으로 한껏 힘자랑하듯 머스큘라 자세를 취하고 있는 베헤모스가 보였다.
“설마…… 아니죠?”
이 짬밥에 지금 저 빡통에게 뭘 배우라는…….“
“데이비. 할 수 있어요. 베헤모스 씨는 이미 한차례 경험이 있죠?”
수많은 정신체들을 품고 있는 데다가 토트리아스와 융합되어버린 정신체 벨가를 먹어치운 뒤 벨가와 토트리아스를 분리시켜버린 사실은 분명 기억하고 있다.
저 미소는 내가 거절할 수가 없는 미소였다.
“망할…….”
* * *
[이걸 왜 못하나!]
베헤모스는 자신이 태초의 포식자 중 하나라는 것도 몰랐던 놈이다.
자기 힘의 근원도 모르는 이 멍청한 놈에게 요령을 배우는 게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베헤모스가 힘을 다루는 요령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면, 마냥 거부할 순 없었다.
아드득…….
“그러니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줄래?”
[멍청한 놈 기본이다. 기본! 기본에 충실하면 이렇게! 이렇게 할 수 있다!]
아드득, 빠드득.
[흠! 어디 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군!]
“아…… 환청인가보다.”
[잘 봐라! 아무리 멍청한 계약자 네놈이라도 내가 다시 보여 주면 할 수 있을 거다!]
놈은 간단하게 비틀린 마나를 먹어치운 뒤 퉤! 하고 뱉어냈다. 그러자 비틀린 마나가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정작 의식도 없을 때 그런 짓을 저지른 주제에 왜 이렇게 잘하는가.
그것은 아마 놈의 몸에 생겨난 그 문양 때문이리라.
내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억지로 웃음을 보인다.
그러자 놈은 더욱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했다.
[애당초 멍청한 계약자의 머리로는 내 고지능을 이해할 수가 없…….]
스스스슥…….
[마왕 유르그 식(式) 절멸붕권]
[흉신악살]
순식간에 손에 힘이 모여든다.
반사적으로 내게 달려든 소야가 내 팔을 잡고 매달렸다.
“그…… 그만두세요오!! 수호자님 다치겠어요!”
평소 수호자라 부르는 베헤모스에 대한 맹렬한 믿음을 보여 주는 주제에 눈치는 빨라 가지고.
베헤모스를 날려 버리려던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물론, 내 행동에 동물적 본능이 강한 베헤모스가 그대로 얼어붙은 듯 침묵한다.
이놈이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자기가 방금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뭐냐. 지금 감히 내게 덤비려 한 거냐? 푸하하하하!!]
이놈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까지 샘솟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에 나는 씨익 웃으며 손을 가볍게 풀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부적 두어 장이 날아들어 내 손에 쥐어졌다.
[특급 주술]
[괴신 강림]
[천하대장군]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왜. 전에도 맞아봤잖아.”
씨익 웃으며 내가 손을 들자 내 등 뒤로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듯 모습을 드러낸다.
섬뜩하게 번뜩이는 시선으로 베헤모스를 바라보는 천하대장군은 곧 나와 베헤모스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도깨비방망이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고, 그대로 베헤모스를 향해 내리치려 했다.
[비…… 빌어먹을!!]
그제야 본능적인 위기감지라도 느낀 것인지 녀석이 급히 도망친다.
베헤모스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불러낸 천하대장군은 내 주술의 경지와 도력의 양에 따라 힘이 결정되는 하나의 화신인 만큼 베헤모스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그 뒤에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구타였다.
맹렬한 구타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튕겨 다니는 놈을 한참 동안 바라본 나는 베헤모스가 떡이 되어 추욱 늘어지고 나서야 천하대장군을 돌려보냈다.
“됐고, 그만하고 돌아가.”
내 말에 천하대장군은 손맛이 좋기라도 한지 내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린 뒤 다시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이에 나는 손에 쥔 부적을 그대로 찢어 버리는 것으로 놈을 강제로 돌려보냈다.
위력은 정말 강한데. 시전자와 자의식을 굉장히 많이 공유하는 주술이라 말을 잘 듣지 않는 게 흠이었다.
“시전자는 이렇게 멀쩡한데. 소환수는 왜 이 지경인지…….”
내 중얼거림에 쓰러져 있던 베헤모스가 고개를 든다.
[미친놈…….]
미치긴 누가 미치나.
베헤모스의 저 낮은 지능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건 힘들어 보였다.
결국, 내 입장에선 놈의 변화를 캐치하고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고민했다. 단순히 본다고 수정할 수 있었다면 예전에 가능했으리라.
로 아이아스가 만들어 놓은 권능의 구슬을 노려보던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6시간째 허송세월하고 있다. 다행히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는 점은 있지만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건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카트린느는 아직 살아 있다. 이 힘을 완성하면 그녀를 되돌릴 방법도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고는 있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일이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데이비. 아직 안되나요?”
“네. 아무래도 몇 주는 잡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게 여지없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지금 제 속도로는 이게 한계라서요. 최대한 빨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 이상은 힘듭니다.”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숨긴다.
이에 내가 표정을 굳혔다.
“로 아이아스 누님.”
“…….”
“내게 뭔가 숨기고 있죠.”
내 말에 그녀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말했다.
“데이비. 제가 데이비에게 시간이 촉박하다며 압박한 적은 잘 없죠?”
없긴 왜 없어요. 시간 내로 못하면 아주 작정하고 사람을 몰아넣으면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투덜거림을 속으로 짓씹었다.
“이번 일은 그만큼 중요하니까 시간을 많이 주고 싶긴 하지만…….”
그녀가 말했다.
“에반젤린 그 아이에게도 변화가 생겼어요.”
그 한마디에 내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오딘이 어떻게든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성년식을 강제로 열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영원히 본래의 인격을 찾을 수 없어요.”
그 한마디에 내가 한 손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에반젤린이…… 변했다고요…….”
“네. 미안해요.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
“성년식을 거행하지 않아도 에반젤린의 인격은 서서히 변해 갈 거예요. 그 외에도 이미 변해버린 이들 또한 마찬가지겠죠.”
물론, 내가 세계의 법칙을 흡수하고 개변해도 그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점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게 이 방법뿐이었다.
“시간이…… 많이 없어요.”
그 한마디에 나는 주먹을 천천히 말아쥐었다.
쩌적!!!
동시에 내가 흡수한 그녀의 권능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놀란 로 아이아스가 그것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방금까지 꼼짝도 안 하던 권능이 순식간에…….”
좀 전까지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던 비틀린 권능이 순식간에 제 자리를 찾아 변하기 시작했다.
먹어치우고 재료가 되는 힘 없이 내 의지대로 수정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다음 거 주세요.”
실전에 강하다는 말은 한 번씩 들어봤지만.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하였던가.
나는 나도 모르게 완성시켜버린 변화지만 그것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에반젤린을 살리기 위해서라고요? 그 애 인격이 어떻게 박살 날지 모르는데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나는 인정 못 합니다.”
물론, 오딘이나 페르세르크의 결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정신계통의 고대룡이기에 카트린느보다 불안전한 에반젤린의 정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망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콰직!!
나는 로 아이아스가 건네준 권능을 부숴버리듯 흡수했다.
세계의 규칙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단위. 권능 그 자체며, 전능의 톱니바퀴라 할 수 있다. 그 단위를 정교하게 조정하여 시간을 되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반드시 에반젤린을 구할 생각이었다.
[귀여워.]
언제 내려온 것일까.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프리아 여신이 태블릿으로 내 모습을 찍어 보였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오더니 이내 내 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선물을 줄게.]
스으으으으윽…….
동시에 내 몸이 휩싸이며 빛에 휘감긴다. 예전 그녀와 함께 과거로 갔을 때 자주 겪었던 일이었다. 남의 옷을 멋대로 바꾸던 그 상황.
상황이 어느 상황인데 이 와중에 또 옷걸이 취급이라니.
어이가 없어 그녀에게 화를 내려던 찰나였다.
검은 머리카락인 치렁치렁하게 스르륵 흘러내렸다.
탄탄한 가슴에 가늘어진 몸.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할 수 없는 중성적이고 부드러운 육체.
나는 이 변화를 이전에 한 번 겪은 적이 있다.
외형은 여성처럼 변해 버렸으나 엄연히 생명체가 가지는 성별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특수한 형태.
무성의 형태.
신벌을 받을 때 한번 변한 모습이다.
[한번 변한 탓에 두 번째는 온전히 자리 잡았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전능의 열쇠는 신격을 가져도 인간의 몸으로 다룰 수 없어.]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그녀와 키가 비슷해질 정도로 작아져 버린 내 뺨을 꼬집었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좋은지 그녀가 한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네 신격에 어울리는 육신. 네 성장에 도움을 줄 거야.]
그녀의 말대로 모습이 변하자마자 내 몸 안에서 변하던 힘에 간섭하기가 더욱 쉬워졌다. 아니 놀라울 정도로 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단순히 나를 도우려고 이런 모습으로 바꾼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당신의 사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고?”
내 시선에 그녀는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손에 쥔 태블릿은 쉴 새 없이 플래시를 터뜨린다.
[본래대로 돌아오고 싶다면, 네 신격을 이용해. 그 모습은 내가 과거에 네게 준 시련이며, 벌이고, 선물.]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금 의지를 발현해 내 모습을 빛에 휘감기게 했다.
그리고 다시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포식의 권능을 다루는 힘의 간섭능력은 떨어진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든 싫든. 저 형태로 변하는 게 힘의 완성에 도움이 된다면.
까짓거 못 해줄 것도 없다.
나는 다시금 흑발이 치렁치렁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변한 뒤 로 아이아스의 권능을 마치 찰흙처럼 빚어 뱉어냈다.
그리고는 그 힘을 그녀에게 돌려준 뒤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이전보다 확실히 작아진 키에 영 적응이 안 되지만 그건 상관이 없었다.
“우와. 데이비 님 정말 예뻐지셨네요! 그런데…… 흐음…….”
소야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프리아 여신에 대해 모르니 저런 반응이지. 그녀가 태초의 신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내게 관심이나 주었겠는가.
소야의 그런 불편한 칭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래 여성분이셨어요? 그런데…… 이쪽은 제가 좀 더 크네요.”
소야가 자신의 몸 일부를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금 몸은 성별이 없어.”
내 대답에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어머나. 안타까워라.”
안타까울 게 뭐 있나. 신격으로 만들어진 가장 적합한 육신이며, 껍데기일 뿐인데. 이 몰골로 남들 앞에 나설 생각 따윈 없었다.
이후 나는 숨을 고른 뒤 세계의 법칙이 되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시야에 인식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았어야 할 세상을 이루는 톱니바퀴들이 온전히 시야에 담긴다.
“명심해요. 데이비. 세계의 법칙은 없어지면 무 법칙 상태가 튈 거에요. 한 번에 먹어치우지 말고 야금야금 잠식하듯 하나하나 먹어치우고 바꾸고 다시 조립하고를 반복하세요.”
로 아이아스의 설명에 나는 가장 먼저 크게 비틀려버린 거대한 톱니바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적!!
동시에 거대한 톱니가 내 손끝을 타고 내 안에 있는 끝없는 공복의 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고장 난 톱니가 잠깐 없어진다고 갑자기 세상이 비틀리진 않을 터다.
에반젤린의 의식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대로 둘 수 없다. 페르세르크가 결정을 내릴 사흘 안에, 이 시스템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변화시키리라.
그때였다.
나는 에반젤린에게 쓰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보옥에 어떤 빛의 입자들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세계의 법칙 안에 기록된 무언가를 읽고 복사를 하듯 마구잡이로 빼먹기 시작했다.
저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강력한 풍압에 의해 내 머리카락이 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